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4화>
“…….”
물웅덩이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방금 본 광경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발길질을 쏟아붓던 조폭들을 박살 냈다.
부산에서 칠성파를 거스르는 각성자가 나오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으아, 아아악-.”
“내 다리, 아악-.”
“시발 미친 새끼!”
……
지금 자신의 주위에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욕설이 쏟아 내는 칠성파 조폭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환하게 불이 밝혀진 로비가 보였다.
곳곳에 널브러진 칠성파 조폭들이 비명을 지르고, 엘리베이터가 무너지고 벽과 천장, 바닥의 대리석이 박살 나 폐허로 변한 로비가!
이게 끝이 아니다.
칠성파 빌딩 앞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위를 향해 있었다.
3층!
강화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가고 폭음과 괴성, 비명이 쏟아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염동력자!
입구와 로비의 칠성파 조폭들을 아작 낸 염동력자가 빌딩을 오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아작 내고 있다!
홀로 부산의 밤을 지배하는 칠성파와 싸우고 있었다!
“……!”
“……!”
“……!”
너무나 현실성 없는 상황에 모두는 입을 떡 벌린 채 폭음이 들려오는 빌딩을 올려다봤다.
그건 구둣발에 짓밟히고 웅덩이에서 구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
빌딩에 달려온 목적도 잊은 채 멍하니 비명이 들려오는 빌딩만 바라봤다.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문득 고개를 돌리자 화단 앞에 쪼그려 앉은 옆집 꼬맹이가 보였다.
꼬맹이의 권태로운 표정을 보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홀로 칠성파를 박살 내는 엄청난 염동력자!
그러나 이 빌딩 최상층에는 칠성파 보스가 있었다!
마수와 몬스터를 갈아 버리는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
셀 수 없이 많은 각성자를 거느리고 모든 곳에 인맥이 닿은 부산의 황제, 마혁진이!
염동력자가 아무리 강해도 부산의 황제 마혁진과 수많은 각성자들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당장 언니를 찾아야 한다!’
아아악-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거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부아아아앙-
갑자기 나타난 승합차 3대가 인도로 밀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인파가 길을 여는 순간.
드르르륵-
승합차 문이 열리고 방망이, 3단 봉, 쇠 파이프로 무장한 각성자들이 쏟아졌다.
각성자들은 빌딩 앞에 널브러진 동료와 폐허가 된 로비에 깜짝 놀라 외쳤다.
“누가 습격한 거냐? 골판지? 또식이?!”
“아니 각성자……!”
콰아아앙-
이 순간 폭음이 터지고 금이 간 강화 유리창이 폭발하듯 뚫렸다.
으아아악-
뻥 뚫린 구멍에서 책상에 깔린 채 떨어지는 조직원!
“어……?”
“……!”
모두가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승합차에서 내린 각성자가 다급히 움직였다!
탓, 타타탓-
반사적으로 인도를 달려 손을 뻗는 순간, 추락하는 조직원은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을 타듯 빙글빙글 회전해 인도에 떨어졌다.
“어, 어어?! 내가 어떻게……?!”
넋이 나간 얼굴로 몸을 살피는 조직원.
“정신 차려!”
억센 손바닥이 조직원의 뺨을 올려붙이고 질문이 쏟아졌다.
“적은 누구냐?! 무장은? 인원은? 정체는?!”
순간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각성자! 맨몸! 한 명입니다!”
“한 명? 지금 한 명이 이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널브러진 조직원과 폐허가 된 로비, 박살 나는 빌딩을 돌아보는 동시에 대답이 터져 나왔다.
“염동력자! 엄청난 염동력자입니다!”
“……!”
순간 승합차에서 내린 칠성파 조직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보스가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이기에 염동력이 얼마나 상대하기 힘든 힘인지 잘 알았다.
그러나 칠성파는 부산을 먹은 초대형 조직!
게다가 이 빌딩 최상층에는 한국 최강의 염동력자, 보스가 있었다!
“들어간다!”
중간 보스가 외치는 순간, 승합차에서 쏟아진 수십 명의 조직원은 주저하지 않고 로비로 달렸다.
승합차가 도착하고 쏟아진 조직원이 빌딩으로 들어갈 때까지 걸린 순간은 찰나!
“…….”
몸을 일으키던 여학생은 문득 떠올렸다.
‘한 시간이면 끝난다. 그때 들어와라.’
염동력자 남자가 빌딩 안으로 들어가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지원 병력이 왔다.
