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62화>
“……저 경찰차도 상정 범위냐?”
질문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의 머리는 최대 출력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경찰차가 나타날 건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미친 깡패가 경찰이 출동하는 걸 내버려 둔단 말인가? 작은 유흥업소를 차려도 제일 먼저 하는 게 약을 치는 거다!
하물며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칠성파 빌딩!
부산을 통째로 집어삼킨 칠성파의 본거지,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있는 곳이다!
빌딩이 아작 나고, 칠성파 조폭들이 두들겨 맞고, 각성자들이 약탈을 해도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미리 약을 쳐 둬 경찰이 나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한 대도 아닌, 그 뒤로 줄줄이 차를 끌고는!
‘칠성파 멍청한 깡패 놈들! 미리미리 제대로 구역 관리를 했어야지!’
절로 분통이 터졌으나 지금은 분노를 터트릴 때가 아니라 해법을 찾을 때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파파파팟-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대응 방법을 찾을 때, 다시 한번 질문이 날아왔다.
“설마, 아닌 거냐?”
의혹 어린 시선과 함께!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상정 범위지! 경찰은 걱정할 거 없다! 우리는 피해자잖아! 떳떳하다!”
“우리가 피해자라고?”
어이없어 하는 주위로 시선을 돌리는 염동 대협 마혁진.
자신도 모르게 따라 고개를 돌리자 당구대 앞에 줄줄이 기절한 사람들이 보였다.
칠성파 중간 보스 30여 명!
“……정당방위! 그래 저건 정당방위다!”
“쟤도 정당방위냐?”
염동 대협의 손이 하우스 비닐 위 붕대를 칭칭 감고 널브러진 마혁진을 가리켰다.
자신이 망치를 던져 뒤통수가 깨진 마혁진을!
“…….”
말문이 막혔지만, 찰나!
천문석은 다시 한번 외쳤다.
“당연하지!”
“부산의 황제, 칠성파 보스, 한국 최강의 각성자 마혁진!”
“그런 마혁진 뒤통수를 우리가 깼다고?”
“혼자도 아니고 중간보스를 30명이 넘게 데리고 있었는데?!”
“고작 우리 둘이 칠성파 중간 보스 30을 조지고 마혁진 대가리까지 깼다는 걸 누가 믿겠냐?!”
“우리가 아니라 이거 전부 다 너 혼자 한…….”
하하하하-
천문석은 크게 웃음을 터트려 말을 끊고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이건 경찰. 아니, 칠성파 깡패 놈들이 와도 ‘아, 그건 좀.’하고 고개를 저을 거다! 당연히 칠성파 놈들도 쪽팔려서 절대 사실대로 말 못 해!”
염동 대협 마혁진은 그제야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녀석이랑 할 일이 있다. 결자해지…….”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문제없어. 저 입구 강화 철문이다! 2시간은 충분히 버텨. 얘 깨어나면 결자해지하고 경찰 왔을 때 잽싸게 문 열고 ‘피해자’로 빠져나가면 된다.”
마치 처음부터 준비한 듯 계획이 줄줄 흘러나왔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슬쩍 눈짓했다.
“그럼 재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수영장이 보이는 유리 벽 앞.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세 사람.
의자에 앉아 있던 정장 입은 남자 둘.
전신이 흠뻑 젖은 머리를 짧게 치고 안경을 쓴 20대 중반의…….
“어? 뭐지? 왠지 낯익은……?”
고개를 갸웃할 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얼른 빠져나가야 해요!”
문을 지키고 있던 유희연!
“야, 문은?!”
“우선 잠가 놨어요! 아직 밀고 들어오진 않았지만, 곧 밀려올 거예요! 지금이라도 뚫고 튀어야…….”
“괜찮아. 우리는 여기서 2시간만 버티면 된다. 경찰 오면 쟤들 흩어질 거야.”
“네? 여기서 2시간을 버틴다고요? 경찰이 온다고요?”
“사이렌 소리…… 뭐야? 언제 끊긴 거야. 저기 창밖에 경찰 오고 있어. 경광등 보이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깜짝 놀라 창문에 찰싹 달라붙는 유희연.
