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9화>
‘조폭? 내가 칠성파 조폭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말문이 막힌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다.
“야, 잘 생각해! 칠성파 장래, 아주 어두워! 완전 깜깜해! 내가 보기에 얘네들 곧 거지 된다. 각자도생! 지금이라도 살길 찾아라.”
바로 옆에서!
계단 아래 있던 남자는 어느새 자신 옆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유희연은 반사적으로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외쳤다.
“저 칠성파 조직원 아니에요!”
“그래? 잘됐네. 그럼 얼른 튀어.”
손을 휙휙 흔들며 칠성파 보스가 있는 최상층을 향해 올라가는 남자.
“잠시만! 위에 칠성파 보스 있어요!”
“어, 알아.”
“네? 안다고…… 잠깐 멈추세요! 지금 염동력자님이 올라가고 있어요! 곧 난장판이 된다고요!”
옷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으나, 손은 허공을 가르고 대신 한숨 소리가 돌아왔다.
“하아- 내가 바로 그 염동력자, 염동 대협 녀석 때문에 올라가는 거야. 하- 새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서. 젠장!”
‘염동 대협? 자신을 구해 준 염동력자! 그렇다면 이 남자는?!’
여상한 말투에 담겨 흘러나온 탄식!
그 탄식에 담긴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염동 대협의 동료다!
유희연은 바로 확인했다.
“염동 대협 동료 맞죠? 헉-.”
“……비슷해.”
한참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순간 거리가 확 벌어진 모습이 보였다!
뛰지도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슬렁슬렁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숨이 거칠어질 정도로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새 확 벌어진 거리!
남자는 계단 모퉁이를 지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잘 가라…….”
유희연은 반사적으로 따라 달리며 외쳤다.
“아래! 아래에서 칠성파 조직원들이 밀려와요! 헉- 탈출로! 비밀 통로를 제가 알고 있어요! 같이 가요! 허엌-.”
우뚝 멈춰 서서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남자.
“탈출로 안다고? 같이 가자고? 야, 위에 난장판이라며……?”
“그분! 염동력자! 염동 대협이 제 은인! 탈출로를 가르쳐 드려야! 헉, 허억-.”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 토해내듯 외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간, 경악한 외침이 돌아왔다.
“뭐? 깡패 아니, 염동 대협이 은인이라고?!”
“네. 반드시 은혜를! 허억- 갚아야. 헉-.”
“야, 너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염동 대협 걔가 누굴 도와줄 애가 아닌데?! 얼굴 완전 까맣고…….”
유희연은 말을 끊고 다급히 외쳤다.
“네! 몸 바짝 마른 분 맞아요! 그분이 절 도와주셨어요! 당장 올라가서 막아야 해요! 칠성파 보스랑 싸웠다가 실종된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에요! 위에! 칠성파 중간 보스들이 대기 중이고! 아래! 부산 전체에서 조직원들이 올라오고……!”
“잠깐! 잠깐만!”
천문석은 다급히 말을 끊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과 깡패 두목 마혁진의 싸움 구경할 생각에 슬렁슬렁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우연히 계단에서 만난 학생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에 누가 있다고?!”
“칠성파 보스……!”
“아니 칠성파 보스 말고! 중간 보스! 중간보스들이 위에 있다고? 칠성파 보스 마혁진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아니 중간 보스 몇 명이나 있어? 한두 명…….”
“보스가 왔는데 당연히 중간 보스들도 다 모이죠. 아마 30명 정도……!”
“30명! 칠성파 중간 보스가 30명?!”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걸 놓치고 있었다니!’
염동 대협 마혁진이 깡패 두목 마혁진을 쥐어패는 건 상관없다!
부산의 황제라 불리는 깡패 두목 마혁진이라면 좀 두들겨 맞은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습할 실력과 인맥, 재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간 보스 30명 앞에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쥐어패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중간 보스들 앞에서 얻어터지면 마혁진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
보스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는데 칠성파가 그대로 유지될 리 없었다
수십 갈래로 찢어질 거다!
학창 시절 이세영 선생님께 들었던 게이트 전쟁 당시의 사회상!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한 후, 전국의 거점 도시를 먹은 거물들이 하나로 연합했다가 동시에 몰락한다.
그 연합의 주체가 부산을 먹은 칠성파였다!
