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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65화 (1,06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65화>

‘시간 여행자!’

최 팀장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흥미진진한 얼굴의 이세기 준장.

온 정신이 팔린 김 대리, 특무대, 학생.

염동 대협과 칠성파 보스의 싸움을 바라보는 네 사람!

이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김 대리, 특무대, 학생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싸움을 보는데.

이세기 준장은 동료, 염동 대협이 밀리고 있는데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마치 승패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

최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다.

“이세기 준장님…….”

“야, 왜 또?”

귀찮은 듯 손을 젓는 순간, 한껏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시간 여행자라 아무것도 못 하시는 건가요?”

‘뭐야, 이 녀석 어떻게 안 거야?!’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최 팀장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바로 감이 왔다.

‘아차- 서울 수복 작전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에서 눈치챘구나!’

과연 국정원 요원, 작은 실수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정곡을 찔린 건 다름 아닌 무공을 배우기 전에 입을 터는 것부터 익힌 돌멩이 자신이다!

정곡이 찔렸을 때 움찔하는 건 하수!

천문석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주위를 눈짓했다.

“재들!”

-기절한 칠성파 중간 보스 30여 명.

“23층!”

-염동력장의 폭풍에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펜트하우스.

“저 밖!”

-사방에서 모여든 헌터와 짐꾼들의 함성과 진동이 전해지는 창문.

최 팀장의 시선이 난장판이 된 칠성파 빌딩을 훑는 순간.

‘말은 짧게 표정과 몸짓으로 뜻을 전한다!’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외쳤다.

“시간 여행자? 야, 내가 미래에서 왔으면 이런 난장판을 만들었겠냐?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 몰라?”

“……!”

찰나의 순간 국정원 최 팀장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천문석은 최 팀장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머릿속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최 팀장의 머릿속에선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 거다!

시간 여행자, 미래를 알아야 서울 수복 작전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게 말이 된다.

하지만 시간 여행자라면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킬 난장판을 만들면 안 된다!

자신처럼 직접 겪지 않는 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앞뒤가 다른 모순된 상황이다.

과거, 세기말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가 된 미래, 2020년을 직접 겪었다.

그 결과, 과거를 변화시켰다고 무조건 미래가 변하는 게 아니란 것을.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마치 상류에서 하류로 쭉 뻗은 강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강의 상류, 중류, 하류가 동시에 존재하듯이. 시간 또한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것도 추측일 뿐이지.’

과거와 미래를 직접 겪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직접 겪지도 않은 국정원 최 팀장이 답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힐끗 살핀 최 팀장은 예상대로 답이 없는 문제에 빠져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헛수고가 될 게 뻔했다.

곧 결자해지 승부는 끝나고 자신과 마혁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최 팀장, 열심히 생각해라. 어차피 답을 내기도 전에 안녕이겠지만 말이야. 카캬캌-.’

* * *

국정원 최원익 팀장의 머리는 맹렬하게 회전했다.

이세기 준장을 직접 만나고, 가장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 게 자신이었다.

시간 여행자라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하지 못한다면 이런 난장판을 만들 수도 없었다.

난장판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비효과를 일으킬 테니까!

아니, 생각해 보면 세기말 대한민국! 처음 광화문 게이트가 열렸을 때 했던 행동부터 말이 안 된다!

-제방을 무너트려 십만 단위의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버리고.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들어 수십만의 피난민이 빠져나갈 통로를 열었다.

-그뿐 아니라 게이트, 마수, 몬스터, EMP 마력 폭풍의 정보를 아낌없이 풀었다.

이세기 준장은 이미 역사를 몇 번이나 바꿨다.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걱정하는 시간 여행자라면 이런 식으로 행동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 분석한 대로 예언자가 맞다는 건가?!’

그 순간, 머릿속에 이세기 준장의 동선이 그려지고 행적이 떠올랐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북한산, 도봉산, 중랑천, 한강을 지나 다시 광화문으로!

이 짧은 여정 동안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엄청난 가치의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공했다!

안전 장갑!

초대박을 터트리고 헌터의 상징이 된 안전 장갑!

나무젓가락과 철사로 만든 최초의 안전 장갑의 아이디어를 준 게 이세기 준장이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마수와 몬스터를 상대할 방법, EMP 마력 폭풍 대응, 웨이브 대처법, 각성 동물의 존재!

