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80화>
‘내가 이세영 선생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고?!’
홀린 듯이 이야기를 듣던 천문석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혹시 각성한 다음……?”
“아뇨. 각성하기 전이었어요. 그때가…….”
믿을 수 없었다.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에게는 은사님 그 자체!
알바를 구할 때마다 찾아와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설거지하고, 서빙을 도와주신 분이 이세영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에게! 각성해서 10대 중반의 모습도 아니고 40대의 이세영 선생님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고!
“제가 딱밤을 날렸다고요? 진짜로요?!”
“기억 안 나세요?”
이세영 선생님은 앞머리를 올려 이마를 보였다.
“귀인께서 리볼버랑 탄약을 넘기시더니 말씀하셨잖아요! 깜짝 선물 있으니까 잠깐 눈 감으라고! 그리고 제가 눈 감으려는 순간!”
따아아악-
나무 쪼개지는 소리를 흉내 내고 말을 잇는 이세영 선생님.
“이마에 딱밤이 날아오고! 눈앞에 별이 번쩍하더니! 정신줄 놓고 기절했어요!”
“그렇게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제가 뭐라고 했나요?!”
재빨리 묻는 순간 고개를 좌우로 젓는 이세영 선생님.
“아뇨. 제가 깨어났을 때는 귀인께선 이미 사라진 후였어요.”
“게다가 건물을 포위했던 마수와 몬스터는 모조리 박살 났고!”
“건물 주위에는 철근, 시멘트, 자동차가 뒤엉킨 거대한 장벽이 생겨 있었어요!”
“그때 몸이 엄청 가벼워서 얼굴을 확인했는데 확 어려진 거예요! 그래서 바로…….”
‘얼굴이 어려졌다고? 설마!’
천문석은 말을 끊었다.
“잠깐! 잠깐만! 얼굴이 어려졌다고요?! 그거 혹시 각성……?”
“네. 맞아요! 각성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바로 헤어진 동생 가족을 찾아 출발했는데. 거리에 발을 디디는 순간 갑자기 촉이 온 거예요! 깜짝 놀라 확인하니까! 건물을 습격하는 몬스터가 나타났고, 귀인께서 주신 리볼버 방아쇠를 당겼더니 빛에 휩싸인 탄환이 튀어나와 몬스터를 태워 버리고!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귀인께 절 구해 주신 그 건물로 데려갔죠! 장벽이 있어서 안전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동생 가족을 찾아 출발했는데. 거리에 나설 때마다 촉이 오고,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세영 선생님은 각성한 후 일어난 일들을 줄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적당히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핵심에 집중했다.
핵심은 자신의 딱밤을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이세영 선생님이 각성했다는 것!
딱밤을 맞고 각성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이세영 선생님에게 딱밤을 날렸다는 게 믿기 지가 않았다.
“잠시만 제가 진짜로 딱밤을 날렸나요?!”
재차 확인하는 순간.
이세영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내밀었다.
“딱밤이 아니었나? 좀 특이하긴 했는데…… 손가락을 이렇게 하셨거든요.”
엄지로 손가락을 누르고 허공을 향해 튕기는 이세영 선생님.
중지도, 검지도 아니다!
네 번째 손가락, 약지로 딱밤을 때렸다!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딱밤을 때려 각성하게 만든다.
이름을 받은 요괴선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했던 적이 있다!
광승(狂僧)!
지권인을 짚고 지혜의 륜(輪)을 밝혀 소림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을 때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의 몸에서 쏟아지는 대일여래의 빛에, 장경각주 광승은 이름 그대로 광분했다.
‘사술이다! 감히 소림사에서 마귀의 사술을 펼치다니!’
광승은 자칭 금강불괴에 이른 반야공을 휘감고 오십보, 삼십보, 십보신권을 펼쳤다.
‘죽어랏! 마귀의 종자!’
아수라 같은 모습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소림사 광승.
‘…….’
지권인을 짚고 지혜의 륜을 띄운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정과 마, 서로의 위치가 바뀐 듯한 승부는 채 10합도 걸리지 않았다.
광승의 주먹은 천마의 합기(合氣)를 뚫지 못했지만.
천마의 검지 딱밤은 장경각주 광승의 반야공을 뚫고 머리를 깨트렸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정신줄을 놓았던 광승은 대오각성! 권절로 천하십절의 수좌에 올랐다!
무림의 치트키. 천검 이세기에게 패배하기 전까지만.
그때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수 있다!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파팟- 머릿속에 떠올랐다!
손에는 검(劍)이 있다. 검지(劍指)!
그리고 약(藥)도 있었다. 약지(藥指)!
대지의 일기공으로 용맥을 밟고.
하늘의 일원공으로 천기를 가리킨다.
용맥과 천기를 잇는 흐름에 담을 건.
천강흔에서 흘러나오는 이 거대한 힘!