천문석은 염동 대협에게 시선을 돌렸다.
“2시간 버틴 후 칠성파 보스 깨어나면 결자해지하고 튀는 거다. 어때?”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난 혹시 모르니 입구 보강할게. 넌…….”
말끝을 흐렸지만 척하면 척!
유리 벽 앞의 세 사람은 모든 것을 본 증인이다.
경찰 앞에서 입을 열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아야 한다.
“내가 처리한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움직였다.
마혁진은 사방에 널린 가구와 의자, 장식품을 움직여 현관문을 막았고.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대응 방법을 고르며 성큼성큼 유리 벽으로 다가갔다.
‘우선은 당근, 안 먹히면 채찍! 솔직하고 담백하게 접근한다!’
세 사람의 긴장한 얼굴이 보이는 순간.
천문석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보신 건 비밀을…….”
이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세기 준장님?”
* *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안경, 리모컨처럼 늘 쓰던 물건인데 갑자기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물건이 벼락 치듯 갑자기 어디 있는지 기억날 때!
지금이 그럴 때였다.
엉망이 된 검은 양복의 30대 후반. 인질처럼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던 두 남자 중 연장자.
이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순간.
‘이세기 준장님?’
머릿속에 번쩍 벼락이 떨어지고 깨달았다.
세기말 대한민국.
겹겹이 저지선이 펼쳐진 광화문!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질 때.
지상에선 서리 늑대가 질주하고.
하늘에선 초대형 뱁새와 장갑 다람쥐가 추격전을 펼쳤다.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진창 난장판이 된 그때 만났다.
미국 CIA 요원이 2억 달러를 제시할 때.
한화 3억 원에 애국 상장과 상패를 제시했던 국정원 요원!
돈에서 밀리자 근접 박투로 CIA 요원을 순식간에 기절시킨!
“최 팀장?!”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국정원 최 팀장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이세기 준장님! 진짜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준장님이셨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하하하하하-.”
‘아니, 얘가 여기서 왜 나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최 팀장은 환희 어린 얼굴로 정신없이 말을 쏟아 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준장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저지선을 뒤로 빼서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제때 저지선을 물리지 못했다면 EMP 마력 폭풍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보았을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서울 헌터 부대를 만들고 대 몬스터 전 전술 체계를 뜯어고쳤습니다!”
“언젠가는 이세기 준장님이 조국을 위해 돌아오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
최 팀장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2000년 1월 1일. 세계 최초로 게이트가 열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열린 광화문 게이트에서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적!
현대 무기체계는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발전됐다.
그런 상황에선 국군과 국민 모두 괴멸적인 피해를 입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존재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남자.
존재하지도 않는 서울 헌터 부대 장성을 사칭한 이세기 준장!
이세기 준장은 마치 미래를 보고 온 듯 난장판이 된 서울을 가로지르며 엄청난 위업을 세웠다.
-중랑천 수공으로 최초의 몬스터 웨이브 소멸!
-수백만 피난민이 모인 한강에 얼음 다리 건설!
-대 몬스터 전 전투법과 대응 교리 전파!
-전자기기와 화약을 날려 버릴 EMP 마력 폭풍 예측!
-마수와 몬스터를 막기 위한 저지선 설정!
-시고르자브르! 인간의 편에서 같이 싸운 최초의 각성 동물 등장!
……
한 사람이 해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위업을 세운 이세기 준장!
이세기 준장의 전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대 몬스터 전 기본 교리가 됐다!
당연히 지난 4년 동안 국정원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전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이세기 준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세기 준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났던 것처럼, 땅으로 꺼지듯이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그런 이세기 준장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다.
생각하지도 못한 장소.
부산 칠성파 23층 빌딩에서!
최고의 타이밍.
서울 수복 작전을 앞둔 지금!
이세기 준장과 검은 폭풍 이세영 두 사람이라면 서울 수복 작전은 반드시 성공한다!
하늘이 대한민국을 위해 최고의 전략가와 전술가를 동시에 내려 줬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다시 한번 이세기 준장을 회유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세기 준장을 회유하는 데 실패했다!
