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2화>
마혁진이다!
90도로 허리를 숙인 조폭들이 아니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솜털이 곤두서고 자석에 끌리듯 시선이 고정되는 순간, 위험한 맹수를 바라보듯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깡패 두목이란 생각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일순간에 좌중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부산의 황제,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다!
“……!”
“……!”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차에서 내려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마혁진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이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두 사람의 정신을 깨웠다.
“마혁진…….”
번쩍 정신을 차린 김 대리가 다급히 외쳤다.
“팀장님!”
“바로 움직이자!”
최 팀장과 김 대리는 반사적으로 도로를 달려가며 외쳤다.
“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만 멈춰 주세요! 마 선생님!”
그러나 마혁진은 멈추지 않고 건물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에 탔고, 칠성파 조직원들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
“어딜 맘대로 들어가려고!”
“야! 정부에서 나왔다니까!”
“마 선생님,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 뒤늦게 차에서 내린 사람의 툭 던지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사무실로 모셔라.”
“네, 비서님!”
“따라오십시오.”
앞을 막던 조직원들이 길을 열었고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잽싸게 입구로 걸었다.
순간 길게 도열한 조직원들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팀장님?”
김 대리와 시선이 닿는 순간.
최 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각성자, 거물들과 협상한 두 사람은 칠성파 조폭들의 생각을 바로 짐작했다.
유리한 협상을 위해 기선 제압이다!
‘마혁진만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한다면, 기죽은 모습쯤 얼마든지 보여 주마!’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 대리와 최 팀장은 즉시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싼 칠성파 조직원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피식, 피식 웃으며 거만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는 조폭들.
‘하, 이 깡패 놈들이!’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수많은 군인과 시민들!
거점이 마수와 몬스터에 삼켜지지 않게 정신없이 던전과 균열을 클리어하는 헌터들!
하다못해 노인과 아이들까지 지게와 손수레를 끌고 부산 던전에서 물자를 나르고 있다!
그런데 이 깡패 놈들은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만든 안전지대에 자리 잡고, 그 피를 빨고 있었다!
‘깡패 놈들, 반드시 쓸어버린다!’
최 팀장은 내심 이를 갈면서도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이 순간 조폭 사이로 얼핏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도로 건너편 화단.
깡 마른 몸, 까맣게 탄 남자가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광이 번뜩이는 그 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국정원 최원익 팀장은 수많은 강자와 거물을 만나 협상을 했다.
최초의 게이트가 열렸을 때부터 이어진 경험과 갈고닦은 감으로 각성자를 파악하는 눈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이렇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는 않았다.
딱 한 번. 4년 전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렸던 때를 제외하고!
갑자기 튀어나와 헌터 부대라는 존재하지도 않은 부대의 준장을 사칭한 남자.
평범한 철봉을 들고 중랑천에서 한강까지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냈다!
냉기 불꽃을 쏟아 내는 마수를 부려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들고, 몬스터가 쏟아지던 광화문 게이트를 얼려 버렸다!
인간을 초월한 그 압도적인 힘!
지난 4년 동안 만난 어떤 각성자들도 그를 뛰어넘지 못했다!
방금 본 한국 최강의 초능력 각성자 마혁진조차 그에겐 비교가 안 됐다.
그런데 지금 그 남자와 비슷한 전율이 느껴지는 사람이 나타났다.
깡마른 몸과 검게 탄 피부의 남자.
최 팀장은 보는 순간 직감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강자다!’
“잠깐! 잠시만! 선생님!”
최 팀장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다급히 외쳤다.
“선생님! 화단에 서 계신 거기 선생님! 여기요! 여깁니다! 잠시만 저랑 이야기 좀! 멈춰! 잠시만 멈추라고!”
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칠성파 조폭도 홀린 듯이 건물을 바라보는 깡마른 남자도 반응하지 않았다.
“팀장님? 갑자기 왜?!”
“잠시만 멈춰 달라니까!”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칠성파 조폭에 둘러싸인 채 건물 로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 앞으로 밀려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는 동시에 땡- 문이 열리고, 칠성파 조폭들과 최 팀장, 김 대리가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중년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다급히 내렸다.