그렇다! 칠성파는 망해도 싼 조폭 길드지만, 지금 ‘혼자’ 망해서는 안 된다!
서울 수복 작전 성공 후 전국의 거점 도시를 먹은 대형 조폭 길드를 연합으로 하나로 모아야 한다!
칠성파에는 다른 거점 도시의 조폭 길드를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져 같이 망한다는 역사적 소명이 있었다!
원래 적당히 망하면 이도 저도 안 되는 법이지만, 완전히 폭망하면 그 반동이 일어난다!
불사조가 완전한 재 속에서 되살아나듯이, 거점 도시의 조폭 길드가 완전히 폭삭 망한 그 자리에 새로운 헌터 길드들이 싹을 틔운다!
1세대 헌터들이 주축이 된 미래의 대형 길드들!
이 헌터 길드들이 게이트 전쟁을 마무리하고 대한민국 헌터 업계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다!
얍삽한 새끼들이 발붙일 자리 없는 헌터 업계로!
지금 자신은 역사의 변곡점 앞에 있었다.
여기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칠성파가 산산조각 나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 모든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건 찰나!
“같이 올라가자!”
천문석은 학생의 팔을 낚아채는 동시에 계단을 달렸다.
“네? 네!”
파아아아앙-
순간 바람이 몸을 스치고 발이 계단에 닿기도 전에 몸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감도 오지 않는 엄청난 각성자다!
유희연은 남자와 함께 계단을 달리다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염동 대협 동료 맞으시죠? 혹시 이름이……?!”
“이세기!”
주저하지 않는 대답이 돌아올 때, 벽에 붙어 있는 숫자가 보였다.
20층!
칠성파 보스가 있는 23층까지 고작 3층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
직감하는 순간 유희연은 입을 열었다.
“전 유희연이라고 해요.”
“어, 갑자기……?”
이세기의 시선이 닿는 순간.
유희연은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비밀 통로. 8층 비상계단 옆 비품 창고 벽에 있어요. 거기서 밖으로 나가시면, 이 빌딩하고 딱 붙어 있는 건물 옥상이 나와요. 거기에 제 언니랑 동생이 기다리고 있으면…….”
‘뭐야, 이 비장한 분위기는? 설마, 이 녀석…….’
천문석은 유희연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감이 왔다.
마치 최후의 순간을 대비해 유언을 남기는 듯한 비장한 얼굴!
“야,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거……!”
황당함에 절로 대답이 튀어나올 때,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들려왔다.
“언니는 유희명, 동생은 김철수예요. 혹시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제 이름을 말하고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김철수!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굳은 것도 잠시 곧 헛웃음이 터졌다.
오늘 하루 만난 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서울대성당의 철수 신부님과 꼬맹이 철수들!
‘무슨 김철수가 이렇게 많아?’
하-
웃음이 새어 나오는 순간 벽에 새겨진 층수가 보였다.
22층!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야, 나중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내가 소리치면 바로 눈 감고 귀 막고 벽에 찰싹 달라붙어.”
“네?”
“설명하려면 길다. 그냥 해!”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2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마침내 도착한 최상층!
이미 열려 있는 강화 철문 너머로 긴 복도와 반쯤 열린 문, 등을 보인 한 사람이 보였다.
수없이 싸우고, 쥐어패고, 기절시켰기에 뒤통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혁진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타타타타탓-
천문석은 복도를 달리며 외쳤다.
“야, 멈춰! 긴급 상황이야! 잠깐만 멈춰!”
그러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강화 철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마혁진!
“야, 멈추라고!”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지금 싸우면 안 된다니까!”
“5분! 5분만 기다렸다 싸우라고!”
……
천문석은 복도를 전력으로 달리며 미친 듯이 외쳤다.
그러나 마혁진은 멈추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몸을 정면에 둔 채 반쯤 열린 문을 활짝 열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탁 트인 거실이 보였다.
접이식 의자에 앉은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
좌우로 길게 도열 한 수십 명의 칠성파 중간 보스들!
그리고 마혁진이 걸어가는 정면!
거실 안쪽 깊은 곳에 소파가 놓여 있고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고급 정장에 명품 구두와 명품 시계.
비틀린 입꼬리로 웃고 있는 20대 남자.
순간 마혁진과 남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넝마 같은 옷 - 고급 정장과 명품 시계.
검게 타고 삭은 얼굴 – 귀티 나는 하얀 얼굴.