3대의 승합차에서 쏟아진 수십 명의 각성자!
이건 시작일 뿐이다.
이제 곧 수십 대의 차와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빌딩으로 쏟아져 들어가, 퇴로를 끊을 것이다!
당연했다.
이 빌딩은 부산을 먹은 칠성파의 빌딩이고, 이 안에는 칠성파 보스가 있었으니까!
홀로 건물에 들어간 남자의 결말은 뻔했다.
마혁진에게 도전했던 수많은 이들처럼 영원히 사라진다!
그리고 언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아아악-
웅덩이에 떨어진 지폐를 끌어모으고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이때 툭 앞에 떨어지는 나뭇가지.
“그거 지팡이로 써.”
여학생은 꼬맹이가 던져 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고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전신이 깨져나가는 통증이 올라왔지만, 육체의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진짜 참을 수 없는 고통은 후회다.
‘이번에는 절대 늦지 않는다!’
여학생은 고통을 안으로 삼키며 화단으로 달렸다.
“어, 왜 여기로……?”
그리고 화단에 앉은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잽싸게 낚아채 옆구리에 끼우고 칠성파 빌딩 옆 골목으로 달렸다.
“아앗! 나는 또 왜?!”
* * *
천문석은 공구 벨트에 작업용 앞치마를 걸치고 얼굴에 마스크까지 쓴 채로, 가로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도를 넘어 차도에까지 넘쳐 나는 구경꾼.
-팔다리가 꺾인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덩치와 남녀.
-웨이브라도 지나간 듯 폐허가 된 환하게 밝혀진 로비.
-강화 유리창 곳곳에 쩍, 쩍 금이 가고, 뻥뻥 구멍이 뚫린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2, 3, 4, 5층!
가로수 위에선 이 모든 게 너무나 잘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기억이 촤르륵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언덕을 내려가는 마혁진을 따라와 도착한 시가지!
설렁설렁 뒤를 쫓다가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깜빡 마혁진을 놓쳤다.
그러나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은 게이트 전쟁에서 잠시 한숨 돌린 2004년의 부산!
각성력과 각성자에 관한 수많은 연구와 기술, 단련법이 나오기 전, 염동력자가 최강으로 알려진 시대다!
2020년의 마혁진은 시대를 뛰어넘는 강자! 게다가 신동대문, 열사의 사막, 해운대에서 개같이 구르며 더욱 단련됐다!
2004년의 각성자 사이에서 마혁진은 상향등을 켜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기감만 퍼트려도 어디로 움직였는지 순식간에 추적할 수 있었다.
마혁진이 어디로 갔는지 곧 추적했다.
“유흥가? 이 녀석, 거지일 텐데?”
천문석은 기감이 느껴지는 유흥가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 빌딩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천문석은 잽싸게 가로수를 기어올랐고 전쟁이라도 터진 듯 난장판이 된 지금 이 모습을 봤다!
‘마혁진! 뭔 사고를 친 거야!’
마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구경꾼들의 정신없는 외침이 이어졌다.
“……습격당했다고?!”
“진짜잖아! 미친……!”
“……부산의 황제!”
“피바람이……!”
“……최강의 염동력자!”
“……습격한 각성자도 염동력자……!”
뭐지, 이 심상치 않은 이야기들은?!
쏙쏙 귀를 파고든 단어가 뇌리를 간질간질 문질렀다.
반사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이름이 들려왔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
마혁진?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라고?!
여기서 마혁진이 왜 나…… 당연히 나올 수 있었다!
마혁진은 최초로 각성한 1세대 헌터니까!
아니, 잠깐! 1세대 헌터면 서울 거점, 던전, 균열에 있어야지 왜 부산에…… 당연히 있을 수 있었다!
마혁진은 그냥 1세대 헌터가 아니라 깡패 두목이니까!
“……!”
천문석은 전율했다.
지금 눈앞의 난장판은 그냥 난장판이 아니다.
2020년의 마혁진이 2004년의 마혁진이 있는 빌딩을 찾아와 만들어 낸 난장판이다!
“미친놈이 여기는 왜 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니지! 아무리 마혁진이 미친놈이어도 설마 그럴 리가!’
천문석은 가로수에서 뛰어내려 한달음에 도로를 가로질러 빌딩으로 달렸다.
“잠시만요!”
“지나갑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천문석은 겹겹이 모인 구경꾼을 뚫고 건물 앞에 널브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잘 보였다.
