<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82화>
천강의 태양을 품은 천마의 무의식에 직접 묻는다.
자신과 인과가 얽힌 기억을 오감으로 살피는 거다!
원래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방법이다.
하지만 머릿돌이 손에 들어온 지금은 가능하다.
대마법을 펼칠 수 있으니까!
김철수는 바로 머릿돌에 심상을 담았다.
‘움직여라!’
차르르륵-
그 순간, 펼쳐진 머릿돌이 정육면체로 돌아가 빙글빙글 회전했다.
순식간에 표면의 선과 도형이 이어지고 섬광이 폭발해 허공에 마력 회로가 그려졌다.
케이크를 쌓아 올리듯 층층이 쌓이는 3차원 적층 마력 회로!
적층 마력 회로가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간.
김철수의 두 눈과 전신에서 황금빛 서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고가 가속되고, 인지가 확장된다.
바람, 달빛, 별빛, 숨결, 먼지, 헌터, 군인…….
세계의 정보가 확장된 인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천마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정보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미 짐작한바!
인과율의 집행자로 당연하다!
모든 인지를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바늘 끝을 바라보듯 확장된 인지가 집중되고 사고가 점점 더 가속한다!
그리고 자신과 천마 단둘만 인식되는 순간, 손가락을 뻗었다.
츠츠츠츠-
머릿돌의 마력과 천강의 태양에서 쏟아진 파동이 뒤엉켜 소멸한다.
아차 하다 천강의 불꽃이 옮겨붙으면 힘과 기억을 잃고 강제 전생 당한다!
찰나에 순간 자신과 얽힌 기억을 엿보고 답을 얻어야 한다!
손가락이 이마에 가까워질수록 사고는 더욱 가속되고 시간은 점점 느려졌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톡-
모든 인지가 모인 손가락이 천마의 이마에 닿는 찰나.
김철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천마의 무의식에 질문했다.
‘나와 얽힌 인과를 보여라.’
둑이 터지듯 기억이 심상 공간으로 밀려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통신선을 까는 지하철 배선 공사!
-방호복을 입은 채 강철 밀대로 슬러지를 긁어내는 대형 하수관 청소!
-등에 맥주 기계를 짊어지고 수많은 사람 사이를 걸으며 생맥주 판매!
-정신없는 외침과 함성이 뒤엉킨 광기 어린 원시 부족 축제!
-하늘 고래가 유영하는 하늘 아래, 몬스터를 끌고 도로를 질주하는 트럭!
-바다를 향해 수백 미터를 뻗은 수로 위를 달리는 물썰매!
……
희열, 탄식, 한숨, 웃음, 즐거움!
오감과 감정을 뒤흔드는 기억이 심상 공간에서 휘몰아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억이!
‘아니, 이게 다 뭐야? 이게 천마와 얽힌 인과라고?!’
생각지도 못한 기억에 당황하기도 잠시, 곧 깨달았다.
‘……있다! 있었다!’
기억 속 모든 장면에 천마가 있다!
그리고 이 천마와 한 남자가 같이 있었다!
능숙하게 배선을 깔고, 슬러지를 긁어내고, 생맥주를 팔고, 작은 신발을 먹고, 트럭을 몰고, 물썰매를 타는 청년!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천마와 같이 탄식하고, 웃고, 한숨짓는 저 청년은…….
미래의 김철수, 자신이다!
‘내가 왜 천마랑 알바를 같이하는데?! 아니 저거 신발이잖아? 신발은 왜 씹고 있는 거야?!’
너무나 황당한 기억에 외치는 순간.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장면이 일순간에 전환됐다.
바람을 향해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산속.
달빛에 환하게 빛나는 하얀 암반 위에 놓인 김밥 한 줄과 생수 한 병!
그리고 그 앞에 돌처럼 굳어 있는 검은 로브를 걸친 왠지 익숙한 소년……?
‘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알아챘다!
검은 로브!
타 대륙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 입었던 로브다!
‘설마!’
반사적으로 다가가는 순간 전신이 격동으로 떨렸다.
“……!!”
소년이 손에 쥔 평범한 돌!
이 평범해 보이는 돌은 머릿돌이다!
제트로 만든 큐브 형태의 머릿돌 마탑의 통제 장치가 아닌, 처음 만든 머릿돌이다!
보석과 강철 황제의 보석, 최초의 머릿돌!
소년은 최초의 머릿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 머릿돌에서 마력장이 흘러나왔다!
대마법!
최초의 머릿돌로 대마법을 펼치고 있는 소년!
마도 황제!
반사적으로 움직여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직후다!’
김철수가 알아채는 동시에 마도 황제 소년이 깜짝 놀라 외쳤다!
[김밥이 여기 왜 있어?!]
