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5화 (1,04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5화>

“……서울 대성당이요?”

노신부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지역 성당 몇 개를 합쳐서 임시로 이사했거든. 그보다 어때 전망 좋지 않냐?”

신부님의 말대로 전망은 아주 좋았다.

정문 너머 능선을 타고 줄줄이 이어진 판잣집과 컨테이너, 빽빽하게 건물이 세워진 부산 시가지. 그리고 넓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얼마든지 괜찮으니까 편하게 쉬고. 오늘 저녁은 엄청난 특식을 준비할 테니 기대하라고!”

“특식이요?”

천문석의 물음에 기다린 듯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수녀님이 김밥을 정말 기막히게 싸거든. 아까 박 의사가 탐내던 거 봤지?”

“와! 우리 짠돌이 할배가 웬일이래? 우리 보육원 김밥 장난 아냐. 소문이 자자해!”

‘뭐지 이건? 고기를 쏘는 것도 아닌 김밥을 쏜다고? 이거 지금 농담하는 건가?!’

천문석이 뭐라 반응해야 할지 눈치를 살필 때 툭- 몸을 치며 고개를 숙이는 마혁진.

“감사합니다.”

천문석도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하루 신세 지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줘. 우선 짐부터 내려야 하니. 부산 던전에 가져갔던 지게가 어디 있더라?”

“당연히 창고에 있겠지! 아니 어떻게 여기 사는 사람이 나보다 몰라? 따라와요.”

어이없다는 얼굴로 노신부를 데리고 창고로 걸어가는 드라이버.

두 사람이 멀어지는 순간 마혁진은 혼잣말하듯 말했다.

“농담 아니다. 김밥 큰맘 먹고 말한 거다.”

“……뭐?”

“…….”

마혁진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려, 보육원 정문 너머 허름한 판잣집들과 화려한 부산 시가지를 봤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

“야, 야?”

몇 번이나 불러도 미동도 없이 정문 너머 부산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마혁진.

마혁진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시가지를 훑고 있었다.

이때 노신부와 드라이버가 지게와 양동이, 빗자루를 들고 왔다.

“그럼 바로 짐 나를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게.”

노신부는 트럭 짐칸에 올라 양동이와 빗자루를 들고 두들겼다.

땅땅, 땅땅땅-

“야! 꼬맹이들 대박 터졌다! 모두 출동!!”

잠시 후 보육원 정문이 벌컥 열리고 꼬맹이 3명이 나타났다.

“앗! 할배 신부님!”

“아앗! 두목이 돌아왔다!”

“쌀 가지러 간 두목이 돌아왔어! 빨리 나와!”

세 꼬맹이가 외치는 순간.

두두두두둗-

3층 건물 창문이 진동하고 곧 수십 명의 꼬맹이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두목!”

“할배 신부님!”

“앗! 두목 신부님!”

외침은 달랐지만, 달리는 방향을 모두 같았다.

땅땅땅-

트럭에 올라 양동이를 두들기는 노신부!

노신부를 향해 달리던 꼬맹이들은 곧 깜짝 놀랐다.

트럭 뒤에 불쑥 솟아 있는 노란 오리배!

“여기 엄청 멋진 오리배가 있어!”

“두목이 오리배를 잡아 왔어!”

우와아아아-

환호성과 함께 트럭을 돌아, 오리배로 달려가는 꼬맹이들!

그러나 트럭 뒤에 도착하는 순간 하나같이 굳어 버렸다!

“……!”

“……!”

“야! 뭐 해! 오리배 타야지!”

다급히 달려와 외친 꼬맹이도 같이 굳어 버렸다.

노란 오리배 아래에 붙어 있는 거대한!

“악어잖아!”

“오리배에 악어도 달렸어!”

“으아앗! 두목이 오리배 악어를 잡아 왔다!”

우오오오옷-

끼요오오옷-

기괴한 괴성이 터지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탁탁, 타타탁-

신발을 벗어 두들기며 오리배 악어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는 꼬맹이들!

‘뭐지, 이 기시감은? 어디서 이런 모습을 봤는데?!’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전율과 기시감에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다.

땅땅-

이때 커다란 쇳소리와 외침이 울려 퍼졌다.

“모두 주목!”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양동이와 빗자루를 든 노신부가 트럭 짐칸에서 외쳤다.

