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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73화 (1,07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73화>

“……여기가 금고라고?”

천문석의 말에 신나게 통조림을 챙기던 한호석 병장이 대답했다.

“네! 정말 간신히 열었습니다! 앗! 복숭아 통조림! 와, 정말 오랜만이네!”

“군인 아저씨! 여기 스팸도 있어요!”

“스팸!”

유희연의 외침에 한달음에 달려가는 한호석 병장.

“…….”

천문석은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금고 문이 열렸다는 외침에 한달음에 달려온 방.

그곳은 강화 철문을 달아 방 하나를 통째로 금고로 만들었다.

이 금고 방에는 서류가 가득한 선반과 고기, 생선, 과일 같은 온갖 종류의 통조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정확히는 서류랑 통조림만 있었다!

아니, 부산의 황제라며?

한국 최강의 각성자라며?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당연히 조폭 보스 금고면 골드바가 착착 쌓여 있어야지!

“통조림? 통조림이라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야, 염동 대협! 야, 빨리 와 봐!”

곧 금고 방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불러?”

귀찮은 표정으로 나타난 염동 대협, 2020년의 마혁진!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촉이 왔다!

염동 대협 마혁진, 이 녀석이라면 당연히 비상금을 따로 챙겨 뒀을 거다! 손쉽게 들고 튈 수 있는 골드바 같은 거로 말이다!

천문석은 잽싸게 달려가 속삭였다.

“골드바 있지? 부산의 황제 금고인데 당연히 골드바, 귀금속 같은 거 쟁여 둔 거 맞지? 어디냐? 혹시 비밀 공간에 숨겨 놨냐?!”

“골드바?”

순간 염동 대협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생겨났다.

“골드바보다 더 귀한 게 있다.”

“역시! 더 귀한 거? 보석?! 혹시 미국 국채라도 사 뒀냐?!”

한껏 기대를 담아 묻는 순간 서류가 가득한 선반을 가리키는 염동 대협.

“서류.”

“야, 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귀한 게 있다!”

“……더 귀한 것?!”

솔깃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선반을 가리킨 손이 바로 옆으로 움직였다.

“통조림이 잔뜩 있다!”

“……그리고? 그리고 또 있지?!”

염동 대협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야! 전쟁통에 장기 보존 가능한 통조림보다 귀한 게 어디 있냐? 골드바? 게이트 전쟁 초기에는 1.88kg 참치 통조림 10개면 서울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골드바는 상대도 안 됐어.”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골드바 같은 건 처음부터 여기 없었다.”

“야, 그럼 이 방은 왜 금고로 만든 건데? 설마 서류에 통조림을 지키려고? 아니, 어떤 미친놈이 칠성파 빌딩 꼭대기! 23층까지 올라와서 칠성파 보스 펜트하우스에서 서류랑 통조림을 훔쳐?!”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염동 대협은 말없이 뒤를 가리켰다.

“대박이다! 대박! 와! 찬석이가 이걸 봤어야 했는데!”

“호석 아저씨! 여기 참치 통조림도 있어요!”

“뭐? 참치 통조림! 가방이 모자라겠는데! 잠깐만 기다려! 얼른 커튼 떼 올게!”

있었다!

신나서 통조림을 챙기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었다!

한호석 병장과 유희연 학생!

“팀장님! 가덕도 공항 실명 계약서 나왔습니다! 예상대로 실소유주는 김 의원이었습니다! 칠성파와 뒷거래를 했습니다!”

“좋았어! 김 대리, 바로 사진 찍어라! 최대한 자료를 모아야 한다!”

“네! 앗! 팀장님! 여기! 부산항 창고 지분 현황표도 나왔습니다!”

“뭐? 창고 지분 현황표! 지난달에 압수 수색 실패한 그 창고?!”

“네! 예상대로 여야 가릴 것 없이 3선, 4선 중진 의원들이 엮여 있습니다!”

“역시 거기서 정보가 샜구나! 찍어! 모조리 사진 찍어!”

서류도 있었다!

미친 듯이 서류를 뒤지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가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2004년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시대였다! 대형 폭력 조직 두목이 통조림을 쟁여 두는 시대!

“……!”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 커튼 가져왔어!”

“호석 아저씨! 여기 과일 상자에 돈 있어요!”

과일 상자! 돈, 현금!

현금을 골드바로 바꾸면?!

한달음에 달려가려는 순간, 한호석 병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현금은 안 돼! 그거 함정이다! 칠성파 놈들이 적대 조직에 뿌리는 미끼야! 통조림 위주로 챙겨!”

