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9화 (1,05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9화>

부산 해병대전우회 중앙 길드.

“국가에 대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길드장님!”

국정원 최 팀장은 깊게 허리 숙이고 옆으로 손짓했다.

“김 대리! 보상서류!”

김 대리는 테이블에 놓인 참전 서약서를 챙기고, 밀봉된 서류 봉투를 내려놓는 즉시 허리 숙였다.

“길드장님의 헌신에 대한 국가의 작은 성의 표시입니다. 국가에 대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의 모습.

부산 해병대전우회 중앙 길드 길드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국정원에서 이렇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는 날이 다 오는군요. 하하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최 팀장은 허리를 펴는 즉시 몸을 돌렸다.

“아니, 뭐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커피 시켰는데 마시고 가지?”

“아, 저희가 일정이 빡빡해서. 하하하-.”

웃음과 함께 발걸음을 움직일 때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뭐 이렇게 단단히 봉인했어?”

찌지지지직-

플라스틱 서류 봉투를 찢는 소리!

부길드장이 보상서류를 열고 있었다!

“……!”

“……!”

최 팀장과 김 대리의 시선이 마주치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길드 사무실을 반쯤 지났을 때, 부길드장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 이거 숫자가 왜 이래?!”

이 순간 네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설마!”

경악한 부길드장.

“왜? 뭐 잘못됐냐?”

의아해하는 길드장.

“……!”

하얗게 질린 김 대리.

“달려!”

김 대리의 등을 떠밀며 전력 질주하는 최 팀장!

타다다다닷-

최 팀장과 김 대리가 달리는 순간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잡아! 저 새끼들 잡아!”

“네?”

“무슨 말을?”

길드원들이 반문했을 때.

콰아앙-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뛰어! 저 사기꾼 새끼들 잡으라고!”

서류 봉투를 든 부길드장이 문으로 달렸지만 이미 늦었다.

다다다다닥-

최 팀장과 김 대리는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재빨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했지만, 엘리베이터는 3층에 멈춘 상태!

“이 새끼들 노렸구나! 전부 뛰어! 반드시 잡아야 한다!”

“네, 넷!”

길드원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고, 다급히 달려온 길드장이 부길드장의 어깨를 잡았다.

“야,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저 새끼들 사기 쳤어요!”

“뭐? 사기?! 설마, 쟤들 국정원 소속 아냐?! 설마 사기꾼들?!”

“그게 아니라! 이 서류를 보세요!”

부길드장은 움켜쥔 서류를 내밀었다.

“보상서류?”

낚아채듯 서류를 받아 쭉 읽어 내려가는 길드장의 얼굴이 곧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

길드장은 반사적으로 창문을 열었고 건물 입구를 빠져나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야, 이 개 같은 새끼들아!]

길드장의 각성력이 실린 외침이 터지는 동시에 대답하듯 들려오는 외침.

“국가에 대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국가에 대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최 팀장과 김 대리는 번개같이 인파를 빠져나와 복잡하게 얽힌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부산 해병대전우회 중앙 길드 길드장은 깨달았다.

‘당했다! 처음부터 노렸다!’

* * *

[으아악- 미친! 날강도 새끼들아!]

해병대전우회 길드장의 폭탄이 터진 듯한 외침이 하늘을 울리고!

“잡아!”

“반드시 잡아서 끌고 가야 한다!”

“서약서! 서약서라도 회수해야 한다!”

해병대전우회 길드원들의 발소리와 외침이 꼬리처럼 들려왔다.

다다다다닥-

최 팀장과 김 대리는 폭탄이 터지는 듯한 외침과 뒤를 쫓는 발걸음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복잡하게 뒤엉킨 골목을 익숙하게 달렸다.

이미 3일째 수십 번 해 오던 일!

게다가 철저한 준비까지 끝내놨다!

최 팀장과 김 대리는 어렵지 않게 꼬리를 끊고, 위장벽으로 막아 둔 좁은 골목에 멈춰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야, 등급 산정이 잘못됐잖아. 헉- 저게 어디 봐서 중급이야?!”

“헉, 허억- 돌아가는 대로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님. 허억-.”

최 팀장은 한참을 숨을 몰아쉬다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보상액이 얼마기에 저렇게 빡쳤냐?”

“200만 원…….”

“200만 원? 서울까지 원정을 뛰는데 인당 200만 원? 빡칠 만하네.”

“아뇨 총액 200만 원이요.”

“……총액? 얼핏 봐도 30명이 넘던데, 서울로 동원하는 보상이 200만 원이라고?”

