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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71화 (1,07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71화>

“네? 이마를 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 팀장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하지만 그건 찰나일 뿐, 당황한 표정은 곧 감탄하는 표정으로 변하고 탄성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와, 마술 진짜 신기하네요! 역시 이세기 선생님은 대단하십니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마술이라니……!”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참전 계약서 사기의 방법과 물증이 전부 드러났다.

구라 치다 걸려서 대가를 치르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최 팀장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며 아부를 쏟아 내고 있었다!

모든 게 끝장난 지금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대한민국이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키고 국토를 수복, 세계 헌터 업계를 이끌게 된 이유가 이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 끈질긴 근성이라니!

“야, 인정이다! 와! 진짜 최 팀장, 넌 내가 인정한다!”

짝짝짝-

천문석이 박수를 치는 순간.

최 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대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세기 선생님. 그러면 방금 이마 까는 건……?”

“멍청한 녀석 안 먹혀…….”

“네?”

염동 대협의 탄식이 터지고 웃음기 어린,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연히 까야지. 특별한 기술을 보여 줄게. 자, 얼른 이마 까자.”

“아니, 구라라뇨?! 방금 서명 사라지는 건 이세기 선생님이 한 마술이잖아요! 왜 저한테 덮어씌우십니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외치는 최 팀장.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구라의 물증’을 내밀었다.

마도구 만년필!

“마술이 신기하다고? 이 서명 옮긴 마도구, 정제 마석 박힌 만년필! 네 품에서 네가 직접 꺼내 나한테 건네준 이 만년필! 이게 네 물건이 아니라고?”

최 팀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글렀다! 이미 확신했고 손에는 물증까지 있다! 더 질척대야 추해질 뿐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피로 길을 뚫을 이세영과 이태성, 장철 같은 헌터들!

마경이 된 서울에서 4년째 버티는 이지광 검사 같은 공무원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안전지대 제주도의 땅을 담보로 잡히고, 물자를 지원하는 임옥분 여사님 같은 일반인들!

……

수많은 이들이 서울 수복 작전의 성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었다!

4천만 국민의 터전 대한민국의 수복이라는 대의 앞에 자신의 명예 따위 사치다!

질척이고 진흙탕에서 뒹굴더라도 그 첫걸음,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키는 게 자신의 의무다!

그 성공을 위해서는 눈앞의 이세기 준장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최 팀장은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히 오리발을 내밀었다.

“마도구요? 정제 마석이라고요?! 아! 그 돌이 정제 마석이란 물건 인가 보군요?! 와, 전혀 몰랐습니다! 그 만년필, 우연히 만난 좀 이상한. 아니 아주 이상한 스패너 들고 다니는 꼬맹이 눈탱이 치. 아니, 도와주고 받은…… 선물입니다! 그렇지! 선물입니다! 맞아요! 선물이었습니다! 선물 받은 만년필에 이런 기능이 있었다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역시 아직도 세상에는 새롭고 놀라운 게 많네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절대 제가 의도적으로…….”

숨 한번 쉬지 않고 횡설수설 정신없이 외침을 쏟아 내는 최 팀장!

“…….”

천문석은 최 팀장을 바라보다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그렇지 세상에는 아직 새롭고 놀라운 게 많지.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이세기 선생님! 역시! 이세기 선생님이라면 제 마음을 알아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최 팀장이 감격한 얼굴로 외칠 때.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새롭고 신기한 걸 하나 더 보여 줄게. 너 사람 손에 검이 있는 거 아냐?”

“네? 사람 손에 검이 있다고요?”

“잘 봐. 보여 줄게.”

천문석은 활짝 펼친 왼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하나씩 까딱였다.

“새끼손가락은 소지. 네 번째 손가락은 약지. 세 번째는 중지. 두 번째는 검지라고 부르잖아. 검지(劍指), 칼 검!”

검(劍).

천문석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한자를 그려내고 질문했다

“그런데 왜 이 두 번째 손가락은 검지(劍指)라고 부를까?”

“하하, 하- 저기 그 검지는 그 검지(劍指)가 아니지 않나요?”

“아니. 칼 검, 검지가 맞아. 봐라.”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젓고 검지를 들어 책상 위를 그었다.

소리도 진동도 없었다. 손가락이 단단한 흑단목 책상 모서리를 지나는 순간, 뚝- 잘려 나간 나무토막이 바닥에 떨어졌다.