이세기 준장은 마치 게이트가 열릴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정보를 계속해서 풀었다.

CIA 요원이 제시한 수억 달러의 보상조차 거절하면서!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미래를 봤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 테니까!’

-‘어째서 보상을 받지 않았을까?!’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 금전 보상은 무의미하니까!’

-‘EMP 마력 폭풍이 터지는 순간 홀연히 사라진 이유는?!’

‘……’

언제나처럼 같은 질문에서 대답이 막혔다.

사라진 이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예언을 한 거라면 사라질 이유가 없었다!

‘잠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염동 대협과 칠성파 보스의 격전을 보는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각성력!

2000년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는 각성력의 계통 분류도 이뤄지기 전이다.

누군가 미래를 예언한다고 말해 봤자 아무도 믿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2004년인 지금은 다르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예지 능력자가 있었다.

낙동강 전선의 전설! 승리를 확정하는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

검은 폭풍의 위업은 정치적 문제로 일반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모두가 예지 능력자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

최 팀장은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이세기 준장은 때를 기다린 거다! 예지 능력자인 자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질 때를!

최 팀장은 번쩍 고개를 들어 이세기 준장을 봤다.

여상한 표정, 지루한 눈!

자신의 동료와 한국 최강의 각성자 마혁진이 격전을 펼치고 있는데도 그걸 보는 얼굴에는 지루함이 담겨 있다!

한국 최강자의 격전조차 이세기 준장, 이 남자에게는 지루할 뿐이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금 확신했다.

‘길게 돌아왔지만, 결론은 같다!’

예언자, 시간 여행자 뭐가 됐든 상관없다.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되찾고 시민에게 일상을 돌려주기 위해서!

‘이세기 준장을 반드시 회유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가족을 대피시킬 수 있었던 자신의 의무다!

머릿속에 불꽃이 튀기고 수많은 방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돈으로는 안 된다!

1,000억의 계약금에도 관심이 없었다!

-명예도 안 된다!

자신의 이름이 붙을 광장에도 무심했다!

……

‘생각해라! 생각해! 승부가 끝나고 떠나기 전에 회유해야 한다!’

이때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전신이 물에 흠뻑 젖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승부를 바라보는 남자.

김 대리의 친구이자 헌터 부대 특무대 대원 한호석 병장!

‘잠깐, 특무대!’

전원 각성자로 이뤄진 헌터 부대 특무대의 지휘관은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이다!

특무대에는 주요 임무는 이세영 특임 소장의 명령을 받아 특이 개체를 막고, 무작위로 튀어나온 던전과 균열을 처리해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거다.

그런 특무대 병장이 사복을 입고 부산에 나타날 수 있는 이유!

특무대에는 한가지 임무가 더 있었다!

‘한호석, 각성자, 특무대, 검은 폭풍, 특무대의 임무!’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순간, 한 가지 회유 방법이 떠올랐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대로 이세기 준장과 헤어지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우선 질러 본다!’

최 팀장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세기 준장님……?”

“야, 준장이라도 떼!”

그야말로 바라던바!

최 팀장은 잽싸게 호칭을 정정해 말을 이었다.

“이세기 님 한국 사람 맞으시죠?”

“……뭐? 그게 뭔 소리야?”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반문하는 순간, 한국 사람에게 100% 먹히는 질문을 덧붙였다.

“아, 혹시 일본이나 중국분……?”

“당연히 한국 사람이지!”

“혹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어.”

“각성 계통은……?”

“무공 비슷해.”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이……?”

“대충 알바하고 있어.”

하나 마나 한 대답, 아무 가치 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평소였다면 말이다!

어느새 최 팀장의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고 가슴속에선 희열이 차올랐다.

‘하늘이 대한민국을 돕는구나!’

최 팀장은 전혀 죄송하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어, 뭐?”

“이세기 님 징병 대상이십니다.”

* * *

“…….”

시간 여행자,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

온갖 모순된 행동과 사건들.

답이 없는 혼돈의 폭풍 속에 밀어 넣은 국정원 최 팀장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아니, 폭탄이 튀어나왔다!

천문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최 팀장을 봤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

터질듯한 희열이 담긴 표정!