“앗! 내립니다!”
이 순간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던 마혁진이 발을 내밀었고.
옆구리에 꼬맹이를 낀 여고생이 골목에서 뛰어나와 건물 입구로 달렸다.
그리고 네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선생님!”
“…….”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안 최 팀장과 도로를 가로지르는 마혁진.
“아빠! 언니! 언니 어디 있어!”
“어? 네가 여긴 어떻게?”
전력으로 달리는 여고생과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건물에서 나오는 중년 남자.
“난 여기까지!”
여고생의 옆구리에 낀 꼬맹이가 쏙 빠져나오는 순간.
타타타타탓-
전력 질주한 여고생이 중년 남자의 옷깃을 잡아 흔들며 악을 썼다.
“언니! 언니 어디 있어?! 설마 이 건물에……?! 아니지? 아빠 그거 아니지?!”
“이게 미쳤냐! 친언니도 아닌데! 어디서 아빠한테! 대들어!”
얼굴로 따귀가 날아오는 순간.
여고생은 손 소매를 잡아 비틀어 당겼다.
“어, 어어!”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힘에 한 발이 붕 뜨고 다른 한발에 체중이 실리는 순간.
탓-
바닥을 쓸 듯 체중이 실린 다리를 후리는 발!
남자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라 반 회전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컥, 커억-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컥 막힌 숨을 토하는 순간, 소매를 잡은 손을 낚아채 단숨에 끌어올렸다.
섬광이 이글거리는 섬뜩한 눈으로 노려보며 다시 한번 외쳤다.
“어디 있어!”
“7층, 7층 하우스에…….”
살벌한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아차 하는 표정 뒤로 다급히 말이 이어졌다.
“일자리! 일자리 소개해 준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
여고생은 멍하니 건물을 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그래…… 이모가 우리를 어떻게 도와줬는데…… 언니를……!”
“일자리 구해 준 거라니까! 정말로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라니까!”
잡은 팔을 뿌리치는 순간 남자의 품에서 지폐 다발이 쏟아졌다.
“……!”
“설마……?”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남자는 잽싸게 지폐 다발을 챙기며 외쳤다.
“쟤 좀 막아 봐! 새끼들아! 나 손님이잖아! 손님!”
“하! 별게 다 손님이라고……!”
“됐고. 너도 그만하고 집에 가라.”
칠성파 조폭들이 앞을 막는 순간 남자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며 외쳤다.
“걱정 마! 오늘 안에 2배! 아니, 3배로 불려서 갚고 데려오면 된다! 집에서 기다려!”
외침을 듣는 순간 일말의 기대마저 끊어 내는 진실을 알게 됐다.
아빠가 사촌 언니를 맡기고 돈을 빌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도박을 하려 한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악을 쓰며 달려가는 순간, 칠성파 조폭이 앞을 막고 버럭 소리 질렀다.
“집에 가라니까!”
“비켜!”
“하, 이 꼬맹이가 뭐라는 거야?!”
자신의 반도 안 되는 여학생의 외침에 어이없어 하는 칠성파 조폭.
그러나 그 작은 몸이 충돌하는 순간 칠성파 조폭은 거짓말처럼 튕겨 나갔다.
“각성자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분위기가 일변했다.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명령이 떨어졌다.
“공간을 죽여라! 돌진!”
달려오는 여고생을 향해 비스듬히 몸을 던지는 칠성파 조폭들!
“비켜! 비키라고!”
쾅, 쾅, 콰아앙-
엄청난 힘에 몸이 들썩이고 뒤로 밀렸다.
그러나 줄줄이 몸을 던진 덩치의 숫자가 다섯이 넘어가자 돌진력이 죽고, 열 명이 되자 몸이 멈췄다.
휘이-
순간 장난스러운 휘파람 소리와 탄성이 터졌다.
“열 명? 와, 너 고등학생 같은데 대단한데!”
“비키라고! 깡패 새끼들아!”