당연했다. 미국에서 2억 달러를 제시할 때, 한국에서는 겨우 3억 원에 상장과 상패를 제시했으니까!
그러나 이세기 준장의 예언이 모조리 맞아들어가고, 전 세계 정보당국이 찾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이세기 준장을 찾았을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된 엄청난 ‘예산’이 있다!
게다가 이미 이세기 준장의 행동 패턴은 모두 파악이 끝난 상황!
국정원 최 팀장은 자신 있게 외쳤다.
“이세기 준장님 국가를 위해 힘써 주십시오! 1,000억! 그리고 서울 한복판, 광화문 게이트 바로 앞의 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있는 광장인데! 서울을 수복하면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될 겁니다!”
* * *
“……!”
멍하니 최 팀장의 외침을 듣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광화문 게이트 앞의 땅!
지금은 이름만 있는 광장이라고?!
‘설마 이거……?!’
최 팀장을 보는 순간 생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광장은 앞으로 이세기 광장으로 불릴 겁니다! 어떻습니까?!”
“……!”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안경 쓴 남자가 말했다.
“어, 거기 시고르자브르 광장 아니에요? 한강 탈출의 상징. 최초의 각성 동물. 시고르 재단 애들, 걔들 뽀미 재단보다 더 극성인데…….”
“야, 한호석!”
국정원 직원이 다급히 안경 남자를 제지하는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꽝- 벼락이 내리쳤다!
‘한호석?’
“혹시 서울대 한호석 교수님?!”
“네? 교수요? 아뇨 저 아직 박사 과정 밟고 있는데. 어, 그런데 우리가 만났었나요? 어떻게 이름을 아세요? 혹시 같은 대학?”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젊은 한호석!
‘진짜다!’
부동산 컨설팅을 받으려다가 이상 던전에서 같이 구른 한호석 교수다!
국정원 최 팀장에 이어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도 나타났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강화 유리 벽 너머 아득한 밤하늘이 보였다.
‘설마?!’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오늘 밤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뒤집힐 가능성이!
천문석은 국정원 직원에게 다급히 물었다.
“이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름 자체가 기밀…….”
“그냥 편하게 김 대리라고 부르면 됩니다. 전 아시죠? 최 팀장입니다. 하하하-.”
최 팀장이 잽싸게 끼어들어 웃음을 터트렸다.
김 대리!
성이 ‘김’이고 자신과 인연이 이어질 사람이라면 한 명뿐이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혹시 김철수라고 아시나요?”
“김철수요?”
“네, 동생, 친구 누구든 아마 지금은 10살쯤 된 꼬맹이일 텐데…….”
“아뇨. 김철수란 꼬맹이는 모릅니다.”
국정원 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구나! 하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 불현듯 김씨 성을 가진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그러나 김 대리의 남자다운 얼굴을 보자마자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문석은 웃으며 물었다.
“김태희는 당연히 모르시……?”
길게 물을 필요도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경악으로 부릅뜬 눈과 당혹으로 일그러진 얼굴.
불쑥 입에서 튀어나온 깜짝 놀란 외침.
“제 동생 이름을 어떻게?!”
“혹시 헌터 부대……?”
“어떻게 그걸?!”
“…….”
눈앞의 국정원 김 대리는 남일도 바다에서 보트를 지키고 있는 동료.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의 오빠였다.
마혁진, 최 팀장, 한호석, 김 대리, 지금 자신 앞의 네 사람 모두 자신과 직접, 혹은 한 다리 건너 인연이 이어졌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자신은 오늘 밤 정신없이 움직였다.
마혁진이 만들어 낸 사건이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서!
그러나 오늘 밤 일어난 사건의 중심에 있던 건 염동 대협 마혁진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신동대문에서 다시 만날 칠성파 보스 마혁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났던 국정원 최 팀장.
이상 던전에서 같이 구를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의 오빠, 국정원 김 대리.
이들 모두와 인연이 이어진.
나비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킬 사건의 중심.
누구도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예비한 사람은.
천문석. 바로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