이 힘을 담아 약지(藥指)로 날리는 딱밤으로 때리는 건 이마가 아니다.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
무한한 심상 공간에 잠든 씨앗, 포텐, 잠재력을 발아시키는 거다!
방법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할 수 있다!
약지 딱밤으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 서울 건물 위에 고립된 이세영 선생님을 각성시킬 수 있다!
‘이거구나!’
천문석은 이 순간 2004년 부산으로 오게 된 이유를 알아챘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리볼버와 마탄을 전하고 역대 최고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으로 각성시킨다!]
이세영 선생님을 만나 지금 이야기, 2000년에 해야 할 일을 듣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수많은 인과의 고리가 준비됐다!
-완행으로 뒤엉킨 나뭇가지를 가로지를 거라는 워커 실트의 외침!
-빛의 길 위에 가로 놓여 있던 거대한 빛의 장벽!
-서울 대성당과 김철수 신부님!
-염동 대협과 칠성파 보스 마혁진!
-마스크, 작업용 앞치마, 공구 벨트!
-헌터용 배낭에 들어 있는 리볼버와 수백 발의 정품 마탄!
-당장이라도 열릴 듯 헤지고 찢어진 천강흔 랜덤 박스!
-천강흔 랜덤 박스에서 새어 나오는 이 엄청난 힘!
원인과 결과, 인과를 잇는 고리들!
수많은 단서가 머릿속에서 하나로 뭉치는 순간 깨달았다!
이세영 선생님이 말하는 과거는 자신의 미래다!
2020년에서 2004년을 거쳐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 도착한 자신이 맞이할 미래였다!
이세영 선생님은 미래의 자신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미래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더 정확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계셨다!
아니, 이건 이세영 선생님이 말하는 게 아니다!
“……!”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드는 순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거대한 흐름이 느껴졌다.
하늘의 인과, 저울, 천의, 운명이라 불리는 무언가가 이세영 선생님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래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문득 고개를 내리는 순간 환한 얼굴로 말을 쏟아 내는 이세영 선생님이 보였다.
하지만 환한 얼굴과 달리 이세영 선생님은 각성력의 그릇에 금이 간 상태였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금 전율이 흘렀다.
이것이 국정원 최 팀장이 칠성파 보스 마혁진 영입에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린 이유였다.
23층 펜트하우스에서 빠져나올 때, 최 팀장은 마혁진을 업고 달리며 외쳤다.
‘마혁진이 없으면 엄청난 피해! 어쩌면 작전이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최 팀장이 검은 폭풍을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최 팀장은 검은 폭풍을 과소평가한 게 아니라 정확하게 평가했다!
이세영 선생님은 이미 각성력의 그릇에 금이 간 상태!
이대로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하면 작전은 실패하고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원래 역사에서는 이세영 선생님은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키고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고 학생 천문석을 만나게 된다.
어떻게 그 모든 게 가능했을까?
그 답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이세영 선생님이 ‘귀인’에게 쏟아 낸 말들!
-리볼버와 수백 발의 마탄!
-각성을 깨우는 약지(藥指) 딱밤.
-당장이라도 찢어져 열릴 듯한 천강흔 랜덤 박스.
-각성력의 그릇에 금이 간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전생 천마 천문석이 여기 있었다!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날 리 없었다.
하늘님의 설계다!
“……!”
천문석은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여전히 아득한 천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으나, 자신에게 닿은 천의의 끝자락에 담긴 뜻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세영 선생님.
전생을 기억하기 전에 만났고.
전생을 기억한 후 다시 만났다.
그리고 미래에 다시 만날 이세영 선생님.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터트려 준 포텐, 각성력은 이미 마르기 시작했고 그릇마저 금이 가고 있다.
이대로면 서울 수복 작전은 실패하고 이세영 선생님은 작전에서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러나 하늘님의 설계로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을 만났다.
천강흔 랜덤 박스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힘을 가진 무의 극에 달했던 전생 천마를!
천강흔에서 쏟아지는 힘과 일기일원공의 내력이면 이세영 선생님의 마르기 시작한 각성력을 채우고 금이 간 그릇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약지 딱밤으로 이세영 선생님을 각성시켜야 한다.
과거. 이세영 선생님을 각성시켰고.
현재. 검은 폭풍의 금이 간 그릇을 고치고.
미래. 다시 교단에 선 이세영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거대한 인과를 통해 하나로 엮여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천강흔의 힘을 두 번이나 사용한다면 찢어지기 직전인 랜덤 박스는 열리고, 그 안에 있을 XXX등급 무공, 천마신공은 깨어나리라.
지금 하늘님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무엇을 선택할 거냐?’
역시 공명정대와는 거리가 먼 하늘님다운 질문이었다.
사기꾼 최 팀장과 이 선생을 조진다는 처음의 목적조차 잊은 선생님.
환한 얼굴, 반가운 감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말을 잇는 각성자.
각성력이 마르고 그릇에 금이 가는 데도 주저하지 않고 서울 수복 작전에 참가한 지휘관.