“입도 걸걸하고 더 맘에 드는데?!”
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성큼성큼 다가와 덩치에 막힌 학생에게 손을 뻗었다.
“어때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냐? 난 능력 우선이라 여자여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미친! 정신 나간 깡패 새끼가……!”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꽈드득-
우왁스런 손이 머리채를 낚아채 단숨에 끌어당겼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장난감처럼 덩치 사이로 끌려 나온 호리한 몸.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날렸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단단한 나무를 때리는 것 같은 반발력만 돌아왔다!
으악, 아악-
악을 쓰며 엎어치기, 후리기, 관절기를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땅에 박힌 바위를 상대하듯 어떤 기술도 먹히지 않았다!
악, 아악, 으아악-
아무리 악을 쓰며 공격을 쏟아부어도 능글맞은 웃음과 놀리는 듯한 목소리만 돌아왔다.
“야! 힘을 내봐! 그래서 언니 구하겠냐?! 나 넘어트리면 책임지고! 네 언니 데려다준다!”
하하하하하-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구경거리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칠성파 깡패들의 시선의 쏟아졌다.
거리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있었지만, 시선이 닿는 순간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아득한 절망감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길잡이로 데려온 옆집 꼬맹이.
이름도 모르는 오가며 몇 번 본 게 전부인 옆집 아이는 기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권태, 지루함, 가소로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표정.
그 부조화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전율이 흐르는 순간.
짧은 한숨과 함께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이 녀석들은 아이라고 봐주는 놈들이 아니다!
“오지 마! 집에 돌아가!”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눈앞을 지나가는 칠성파 조폭의 팔!
콰드드득-
반사적으로 팔을 낚아채 물었다.
“아악- 이 미친년이!”
피식, 피식 웃던 칠성파 조폭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눈앞이 번쩍하고 코와 입에서 왈칵 피가 차올랐다.
장난감처럼 날아간 몸은 물웅덩이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 누군가의 다리에 닿아 멈췄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자 붉게 변한 시야에 다리의 주인이 보였다.
검게 탄 얼굴과 깡마른 몸.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노년의 남자가 보였다.
“……세요. 쿨럭-.”
왈칵 피를 쏟아 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다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가세요. 얼른 가세요…….”
미약한 힘이 실린 손이 닿는 순간, 강철같이 단단한 다리가 가볍게 뒤로 밀려났다.
마혁진이 한걸음 물러선 순간 사방에서 칠성파 조폭들이 다가왔다.
“하, 재수가 없으려니까!”
“좋게 대하니까 겁 없이 누굴 물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마! 밟아!”
마구잡이로 쏟아진 구둣발에 엉망이 되면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학생.
“형씨 이걸로 세탁하고 국밥 드쇼. 이건 잊고 알았지?”
칠성파 조폭 한 명이 지갑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 마혁진의 가슴에 던졌다.
“…….”
가슴에 맞아 바닥에 쏟아진 지폐.
구둣발에 짓밟히며 물웅덩이를 기는 학생.
마혁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유흥가 한복판.
수많은 사람으로 거리가 북적이고, 건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들겨 맞는 학생에게 시선을 두는 사람도 사정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서울이 함락되고 엄청난 인구가 낙동강 전선 후방, 부산으로 피난 왔다.
지금 부산에서 가장 흔한 게 사연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와 헤어진 아이뿐 아니라 판자촌의 아이까지 돌보는 서울대성당의 신부가 특이한 거다.
부산에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깡패에게 두들겨 맞는 학생은 이야깃거리도 안 됐다.
그래서 지나가듯 한 줄의 보고를 듣고 넘겼다.
‘도박꾼 아버지 손에 끌려온 언니를 찾아온 각성자가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 각성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2004년의 마혁진에겐 서울 수복 작전이 아니었다면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평범한 하루,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었다.
그러나 언니를 찾아온 동생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날이었고 절망한 사건이었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1세대 헌터라는 게 무색하게 늙고 까맣게 타들어 간 얼굴.
이 생경한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이 건물에 왔는지를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마혁진은 물웅덩이로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