“……!”

“……!”

마치 수천 번 사포질을 한 것처럼 매끄러운 절단면!

최 팀장과 염동 대협이 경악하는 순간.

천문석은 책상을 잘라 낸 검지를 흔들었다.

“봤지? 손가락의 검지는 진짜 검이다. 그리고 이 검지로 날리는 딱밤을 탄검(彈劍)이라고 부른다. 내공과 심력 소모가 극심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은 기술인데 혹시 들어 봤냐?”

‘탄지(彈指)가 아니라 탄검(彈劍)?!’

무협지 마니아 최 팀장은 직감했다.

아무렇게나 그은 손가락에 책상이 토막 나고, 장난치듯 날린 ‘딱밤’ 한방으로 정신줄을 놓은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깨웠다!

그런데 대놓고 검(劍)이 들어가는 탄검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맞는 순간 바닥에 널브러진 칠성파 보스처럼 훅 간다!

최 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 하- 죄송합니다. 처음 들었네요. 혹시 무협지에 나오는 단어인가요? 제가 그런 건 흥미가 없어서!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요? 앗! 신원 보증! 신원 보증 이야기를……!”

“괜찮아. 내가 지금 절대 잊지 않도록 몸에 새겨 줄 테니까 말이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 탄검 맞고 각성한 사람도 있어! 절에서 도서관 관리하던 성질 급한 스님인데…….”

갑자기 무언가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을 짓는 이세기.

‘아니, 지금 이게 뭔 개소리야? 딱밤 맞고 각성했다고?!’

최 팀장이 황당함에 입을 떡 벌리는 순간 웃음기 어린 말이 이어졌다.

“어쩌면 너도 깨달음 얻고 각성할지도 모르겠다. 와 각성하면 대박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얼른 이마 까자.”

‘아니, 말이 왜 이렇게 연결돼!’

“아닙니다! 전 지금 자신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혀 각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연히 깨달음도 필요 없고요! 그냥 계속 모르는 채로 이렇게 있겠…… 있으면 안 될까요……?”

최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순간.

천문석은 엄지로 검지를 누르고 성큼 한 걸음 내디뎠다.

“응, 안 돼. 구라 치다 걸렸으니까 탄검 맞아야지? 자, 최 팀장 얼른 이마 까자.”

쿵-

한 걸음 다가오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육감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냈다.

“잠깐! 정지! 그만! 저 공무원! 정지라고요! 저 국정원 요원입니다! 가중 처벌! 안 돼!”

아무리 외쳐도 멈추지 않는다!

쿵, 쿵-

우직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때 염동 대협의 탄식이 들려왔다.

“야, 쟤 절대 포기 안 해. 그냥 한 대 맞고 끝내.”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이 정신줄을 놓으면 참전 서약서 사인은 누가 받는단 말인가?!’

으아아악-

최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 순간 천문석의 탄검, 소림사 장경각주 광승의 반야공을 뚫고 머리를 깨트렸던 탄검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딱, 따아아악-

바짝 마른 장작이 둘로 쪼개지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

국정원 최 팀장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픽 쓰러져 파르르- 경련했다.

천문석은 검지에 훅 입바람을 불며 선언했다.

“정의는 이뤄졌다!”

“…….”

염동 대협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의가 이뤄졌다고? 이세기 새끼가 저렇게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늘에 정의가 없다는 증거다!

‘최 팀장, 멍청한 녀석!’

천하의 사기꾼 이세기 녀석은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최 팀장이 한 발! 딱 한 발만 더 나아갔으면 이세기를 서울 수복 작전으로 치워 버릴 수 있었는데!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방금 한숨! 뭔가 촉이 오는데?! 너 지금 뭔가 나쁜 생각 했냐?! 나 지금 완전 감 좋다! 촉이 하늘에 닿은 상태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당당히 외치는 이세기.

‘귀신 같은 녀석!’

마혁진은 내심 감탄하면서도 어이없었다.

“촉은 무슨 촉! 설전하다가 서울 수복 작전에 끌려갈 뻔한 놈이!”

“……설전이 아니라 논검! 그리고 처음부터 다 내 계획 대로였다! 절대 아슬아슬한 승부가 아니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치며 생각했다.

‘마혁진, 이 귀신 같은 녀석!’

“됐고. 최 팀장, 쟤 괜찮냐? 탄검? 일반인한테 그렇게 위험한 기술을 막 날려도 되냐?”

