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6화>
모든 각성자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비명과 괴성, 폭음이 끊이지 않는 칠성파 빌딩!
한 사람의 초능력 각성자가 칠성파 조폭들을 아작 내고, 로비를 폐허로 만들더니, 칠성파의 성채, 빌딩을 오르고 있다.
지금 그 각성자의 이름이 밝혀졌다.
염동 대협!
그리고 염동 대협의 동료가 선언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먼저 먹는 사람이 주인이다!’
하지만 백 명이 훌쩍 넘는 각성자들이 모였음에도 칠성파 조폭들이 아작 나고, 빌딩이 박살 나도 움직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칠성파 조폭 뒤에는 그가 있었으니까!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
유통을 장악한 부산의 황제.
수천의 각성자들을 거느린 칠성파 보스, 마혁진!
그러나 이쪽에는 염동 대협과 그 동료가 있었다!
그리고 염동 대협의 동료가 선언했다.
승자독식!
네 글자가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열기가 끓어오르고. 널브러진 칠성파 조폭들과 부산을 내려다보는 빌딩이 다르게 보였다.
무시무시한 적, 공포와 지배의 상징이 아닌 먹잇감이다!
그 증거를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칠성파의 돈!
“……!”
“……!”
비처럼 쏟아지는 돈을 보는 순간 각성자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고, 그 자리를 뱃속 깊은 곳에서 솟구친 열기가 채웠다.
‘지금이다!’
이 타이밍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승자독식!]
[염동 대협과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해! 모든 것을 먹어 치우자! 달려라!]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수백의 각성자들은 해일처럼 밀려갔다.
“당장 멈춰! 꺄아-.”
“미친! 보복이! 아악-
그러자 악을 쓰는 칠성파 조폭들이 단숨에 쓸려 나가고, 폐허가 된 로비에 수백 각성자의 파도가 몰아쳤다.
로비에 남은 유일한 통로는 비상계단뿐!
각성자의 파도는 곧 미친 듯이 비상계단을 달리며 외쳤다.
“염동 대협!”
“승자독식!”
……
이 순간 마혁진이 일으킨 사건의 구도가 변했다.
[염동 대협 마혁진 vs 깡패 두목 마혁진, 칠성파]
한걸음 떨어진 구경꾼. [부산 각성자들]
부산 각성자들은 더는 구경꾼, 무대 아래 관객이 아니었다.
무대에 난입해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변수가 됐다!
[염동 대협 마혁진, 부산 각성자들 vs 깡패 두목 마혁진, 칠성파]
마혁진이 시작한 사건은 단숨에 거대한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난장판을 만든 사람의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휑해진 빌딩 앞에 울려 퍼졌다.
휘이, 휘이이-
천문석은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보지도 않고 챙기며 난장판이 된 빌딩을 쓱 훑었다.
우와아아아-
“염동 대협!”
“승자독식!”
……
2층, 3층으로 불이 번지듯 함성과 외침이 이어졌다.
기세가 오른 수백의 각성자들은 2020년 마혁진의 흔적을 지우며 빌딩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부산 각성자들은 개인, 칠성파 조폭들은 집단이다.
조직력 없이 폭발한 기세는 단단한 집단의 결속 앞에 쉽게 무너지는 법!
이 기세를 유지해 다른 사건을 모두 삼킬 거대한 난장판을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게 있었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쏟아붓고.
눈덩이를 데굴데굴 굴려 기세를 키우고.
말이 전력으로 달리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천문석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난장판의 최고 전문가니까!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는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사건·사고와 난장판에 개같이 굴렀다.
기름을 부어 사건을 키우고, 눈덩이를 굴려 엉망진창 난장판을 만드는 건 숨 쉬는 것처럼 간단했다!
“그럼 2단계다!”
카캬카카카캌-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과 함께 각성자 해일이 밀려가는 로비로 달렸다.
기름을 붓고, 눈덩이를 굴리기 위해서!
* * *
“염동 대협!”
“승자독식!”
칠성파 빌딩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함성은 인파를 부르고, 모인 인파는 다시 함성을 질렀다.
부산에 거점을 둔 각성자들이 함성에 달려왔다가 홀린 듯이 난장판에 끼어들었다.
부아아아아앙-
이 함성에 거친 엔진 소리가 섞여들었다.
줄줄이 달려와 빌딩 입구에 멈춰 서는 승합차 10여 대.
승합차 안에서 지원 요청을 받은 칠성파와 조폭 길드의 조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경악했다.
폐허가 된 로비!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각성자들!
실시간으로 아작 나는 칠성파 빌딩!
쾅, 쾅, 콰아앙-
강화 유리창이 뻥 뚫리는 순간.
“밑에 조심해! 던진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책상이 떨어졌다.
“잡았다! 걱정 말고 계속 던져!”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을 받아 내며 외치는 각성자!