4,000루멘 괴물 손전등처럼 빛나는 눈동자까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문석은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이세기 님 징병 대상이십니다.”

“……제가요?”

“한국인, 성인, 각성자, 특별한 직업이 없으면 전원 징병 대상입니다.”

“그걸 확인하지도 않고 어떻게……!”

버럭 소리치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방금 최 팀장의 질문!

순간 질문이 차르륵- 재생됐다!

‘아, 혹시 일본이나 중국분이신……?’

‘혹시 나이가……?’

‘각성 계통은……?’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이……?’

이 질문은 확인이었다!

-국적 확인!

-성인 확인!

-각성력 확인!

-직업 확인!

그리고 자신은 최 팀장의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당연히 한국 사람이지!’

‘먹을 만큼 먹었어.’

‘무공 비슷해.’

‘대충 알바하고 있어.’

“……!!”

황당하고,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낚시질에 당했다!

‘무공을 배우기 전에 말싸움부터 배운 내가! 싸움에는 져도 말싸움에선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내가 낚였다고?!’

거대한 충격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는 순간.

최 팀장의 터질 듯한 기쁨이 담긴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님이 입대하시면 대한민국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겁니다! 저 격전이 끝나는 대로 바로 낙동강 전선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꼭 만나 볼 분이 계십니다!”

“아니! 잠깐 국정원 직원이 병무청 직원도 아니고 이건 아니죠!”

“네 맞습니다. 제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기 저분에게 그런 권한이 있습니다!”

“…….”

최 팀장의 손이 유희연, 김 대리를 지나 입을 벌리고, 싸움을 구경하는 온몸이 젖은 안경 남자를 가리켰다.

‘미래의 한호석 교수?!’

최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호석 병장은 전원 각성자로 이뤄진 헌터 부대 특무대 대원입니다. 그리고 특무대의 임무 중 하나가 징병 회피한 각성자 체포 및 입대입니다.”

* * *

‘입대? 내가 입대한다고?! 2004년 대한민국에서!!’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지는 순간 사고가 가속됐다.

어떻게든 입대하려 신검을 몇 번이나 받았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걸 떠나, 지금 이 시대는 장철이 깨어나는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가는 경유지일 뿐이다!

입대라니 절대 안 된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전법륜인 딱밤을 날려 기절시키는 것!

그러나 이제 곧 결자해지 승부가 끝나고, 자신과 염동 대협, 유희연이 튀면 이곳은 난장판이 된다.

기절한 채로 놔두고 갔다가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게다가 최 팀장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이고, 한호석은 이상 던전에서 같이 구르게 될 한호석 교수님이다!

힘이 아닌 이성과 논리로 빠져나가야 한다!

‘생각해라! 생각해!’

머리가 미친 듯이 회전하고 가속된 사고 속으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비틀린 입꼬리.

-희열 어린 얼굴.

-자신만만한 표정.

국정원 최 팀장!

-물에 완전히 젖은 옷.

-각성력이 느껴지지 않는 몸.

-입을 벌리고 승부를 보는 안경 쓴 얼굴.

헌터 부대 특무대대원 한호석!

파파파파팟-

23층에 도착한 후 일어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다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커억- 미친놈들! 신호용 폭죽에 화약을 얼마나 처넣은 거야?! 미친! 신호 보내다가 뒤질 뻔했잖아?!’

유리 벽 너머 수영장에서 기어 나오며 말하는 안경 쓴 남자.

한호석!

‘이거다!’

이 기억은 실이었다!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 듯이, 파편화된 정보를 하나로 꿰어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드는 실!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한다!’

찰나의 순간 대응 방법이 세워지고.

천문석은 바로 외쳤다.

“어디서 개수작을……!”

콰카카카카캉-

이때 터져 나온 거대한 폭음이 그 외침을 삼켜 버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마혁진이 염동 대협을 향해 돌진하고!

온갖 잡동사니가 소용돌이치는 역장의 폭풍이 겹쳤다!

“안 돼!”

“멈춰요!”

“위험합니다!”

하나로 뒤엉킨 염동력장 안에 염동 대협과 마혁진이 동시에 들어갔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믹서 날이 충돌해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꼴이다!

최 팀장, 김 대리, 한호석, 유희연.

이 모습을 보는 네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양패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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