“탄검? 카캬카-?”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펼쳤다.

활짝 펼친 손에 놓여 있는 동전들!

“……탄검도 구라였던 거야? 와, 이 사기꾼 녀석!”

“아니. 탄검은 진짜 있는 기술이다! 랜덤 박스만 열면 지금 당장이라도 펼칠 수 있다! 99% 다른 것도 같이 나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으으윽-.”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이세기.

언제나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했다.

염동 대협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화려한 대리석과 카펫, 값비싼 가구가 놓였던 칠성파 빌딩 23층 펜트하우스는 전쟁이라도 터진 듯 폐허가 됐고.

30여 명의 칠성파 중간 보스, 칠성파 보스 마혁진, 국정원 직원 최 팀장은 정신줄을 놓고 널브러졌다.

익숙한 광경 재앙의 화신 이세기와 얽힌 결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세기와 아직도 얽혔음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사기꾼 새끼. 내 이름을 적어 놓냐……! 하아-.”

마혁진은 한숨 쉬며 외쳤다.

“야, 그만하고. 저기에 쓴 내 이름이나 지워! 재수 없다!”

“네 이름?”

문득 고개를 돌리자 책상 위에 놓인 참전 서약서가 보였다.

이 참전 서약서에는 자신이 직접 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혁진]

“아! 깜빡했네. 바로 지워 줄게.”

데구루루륵-

만년필을 굴리자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하네!”

“그 만년필 때문에 서울 수복 작전에 강제로 참전한 부산 지역 헌터가 천명이 훌쩍 넘어.”

“응? 서울 수복 작전에 강제로 참전했다고? 전원 자원 아니었어?”

“부산 헌터 반이 칠성파랑 직간접적으로 연결됐어. 그런데 조폭 놈들이 자원했겠냐? 자기가 서명하지도 않은 참전 계약서 들고 와서 낙동강 전선에서 갈릴래? 서울에서 한 달 구를래? 이렇게 말해서 다 엮인 거다.”

“한 달이면 양호하네.”

천문석이 피식 웃는 순간 탄식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야, 당연히 한 달로 안 끝났지! 작전 성공한 다음에는 서울 수복 임무 맡았고. 수복한 후에는 지방 거점이랑 연결되는 도로 뚫었다. 도로 뚫는 게 하루 이틀로 되겠냐?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구르다 보니까 어느새 조폭 놈들 전부 헌터 됐더라. 그게 전부 저 녀석 작품이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정신줄을 놓은 국정원 최 팀장을 가리켰다.

“사기꾼 녀석! 글자를 옮기는 만년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만년필과 기절한 최 팀장을 봤다.

사기꾼, 국정원 최 팀장.

최 팀장은 글자를 옮기는 만년필로 수많은 헌터를 낚아 서울 수복 작전에 참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까딱 잘못했으면 낚여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할 뻔했다.

그러나 최 팀장의 사기행각에도 분노가 끓어오르지는 않았다.

고아 꼬맹이에서 천문사의 주지를 거쳐 마도 18문의 지존에 오르기까지, 온갖 사건에 구르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겪었다.

최 팀장의 의도와 생각,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대의가 느껴졌다.

서울 수복. 그리고 대한민국 영토 수복.

자신은 그 대의에 참가하지 못한다.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 친 사고만 생각해도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말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

이곳 2004년은 그들에겐 지나가는 세계일 뿐, 진짜 목적지는 따로 있었다.

세기말 대한민국.

그 세계에서 오래전 하늘에 기원한 일을 해야 한다.

“미안하다. 최 팀장. 이건 돌려줄 테니까. 서울 수복 작전, 꼭 성공해라.”

최 팀장의 포켓에 만년필을 꽂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어. 잠깐?”

분명 자신과 염동 대협, 장철 세 사람은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가야 하기에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마혁진! 마혁진을 서울 수복 작전에 보내면 되잖아?!”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염동 대협 마혁진 말고 마혁진! 깡패 두목 마혁진 말이야!”

“그게 뭔 헛소리…… 어? 깡패 두목 마혁진!”

경악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과 염동 대협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향했다.

염동 대협과 깃발을 꽂았다가 아작 나고 정신줄을 놓은 남자!

그러나 이 남자는 부산의 황제이자 칠성파 보스, 2004년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였다!

“마혁진!”

“마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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