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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55화 (1,05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5화>

“…….”

“…….”

아찔한 침묵이 흐르는 빌딩 앞.

수백 명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허리에 공구 벨트를 차고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까지 쓴 남자.

어디서 집수리라도 하다 온 듯한 복장이지만, 이 남자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는 경외심이 어렸다.

소리만으로 강화 유리창을 깨트리고 칠성파 조폭들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 순간 전신에서 쏟아진 엄청난 위압감!

각성자와 칠성파 조직원 모두는 직감했다.

염동력자에 이어 엄청난 강자가 나타났다!

그 강자는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박살 낼 듯 엄청난 위압감을 쏟아 내다가 돌연 멈췄다!

“……!”

“……!”

칠성파 조직원들과 각성자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이 강자를 바라봤다.

‘이 강자가 움직이는 순간 폭풍이 몰아친다!’

천문석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타임 패러독스!

원래 칠성파와 마혁진은 고블린 사냥터 통제로 이태성 길드장에게 찍히고 탈탈 털린다.

즉, 지금 자신이 2004년의 마혁진을 쥐어패 정의 사회 구현을 하면 과거가 바뀐다!

아니,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이미 과거는 변했다.

2020년 마혁진이 칠성파 조폭들을 아작 내며 빌딩을 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혁진이 오르는 이 빌딩 최상층에 누가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2004년 마혁진, 칠성파 보스 깡패 두목 마혁진이 있다!

2020년 마혁진, 염동 대협 마혁진이 2004년 마혁진, 깡패 두목 마혁진을 찾아가고 있다.

단순히 반갑다고 과거의 자신을 찾아갈 리 없다!

팔다리가 덜렁이는 칠성파 조폭과 폐허가 된 로비, 아작 나는 빌딩을 보면 2020년 마혁진의 목적은 뻔했다.

2020년 마혁진은 2004년 마혁진을 쥐어패러 가고 있다!

이독제독!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쥐어패는, 생각지도 못한 흥미진진한 상황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만은 없었다.

문제는 이유다!

마혁진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마음으로 묻는 순간 파파팟- 대답이 떠올랐다.

1.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깡패 두목 마혁진이 개과천선이라고?

특급 헌터가 고등어를 좋아하게 되는 게 더 빠를 거다!

2. ‘과거의 자신과 바꾸려고?!’

불가능하다!

마혁진은 열사의 사막에서 개같이 굴러 20년은 삭았다!

검게 탄 얼굴과 기름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몸!

바꿔치기는커녕 마혁진 엄마. 아니, 2004년 마혁진도 미래의 자신을 몰라볼 거다!

3. ‘과거의 자신을 쓱싹하고 칠성파를 집어삼키려고?!’

타임 패러독스!

과거의 자신을 쓱싹하면 미래의 자신이 과거로 오지 못하고, 과거로 오지 못하면 과거의 자신을 쓱싹하는 게 불가능하다!

즉, 모순에 빠져 버린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여기는 진짜로 과거일까?!’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칠성파 조폭과 구경꾼들.

부산 최고의 유흥가답게 100명이 훌쩍 넘는 인파가 모였고 지금도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입은 옷, 짓는 표정, 장비, 분위기까지 모든 것에서 느껴졌다.

이들은 분명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고 이곳은 2004년의 부산이다!

그리고 벌써 두 번째다.

처음은 공방 도시 지하 유적을 통해 세기말 한국 서울에.

두 번째는 남일도 던전에 빨려 들어 이곳 2004년 부산에 왔다.

던전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 허상이라고 말한다.

이 세계가 진짜 허상이거나, 현실에서 갈라진 또 다른 평행 세계라면 타임 패러독스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하 유적을 통해 갔던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허상이 아니란 너무나 분명한 증거를 이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서리 늑대가 한강에 얼음 다리를 놓았을 때, 의인 광장은 시고르자브르 광장으로 변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2020년 미래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완전한 과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증거도 있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장철과 장세린, 장민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2020년의 장철과 장민에게는 자신과 만난 기억이 없었고, 운명을 바꿨다고 생각한 장세린은 2020년에 없었다.