“모두 주목! 중대 발표가 있다!”

“주목!”

“모두 주목!”

“두목이 발표하신다!”

순식간에 공터가 조용해지고 꼬맹이들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노신부는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임무는 대성공으로 끝났다!”

“두목이 대성공이래!”

“대성공이면 좋은 거지?”

“당연하지! 완전 좋은 거야!”

순간 양손을 번쩍 들고 일제히 외치는 꼬맹이들.

“대성공!”

“대성공!!”

“대성공!!”

……

노신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성공으로 끝난 임무의 성과를 발표하겠다! 우선 트럭!”

번쩍 든 손이 가리킨 짐이 가득 실린 트럭!

“쌀 엄청 많이!”

“쌀!

“쌀쌀!!”

“쌀쌀쌀!!”

……

노신부의 손이 다음으로 가리킨 트럭 짐칸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트럭 운전사!

“무료 봉사해 준 부산 전술 운전단 드라이버!”

“뭐? 내가 왜 무료 봉사야!”

“무료 봉사!”

“무료 봉사!!”

“완전 무료 봉사!!”

……

그리고 쓱 옆으로 이동한 손이 멈춘, 천문석과 마혁진!

“손님! 아주 훌륭한 손님들이 오셨다!”

“손님?”

“훌륭한 손님?”

“별로 안 훌륭해 보이는데?”

천문석과 마혁진을 본 꼬맹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노신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자 아주 훌륭하신 손님들이 오셨으니까. 오늘 저녁은 뭘 해야 할까……?”

고개를 갸웃하던 꼬맹이들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앗! 설마!”

“아, 앗! 그거?!”

“두목님! 그건가요?! 그거?!”

“모두 침착해 아닐 수도 있어!”

“철수 형이 절대 미리 좋아하지 말랬어!”

“맞아! 철수 형이 내 손, 내 입에 들어와야! 내 돈, 내 김밥이랬어!”

……

꼬맹이들의 뜨거운 시선이 노신부에게 모였다.

“……!”

“……!”

“……!”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꿀꺽,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퍼져 나갈 때.

노신부는 씩 웃으며 폭탄을 터트렸다.

“오늘 저녁은 영희 수녀님의 특제 김밥 파티다!”

우와아아아아아-!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엄청난 환호성!

꼬맹이들은 환호성과 함께 천문석과 마혁진에게 달려왔다!

벗은 신발을 탁탁, 타타탁- 부딪치며, 두 사람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김밥 파티!”

“김밥 파티!!”

“김밥 파티!!”

……

꼬맹이들의 환호와 탄성, 눈빛!

데일 듯이 뜨거운 열기가 훅 밀려왔다!

이런 열광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손으로 허공을 긁으며 외쳤다.

우르르르릉-

[내가 사이다를 쏜다!]

“사이다!”

“어?! 사이다라고?”

“나도 들었어! 사이다래!”

“김밥에 사이다도 먹는 거야?!”

“앗! 오늘 누구 생일이야?!”

……

우오오오오옷-

끼요오오오옷-

익룡이 울부짖는 듯한 괴성과 함께 보육원 앞마당은 광기 어린 축제 현장이 됐다.

하하하하하-

노신부는 흐뭇하게 웃으며 이 모습을 바라봤고.

“할배!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내가 왜 무료 봉사야?! 웃지 말고 대답하라니까!”

전술 운전단 드라이버는 분통을 터트렸다.

잠시 후 노신부는 양동이를 두들기며 외쳤다.

땅땅, 땅땅땅-

“자 그럼 모두 짐을 나르자! 한 줄로 나란히 출동!”

“출동! 1번!”

“출동! 2번!!”

“출동! 3번!!”

타다닥- 달려온 꼬맹이들이 트럭 앞에 한 줄로 길게 줄을 선 채 번쩍, 번쩍- 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노신부는 트럭에 산처럼 쌓인 짐을 아이들의 작은 손에 건네주며 한마디씩 전했다.

“훌륭하다!”

“오, 대단해!”

“아주 멋진데!”

……

칭찬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치약, 칫솔, 핫팩, 베개, 담요, 휴지, 의복과 신발이 건네졌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부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모두는 크고 작은 짐을 번쩍 들고는 신나서 보육원으로 달렸다.

“…….”

