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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78화 (1,07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78화>

비상계단 10층.

김철수는 흠칫 놀라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

“……!”

순간 심장이 요동치고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엄청난 각성력을 지닌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칠성파 빌딩을 오를 각성자라면 조폭 헌터뿐이다. 이대로면 유희연과 만나기 전에 뒤를 잡힌다!

김철수는 잠시 계단 위를 살피더니 속도를 줄였다.

이 순간 위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너 따라오는 거 맞지?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돼! 내 목소리 잘 들으면서 따라와! 아까 말했지? 이상한 소리 들리면 바로 아까 거기로 돌아가고!”

“알았다니까 그러네!”

크게 외친 김철수는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고 빵을 건네준 유희연.

위험하니까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유희명.

유희연, 유희명 자매는 약지 못한 남들보다 먼저 죽을 바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바보와 음식을 나누고 인사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뻔했다.

‘얼른 뛰어 올라가서 동생이랑 만나라.’

김철수는 소리 없이 몸을 돌려 계단 아래로 달렸다.

비밀통로가 있는 곳은 8층!

계단을 오르는 조폭 헌터가 8층 위로 올라오면 유희연, 유희명 자매가 빠져나갈 길이 막힌다.

8층까지 올라오지 못하도록 끊어야 한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만드느라 남은 마력은 한 줌!

그러나 이 한 줌의 마력이면 충분하다.

마도의 힘은 마력이 아닌 기억에 있다!

일부지만 기억을 되찾은 지금의 자신이라면 조폭 헌터 수십이 몰려와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직접 싸울 필요는 없다.

마도사는 준비하는 사람, 3분이면 충분했다!

김철수는 한달음에 6층으로 내려가 마석 가루를 분필 삼아 마법회로를 그려냈다.

“하, 그냥 마탑 머릿돌이라도 하나 챙겨 놓는 건데…….”

마탑의 머릿돌만 있으면 지금 상태로도 대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일단은 지금 그려 낸 마법회로로도 충분했다.

마도왕급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감지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5층 계단을 지나 6층 마법 회로에 발을 디디는 순간 정신줄을 놓게 될 거다!

당연했다. 이 마력회로는 우레폭풍의 마도왕 레이의 뇌전 마법이 담겼으니까!

크크크킄-

꼬맹이 김철수는 웃음을 삼키며 벽 모서리에 쪼그려 앉아 완벽하게 은신했다.

잠시 후 김철수가 예상한 대로 엄청난 힘을 지닌 각성자가 조폭 헌터들이 가득한 로비를 뚫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폭풍 이세영이었다!

도망치려는 헌터들로 비상계단은 가득 찬 상태.

하지만 2층을 넘어가자 비상계단은 텅 비었다.

그 이유는 활짝 열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외침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로비는 특무대로 막혔다!”

“창문! 2, 3층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게 낫다!”

“계단은 안 돼! 특무대가 올라올 거야!”

“잡히면 낙동강 전선으로 끌려간다!”

“문 막고! 바닥을 뚫어라!”

……

정신없이 쏟아지는 외침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영상이 그려졌다.

바닥을 뚫고 저층으로 내려와 창문으로 도망치는 조폭 헌터들!

“야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야! 그럴 필요 없어!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면 밖으로 보내 줄 거야! 강제 징병 안 해!”

이세영은 뻥 뚫린 문을 향해 외쳤다.

“특무대! 검은 군복!”

“야! 튀어! 벌써 특무대가 왔다!”

“빨리 문 막으라니까!”

“강제 징병당한다!”

고양이를 본 쥐처럼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안으로 도망치는 헌터들!

“야! 강제 징병 안 한다니까!”

진실을 아무리 외쳐도 헌터들은 멈추지 않았다.

하아아-

이세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특무대에 각성자에 대한 징병 권한이 있는 건 맞지만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다.

누구나 생명은 소중한 법.

누가 대의를 위해 희생할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뿐이다.

자기 자신!

가장 위험한 전장에서 싸우는 특무대는 전원 지원병으로 이뤄졌고. 아무리 조폭이라도 민간인인 이상 그건 당연한 권리였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며 만난 조폭 헌터들은 당연히 강제 징병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헛소문을 퍼트렸을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미 2번이나 사기를 치다 자신에게 걸린 녀석!