둘로 갈라진 강에 수백 개의 공을 던지면 제멋대로 나뉘어 흘러가듯. 어떤 것은 변하고 또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 기준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세계가 과거인지 아니면 다른 평행 차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과거라면 타임 패러독스, 나비 효과를 생각해서라도 당장 마혁진을 막아야 한다.

과거가 아닌 평행 세계라면 마혁진보다 빨리 뛰어 올라가 정의 사회 구현을 해도 된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기고 수많은 가설과 해답, 생각이 뒤엉켰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열이 오르고 눈이 아찔해지는 순간 불현듯 탄식이 튀어나왔다.

“이놈은 왜 이런 사고를 쳐서는!”

이 순간 번쩍 깨달았다.

이미 마혁진이 사고를 터트렸다!

아니, 생각해 보면 마혁진이 사고를 치기 전에 이미 사고가 터졌다.

두 번이나!

첫 번째, 세기말 대한민국!

장철 가족을 도와주고, 중랑천에 둑을 쌓아 터트리고,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들고,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내고, 게이트의 정체와 대응 방법, EMP 마력 폭풍까지 경고했다.

자신은 지금 마혁진이 터트린 사고는 비교도 안 되는 초대형 사고를 이미 쳤다!

나비 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생각했다면 세기말 대한민국을 그렇게 난장판으로 만들면 안 됐다.

두 번째, 지금 자신이 있는 이 던전은 장철 헌터의 바람을 담아 열렸다.

장세린, 장철의 딸을 위해서!

이 던전에 있는 것 자체가 나비 효과, 타임 패러독스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지금 상황과 주위 모습이 뇌리에 박혀 들었다.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칠성파 조폭들!

실시간으로 박살이 나는 칠성파 빌딩!

과거의 마혁진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의 마혁진!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구경꾼들!

……

원래라면 이태성 길드장에게 박살 났어야 할 칠성파가 염동 대협에게 아작 나고 이 모습을 부산의 각성자들이 보고 있다!

“……!”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잘못 그린 그림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그리는 게 쉽듯이, 이미 터진 사고를 수습하는 건 새로 사고를 치기보다 어렵다.

자극적인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리듯, 역사는 임팩트 있는 사건만 기록된다!

‘바로 이거다!’

이슈는 더 큰 이슈로 덮듯이, 사고는 더 큰 사고로 덮으면 된다.

마혁진이 친 사고가 기억에 역사에 남지 않도록 거대한 사고를 치면 된다!

‘어떻게?’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빌딩 외곽을 봤다.

폭음과 비명이 들려오는 층은 5층!

마혁진이 위로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봤다.

인도에 멈춰 선 텅 빈 승합차 3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칠성파 조폭 10여 명과 수백의 각성자들!

순간 머릿속에서 파파팟- 섬광이 번뜩이고 계획이 세워졌다!

천문석은 성큼 칠성파 조폭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며 친절하게 말했다.

“야, 고생이 많다. 이 손 잡고 일어나라.”

* * *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칠성파 조폭이 얼빠진 얼굴로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강제로 손을 잡고 일으켰다.

부러져 덜렁이는 손을!

으아아악-

비명이 터지고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새……!”

“미친? 너 지금 나한테 미친 새끼라고 욕한 거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칠성파 조폭은 잽싸게 말을 바꿨다.

“미치도록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정말 감사하다고?”

“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라이 새끼! 조금만 기다려라! 조직원들이 몰려오면 뼈를 갈아 버리…….’

칠성파 조폭이 이를 갈며 허리를 숙이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진심으로 감사하면, 이건 내가 감사 표시로 가져간다.”

“네? 무슨……?”

천문석은 조폭의 품으로 손을 넣어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갑을 펼쳐 빳빳한 지폐를 꺼냈다.

“…….”

그리고 빈 지갑을 가슴에 툭- 던지고 다음 조폭으로 넘어가 손을 내밀었다.

“야, 고생이 많다. 이 손 잡고 일어나라.”

“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친절한 말과 행동.

칠성파 조폭이 멍하니 반문하는 순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꺄아악-

덜렁이는 팔을 낚아채 비명이 터지고.

