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50화>
정부, 국회의원, 기관장, 재벌.
안전지대 제주도에 짱박힌 채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이 답이다!
마탄 특허 정지에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않았다!
헐값으로 마탄 특허를 사려다가 정체불명의 천재 개발자의 호감을 확 깎아 냈다!
재금 공업의 약한 고리, 바지사장을 통째로 넘기려고까지 했다!
게다가 이제는 군에서 국운을 걸고 벌이는 서울 수복 작전에까지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아무리 예산이 없어도 200만 원이 뭐란 말인가?! 200만 원이!’
최 팀장은 예산이 없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정부는 예산 대부분을 안전지대 제주도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산을 쏟아부어도 제주도에 모든 피난민을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서울을 수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어떻게든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켜야 했다.
서울 수복 작전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냉기 포자 사건!
8월의 제주도에 내리는 폭설 속에서 파티를 벌였던 정치인, 재벌, 유력인사의 자녀 수십 명이 냉기 포자에 당해 줄줄이 병원에 실려 간 사건!
이 사건을 인터넷에 유포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의원들을 설득해 ‘서울 수복 작전’을 통과시킨 게 자신이었다.
서울 수복 작전!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페이퍼 플랜’이란 설득이 먹혔다!
그러나 이 작전의 진실은 국군과 국정원, 헌터들이 총력을 기울인 한타였다.
일본에서 물자가 쏟아지고, 엄청난 양의 마탄이 풀렸다.
용용이가 미친 듯이 한반도 근해를 질주해 서울로 이어지는 해로가 뚫렸다.
게다가 최고의 지휘관,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낸 천외천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까지 있다.
단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 필요한 건 정예 병력이다.
서울에서 거점을 유지할 군인은 충분하다.
필요한 건 서울에서 게이트까지 길을 뚫을 정예, 각성자들이다!
그래서 자신과 김 대리, 국정원 직원들이 총동원돼 부산 길드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어떻게든 서울 수복 작전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하아-
최 팀장은 꺼진 담배를 담뱃갑에 넣으며 김 대리에게 확인했다.
“길드 몇 개 남았지?”
김 대리는 바로 수첩을 확인했다.
“방금 부산 해병대전우회 중앙 길드가 대형 길드 중에는 마지막입니다. 중소형 길드는 다른 직원들이 접촉 중입니다. 부산 최대 길드. 아니 단체만 남았는데…….”
최 팀장은 말을 끊고 질문했다.
“그건 잠시 뒤로 미루고 서울에서 거점 유지 중인 헌터들은?”
“서울 거점을 유지 중인 헌터들을 하나로 규합한 세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대표가 젊은 여자인데, 이름이…… 아! 장민이라고 합니다!”
“장민? 처음 듣는 이름인데?”
“강철 해머 장철의 친동생이라고 합니다.”
“강철 해머 장철! 장철이라면 믿을 만하지. 혹시 이태성은 연락됐냐? 탱커가 꼭 필요한데.”
“이태성 길드장은 특임 소장님을 직접 만나고 결정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좋아. 그럼 뒤로 미뤘던 그 단체만 남았군. 하아-.”
최 팀장은 절로 깊은 한숨과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조폭 놈의 손까지 빌려야 한다니.”
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조폭이 부산을 꽉 잡고 있습니다. 부산의 황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데리고 있는 직속 각성자만 300명 이상. 선이 닿은 용역, 길드, 헌터들을 생각하면 혼자서 만 명에 가까운 각성자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 명의 각성자!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였다.
게다가 숫자만 대단한 게 아니다.
“그 조폭 녀석이 초능력 각성자 랭킹 1이라고?”
김 대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능력 각성자 중에서가 아니라. 그냥 한국 각성자 중에 최강자입니다. 분석 결과 장철, 이태성이 함께 덤벼도 상대가 안 됩니다. 게다가 폐허가 된 서울에 최적화된 능력자라…… 회유하지 못하면 작전이 성공해도 각성자들의 피해가 커질 겁니다.”
“……제시할 조건이 뭐라고?”
“현금 1억에 서울 땅 100평.”
“걔 부산 유흥업소 하루 매출이 수십억이라며? 부산에 땅이랑 건물도 잔뜩 있고?”
“그렇죠…….”
“준 안전지대 부산에 기반이 있는 조폭한테 마경이 된 서울 땅을 대가로 준다고?”
“…….”
“너라면 여기에 사인을 하겠냐?”
“미쳤습니까? 당연히 안 하죠!”
김 대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힘없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예산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차라리 제주도 부동산을 제공하던지!”
용용이, 거대 거북이가 지키는 안전지대 제주도.