국정원 최 팀장이다!

이 녀석이 또 약을 팔고 다녔다!

검은 폭풍 이세영은 분노를 담아 외쳤다.

“최 팀장!”

분노가 담긴 외침이 터지는 순간 외침에 담긴 각성력이 계단을 타고 빌딩 위로 퍼져 나갔다.

구으으으응-

이 진동을 6층에 은신한 꼬맹이 김철수와 13층에서 유희명을 만난 천문석이 느꼈다!

‘각성자가 올라오고 있다!’

‘이세영 선생님이다!

꼬맹이 김철수는 존재감 자체를 완전히 지웠고.

천문석은 유희연의 언니 유희명에게 말했다.

“난 먼저 내려가 입구 확보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애들한테 전해. 먼저 비상 통로로 빠져나가라고. 난 7층, 아니 6층 계단을 무너뜨리고 따라간다! 움직여라!”

말을 쏟아 내고 달리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돌아왔다.

“아래! 꼬맹이! 꼬맹이가 저를 따라…….”

“걱정 마라! 꼬맹이는 내가 챙길게!”

단숨에 계단을 뛰어내려 층계참에 착지!

빙글 180도 몸을 돌려 다시 한번 계단을 뛰어내린다!

쿵, 타탓, 쿠우웅-

한 층을 내려가는 데 단 두 번의 도약이면 충분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비밀통로가 있는 8층에 도착했다.

그러나 뒤따라오고 있다는 꼬맹이는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비밀통로로 피한 건가?!’

8층의 방화문은 굳게 잠긴 상태!

천문석은 혹시나 천강흔이 찢어지지 않게 내력을 잔뜩 억누른 채 손을 뻗었다.

쿵-

자물쇠에 손이 닿는 순간 뿌리 뻗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기감!

자물쇠의 구조가 머리에 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내력이 움직이고 자물쇠가 회전했다!

철컥-

방화문이 열리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재빨리 복도 너머를 확인하려는 순간,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에 아래와 위에서 전해지는 진동과 발소리가 느껴졌다!

구우우웅-

이세영 선생님이 4층을 밟았고!

타다다다닷-

동료들은 12층을 지나 내려오고 있다!

이세영 선생님이 예상보다 더 빠르다!

이대로면 이세영 선생님이 먼저 8층에 도착한다!

우선 6층 계단을 무너뜨려 시간을 번다!

천문석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기감을 뻗었다.

‘꼬맹이! 어디 있냐?!’

그러나 8층, 7층을 지나 6층에 도착할 때까지도 꼬맹이는 보이지 않았다!

가능성은 둘!

비밀통로로 피했거나, 6층 아래로 내려가 이세영 선생님에게 잡혔다!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꼬맹이는 안전하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이세기 선생님과 꼬맹이가 같이 있는지 확인하는 즉시 6층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쿵-

6층 층계참에 도착하는 즉시, 내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힘을 억눌렀다!

천강흔 랜덤 박스는 찢어진 골판지나 마찬가지!

자신이 쏟아부은 힘의 편린만으로도 갈가리 찢어져 열릴 수 있다!

천문석은 폭약과 뇌관을 분리하듯 천강흔의 힘을 일기공과 일원공에 담아 왼손과 오른손 둘로 나눴다.

우르르르르-

우렛소리와 함께 양손에 담긴 천강흔이 물결치듯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최 팀장!”

분노한 외침과 함께 이세영 선생님이 5층에 도착했지만 이미 늦었다!

파스스스스스-

천문석은 양손에서 퍼져 나가는 힘의 파동에 심상을 실어 움직였다.

‘무너뜨린다!’

이 순간 계단 모서리에 은신한 꼬맹이 김철수는 경악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계단 위에서 뛰어 내려와 마법 회로를 밟은 남자의 양손에서 퍼져 나오는 힘의 파동!

둘로 나누고 잔뜩 억눌러 억제했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세계의 나무에 대륙어를 새겨 넣을 때 느꼈던 불꽃이다!

신성을 얻어 신위에 닿은 존재조차 강제 전생(轉生)시키는 천강(天罡)의 불꽃!

천강의 불꽃을 담을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만들며 걱정했던 존재.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逆天).