“……아니, 그동안 어디 계셨던 거예요?! 제가 귀인님을 얼마나 찾았는데요! 앗! 그러고 보니……!”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이세영 선생님 앞에서 하늘에 들려줄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천문석은 손바닥을 내밀며 웃었다.
“이세영 선생님. 손에는 약(藥)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 * *
‘와, 이게 이렇게 된 거였어?!’
김철수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모든 것을 머리에 새겼다.
확률 변수 고정의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고.
천강의 불꽃을 품은 천마는 그 말을 듣고 질문하고 대답했다.
각성자가 쏟아 내는 말과 천마의 대답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짐작됐다.
미래, 현재, 과거로 이어지는 인과!
누군가 인과의 고리를 잇기 위해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 천마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누가 인도했는지는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다.
동전을 하늘로 던지면 떨어지듯, 하늘의 인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천마를 이 자리에 불렀다!
그리고 왜 불렀는지도 바로 감이 왔다.
각성자의 깨진 그릇을 붙이고, 텅 빈 각성력을 채워 주기 위해서다!
원래는 명운을 깎아 내 그릇을 붙이고 각성력을 채워 주려 했는데,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하늘의 인과는 이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천마를 준비했으니까!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기억을 잃은 이래 연이어 터진 불운!
그 연속된 불운이 마침내 끝나고 행운이 찾아왔다!
‘와!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재수가 좋아?!’
김철수는 내심 탄성을 터트리며 기척과 존재감을 지우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끼어들 필요는 없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천마의 손으로!
이때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영 선생님. 손에는 약(藥)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네? 약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각성자.
뻗은 손을 까딱이며 말을 잇는 천마.
“……이 네 번째 손가락은 약지(藥指)라고 부르잖아요? 왜 약지라고 부르는지 아시나요?”
“약지를 깨물어 피를 먹였다는 전설 때문 아닌 거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계단을 오르는 각성자.
이 순간 보였다.
뒤로 한 걸음 걷는 천마의 등 뒤에 숨겨진 손이!
엄지로 약지를 누르는 모습!
각성자의 이야기 속에 나왔던 모습이다!
‘시작하는구나!’
김철수는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으로 눈앞의 모든 광경을 마음에 새겼다.
이때 불현듯 느껴지는 게 있었다.
‘어, 잠깐. 지금 뭔가 깜빡한 거 같은데……?’
재빨리 몸 상태를 점검하고 주위를 돌아봤지만, 이상은 없다!
‘감각 오류인가?!’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보였다.
층계참에서 뒤로 걷는 천마.
천마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각성자.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경고음은 각성자가 계단을 오를수록 점점 더 커졌다!
심장이 쿵쿵 요동치고.
손발이 파르르 떨리더니.
전신의 솜털이 파팟 곤두섰다!
‘아니 왜 갑자기…… 앗!”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마법 회로!
조폭 헌터들이 8층 비밀통로에 접근하지 못하게 마법 회로를 새겼다.
5층 계단을 올라와 층계참에 발을 디디는 순간 터지도록 우레 폭풍의 마도왕, 레이 실트의 뇌전 마법을 깔아 놨다!
지금 각성자가 올라오는 6층 층계참에!
“……!”
반사적으로 달려가며 마력을 일으켜…… 지지 않는다!
마법 회로를 새기고 은신을 펼치느라 가뜩이나 적은 마력이 바닥났다!
[잠깐! 정지! 멈춰!]
다급히 외쳤지만, 은신 상태라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마석, 마석이 어디에?!’
정신없이 주머니를 뒤질 때 그 일이 일어났다.
각성자가 모든 계단을 올라 층계참에 발을 디디는 순간.
천마가 숨긴 손이 번개같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귀인님?!”
“죄송합니다!”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각성자.
주저하지 않고 딱밤을 날리는 천마.
그러나 이 딱밤은 이마에 닿지 못했다.
탁-
각성자의 발이 층계참을 디디는 순간 거대한 섬광이 시야를 반으로 갈랐으니까!
수십, 수백 다발의 뇌전이 공간을 가르고 거대한 우렛소리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각성자가 경악하고 천마가 모든 힘을 모아 날린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
우레 폭풍의 마도왕, 레이 실트의 뇌전의 폭풍이 두 사람에게 직격 했다.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콰카카카카캉-
각성자와 천마는 그대로 뇌전의 폭풍에 지져졌다!
뇌전이 폭풍이 오랫동안 몰아치지는 않았다.
1분도 안 되는 겨우 30초 남짓.
그러나 이 30초면 충분했다.
뇌전의 폭풍이 멈췄을 때, 완전히 허를 찔린 각성자와 천마는 이미 층계참에 쓰러진 채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으니까.
“…….”
김철수는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서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즉, 각성자의 바닥난 각성력을 채우고 천마가 인과의 고리를 이을 수 있도록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김철수 바로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