타타탓-

손이 품 안을 스치는 순간 지갑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빳빳한 지폐가 회수된 빈 지갑이 툭- 가슴에 던져졌다.

“어, 어어?!”

“지금 무슨……?!”

칠성파 조폭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천문석은 번개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악, 타타탓, 툭-

비명, 현금 털기, 빈 지갑 던지기!

한 사람에 길어야 10초!

천문석 왼손에 쥔 지폐 뭉치가 빠르게 두꺼워졌다!

이게 바로 계획의 1단계, 1석 2조!

천문석은 세기말 대한민국에 떨어졌던 때를 잊지 않았다.

현금! 더 정확히는 구권이 없어서 겪었던 개고생!

이렇게 구권을 회수하며 다른 것도 노린다!

“카캬카카카캌- 개꿀! 고맙다! 득템이다!”

천문석은 경박한 웃음을 터트리며 무력화된 칠성파 조폭의 터질 듯 빵빵한 지갑을 털어, 보란 듯이 지폐를 꺼냈다!

엄청난 사자후를 터트렸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열한 악당 같은 모습!

“……지금 뭐 하는……?”

“설마, 칠성파를 터는 거야?”

이 모습을 바라보는 모두의 머릿속에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맴돌았다.

‘미친! 저런 강자가 왜 양아치 짓을 해?!’

엄청난 강자라고 생각한 사람의 비열한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 맺혔던 경외심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느껴졌다!

경외심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살기 어린 시선이!

지폐를 쥔 왼손에 날아와 박히는 타 버릴 듯 뜨거운 시선이!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

카캬카카-

천문석은 더욱 비열하게 웃으며!

으아아악-

무력화된 칠성파 조폭의 팔을 당기고, 발을 밟으며 지갑을 털었다!

빳빳한 지폐에 왼손이 찢어질 듯 벌어지고 미쳐 다 잡지 못한 지폐가 펄럭이며 떨어졌다.

‘뭐야? 이 녀석들 뭐가 이렇게 참을성이 많아! 진짜 조폭 맞아?!’

14명의 칠성파 조폭을 털었을 때 기다리던 반응이 돌아왔다.

“야, 이 미친! 칠성파 돈에 손을 댄다고! 미친 새끼! 당장 멈추지……!”

‘걸렸다!’

칠성파 조폭이 분통을 터트리는 찰나.

천문석은 빌딩을 가리키며 버럭 외쳤다.

“뭐? 미쳤다고? 하!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새꺄! 저거 안 보여?!”

삿대질하는 손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폭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빌딩에 모이는 순간.

천문석은 폭탄을 터트렸다.

[칠성파는 우리 형님이 접수한다!]

“……!”

“……!”

“……!”

경악한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천문석은 빙글 몸을 돌려 내력이 실린 외침을 쏟아 냈다!

[칠성파는 우리 형님, 염동 대협이 접수한다!]

[염동 대협의 원칙은 하나다!]

[승자독식!]

[누구라도 상관없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먹는다!]

대기를 진동시키는 외침이 몸에 닿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뜨고 피가 후끈 달아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칠성파가 한 놈에게…….”

칠성파 조폭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이 모든 것을 바라보기만 하던 구경꾼. 각성자들에게서 목소리가 튀어나왔으니까.

“승자독식?”

“지금 무슨 말을…….”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먹어?”

……

정신없이 목소리가 쏟아지다가 누군가의 열망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거 우리도 해당하는 겁니까?”

“…….”

“…….”

칠성파 조폭들이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지닌 수백의 각성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층 커진 외침이 들려왔다.

“승자독식! 그거 우리도 해당합니까?!”

갈망으로 떨리는 외침이 대기를 가르고.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박혔다.

터질 듯한 지폐 뭉치!

널브러진 칠성파 조폭!

박살 나는 칠성파 빌딩에!

“설마……!”

칠성파 조폭이 마침내 깨닫는 순간.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자독식!”

“염동 대협이 허락하셨다!”

“이 빌딩의 모든 것이 먹잇감이다!”

촤아아아-

천문석은 손에 가득한 지폐를 허공으로 뿌리며 선언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먼저 먹는 사람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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