지극(地極)을 밟고 비상해, 천원(天元)에 닿은 천의와 인과율의 심판자.

천마(天魔).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천강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천마가 나타났다!

‘시바!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김철수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터트리는 순간.

“최 팀장!”

각성력이 담긴 외침과 함께 5층에서 한 소녀가 나타났다.

“……!”

이 소녀를 보는 순간 김철수는 단숨에 사고 가속 상태로 빠져들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작은 체구의 각성자!

보는 순간 그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예지 능력자로 알려졌을 거다.

하지만 예지 능력은 이 소녀가 가진 능력의 단면일 뿐이다.

이 소녀가 가진 능력은 악신과 고대신, 초월적 존재들이 바글거리던 타 대륙을 뒤집어엎었던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끈 힘이다.

보석과 강철의 황제의 이능.

돌철 황제만이 다룰 수 있던 힘.

‘확률변수 고정’ 능력을 가진 소녀가 나타났다!

기억 대부분이 날아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김철수 자신이 잃어버린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나타났다.

천강의 불꽃을 피워 올리려는 천마 앞에.

언제 각성력의 그릇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으로!

* * *

“……!”

김철수는 가속된 사고 속에서 빛의 속도로 생각을 이어 갔다.

천의와 인과율의 심판자 천마!

확률변수 고정능력을 가진 각성자!

두 사람이 자신 앞에서 만났다.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날 리 없었다!

게다가 각성자는 언제 각성력의 그릇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당연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확률변수 고정은 이미 던진 주사위를 멈추는 것과 같다!

작은 주사위라면 손을 뻗어 멈추면 된다.

하지만 바위라면? 산이라면? 보이지 않는 운명을 고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명운(命運)!

각성자의 육체라도 버틸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

김철수는 벼락 치듯 깨달았다.

‘그래서 천마가 나타났다!’

확률변수 고정은 강을 역류시키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하늘로 솟게 만드는 역천(逆天)!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 천마가 나타난 건 당연했다!

눈앞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

가속된 사고 속에 있지만,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다.

천마의 양손은 천강의 불꽃을 피워 올리기 직전이고.

각성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천강의 불꽃에 직격당한다면, 각성자는 한 줌 재가 되어 강제 전생하리라!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넌 무엇을 선택할 거냐?’

김철수는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비슷한 질문을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결국, 혁명이 실패하고 미래를 기약하며 동료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을 때 떨어지는 별똥별에 기원했다.

그때 어이없게도 별똥별은 방향을 바꿔 자신을 향해 떨어졌고, 그 안에서 분노한 꼬맹이가 튀어나와 멱살을 잡고 외쳤다.

‘야, 이 미친 인간! 너 뭐야?! 어떻게 항법장치를 해킹한 거야?!’

그것이 별의 바다를 항해하는 노움 종족 최고의 천재, 워커 실트와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고 워커 실트는 첫 번째 타이탄에 시동을 걸기 직전 자신에게 물었다.

‘돌철. 계속해? 아니면 멈출까? 그 능력 사용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어떻게 할래?’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눈앞에 확률변수 고정의 힘을 지닌 각성자가 나타났다.

확률변수 고정의 힘을 가진 각성자라면 강철의 폭풍 타이탄이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듯,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릇이 깨지기 직전이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힘과 기억 대부분을 잃었기에 오히려 명운은 가득 채워졌다.

지금 자신의 명운이라면 그 그릇이 평생 마르지 않도록 가득 채워 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김철수의 대답은 워커가 물었을 그때와 같았다.

‘야, 판돈이 승리인데 당연히 해야지!’

김철수는 가속된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동시에 품에 손을 넣으며 천마에게 접근했다.

소리, 기척, 존재감이 모두 지워진 허상이 되어 각성자에게 메시지 마법을 던졌다.

[야! 우선 튀…….]

이 순간 계단을 뛰어오르던 각성자의 경악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마스크!”

“그 작업용 앞치마!”

“4년 전! 서울 외곽 빌딩!”

“그때 저 도와주신 그분 맞으시죠?!”

“귀인!!”

[도망쳐! 천의의 심판자……!]

경악한 김철수가 메시지 마법을 던지려는 순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천강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천의의 심판자 천마가 대답했다.

“……귀인요?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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