천문석은 말없이 이 모습을 바라봤다.

키즈카페 부점장으로 일했기에 이 모습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상황인지 잘 알았다.

할아버지 신부님은 양동이와 빗자루, 미소와 칭찬으로 수십 명의 꼬맹이를 수족처럼 움직였다!

30분이면 어떤 알바 자리에서도 ‘전문가네! 전문가야!’ 소리를 듣던 알바의 달인 철수 형조차 불가능했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현생 알바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법!

천문석은 성큼성큼 트럭으로 다가가 양어깨에 2개씩 쌀 포대 4개를 올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순간 짐을 받으러 줄을 선 꼬맹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이 형 힘 개쎄!”

“헌터! 이 형 헌터 아냐?!”

“앗! 형 헌터예요?! 진짜로요?”

꼬맹이들이 몰려드는 순간.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야, 4개씩 날라서 언제 다 나를래? 비켜 봐!”

염동력자 마혁진.

트럭에 쌓인 쌀 포대가 하나둘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꼬맹이들의 눈과 입이 점점 커졌다.

수십 개의 쌀 포대가 모조리 공중에 떴을 때, 보육원 앞마당의 모든 꼬맹이는 똑같은 표정으로 마혁진과 공중에 뜬 쌀 포대를 보고 있었다.

[@ㅁ@]

[@ㅁ@]

[@ㅁ@]

……

마혁진은 턱을 치켜들고 시크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고 어디냐?”

우와아아아아-

순간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꼬맹이들이 일제히 외쳤다.

“이 아저씨 힘 개개개쎄!”

“아저씨 아냐! 얼굴 봐! 할아버지야!”

“헌터! 할아버지 헌터인가 봐!!”

“할아버지! 진짜 각성자예요?!”

“각성자는 하루에 5끼 먹는다는데 진짜예요?!”

“김밥! 헌터 되면 맨날 김밥 먹을 수 있어요?!”

“헌터 완전 캐부자라는데 맞아요?! 네, 네? 네?!”

초롱초롱한 눈으로 꼬맹이들이 쏟아 내는 외침에.

수십 개의 쌀 포대를 염동력장으로 들어 올린 마혁진은 돌이 됐다.

할아버지!

아이들의 악의 없는 순수함이 겉늙은 마혁진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혁진을 고용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마수를 갈아 버리던 공격력!

쌀 포대를 한 번에 나르는 작업력!

꼬맹이들을 대신 상대하는 방어력까지!

‘힘을 내라, 겉늙은 할배 각성자 마혁진! 카캬카카-.’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쌀 포대를 염동력장에 슬쩍 밀어 넣고, 장철 헌터를 들어 어깨에 멨다.

“신부님?”

노신부와 드라이버는 양동이와 빗자루, 지게를 짊어진 채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와! 아니 뭔 각성력이 짐도 날라?! 저게 초능력 각성, 뭐 그런 거냐?”

“염동력! 어, 잠깐! 부산에 엄청난 염동력자가 있다고 했는데. 일성, 이성, 삼성? 뭐였더라……?”

천문석은 슬쩍 끼어들어 말했다.

“신부님. 제 동료, 어디에 눕히면 될까요?”

노신부는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 정신을 딴 데 둬서.”

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부님. 이분은 손님이신가요?”

수녀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어느새 나타났다.

“아! 수녀님. 나오셨군요. 네. 큰 도움을 받은 각성자…… 이런 내 정신이!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네!”

신부는 겸연쩍게 웃으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요새도 바른 생활 배우나?”

“네? 바른 생활이요?”

“나랑 수녀님 이름은 바른 생활 첫 페이지에 나오거든. 전국의 모든 초딩들이 다 아는 이름이었지.”

씩 웃으며 자신과 수녀를 가리키는 노신부의 손.

“난 철수, 이쪽 수녀님은 영희. 철수와 영희.”

철수와 영희!

이름을 듣는 순간 창원대 기숙사 병원이 기억났다.

“아, 그래서 아까 의사분이 철수&영희 분식이라고!”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영희 수녀님.

“박찬호 의사님을 만나셨나 보군요. 네 저만 보면 분식집 차리자고 하시죠.”

영희 수녀님은 주름진 얼굴로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손님분은?”

천문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전 이세기. 저기 트럭 앞에 저분은 염동 대협이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