이게 시작이었다.
쌀, 생수, 라면, 책상, 의자, 텔레비전……!
식량과 비품, 집기를 가리지 않고 온갖 물건이 뻥 뚫린 창에서 쏟아지고 지상에 대기 중인 사람들이 움직였다.
“던집니다! 조심하세요!”
떨어지는 물건을 받아 뒤로 던지는 각성자들!
“다 실었어! 바로 나른다!”
뒤죽박죽 쌓인 물건을 지게와 수레에 착착 높이 싣고 바람처럼 달리는 짐꾼들!
“이게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승합차에서 쏟아진 지원 병력은 상상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에 넋을 놓았다.
엄청난 강자가 습격했다는 말에 정신없이 달려왔었더니, 습격이 아닌 약탈이 벌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차에서 내린 중간 보스의 외침이 이들의 정신을 깨웠다.
“우선 위로 올라간다!”
“보스를 지키는 게 우선이다!”
지킨다는 말속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챘다.
칠성파 보스는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 마혁진!
평범한 각성자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지금 자신들이 최우선 목표는 칠성파 보스에게 눈도장을 찍는 거다!
번쩍 정신을 차린 지원 병력은 즉시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가 된 빌딩 로비로 달렸다.
로비에 남은 유일한 통로는 비상계단뿐!
염동 대협 마혁진, 수백 명의 각성자가 올라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부산 각성자들이 달리는 비상계단으로 칠성파의 지원 병력이 쏟아져 들어갔다.
마혁진이 시작하고 천문석이 기름을 부은 칠성파 빌딩의 난장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난장판에 한 고등학생과 꼬맹이가 끼어들었다.
* * *
타타타타탓-
옆집 고등학생의 옆구리에 잡혀 복잡하게 뒤엉킨 골목을 달린 지 벌써 20분!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외쳤다.
“언제까지 달리는 거야! 내려 줘!”
정신없이 달리던 다리가 우뚝 멈추고 옆구리에 고정된 몸이 빙글 회전해 바닥에 내려섰다!
‘마침내 멈췄다!’
그러나 멈췄다고 분노가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야, 왜 데려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에 쥐어지는 구겨진 지폐와 동그란…….
“소보루빵? 이건 칠성파 돈?! 이건 왜?”
“아까 거기는 위험해. 그래서 데려온 거야. 그 돈이랑 빵 가지고 얼른 집에 돌아가. 돌아가는 길 알지?”
“…….”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순간 옆집 고등학생은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위험한 일에 끌어들여 미안해. 조심해서 돌아가.”
희미하게 웃으며 작별하고 절뚝이며 걸어가는 옆집 학생.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언니 찾으러 가냐?”
“…….”
옆집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움직였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판잣집 너머 하늘 높이 솟은 칠성파 빌딩이 보였다.
이 안에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서지 못할 때 자신을 도와준 염동력자가 홀로 들어갔다.
1시간 후 모든 게 끝날 거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 빌딩 안에는 한국 최강의 각성자 칠성파 보스가 있었고, 부산 전체에서 칠성파 조직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을 도와준 염동력자는 앞뒤로 포위돼 잡힐 것이다.
언니는 반드시 구해야 했다.
하지만 받은 은혜를 갚는 게 먼저였다.
비밀 문으로 들어가 그 남자를 찾아 경고하고 도박장으로 돌아와 사촌 언니를 구한다.
‘언니 조금만 기다려 줘.’
마음의 결정을 하는 순간 옆집 꼬맹이를 봤다.
“아니. 먼저 만날 사람이 있어.”
“…….”
옆집 꼬맹이의 묘한 시선이 날아왔다.
누구에게나 반말로 말하고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벽을 치는 옆집 꼬맹이.
당연히 경원시 당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 까칠한 꼬맹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빈 병을 모아 바꾼 동전으로 동생에게 보석 반지 사탕을 사주며 씩 웃던 얼굴.
까칠하게 툴툴거리면서도 언니가 끌려갔을 길을 짚어 주는 모습.
칠성파 조폭이 몰려왔는데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산에서 몇 년을 살며 깨달았다.
공손한 말과 친절한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친절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었다.
삼각 김밥 하나를 아껴 먹는 꼬맹이가 동생에게 보여 준 마음.
갑자기 자신을 끌고 온 이름도 모르는 옆집 누나에게 보여 준 진심.
옆집 꼬맹이는 아이답지 않은 눈빛 그대로의 아이였다.
그렇기에 칠성파 돈과 언니에게 줄 소보루빵을 전부 준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제 나에겐 필요 없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 안녕.”
마지막 인사와 함께 몸을 돌릴 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들려왔다.
“이름이 뭐야?”
“……뭐?”
“이름이 뭐냐고?”
“…….”