외침이 울려 퍼지는 순간 저절로 마력장이 움직였다!
지구로 돌아온 마도 황제는 마법을 쓰고 있었다!
지금까지 차원압이 높은 지구로 통로를 뚫은 여파로 기억을 잃고, 최초의 머릿돌과 타이탄을 분실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최초의 머릿돌은 손에 있고, 무의식중에 마력장을 움직여 대지의 기억을 재생한다!
10대 후반의 소년으로 어려진 상태지만, 마력과 기억, 머릿돌 모두 가지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암반 위에서 재생되는 대지의 기억이 보였다.
“……!”
경의를 바치며 암반 위에 공손히 김밥과 생수를 내려놓는 남자.
방금 쏟아진 기억 속 자신과 같이 알바를 한 청년이다!
천마!
자신과 같이 알바를 한 천마가, 지구에 돌아왔을 때 김밥과 생수를 바쳤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마 환상?! 더미로 만들어 둔 거짓 기억?!’
이 순간 마도 황제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듣는 순간 마도 황제의 감정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타 대륙을 통일하고 수백의 마탑을 세우고 전능 옥좌를 띄웠다.
세계의 나무를 가로지르는 천공탑을 세워, 수천 세계를 잇는 마도 제국을 세웠다.
그런 마도 제국의 절대자, 보석과 강철의 황제에 바친 공물.
김밥과 생수!
너무나 마음에 드는 최고의 공물이었다.
그렇기에 웃음이 뚝 그쳤을 때 세계에 선언했다.
[천문석. 돌멩이! 너 내가 기억했다! 내 최측근으로 써 주마!]
‘뭐, 누굴 측근으로 쓴다고?! 아니, 그걸 왜 세계에 선언……?!’
이 순간 한 이름이 벼락 치듯 뇌리에 때렸다.
천문석!
구슬을 하나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 듯 심상 공간에 쏟아진 기억이 줄줄이 연결되고, 자신과 얽힌 인과가 올올히 밝혀졌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인과의 기억!
자신과 알바를 같이 한 청년의 이름이 천문석이다.
자신과 대학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수많은 알바를 같이하게 될 청년!
이 기억은 자신에게는 아직 겪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기절한 천문석에게는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이다!
자신과 천문석의 과거와 미래, 원인과 결과가 반전됐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환상, 함정, 거짓된 기억?!
반사적으로 인증 파문을 일으켜 무결성을 검증하려는 순간 보였다.
마도 황제의 두 눈에서 주르륵 흐르는 눈물!
김밥을 먹고 눈물을 흘리는 마도 황제!
환상도 거짓된 기억도 아니다!
마도 황제에게서 전해지는 선명한 감정이 이 모든 게 진실이란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자신이 지구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
마도 엔진에 한글로 새기기까지 했던 소망!
‘김밥 먹고 싶다!’
자신은 김밥 먹으러 마도 황제도 그만두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런 김밥을 지구로 돌아온 직후 발견하고 먹으며 느끼는 희열과 찬탄, 기쁨은 환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김철수는 기억 속 마도 황제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소년이 된 마도 황제는 웃고 울면서 김밥을 꼭꼭 씹어 먹고, 500ml 생수를 단숨에 마신 후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수인을 짚고 멈췄던 대마법을 다시 펼쳤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마력 파문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힘과 기억을 봉인하는 대마법이다!
‘중간중간 뻥뻥 뚫린 기억들! 이게 내가 스스로 봉인한 결과였다고?!’
생각지도 못한 진실에 경악할 때.
사방에서 모여든 마력장이 저절로 마력 회로를 구성했고.
마도 황제는 손에 쥔 최초의 머릿돌을 휙- 집어 던졌다!
‘머릿돌은 또 왜 집어 던져?!’
경악도 잠시 바로 깨달았다!
이건 최초의 머릿돌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확인할 기회다!
반사적으로 허공을 날아가는 머릿돌을 쫓아 달리려는 순간.
마도 황제는 체력이 방전된 꼬맹이처럼 픽- 쓰러졌다.
‘얘는 또 왜 이래?!’
깜짝 놀라 몸을 멈출 때 대마법이 완성됐다.
적층 마력 회로가 전신에 스며들고 힘과 기억이 봉인되기 시작한다!
‘야 정신 차려! 지금 뭐 하는 거야?!’
쓰러진 마도 황제를 잡고 흔들지만, 이 모든 것은 심상 공간에 스며든 기억일 뿐!
김철수의 손은 마도 황제의 로브와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어쩔 수 없다. 머릿돌의 위치라도 확인한다!’
몸을 일으켜 달려가려는 순간 쓰러진 마도 황제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생수병을 노려봤다.
그 눈에 담긴 이글거리는 분노!