안전지대 제주도에는 국회, 정부, 기업인, 전 세계 유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제주도의 부동산을 제공하면 단숨에 회유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조폭 놈이 이웃으로 오는 건 안 된다 이거지.”
“대신 이걸 받아 왔습니다.”
김 대리가 봉투에서 뽑은 서류에 인쇄된 글자.
[사면]
“하, 이제 조폭 놈한테 사면까지 대가로 건다고?”
낙동강 전선 안쪽은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다.
부산 던전에 들어가, 지게로 원자재를 나르는 노인과 여자. 목숨을 걸고 호남평야에 농사를 짓고 쌀을 수송하는 사람들. 던전과 균열을 정리하는 헌터까지. 모두가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등 처먹는 조폭 놈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사면까지 해 줘야 한다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싶었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이 조폭이 없으면 각성자들의 피해가 너무 커진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최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한국 최강의 초능력 각성자, 부산의 황제 이름이 뭐라고?”
김 대리는 바로 대답했다.
“칠성파, 마혁진입니다.”
* * *
서울대성당 식당.
접시 위에 산처럼 쌓인 김밥.
콩나물국과 한 병씩 놓인 사이다까지.
식사 준비가 끝난 테이블 앞에 수십 명의 꼬맹이가 앉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철수 신부님의 기도가 시작됐다.
“오, 주여!”
“오, 주여!”
“오, 주여!!”
“아멘!”
“아멘!”
“아멘!!”
언제나처럼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 기도가 끝나고 철수 신부는 외쳤다.
“기도 끝! 그럼 모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신나는 외침과 함께 김밥 파티가 시작됐다.
“맛있어!”
“훌륭해!”
“최고야!”
김밥을 씹으며 감탄하고.
“캬아아-.”
“으으읏-.”
“아, 아앗-!”
사이다를 마시며 탄성을 터트리는 꼬맹이들!
천문석도 꼬맹이들의 리액션을 보며 김밥을 먹었다.
과연! 노신부님이 자랑할 만했다!
짭조름한 시금치와 당근, 두툼한 계란지단의 완벽한 조화! 그리고 간장으로 조려낸 우엉의 달짝지근한 맛까지!
깔끔하고 정갈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입안에서 폭발했다!
별 다섯 개짜리 김밥이다!
“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 염동 대협 너도 많이 먹어라!”
천문석은 연신 감탄하며 김밥을 먹었고.
“…….”
마혁진은 말없이 김밥을 씹다 문득 접시를 봤다.
접시에 쌓인 김밥이 줄어들지 않았다.
툭툭, 툭툭툭-
하나씩 떨어져 쌓이는 김밥 때문에!
범인은 꼬맹이들이다!
“염동 대협! 할배 최고야!”
“염동 대협! 이 김밥 먹어!”
“염동 대협! 아까 목마 엄청 재밌었어!”
“…….”
마혁진은 힘없이 김밥을 집어 꼭꼭 씹어 먹었다.
그리고 김밥 파티가 끝난 테이블에는 호일에 쌓인 김밥 한 줄이 놓여 있었다.
천문석은 슬쩍 물었다.
“저 김밥은 안 먹어?”
“저건 김밥 엄청 좋아하는 형 거야!”
“김밥 좋아하는 형?”
“철수 형!”
“철수 형!”
합창하듯이 외치고 말을 쏟아 내는 꼬맹이들.
“철수 형은 김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맞아! 철수 형 김밥 완전 좋아해!”
“철수 형 없을 때 김밥 파티한 거 알면 울지도 몰라!”
“맞아, 맞아!”
꼬맹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
형을 위해 남겨 둔 김밥 한 줄.
“뭐야? 너희들 왜 이렇게 의리 있어?!”
천문석은 씩 웃으며 마시지 않은 사이다를 남겨진 김밥 옆에 놓았다.
보육원 철수 형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렇게 김밥 파티가 끝나고 목욕이 시작됐다.
* * *
커다란 목욕탕에 수영복을 입은 꼬맹이들이 모두 모였다.
천문석은 모두 앞에서 외쳤다.
“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구…….”
이 순간 마혁진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지 마라.”
마혁진의 목소리에는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으르렁거림과 섬뜩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마혁진 앞에선 사람은 천문석이었다.
수많은 마인을 철혈로 통제했고 어려서부터 온갖 개고생을 한 전생 천마이자 현생 알바!
마혁진의 협박이 통할 사람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구?!]
순간 두근두근, 반짝이는 눈빛을 한 수십 명의 꼬맹이가 일제히 외쳤다.
“염동 대협!”
“염동 대협!!”
“염동 대협!!”
