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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58화 (1,05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8화>

“네 지금 뭐라고……?”

최 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는 순간 하얗게 질린 김 대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찢어 죽인다고 했습니다.”

“…….”

말문이 막힌 최 팀장은 멍하니 마혁진을 보다가 질문했다.

“혹시 제가 지금 잘못 들은…….”

“아뇨 제대로 들었습니다.”

마혁진은 씩 웃으며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염동 대협. 저 새끼가 여기 도착하면 찢어 죽일 생각입니다.”

웃는 얼굴 담담한 말에 담긴 섬뜩한 살기.

주위가 얼어붙는 순간 명령이 떨어졌다.

“준비해라.”

“네!”

“네!”

칠성파 중간 보스들이 일제히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파, 가구, 당구대 온갖 집기를 밀어내고 카페트를 걷어 냈다.

드르르륵-

넓은 거실 위에 두꺼운 하우스 비닐이 깔리고.

찌익, 찌이익-

포장용 접착테이프로 비닐과 비닐 사이를 붙인다.

수없이 한 것처럼 일사불란한 모습.

최상층 펜트하우스 거실에 피와 살점이 쏟아질 전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혁진과 염동력자가 싸울 전장이!

‘진짜로?!’

최 팀장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마혁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마혁진은 진심이다.

자신과 김 대리, 국정원 직원 앞에서 진짜로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이다!

아무리 정부가 제주도에 짱 박혀 위신이 땅에 처박혔어도 국정원 요원 앞에서 대놓고 찢어 죽이겠다니!

지금까지 선을 넘을 듯 말듯 간을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니,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떠올랐다.

이미 서울 수복 작전에 관해 이야기해, 마혁진은 자신이 필요하단 걸 알고 있는 상황.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 대놓고 선을 넘고 있다!

‘이 깡패 새끼가!’

당장이라도 마탄을 박아 주고 싶지만, 아쉬운 건 국정원과 군이다.

염동력자 마혁진 없이는 서울 수복 작전에서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조건에도 협상을 이어 갔다.

그러나 방금 선을 넘는 질문과 행동으로 확실해졌다.

마혁진은 서울 수복 작전에 참가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지금처럼 안전지대 부산에 처박혀 황제 노릇을 할 생각이다.

‘깡패 새끼들 전부 던전 노역장 만들어 처박자니까! 얼마나 뇌물을 처먹은 거야!’

안일하게 대응한 정부에 절로 분통이 터졌지만 이미 늦었다.

마혁진과 칠성파는 예전의 폭력 조직이 아니다.

일본과의 유통을 장악하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권력자들이 모인 안전지대 제주도에 물자를 대고 있다!

그야말로 부산의 황제, 지금 마혁진을 날리려다간 자신이 먼저 날아간다.

마혁진을 날리려면 권력자들조차 건드릴 엄두를 못 내는 거물이 움직여야 했다.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 같은 거물 중의 거물 말이다.

그러나 검은 폭풍은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지식한 선생님 그 자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는 순간, 수천만 국민과 대한민국이 작살 난다.

모든 역량을 낙동강 전선에 집중하고 전선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탄이 개발되고 전황이 좋아진 후에도 이건 변하지 않았다.

아니, 한가지 신경을 쓰는 게 있었다.

피난 과정에서 헤어진 동생들과 조카들!

검은 폭풍의 이세영 특임 소장의 가족만 찾으면 마혁진을 치워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

마혁진이 한국 최강의 각성자로 불리는 건 검은 폭풍의 모든 게 비밀로 봉인됐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열세에서 거둔 믿기지 않은 승리들!

끝없이 밀려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수없이 막아 내고, 재앙급 마수와 거대 괴수를 몇 번이나 쫓아냈다.

그리고 재금 공업의 마탄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전격전을 펼쳤다.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를 줄줄이 쓰러트리며 낙동강 너머로 전선을 밀어 올렸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부산의 이권을 차지하고 조직을 확장할 때.

검은 폭풍은 끝까지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마침내 밀어 올려 서울 수복 작전에 쏟아부을 여력을 만들었다!

같은 각성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 천외천의 각성자가 검은 폭풍이었다.

마혁진과 검은 폭풍을 비교하는 건 권총과 함포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혁진은 검은 폭풍과 붙는 순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난다.

