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67화>
승패는 갈렸다.
염동 대협의 승리다!
‘와, 마혁진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외침은 전혀 달랐다.
“이 굉음! 반격 중입니다!”
“지금이라도 도와야 해요!”
“시계가 죽었어! 지금 접근하면 위험해!”
다급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김 대리, 유희연, 최 팀장.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는 한호석 병장.
“잠깐! 지금 상황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과연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
아직 젊지만, 그 촉은 날카로웠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염동…….”
이 순간 책상 주위에 줄줄이 기절한 칠성파 중간 보스들이 보였다.
‘아차! 염동 대협이 이기면 안 된다!’
중간 보스들을 기절시킨 이유가 뭐였던가?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허접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최 팀장, 김 대리, 한호석, 유희연!
그런데 지금 네 사람이 지금 격전을 보고 있다!
마혁진의 실체가 알려지고 칠성파가 산산조각 나면 절대 안 된다.
칠성파는 전국의 거점을 먹은 조폭 길드와 연합을 구성하고 물귀신같이 같이 망해야 한다.
완전히 흔적도 없이 폭망해 1세대 헌터들과 대형 길드의 밑거름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칠성파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이다!
그런데 지금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염동 대협에게 아작 나게 생겼다!
‘시바! 어떡하지?!’
잽싸게 승부에 끼어들어 전법륜인 딱밤을 먹이면?!
깃발 전에 아무도 끼어들지 말라고 외친 게 방금 전 자신이다!
굉천수의 눈뽕을 먹이고 잽싸게 튀면?!
진동하는 강화 철문과 기절한 수십 명의 중간 보스들!
언제 변수가 터지고 위험이 생길지 모른다. 굉천수로 감각을 날려 버리고 튀는 건 너무 위험하다.
‘빌어먹을 젠장! 마혁진, 이 도움이 안 되는…….’
순간 벼락 치듯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다.
“마혁진, 염동 대협을 작전에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러나 최 팀장의 초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먹힌다는 확신이 들었다!
천문석은 슬금슬금 모두의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 속으로 기감을 뻗고 승부가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
* * *
염동력장이 폭발해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는 순간.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주먹을 날렸다.
염동 대협의 주먹과 칠성파 보스의 주먹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
“아아악-.”
한 사람은 버티고, 한 사람은 통증에 움츠러들었다.
그걸로 승패는 갈렸다.
염동 대협은 완전히 무력화된 칠성파 보스의 멱살을 틀어쥔 채 주먹을 날렸다.
쾅, 쾅, 쾅-
칠성파 보스 마혁진의 절대 영역, 몸 안에 남은 각성력이 주먹을 막아 냈다.
“미친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
“박살을 내 주마! 살아 있는 걸 후회하게 해 주마!”
그러나 이미 공간 감각이 무너져 염동력과 순간이동 능력이 봉인된 이상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협박하던 말이 부탁으로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엄청난 대가를 주겠다! 커억-.”
쾅, 쾅, 콰아앙-
염동 대협은 대답 없이 마치 기계처럼 주먹을 날리고 또 날렸다.
그러나 염동 대협 마혁진의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직접 마주 보고 대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혁진은 16년의 세월을 거슬러 젊은 자신을 마주했다.
2004년의 자신,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숨겨 놨던 비장의 한 수. 순간이동 능력의 허점이 찔리는 순간 바닥이 드러났다.
여유와 당당함은 사라지고 어떻게든 이 상황만을 모면하려 말을 쏟아 냈다.
과거의 자신이 쏟아 내는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먹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서!
쾅-
염동 대협의 주먹이 칠성파 보스에게 날아가 박히고 악을 쓰는 소리가 돌아왔다.
“으아악- 죽여 버린다!”
콰앙-
염동 대협의 주먹이 깡패 두목에게 날아가 박히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커어억-.”
콰아앙-
2020년 마혁진의 주먹이 2004년의 마혁진에게 박히고 사정하는 외침이 튀어나왔다.
“그만 멈춰!”
주먹이 날아가 박히는 매 순간, 칠성파 보스 마혁진의 생각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미친 새끼들!!’
‘곧 절망을 맛보게 해 주마!’
‘멍청한 놈들 왜 아직도 안 온 거야?!’
‘부산 바닥에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주마!’
그러나 그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해운대를 넘겨 주겠다!”
신의도 믿음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을 모면하려 아무 말이나 쏟아 내고 있다.
‘이것뿐인가? 이런 실력으로, 이런 의지로 부산의 황제라고!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라고 자부했던가?’
젊은 마혁진의 모습에 몇 시간 전 봤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명품 양복, 구두, 시계 완벽하게 관리된 머리와 건장한 몸!
철수 신부, 영희 수녀, 바짝 마른 아이들!
환하게 불이 밝혀진 부산이 내려다보이는 화려한 펜트하우스!
부서지고 구멍 난 오래된 벽돌 건물, 서울 대성당!
칠성파 빌딩에 전쟁 중이란 게 거짓말처럼 모든 게 흘러넘칠 때.
같은 부산 하늘 아래 서울대성당에선 생명을 걸고 마경을 달려, 수확한 쌀로 만든 김밥 한 줄에 환호했다.
넘치게 흐르는 술과 식량, 물자로 이권을 거래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 결과가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펜트하우스다.
대리석 바닥, 그림과 조각상,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술과 식량들.
그러나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신기루였다.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하고, 웅크린 부산을 벗어나 거점 도시를 잇는 도로와 철도를 복구하는 순간 물거품처럼 꺼져 버릴 허상!
허상에 빠져 모래로 성을 쌓아 올리고 모래성의 황제를 자처했다.