‘무언가 말하고 있다!’
김철수는 반사적으로 인증 파문을 일으켜 마도 황제의 마음에 감응했다.
‘저건 생수가 아니다!?’
깜빡-
‘미친놈아!’
깜빡-
‘생수통에 왜!?’
깜빡-
‘포션을 넣어놔!!??’
깜빡-
‘그것도 최하급 포션을!!’
깜빡-
생수병에 최하급 포션이 들어 있었다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밥 옆에 놓여 있던 텅 빈 생수병이 보였다!
천마가 김밥과 함께 공물로 바친 생수다!
아니 세기말 대한민국에 어떻게 최하급 포션을…… 잠깐만! 분명 어디서 최하급 포션을 봤는데…… 가방!
문득 스치는 직감에 재빨리 기억을 되짚었다.
천마의 가방에서 나온 반창고, 붕대, 지혈제, 동전, 소화제, 나무토막, 실과 바늘, 라이터 그리고…….
최하급 포션!
천마가 공물로 바친 생수!
천마가 가지고 있던 최하급 포션!
생수에 최하급 포션이 섞여 있었다!!
포션은 육체의 생명력을 당겨 와 치유력을 극대화한다.
밤을 새우면 졸리듯이 포션을 사용해 생명력을 당겨 쓰면 쇼크가 오는 게 당연했다!
포션 쇼크!
이게 바로 자신의 기억에 구멍이 뚫린 이유였다!
마도 황제가 최하급 포션의 ‘포션 쇼크’에 쓰러진 타이밍, 대마법 봉인이 완성됐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더럽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이런 거지 같은!!’
분노를 터트리는 순간.
으아악-
괴성을 지르며 돌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마도 황제.
‘또 뭐 하는 거야?!’
이때 악을 쓰며 손을 뻗은 마도 황제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뻗은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보였다.
-비탈을 굴러내러 가다가 암반 위에서 멈추는 머릿돌!
-유성이 되어 떨어진 후 아공간으로 들어가는 타이탄!
보석과 강철!
최초의 머릿돌과 타이탄 강철!
‘강철도 여기에 있던 거야?!’
여기서는 더 볼 게 없다!
보석과 강철! 머릿돌과 타이탄의 위치부터 확인한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달리는 순간, 거대한 외침이 메아리쳤다!
[감사합니다! 카캬카카카-]
강철이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누군가 아공간에 들어간 타이탄을 낚아채 째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눈앞에서 도둑맞았다고?!’
김철수가 충격에 비틀거리는 순간.
포션 쇼크와 대마법 봉인에 맛이 가는 마도 황제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라!”
“천문석이 타이탄 강철을 가지고 튀었다!”
“문석을 찾아서 타이탄 강철을 회수해라!”
“석이 가지고 튄 강철을 찾아라!”
“석을 찾아 강철을 회수…….”
“돌을…… 철을 찾아…….”
……
절절한 외침은 급격히 작아졌고, 힘겹게 세웠던 고개는 어느새 툭 떨어졌다.
대마법 봉인은 몸으로 스며들어 세계의 비의에 닿은 기억을 누구도 엿볼 수 없도록 봉인하고, 마력은 따뜻한 바람이 되어 주위로 흩어졌다.
휘이이이-
잠시 후 햇살이 따듯한 봄날처럼 포근해진 바위 위에는 쿨쿨 잠든 꼬맹이가 잠꼬대하듯 말하고 있었다.
“돌과 철…….”
“돌과 철을 찾아…….”
“돌과 철을 찾아라…….”
……
검은 로브를 담요처럼 휘감은 채 돌과 철을 찾으라고 잠꼬대하는 꼬맹이.
아공간에 들어간 타이탄 강철을 낚아채 번개같이 도망치는 헌터.
김철수는 이 두 사람을 보는 순간, 마침내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잠든 꼬맹이는 기억을 잃고 서울 폐허를 달리던 자신이다!
지금 잠꼬대는 그때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기억이었다!
‘돌과 철을 찾아라!’
보석과 강철!
차원 방벽을 넘으며 분실한 최초의 머릿돌과 타이탄 강철을 찾으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었다!
타이탄을 잽싸게 낚아채 도망친 헌터.
김밥과 최하급 포션이 섞인 생수를 놓아둔 천마.
자신과 수많은 알바를 같이하고 개고생을 함께한 후배.
헌터, 천마, 후배.
미래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자신과 인과가 얽힌 세 사람은 같은 사람, 한 사람이었다!
천문석(天問石)!
이 녀석이 모든 사건의 범인이었다!
천문석, 석(石), 돌!
타이탄 강철, 철(鐵), 철!
‘돌과 철을 찾아라!’
이 말은 천문석이 가지고 튄 타이탄 강철을 찾으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