그런 검은 폭풍이 약속했다.

헤어진 동생과 조카들을 찾아주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낙동강 전선 뒤에는 수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피난 온 상황.

수천만 국민 모두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찾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검은 폭풍의 봉인된 인적 사항을 밝히고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것!

이세영 특임 소장이 아닌, 이세영 선생님의 인적 사항만 밝히면 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상부에 올리자마자 반려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검은 폭풍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국정원과 특무대의 모두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초인의 등장을 권력자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쉬운 방법이 좌절된 이상 어려운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업무 사이사이에, 특무대 군인들은 외출, 외박을 나올 때마다 부산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사진 한 장 없이 이름과 인상착의만으로 검은 폭풍의 조카들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희명, 유희연.

‘하- 용역, 컨설팅, 심부름센터! 눈치 보지 말고 모조리 동원하는 건데!’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마혁진의 작전 참가가 불가능해진 지금 차선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최 팀장의 시선이 텔레비전 분할 화면에 꽂혔다.

갑자기 튀어나와 칠성파 조폭들을 박살 내며 계단을 오르는 염동력자, 염동 대협!

마혁진이 안 된다면 염동 대협이라도 서울 수복 작전에 끌어들여야 한다!

최 팀장은 벌떡 일어나 마혁진을 향해 깊게 허리 숙였다.

“마 선생님. 어떻게 마 선생님 같은 분이 저런 피라미랑 싸웁니까?! 이건 급이 안 맞습니다! 제게 맡겨 주시면 바로 감옥에 처넣도록 하겠습니다!”

“…….”

최 팀장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입구로 움직이며 잽싸게 말했다.

“김 대리! 얼른 처리하자!”

“네! 팀장님! 바로 특무대에 연락하겠습니다! 지금 외박 중인 녀석들이 있으니. 특무대 유치장에 처넣을 수 있습니다!”

척하면 척!

김 대리는 아무 설명이 없었는데도 전화기를 꺼내며 맞장구쳤다.

최 팀장과 김 대리는 빠른 걸음으로 두꺼운 하우스 비닐이 깔리는 거실을 가로질렀다.

왼쪽 강화 유리 벽 너머로는 환하게 불이 밝혀진 수영장이.

오른쪽 헬기 포트 너머로는 부산 시가지와 바다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볼 정신은 없었다.

발에 밟히는 두꺼운 하우스 비닐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으니까!

탁탁, 타타탁-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앞만 보고 빠르게 걸었다.

이때 칠성파 보스 마혁진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기 당구공 하나 던져 봐라. 비닐 잘 깔렸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네! 보스!”

“……!”

최 팀장은 반사적으로 김 대리를 낚아채 비닐 위를 굴렀다.

빠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쏘아진 당구공!

콰아아아앙-

강화 철문이 종처럼 진동하고 단단한 당구공이 바스러져 쏟아졌다.

염동포탄!

“이걸 피해? 와, 이분 감이 아주 좋으시네. 야, 당구공 몇 개 더 던져 봐라.”

최 팀장은 다급히 외쳤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혁진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분께 의자 가져다드려라. 위치는…… 그렇지 저기가 좋겠네!”

유일한 출입구 강화 철문 10미터 앞에 접이식 의자가 놓이고 최 팀장과 김 대리가 앉혔다.

“…….”

“…….”

최 팀장과 김 대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바닥에는 두꺼운 하우스 비닐이 깔렸다.

왼쪽에는 강화 철문, 염동 대협이 들어올 입구가 있고.

오른쪽에는 부산의 황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앉은 소파가 있었다.

[염동 대협 - 최 팀장, 김 대리 - 마혁진]

곧 격전을 벌일 두 염동력자 사이에 낀 상황!

고래 싸움에 낀 새우나 마찬가지다!

“팀장님……?”

김 대리의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최 팀장의 시선은 수십 개의 CCTV 영상을 재생하는 텔레비전에 꽂혔다!

어느새 19층까지 올라온 염동 대협!

엉망이 된 교복을 입고 16층을 달리는 여학생!

공구 벨트에 작업용 앞치마까지 두르고 슬렁슬렁 계단을 오르는 각성자!

쇠 파이프를 들고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조폭들!