……
“…….”
마혁진은 현기증이 나는 듯 휘청였고.
천문석은 씩 웃으며 ‘명령’했다.
“시작해라!”
“……시바 새끼…….”
인간 놀이공원 마혁진은 이번에는 인간 워터파크 마혁진이 됐다!
촤아아아아-
폭풍우가 몰아치듯 물이 몰아치는 목욕탕!
우와아아아-
끼요요오옷-
히헤헤헤헷-
물이 쏟아지고, 몰아치고, 파도치는 매 순간 기쁨과 즐거움 가득한 환호성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서울대성당과 판잣집 아이들은 신나게 목욕했고 1시간 후.
천문석과 마혁진은 꼬맹이들의 머리와 몸의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파파파파팟-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수건에 담긴 뜨끈한 양강지력!
찰나의 순간에 물기가 날아가고 머리와 몸이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자, 됐다! 다음 꼬맹이!”
천문석 옆 마혁진도 꼬맹이들의 물기를 말렸다.
부아아아앙-
염동력장이 만들어 낸 전후좌우, 상하 6방향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바람에 단숨에 사라지는 물기!
“으앗! 엄청 시원해!”
“앗! 다음은 나야!”
“…….”
머리와 몸의 물기를 바짝 말린 꼬맹이들은 마치 배터리가 다 된 것처럼 하나둘 픽, 픽- 쓰러져 잠들었다.
천문석과 마혁진은 꼬맹이들을 번쩍번쩍 들어 침대로 옮겼다.
철수 신부님과 영희 드라이버는 놀러 온 판잣집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러 나갔고.
영희 수녀님은 아이들의 잠자리를 하나하나 살피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 숙였다.
“오늘 정말 감사드려요. 두 분 덕분에 오늘 하루는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날로 기억될 거예요.”
“아뇨. 저도 즐거웠습니다.”
천문석이 대답하는 순간.
수녀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염동 대협께도 감사드려요.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
마혁진은 대답 없이 물끄러미 수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친 얼굴, 살벌한 눈빛에도 빙그레 미소 짓는 수녀.
천문석은 마혁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야! 시선 관리!”
그제야 마혁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뇨. 깡…… 아니, 염동 대협 쟤가 원래 나쁜 놈이라 성격이 꼬여서 그렇습니다.
“네? 원래 나쁜 놈이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 준 저분이요?!”
영희 수녀님의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드러났다.
“고생을 좀 해서 불쌍해 보여서 그렇지. 쟤 원래 나쁜 놈 맞습니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보다 혹시 수리할 곳 없나요? 제가 이것저것 수리를 잘하는데!”
“부엌문이 조금 삐걱거리긴 하는데…….”
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할 때다.
천문석은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연장 어디 있나요? 제가 집수리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혹시 다른 곳도 수리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쪽 창고에 연장이랑 자재가 있어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점점 어두워지는 늦은 저녁.
천문석은 보육원 곳곳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마혁진은 보육원 정문을 나와 언덕 아래 부산 시가지를 바라봤다.
2004년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부산.
“…….”
마혁진은 한참 동안 부산 시가지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건물을 봤다.
오래된 3층 벽돌 건물, 서울 대성당.
현수막과 건물, 꼬맹이들을 봤을 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서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스치듯이 떠올랐다.
호남평야에서 돌아오지 못한 신부.
서울 수복 작전 준비로 줄어든 배급.
한겨울을 앞두고 갑자기 닥친 운영난.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언덕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무섭게 불어난 빚.
빚 탕감과 980만 원.
서울대성당을 비워 주는 대가로 준 돈이다.
마혁진은 시선을 내려 손을 봤다.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와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고, 귓가에 환호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손을 보던 마혁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부산 시가지를 훑었다.
드문드문 차가운 가로등뿐인 판자촌과 달리 환하게 불이 밝혀진 부산 시가지.
마혁진의 시선은 곧 한 건물에서 멈췄다.
2004년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순간 저 건물에 무엇이 그리고 누가 있는지 선명하게 기억났다.
저 건물은 부산을 먹은 조폭 길드가 관리하는 수십 개의 건물과 백여 개의 유흥업소 중 하나였다.
하우스, 노래방, 호텔, 룸살롱이 함께 있는 건물.
저 건물에 서울에서 버티는 헌터들과 던전과 게이트에 목을 매는 각성자들을 비웃는 2004년 한국 최강의 각성자.
수백 명의 각성자와 천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거느린 부산의 황제가 있었다.
980만 원으로 서울대성당을 밀어 버리고 고급 빌라를 지었던 부산의 황제이자 칠성파 보스.
깡패 두목 마혁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