삶에 찌든 소시민 분위기 - 세상을 내려다보는 보스 분위기.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붙은 머리 - 완벽하게 다듬어진 머리.
……
옷, 얼굴, 머리, 나이, 표정, 분위기 모든 것이 달랐다!
16년의 세월이 놓여 있어도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얼굴!
그러나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소파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하는 당구공, 염동력장!
그리고 쓱 훑는 순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강함으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에 도달한 저 남자가 바로 2004년의 칠성파 보스 젊은 마혁진이다!
타타타타탓-
어느새 긴 복도를 지나 활짝 열린 문 앞!
“여기서 기다려.”
천문석은 유희연을 문 뒤로 던지고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하며 외쳤다.
“염동 대협! 새캬!!”
“…….”
“…….”
중간 보스 수십 명의 의아한 시선이 날아오고.
공무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위험합니다! 어?”
“들어오지 마세요!”
모두가 천문석을 봤다.
그러나 염동 대협 마혁진은 여전히 깡패 두목 마혁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20, 19, 18미터!
염동력자에게는 이미 전투 거리!
일촉즉발!
이 더럽게 넓은 거실을 달려 따라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깨달음의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신동대문! 내 손을 잘 봐라!]
* * *
“……!”
마혁진은 신동대문에서 이세기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수백 번, 아니 수천수만 번 생각하고 되새기고 꿈을 꾸며 수없이 후회했다.
‘그때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기에 외침을 듣는 순간 바로 떠올렸다.
‘내 손을 잘 봐라!’
신동대문 광장 옆 비밀 창고!
이세기 녀석이 처음 만났을 때 외쳤던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세기의 손을 본 순간 상상도 하지 못한 이 장대한 개고생의 서막이 올랐다!
수천수만 번 후회하고 생각했기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마혁진은 분통을 터트리며 수없이 생각했던 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게 무슨?”
“저 새끼 뭐 하는?”
“설마 동료가 아니……?!”
“어, 어?! 지금 무슨 일이……?”
……
오체투지(五體投地)?!
부처에게 바치는 극상의 예!
중간보스, 유희연, 공무원의 경악한 외침이 쏟아지고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한 번의 외침만으로 무시무시한 염동력자를 오체투지 하게 만든 절대 강자!
그 절대 강자는 집수리하다 온 일꾼처럼 공구 벨트, 작업용 앞치마, 마스크를 쓰고 두 손을 번쩍 들고 달려왔다.
마치 항복하는 사람처럼!
“…….”
“…….”
“…….”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더니 바닥에 오체투지 한 염동력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하듯 달려오는 절대 강자.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칠성파 중간보스들.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문 앞에 떨궈진 유희연, 소파에 앉은 칠성파 보스 마혁진.
두 사람을 보는 모두의 머릿속에선 같은 생각이 휘몰아쳤다.
‘저 새끼들 뭐야?’
‘저 새끼들 뭐야!’
‘저 새끼들 뭐야?!’
……
천문석이 나타나고 마혁진이 오체투지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최상층 펜트하우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였다.
‘계획대로!’
이 순간 천문석의 번쩍 들린 양손이 닿았고, 처음 겪으면 99% 당하는 현생 알바의 성명 절기가 펼쳐졌다.
짝,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섬광이 23층 펜트하우스 전체를 뒤흔들었다!
굉천수!
하늘을 놀라게 하는 일수가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깡패 두목 마혁진, 문 뒤에서 고개를 내민 유희연. 그리고 칠성파 중간 보스 수십 명의 시각과 청각을 날려 버렸다.
“으아악- 내 눈!”
“미친! 섬광탄?! 아악!”
“이거 설마, 설마! 잠시만!!”
……
단숨에 비명과 괴성이 쏟아지고 눈먼 주먹과 흉기가 날아다니는 난장판이 된 펜트하우스!
염동 대협 마혁진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악을 썼다.
“이세기! 미친 새꺄! 이게 무슨 지랄이야! 이 또라이 새끼!”
“야, 이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이유가! 잠깐만 기다려!”
천문석은 난장판 속을 종횡무진 달리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커억, 으악, 끄억, 꺄악-
굉천수의 굉음과 섬광 속에서 쉴 새 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르르르릉, 쾅쾅쾅-
염동 대협 vs 칠성파 보스.
정상 결전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은 광활한 펜트하우스를 넘어 부산의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