이제 곧 줄줄이 이곳 23층 펜트하우스에 도착한다!

각성자의 육체는 각성력을 드러내는 지표나 마찬가지!

검게 탄 얼굴과 바짝 마른 몸만 봐도 염동 대협은 마혁진의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앞에는 중간 보스들이 기다리고, 아래 계단에서는 조폭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다.

앞뒤로 포위된 상황!

염동 대협을 유치장으로 은근슬쩍 빼돌린다는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했다.

이제 믿을 건 한 사람뿐이다!

엉망이 된 교복을 입고 16층을 달리는 여학생!

빌딩 입구에서 칠성파 조폭들에게 밟혔던, 염동 대협이 도와준 학생이다!

염동 대협의 도움을 받은 학생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생각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염동 대협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다!

23층에 도착한 후에는 늦는다.

그 전에 염동 대협에게 경고하고 잽싸게 몸을 돌려 튀어야 한다!

저 여학생에게 염동 대협의 생사가, 서울 수복 작전의 성패가 달려 있다!

최 팀장은 이름 모를 여학생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원했다.

‘조금만 더 빨리!’

* * *

헉, 허억-

입이 마르고 호흡이 달렸다.

계단에 발을 딛는 매 순간 온몸이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탁-

계단이 끝나는 순간 문득 고개를 들자 보이는 숫자.

16층!

어느새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칠성파 조폭들은 모두 사라졌고 23층 최상층까지는 7층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을 도와준 염동력자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벌써 도착해서 당했으면?!’

불길한 예감이 떠오르는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 냈다.

“그럴 리 없어. 아직 늦지 않았을 거야. 맞아. 분명 그럴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다시 힘을 끌어내 달리는 순간,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광화문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가 서울에 쫙 깔리고, 대피할 타이밍을 놓쳐 아파트에 고립됐다.

이때 큰이모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꼭 데리러 갈게! 기다…….

큰이모의 전화는 중간에 뚝 끊겼고.

아빠, 엄마, 자신까지 모두는 믿지 않았다.

큰이모는 자주 깜빡깜빡하는 평범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이미 학생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가 대전으로 대피하던 중이었다.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은 큰이모.

하지만 평범한 학교 선생님이 이미 몬스터에 휩쓸린 서울 한복판 아파트까지 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서울 시내를 뚫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아파트에 고립된 채 버텼다.

전화가 끊기고 가스, 전기, 수도가 모두 끊길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결국 더는 버틸 수 없어 한밤중에 몰래 아파트를 빠져나가려 했다.

이때 철망을 덕지덕지 붙인 스쿨버스 한 대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깜짝 놀라 다급히 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스쿨버스는 정확히 가족이 숨어 있던 동에 멈춰 섰고, 버스 지붕에 어색한 헬멧을 쓰고 소총을 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으니까.

큰이모.

언제나처럼 크게 손을 흔들고 아파트 복도에 사다리를 걸치던 그 모습.

“얼른 내려와.”

아빠, 엄마, 자신을 모두 태우고도 스쿨버스는 아파트 단지를 떠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집 안에 고립된 가족들을 태웠다.

그때는 큰이모가 왜 가족도 아닌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쿨버스가 빠져나갈 길을 열기 위해 큰이모가 건물에 홀로 남아 몬스터 무리를 유인하고, 대전의 작은 이모네와 만나 부산까지 피난 와 몇 년이 흘렀다.

이제는 큰이모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삶은 힘들고 현실은 비참하다.

힘든 삶과 비참한 현실을 바꾸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포기하는 순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큰이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엄마, 아빠, 자신과 아파트 단지, 시내 곳곳에 고립된 37명의 사람을 구해 내는 기적을 일으켰다.

큰이모가 했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유희연은 통증을 삼키며 발을 뻗는 순간 마음속으로 외쳤다.

‘세영 이모! 난 할 수 있다!’

이 순간 기척이 느껴졌다.

앞이 아니라 뒤에서!

“……!”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복? 고등학생!”

칠성파 빌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

집수리라도 하다 온 듯 공구 벨트에 작업용 앞치마까지 두른 남자.

남자는 슬렁슬렁 계단을 오르며 어이없어 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와, 칠성파 녀석들 진짜 막 나가네. 이제 고등학생까지 조폭으로 스카우트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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