“네.”

“…….”

최 팀장은 말없이 담배를 물고 김 대리에게도 한대 건넸다.

하아-

하아아-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는 골목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우리 예산 없냐?”

“언제는 우리가 예산이 풍족했던 적이 있나요?”

하아-

하아아-

최 팀장과 김 대리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에 실린 담배 연기가 쏟아졌다.

“…….”

한참의 침묵 후 최 팀장은 다시 질문했다.

“혹시 그제, 어제, 오늘 낮에 돌았던 길드들도?”

“네. 등급에 따라 1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책정했습니다. 바로 확인할까 봐. 칼이 안 박히는 강화 플라스틱 서류 봉투에 넣고 글루건으로 입구까지 완전 밀봉했는데…… 하아-.”

“어쩐지 바로 뜯어 보는 사람이 없더라니…… 못 뜯은 거구나. 아, 그럼 아까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 3층에 잡아 둔 것도?”

“네. 미리 준비해 둔 거죠. 혹시 빡쳐서 쫓아 올까 봐.”

“와, 너 잔머리 장난 아니다?”

“전부 팀장님께 배운 거죠. 재금 공업 마탄 특허 협상! 진짜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아-

국정원 5팀, 최원익 팀장은 담배 연기를 한숨에 담아 내쉬었다.

‘김 대리. 그건 나도 상상 못 했어.’

재금 공업 마탄 특허 협상.

문득 몇 년 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의 작은 공업사, 재금 공업의 놀라운 발명품, 마탄!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발명되고 전 세계 특허가 출원된 마탄과 관련된 이권은 엄청났다.

독점 생산, 국가 핵심 기술 지정, 공장 건설, 정치권 영입!

세계 각국의 재벌, 정부, 정치인 온갖 이들이 숟가락을 얹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미국이 특허를 정지시키며 상황은 급변했다.

처음은 미국, 다음은 중국과 러시아.

3대 열강이 전 인류적 위기, 게이트 전쟁을 이유로 특허를 정지시켰다!

재금 공업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모든 협조를 거부했고.

미·중·러 3국은 마탄 제조 공정과 마력회로의 작동 원리 파악에 실패했다.

제조 공정을 알아내기 위해 재금 공업에 침투하던 공작원들을 막아 낸 국정원과 기무사의 쾌거였다.

국정원과 국군은 환호하고 꿈에 부풀었다.

마탄 라이선스를 대가로 전 세계에서 막대한 물자를 공급받아 서울과 대도시, 한반도 곳곳의 거점에서 버티고 있는 헌터들과 군인들을 지원할 수 있다!

‘일주일 만에 모든 게 헛수고로 결론 났지만 말이지.’

하아-

최 팀장은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한숨에 실어 내뿜었다.

상황이 다시 한번 급변한 건 작동 원리 파악에 실패한 미국의 한 연구원이 특허의 내용대로 마탄을 제조하면서다.

그리고 견본품으로 보내진 마탄과 70% 이상 같은 성능을 내는 마탄 제조에 성공했다!

미국만 성공한 게 아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이 줄줄이 마탄 제조에 성공했다!

각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얼마나 황당했던가?!

혹시 보안이 뚫리지 않았는지 긴급 보안 점검까지 돌렸다!

그러나 보안은 뚫리지 않았다.

문제는 재금 공업이 출원한 특허에 있었다.

재금 공업의 정체불명의 마탄 발명자는 마탄 특허를 출원하며 모든 것을, 그야말로 마탄 제조 공정의 작은 것 하나까지 모든 것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 원리를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특허의 내용대로 화약을 조성하고 마력회로를 새기고, 각성력을 움직이면 마탄이 나왔다.

정품 마탄에 비해 성능과 품질이 떨어지고 가끔 불발탄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이 마탄도 던전, 균열, 게이트 어디서건 발사되고 마수와 몬스터의 반발장을 깎아 냈다.

1발로 안 되면 2발을, 2발로 안 되면 될 때까지 쏟아부으면 됐다!

그리고 정품 마탄에 매겨진 가격이 발 당 10달러, 13,000원인 반면에 짭 마탄의 생산 원가는 발 당 10센트, 130원! 가격 차이가 100배에 달했으니까!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상세한 매뉴얼 특허에 따라 마탄을 찍어 냈고. 재금 공업의 마탄 특허가 유명무실해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마탄이라는 세기의 발명을 해내고도 재금 공업은 재정난에 허덕이게 됐다.