으윽, 으으윽-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는 정장 차림의 덩치와 남녀!
멀쩡한 놈들은 한 명도 없다!
전원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덜렁이고 쿨럭쿨럭 핏덩어리를 쏟아 내고 있었다!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염동력에 당했다!
당연히 염동력자인 마혁진에게 당한 거다!
‘아니, 얘들이 누군데 이렇게 쥐어팬 거야?!’
그 답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널브러진 남녀 주위에 흩어진 쇠 파이프, 사시미 칼, 방망이!
조폭이 아니면 이런 흉기를 쓸 리 없다!
즉, 팔다리가 덜렁이는 덩치와 남녀는 칠성파 각성자, 조폭이다!
순간 높게 솟은 빌딩에 시선이 꽂혔다.
강화 유리 벽에 쩍쩍 금이 가고 폭음과 비명이 쏟아지는 빌딩!
칠성파 조폭들이 지키고 있는 20층이 훌쩍 넘는 거대한 빌딩!
‘이 빌딩 설마?’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야! 칠성파 조폭! 이 빌딩! 설마, 이 빌딩 마혁진! 칠성파 보스, 마혁진 거냐?!”
“……!”
“……!”
구경꾼들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고.
“이 새끼가!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불러!”
신음을 흘리던 칠성파 조폭들의 살기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이 반응만으로도 7할 이상 확실하다!
눈앞의 빌딩이! 20층이 넘는 이 빌딩이 마혁진 거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눈앞이 깜깜해지고 절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미친! 하늘! 으아악-.”
괴성이 터지는 순간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생각!
잠깐 아직 모른다!
아무리 하늘이 저울이 제멋대로여도 마혁진! 깡패 두목이 이렇게 잘나갈 리 없다!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천문석은 덩치의 멱살을 잡아 단숨에 들어 올렸다.
“진짜야? 정말로 이 빌딩이! 부산 유흥가 한복판에 있는 20층이 넘는 이 빌딩이 마혁진! 깡패 두목! 마혁진 빌딩이라고!”
“미친 새끼!”
칠성파 조폭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득 시선을 돌려 팔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팔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팔만이 아니라 다리가 몸통이 전신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항거할 수 없는 최상급 몬스터 앞에 선 것처럼!
“……이게 무슨……?!”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드는 순간 멱살을 틀어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마스크를 위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섬뜩한 전율이 흐르고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겁을 먹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강자다!
“새끼야! 대답해! 이 빌딩, 마혁진 빌딩 맞냐?!”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네, 넷! 맞습니다! 마혁진! 보스께서 가지신 빌딩 중 하나입니다!”
“……!”
멱살을 잡은 손에서 힘이 풀려 바닥에 널브러지는 칠성파 조폭!
칠성파 조폭이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킬 때.
천문석은 비틀비틀 물러서다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지상의 빛에 가려져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지의 지맥과 이어져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맥을!
천맥을 따라 뿌려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그려 내는 아득한 천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득한 천의는 인지로 헤아릴 수 없고.
하늘은 무정하니 선악도 분별도 없음을!
그러나 아무리 하늘에 무정하고 선악, 분별이 없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 자신은 아직도 옥탑방 월세를 사는데!
조직 폭력배, 깡패 두목이 부산 유흥가 한복판 20층이 넘는 빌딩 주인이라니!
이럴 수는 없다!
세상에 정의가 도의가 살아 있다면 절대 이럴 수는 없었다!
“……!”
마그마가 끓어오르듯 뱃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순간.
인간 재해 이태성 길드장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깡패, 조폭 길드, 보이스피싱 조직, 갑질하는 재벌 3세를 거침없이 조지던 인간 재해!
이태성 길드장은 개인의 분노로 그들을 조진 게 아니다!
천하의 공분(公憤)이자 정의 구현!
무정하고 선악도 분별도 없는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세운 거다!
하늘을 대신해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는 인간 재해!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깨달음의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폭발한 공분이 사자후가 되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악-]
쾅쾅, 콰아앙-
순간 1층 강화 유리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아악, 으아악-
널브러진 칠성파 조폭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천문석은 사자후에 뜻을 담아 하늘에 전했다.
[정의 사회 구현!]
불의의 상징인 이 빌딩을 때려 부수고, 깡패 두목 마혁진을 쥐어패!
세상에 도의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이리라!
콰아앙-
폭발하는 내력으로 보도블록을 짓밟고 돌진하는 순간, 벼락 치듯 한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타임 패러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