가슴에서 머리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깡패로 살아온 마혁진은 끓어오르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날아갈지는 알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2004년의 마혁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콰드득-
마침내 각성력이 흩어지고 제대로 주먹이 꽂혔다.
이 순간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왈칵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었다.
쏟아진 핏덩어리에 시야가 붉게 물드는 순간,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은 마혁진의 모습에 한 사람의 모습이 겹쳤다.
지금처럼 멱살을 틀어쥐고 주먹을 휘둘렀다.
전신이 엉망이 되고 왈칵 피를 토하면서도 웃던 각성자.
이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 뒀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전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피에 물든 강철 방패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애송이.
애송이는 카페트와 대리석 위에 피로 물든 발자국을 새기며 23층을 가로질렀다.
“……김이석, 박현우, 이세경, 한나, 해럴드, 허욱, 이동원, 최재철…….”
수십 명의 이름을 말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자신을 봤다.
“나랑 같이 서울에서 길을 뚫다 죽은 녀석들이다.”
“그래서 화풀이라도 하러 온 거냐?”
“아니. 여기에 지금 한국에서 제일 좋은 술이랑 담배가 있다고 들었거든. 몸의 반이 날아가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데, 미친놈들이 술이랑 담배부터 찾더라고.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 좋은 술, 제일 좋은 담배를 주고 싶어서 왔다.”
죽은 동료에게 최고의 술과 담배를 주러 찾아왔다고 당당히 외치던 애송이.
“가져다줘라.”
술이 궤짝으로 놓이고 담배가 보루로 쌓였다.
“와, 이거 얼마 만이야?”
애송이는 휘파람을 불며 방패를 찍어 술병을 모조리 깨트리고 오러를 일으켜 담배를 불태웠다.
그리고 씩 웃으며 외쳤다.
“마혁진 네가 한국 최강이라며? 나랑 깃발 한번 꽂자!”
깃발을 꽂았고 이겼다.
지금처럼 멱살을 틀어쥐고 피를 토하고 뼈가 부러질 때까지 염동력이 담긴 주먹을 갈겼다.
그러나 애송이는 비명을 지르지도 애원하지도 않았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와 자욱하게 일어난 담배 연기 속에서 피를 토하며 웃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졌다.
“깡패 새끼.”
그때가 그 애송이를 상대로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애송이.
이태성 길드장.
“…….”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16년의 세월이 흘러 2004년의 자신을 마주한 지금도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깡패 새끼.
그러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 모든 게 변했다.
수십 명의 중간 보스와 천이 훌쩍 넘는 부하들.
화려한 카펫, 대리석 바닥, 값비싼 그림과 조각상, 고급 가구, 명품 양복과 구두, 시계.
뒷골목 양아치에서 시작해, 똘마니, 몸빵, 행동대장, 중간 보스, 깡패 두목, 칠성파 보스를 거쳐 도달한 부산의 황제란 이름.
그토록 바라왔던 모든 것들과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이름이 부끄러웠다.
명품 양복과 구두, 시계를 찬 채 왈칵 피를 토해 내고 기절한 칠성파 보스.
겨우 980만 원에 삶을 터전을 빼앗은 2004년의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결자해지!
이 매듭을 잘라낼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주먹에 염동력장을 모았다.
우르르르릉-
대기가 울부짖고 자욱한 먼지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순간, 염동력장이 실린 주먹을 내려찍었다.
이 순간 벼락 치는 듯한 외침이 터졌다.
[염동 대협이 졌다!]
* * *
“……뭐?”
생각지도 못한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넋 나간 표정의 국정원 직원 둘.
얼빠진 얼굴의 안경잡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는 학생.
그리고 마스크에 작업용 앞치마, 공구 벨트를 차고 손을 흔드는 이세기.
누가 이 황당한 외침을 터트렸는지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야, 이 미친! 무슨 개소리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흔들리던 이세기의 손이 멈추고 주먹이 쥐어졌다!
“…….”
“…….”
눈과 눈이 마주치고 시선이 얽히는 순간.
어째서일까? 이세기 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염동력이 모인 주먹을 내리고 깜깜한 창밖과 난장판이 된 주위, 정신줄을 놓은 칠성파 보스를 봤다.
‘이세기, 이 또라이 새끼!’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나 수없이 이세기, 이 미친놈과 얽히며 깨달았다.
이세기는 진짜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듯,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과 끝없이 밀려오는 재앙.
그러나 어떤 사건과 재앙도 이세기를 꺾지 못했다.
고난을 헤쳐나가는 불굴의 의지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이세기 새끼가 사건과 재앙보다 더 지독한 놈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모두를 굴린다!
이세기와 얽혀 자신이 구른 사건들만 헤아려도…….
신동대문!
열사의 사막!
기동 병참 도시!
부산 해운대!
남중국 푸저우시!
남일도!
2004년 부산!
‘아니, 시바 뭐가 이렇게 많아?!’
생각만으로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이세기, 이 새끼는 인간재해 이태성보다 더한 놈이었다!
애초에 얽히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이미 얽힌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때 이세기의 외침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이겼다! 니까!!]
마치 재촉하는 듯한 외침이!
“…….”
염동 대협 마혁진은 픽- 앞으로 고꾸라지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끄어어악-.”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염동 대협님?!”
“어, 분명 멀쩡한 거 같았는데?!”
……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쏟아지는 외침들!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다 기절하듯 멈추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탄성과 외침이 들려왔다.
“야, 야! 모두 봤지?! 이 깃발전! 염동 대협이 패배하고 깡패 두목 마혁진이 이겼다! 와, 마혁진 진짜 세구나?! 과연 한국 최강! 염동 대협은 상대도 안 되네!!”
‘이세기 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