“……미끼라고?”

“……은행이 여전히 돌아가는데, 금고에 돈을 쌓아 두겠냐? 돈은 당연히 은행에 입금하지.”

피식 웃는 염동 대협,

‘뭐지, 이 상식적인 대답은?’

천문석은 멍하니 금고 방을 돌아봤다.

마혁진은 골드바가 아닌 수많은 서류와 먹을 수 있는 통조림을 금고 방에 보관했다.

게이트 전쟁이라는 시대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말이다!

대형 폭력 조직 보스가 무슨 통조림을 쌓아 둔단 말인가?

칠성파 보스면 당연히 언제든 가지고 튈 수 있게 골드바와 귀금속, 달러를 쌓아 놓는 게 정상 아닌가?!

“……!”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염동 대협은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갔다.

“야, 너 어디가?!”

염동 대협은 대답 없이 통조림을 챙기는 유희연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냐?”

“앗! 아직 이름도 말씀 안 드렸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

“아니. 너 이름 말고. 이 빌딩 찾아오게 만든 사람 이름 말이야.”

“…….”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유희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귀를 기울일 때.

염동 대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박 때문이냐?”

“…….”

유희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염동 대협은 한쪽 선반을 가리켰다.

“저 선반에 도박꾼 차용증 있다.”

“네? 넷!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흠칫 놀란 유희연은 다급히 외치고, 한달음에 선반으로 달려가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염동 대협은 한쪽 선반으로 걸어갔다.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직감에 그 뒤를 따라갔다.

선반에 놓인 박스를 꺼내 뚜껑을 열고, 가득 담긴 서류 속에서 파일 하나를 뽑아 드는 염동 대협.

“…….”

염동 대협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파일을 봤다.

천문석은 조용히 다가가 어깨 너머로 그 문서를 봤다.

차용증

갑 칠성 유통 마혁진.

을 서울대성당 김철수 신부.

염동 대협이 보는 문서는 서울대성당 김철수 신부가 칠성파 보스 마혁진에게 돈을 빌린 차용증이었다.

“…….”

차용증을 보는 순간 오늘 밤 염동 대협. 아니, 마혁진이 이상 행동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현재를 살아가기에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과거를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오늘 밤 염동 대협 마혁진의 이상한 행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

이때 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동 대협님? 그거 무슨 서류인가요?! 혹시 중요한 서류면…….”

천문석은 몸을 돌려 최 팀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넌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네? 이야기요? 혹시 참전…….”

“와, 너 아직도 포기 안 했냐? 그것보다 더 좋은 이야기야. 너 전국 거점 먹은 대형 조폭 길드들 알지?”

“네. 알고는 있는데 갑자기 그건 왜……?”

천문석은 씩 웃으며 툭 폭탄을 던졌다.

“별건 아니고. 걔네들 한 방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 있는데, 관심 있냐?”

“…….”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어깨를 타고 전해 오는 격동만으로 대답은 충분했으니까.

“이 계획의 핵심은 칠성파다.”

“부산 칠성파?”

“맞아! 보스가 사라진 칠성파가 다른 대형 조폭 길드들을 모조리 끌어들여 연합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유희연, 한호석 병장, 김 대리까지 모두가 바쁘게 움직일 때.

천문석은 최 팀장에게 계획의 설명을 끝마쳤다.

“알았지? 그렇게 움직이면 서울 수복 작전이 끝나고 길어야 한 달이다! 칠성파하고 대형 폭력 조직들 한 방에 치워 버릴 수 있다.”

“역시 이세기 선생님! 대단한 통찰력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돌아갈까요? 솔직히 작전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는데…….”

“된다니까! 그러네! 이건 100% 먹힌다!”

“아니. 미래를 보고 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든 게 계획대로 될 리가……?”

최 팀장이 말끝을 흐리는 순간.

툭- 두꺼운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염동 대협!

“갑자기 이 책은 뭐야?”

“장부다.”

“장부? 아!”

문득 드는 생각에 잽싸게 책을 펼치자. 날짜, 이름, 숫자가 줄줄이 나왔다.

“이거 설마?!”

최 팀장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염동 대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뇌물 장부.”

“와! 염동 대협님! 과연 대협! 이런 물건을 넘겨주시다니! 이거라면 가능합니다! 이세기 선생님의 계획대로 제가 해내겠습니다!”

최 팀장은 장부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로써 모두가 만족했다.

-염동 대협은 결자해지

-유희연은 아버지의 차용증 회수.