그때 자신은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장 재금 공업에 공적 자금을 수혈하고 정부에서 마탄 특허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러나 제주도에 박힌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짭 마탄으로 급한 불을 끈 미·중·러·일·영·프·독! 강대국들은 재금 공업의 마탄 특허에 눈독을 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탄 특허를 정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금 공업이 만만한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금 공업이 미국 기업이었다면?

이제라도 마탄 특허가 미국 기업에 넘어간다면?

각국은 엄청난 라이선스 비용이 미국에 내야 했다!

마탄 특허는 잠시 무력화됐을 뿐 힘을 가진 국가로 주인이 바뀌면 당장 살아난다!

정부는 뒤늦게 마탄 특허 확보에 나섰고 자신에게 협상 명령이 내려왔다.

이것이 김 대리가 말한 재금 공업 마탄 라이선스 협상의 시작이었다!

그때 정부에서 제시한 조건이 마탄 면세품 지정, 훈장 수여, 공장 용지 무상 임대 그리고…….

이때 회상을 깨는 김 대리의 탄성이 들려왔다.

“아니, 아무리 특허 정지 중이어도 그렇지. 어떻게 마탄 특허를 큰 거 두 장, 200억에 먹으려고 해요? 그때 미국에서 제시한 금액이 2억 달러였다면서요? 10배가 넘게 차이 나는데!”

“……뭐 다 그렇지.”

최 팀장은 담뱃재를 털어 내며 말끝을 흐렸다.

‘김 대리 순진한 녀석.’

한국 정부에서 큰 거 두 장 200억을 제시했다고?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서울이 난장판이 됐을 때 서울 헌터 부대 준장을 사칭한 사람이 나타났었다.

마치 먼 미래에서 온 것처럼 게이트의 특징을 알리고, EMP 마력 폭풍을 경고하고, 대 몬스터 전 전술을 전파했으며, 중랑천에 둑을 쌓아 최초의 웨이브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시고르자브르란 마수로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들어 피난민을 남쪽으로 빼냈다.

그가 가진 정보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움직였고 회유하기 위해 조건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제시한 게 1.6억 달러에 시민권.

한국에서 제시한 것이 3억 원에 + 애국 상장과 상패였다.

마탄 협상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큰 거 두 장이 200억?

당연히 큰 거 두 장은 2억 원이었다!

미국에서 2억 달러?

사실은 200억 달러였다!

여기에 더해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움직이며 온갖 협잡과 기만, 사기, 간 보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화룡점정, 국정원 안가에서 보호 중이던 재금 공업 바지사장까지 탈출했다!

이 순간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난장판이 시작됐다.

국정원, 정찰총국, 내각정보실, CIA, 전략지원부대, 정보총국!

각국의 정보기관이 뒤엉킨 바지사장 쟁탈전!

최종적으로 CIA 한국지부가 바지사장을 낚아챘다!

마탄 특허가 넘어갈 위기의 순간.

재금 공업 바지사장이 특허 양도 서류에 사인하기 직전 자신과 5팀이 현장에 도착했다!

바지사장의 경동맥을 졸라 기절시키고, CIA 한국지부 제임스 요원에게 리버블로 삼 연타를 때려 박아 쓰러트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기를 무시하고 바지사장과 함께 탈출,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장소에 맡겼다.

동서남북, 중앙 5개의 게이트가 중첩해서 열린 세계 유일의 도시.

거대괴수들이 괴수 대전을 찍고, 마수와 몬스터가 해일처럼 움직이며.

그 중앙을 유례없이 거대한 1.2km 폭의 강이 반으로 가르는 마경.

서울!

시민과 헌터들이 아파트를 요새화해서 버티는 대마경 서울의 헌터들에게 재금 공업 바지사장을 맡겼다.

이걸로 깔끔하게 재금 공업의 약한 고리는 사라졌다.

아무리 CIA가 날고 기어도 게이트 5개가 중첩된 대마경 서울에서 재금 공업 바지사장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이것이 재금 공업 마탄 특허 협상의 진실이었다.

이렇게 마탄 특허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건 막았지만, 자신의 좌천은 막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인 재금 공업 바지사장이 국정원 안가에서 어떻게 탈출했겠는가?

탈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기관이 달라붙은 건?!

재금 공업의 약한 고리 바지사장을 사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까인 것은?!

이 모든 문제의 이유, 답은 간단했다.

답은 사람. 집단에 있었다.

안전지대 제주도에 짱박힌 권력자들의 답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