단 한 번도 이름을 묻지 않은 꼬맹이의 질문에 머뭇거릴 때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난 지금 임시로 김철수다.”
“임시로 김철수?”
“사정이 있어 사정이…….”
꼬맹이 김철수는 오래전 일을 되짚듯이 말을 이었다.
“우연히 만난 꼬맹이 때문에 적당히 말한 이름인데…… 서로 이름을 알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 친구라고, 읽지도 못하는 자기 이름을 손에다 써 주고 강제로 칼로리바를 먹였어. 이제 우리는 친구라고, 그리고 필요도 없는 담요랑 핫팩이랑 이것저것 줬지. 뭐 그 담요랑 물건들은 다른 꼬맹이에게 잘 넘겼지만 말이야.”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소보로빵을 반으로 찢어 내미는 꼬맹이 김철수.
“…….”
어째선지 이 뜬금없는 말과 행동에 담긴 뜻이 이해되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소보루빵을 받아 한입 베어 물고 대답했다.
“유희연.”
꼬맹이 김철수는 바로 소보로빵을 씹었다.
김철수와 유희연.
서로의 이름을 알았고.
소보루빵.
음식을 나눠 먹었다.
꼬맹이 김철수는 탁, 탁- 빵 봉투에 남은 부스러기를 입안에 털어 넣고 손을 내밀며 선언했다.
“이제 넌 내 친구다.”
마치 왕이 신하에게 말하듯 위엄 있는 표정과 어투!
유희연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우리는 친구야.”
꼬맹이 김철수와 유희연의 손이 부딪혔다.
우와아아아-
이 순간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다.
빌딩 입구 방향!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 달리는 유희연은 외쳤다.
“여기는 안전해! 먼저 집에 가서 기다려!”
꼬맹이 김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 언니는 내가 데리고 나올게. 비밀 문, 저기냐?”
“어떻게?!”
깜짝 놀라는 순간 꼬맹이 김철수는 골목으로 앞장서 달렸다.
타다다닷-
복잡하게 얽힌 골목을 달리길 잠시, 칠성파 빌딩에 붙어 있는 건물이 나왔다.
“옥상?”
그리고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한달음에 건물 옥상으로 뛰어가는 김철수.
“기다려!”
유희연은 다급히 그 뒤를 따라 달렸고 두 사람은 한참을 계단을 달려 건물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 가장자리, 물탱크와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통로를 지나자 빌딩 외벽이 나왔다.
이 외벽에는 벽과 같은 색으로 칠해진 문이 하나 있었다.
“여기가 하우스로 들어가는 비밀 문이지?”
꼬맹이 김철수는 당장이라도 들어갈 듯 손을 뻗었다.
유희연은 다급히 김철수 앞을 막아섰다.
“기다려 내가……!”
“하우스 직원이 너 얼굴 알잖아?”
“아…….”
“내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는 게 빨라. 하우스 어디에 있냐? 언니 이름은?”
“…….”
자신은 이미 몇 번이나 아빠를 찾아가 진상을 떨어 하우스 직원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비밀 문을 알아도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소용없다.
‘꼬맹이 김철수에게 맡겨도 될까?’
유희연은 고심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비밀 문으로 들어가면 비품 창고가 나와. 비품 창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비상계단 있어. 그 비상계단으로 한층 내려가면 바로 옆, 비품 창고랑 같은 위치에 하우스가 있어. 문 안에 입구를 지키는 직원 있는데 아빠 심부름 왔다고 말하면 들어갈 수 있어…….”
“언니 이름은?”
“유희명. 하지만 언니 데리고 나오려면…….”
“걱정 마. 하우스 입구 통과할 방법은 많아.”
꼬맹이 김철수는 말을 끊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우스에서 사람 한 명 데리고 나오는 건 내 옛날 친구가 치던 사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바로 데리고 나올 테니까.”
꼬맹이 김철수는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유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방금 이름을 알게 된 꼬맹이의 장담에 어째선지 마음이 놓였다.
최악의 경우라도 꼬맹이 김철수가 빠져나오는 건 문제가 없었다.
곧 빌딩 전체에 비상이 걸릴 테고, 하우스도 난장판이 될 테니까.
자신이 아는 김철수라면 난장판이 되는 순간 희명 언니와 무사히 빠져나올 거다.
그러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니까.’
빌딩 입구 방향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외침이 점점 커지고. 빌딩 외벽에 올린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칠성파의 지원 병력이 빌딩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은혜를 갚으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
유희연은 수첩을 꺼내 메모하고, 꼬맹이 김철수와 언니가 볼 수 있도록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물탱크에 붙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열을 세고 비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포위당하기 전에 찾아서 나온다!’
마혁진이 시작하고 천문석이 기름을 부은 난장판에 고등학생 각성자 유희연이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