-최 팀장과 김 대리는 한국 최강의 각성자의 참전과 뇌물 장부 확보.

-한호석 병장은 엄청난 양의 통조림이 담긴 배낭과 봇짐.

기대한 골드바는 없었지만, 천문석도 만족했다.

전생부터 품었던 질문의 답을 봤고, 정의 사회 구현을 했으니까!

“모두 한몫 챙겼지? 그럼 이제 슬슬 나갈 준비 하자.”

“앗! 마혁진! 김 대리!”

“네! 팀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최 팀장과 김 대리는 한달음에 달려가 기절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번쩍 들어 올렸다.

어느새 마혁진은 얼굴을 가리고 옷까지 갈아입은 상태!

천문석을 선두로 모두는 폐허가 된 펜트하우스를 지나 유일한 입구, 강화 철문 앞에 섰다.

문밖을 비추던 카메라는 모두 맛이 간 상황.

강화 철문은 어느새 소리와 진동이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혹시 모르니 살짝 열어 볼까요?”

“됐어. 놔둬 경찰 올라오면 문 두들길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늦는데? 한 시간쯤 지났지?”

최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30분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 슬슬 도착할 시간 됐습니다.”

“최 팀장, 경찰 오면 알지?”

“걱정 마시십시오! 이미 회사에서 부산 경찰에 협조 공문을 보내 놨습니다! 이세기 선생님과 염동 대협님은 우리 회사 ‘외주 요원’입니다. 안전하고 빠르게 건물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 있게 외치는 최 팀장!

이제 경찰이 올라와 복도에 가득한 칠성파 조폭을 정리하고, 문을 두들기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야, 모두 앉아.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앉아서 기다리자.”

그렇게 모두가 옹기종기 문 앞에 앉는 순간, 강화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쾅, 콰아앙-

부숴 버릴 듯 내려찍는 소리가 아니라.

쿵쿵, 쿵쿵쿵-

마치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듯 노크하는 소리였다!

“드디어!”

보지 않아도 강화 철문 뒤에 누가 있는지 눈에 선했다.

사이렌을 울리고 경광등을 빛내며 달려오던 경찰차!

그 경찰차에 탄 경찰관들이 23층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이 모든 난장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자, 이제 모두 집에 가자!”

천문석은 크게 외치고 고개를 돌렸다.

“최 팀장!”

최 팀장은 바로 대답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최 팀장은 당당히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득 고개 돌려 물었다.

“이세기 선생님. 참전 계약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쿠우웅-

말없이 날린 딱밤에 강화 철문이 종처럼 울고.

“탄검 한 방 더 맞고 싶다고?”

천문석의 검지가 까딱이는 순간.

최 팀장은 다급히 외쳤다.

“농담입니다! 농담! 바로 열겠습니다!”

소리 없이 강화 철문이 열리고 복도가 보였다.

예상대로 칠성파 조폭은 없었다.

대신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방금 문을 두들겼는지 엉거주춤 손을 뻗은 채 굳어 버린 헌터.

헌터 뒤 20미터.

복도에 세워진 마수용 간이 장벽.

마수용 간이 장벽 뒤에는 완전 무장한 헌터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경찰이라면서요?”

최 팀장이 얼빠진 목소리를 묻는 순간.

천문석은 엉거주춤 손을 뻗은 헌터에게 확인했다.

“……혹시 경찰 특공대?”

“……!”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문을 두들긴 헌터의 얼굴에 나타난 익숙한 표정!

‘뭐지, 이 병신은?!’

신동대문, 강릉 시가지, 이상 던전에서 수없이 본 표정이고 느낀 감정이다.

이 녀석들 조폭 헌터들이다!

“아니, 경찰은 어디 간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아앗! 아까 경찰차! 밖! 밖을 봐야 했는데!”

“그게 무슨 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릴 때 완전 무장한 조폭 헌터 너머 복도 끝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얼핏 보였다.

머쓱한 얼굴로 서 있는 두 사람이 입은 경찰복!

“경찰? 아니! 지금 거기서 뭐 하세요?!”

순간 머쓱한 얼굴의 두 경찰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케이블 타이로 묶인 양손을!

이 순간 엉거주춤 손을 내민 헌터가 외쳤다.

“문이 열렸다! 돌진한다!”

외침이 터지는 순간 멍하니 바라보던 조폭 헌터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렇지!”

“지금이다!”

“밀고 들어간다!”

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섬뜩한 살기가 쏟아지고!

쿵쿵, 쿵쿵쿵-

완전 무장한 조폭 헌터들이 산사태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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