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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1화 (1,04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1화>

“이세기. 재수 없는 녀석.”

워커 실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했다.

천장이 무너지며 불쑥 튀어나온 미궁 악어 7호에 들이받혀 던전에 빨려 들어간 이세기.

소설에 나와도 개연성 없다고 욕먹을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지만,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이세기에게는 검은 불운이 붙어 있었으니까!

앞으로 이세기가 겪을 일이 눈에 선했다.

이 세계는 나뭇가지가 뒤엉킨 닫힌 세계!

여기서 시드라는 새로운 가지가 자라나면 기존의 나뭇가지와 얽히게 되는 게 당연했다.

그걸 막기 위해 마력 회로와 우회로를 만들었지만, 목적지로 연결하기 전에 던전 수면에 떨어졌다.

이세기와 동료는 목적지까지 단숨에 달리는 급행열차가 아닌 완행열차를 탄 것과 같았다.

완행열차가 역마다 서듯, 교차하는 세계의 나뭇가지와 몇 번이나 만날지 모른다!

까닭 잘못했으면 자신도 저기에 얽혀 들어가 개같이 구를 뻔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안도와 아쉬움이 섞인 탄식이 새어 나오는 순간.

워커 실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분화한 시드를 동시에 열어 부하를 낮추겠다는 계획은 성공했다.

게다가 시간 오류 수정자의 시계를 복제한 ‘앵커 마법을 심은 시계’도 던져 줬다.

어떤 난장판에서 무슨 개고생을 할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과 돌아오는 건 문제가 없었……!

“아차!”

워커 실트는 깜빡한 걸 깨달았다!

뒤엉킨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뻗은 시드!

시드가 뒤엉킨 나뭇가지와 만났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아…… 앵커 마법 설명하다가 이걸 놓쳤네! 아니지! 이세기 녀석 잔머리면 당연히 알아채겠지?!”

알아채는 게 당연했다.

자신이 던져 준 시계에 있는 버튼은 둘!

하나가 앵커 마법을 박아 넣는 거면 다른 하나는 당연히 얽힌 세계의 나뭇가지를 탈출하는 버튼이다!

“이세기! 힘을 내라! 화이팅!”

진심으로 기원할 때 문득 깨달았다.

“앗! 그러고 보니 진짜 이름도 안 물어봤잖아!”

워커 실트는 피식 웃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곧 돌아올 거니까.”

시드 안에서 아무리 긴 시간을 보낸다 해도 돌아오는 건 길어야 하루.

그 하루 동안 이세기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분화한 던전 시드를 안전하게 봉쇄하는 것!

휙, 휙휙-

워커 실트는 던전 시드 주위에 정제 마석을 던졌다.

파스스슥-

허공에 떠오른 12개의 정제 마석에서 마력이 흘러나오는 순간.

위이이잉-

바닥에 그려진 마력 회로가 허공으로 쭉 뽑혀 올라와 던전 시드 주위를 통째로 감쌌다.

다차원 적층 마력 회로!

1세대 마력 각성자가 튀어나와도 24시간 안에는 뚫지 못한다!

다음은 반대쪽에 열린 던전 시드를 봉쇄할 차례.

자신은 이곳을 지켜야 하고, 케인 이사 혼자 지키는 건 무리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을 대신해 케인 이사와 함께 던전 시드를 지킬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카카카카캌-

웃음과 함께 공구 벨트에서 확성기를 꺼낼 때 통신기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워커 님! 듣고 계십니까?! 여기 던전 안으로…….

케인 이사!

워커 실트는 잽싸게 통신기를 낚아채 외쳤다.

“케인? 야, 던전으로 빨려 들어갔지? 몇 사람이야?! 인원수부터 말해!”

-3명! 격전을 벌이던 랭커 3명이 동시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쪽에서 이세기까지 모두 세 명이! 반대쪽에서도 랭커 3명이 던전 시드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인원을 맞춘 듯한 상황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 이거 100% 설계네.”

-네? 지금 무슨 말씀을……?

“그런 게 있어.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부터 아무도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네? 저 혼자서요? 지금 헌터들 바글바글 몰려오고…….

“바로 한 명 더 보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워커 실트는 케인 이사의 말을 끊고 확성기를 꺼내 명령어를 입력하고 뻥 뚫린 천장을 향해 겨눈 뒤 바로 당겼다.

빠아아앙-

마력탄이 뻥 뚫린 천장을 지나 하늘 높이 날아올라 터졌다.

[3:00]

푸른 하늘에 선명한 숫자가 생겨나는 순간.

거대한 외침이 남일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3분 준다! 3분 안에 안 돌아오면 케페니안 용병 부른다!]

그리고 하늘에 생겨난 숫자가 변화했다.

[2:59]

[2:58]

[2:57]

……

카운트다운!

휘이, 휘휘휘-

워커 실트는 마력 스패너로 어깨를 두들기며 느긋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갑자기 무너진 천장!

염동력장으로 쏘아진 미궁 악어 7호!

돌진 방향을 비트는 순간 날아온 그리스 마법!

그 결과 7호에 받혀 던전 시드 안에 처박힌 이세기!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났을 리 없다!

염동력자와 아리엘 무겐다흐!

옥상에 제압해 둔 두 사람이 일으킨 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범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7호가 노린 건 이세기가 아닌 자신이라는 것!

아리엘 무겐다흐가 자신을 상대하려 준비한 계략에 이세기가 당한 것이다!

워커 실트는 피식 웃었다.

아리엘의 생각은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아직 부하 인장이 찍히기 전.

염동력자와 힘을 합쳐 자신을 던전 시드에 밀어 넣고 튀려고 했을 거다.

그러나 아리엘 무겐다흐가 생각지 못한 게 두 가지 있었다.

자신 옆에는 온갖 사건·사고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이세기가 있었고.

그런 이세기가 자신에게 이 장치를 줬다!

‘차원 좌표 추적기!’

이건 그냥 차원 좌표 추적기가 아니다!

마도 제국 전성기,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차원 좌표 추적기다!

차원 좌표 추적기만으로는 이 닫힌 세계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작은 누군가’를 이 닫힌 세계로 불러오는 건 가능했다.

작은 누군가!

예를 들어 손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고 가벼운 다람쥐 말이다!

카카카카카카캌-

워커 실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차원 좌표 추적기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순간,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고용했다가 파산하고 튄 마도왕 무겐다흐의 운명은 정해졌다.

1. 워커 실트 님의 부하가 돼서 조금만 구른다.

2. 케페니안 차원 용병에게 끌려가 개개개같이 구른다!

카카카카캌-

힐끗 본 하늘의 카운트다운은 어느새 1분 안!

[1:00]

[0:59]

[0:58]

……

후아아아아앙-

뻥 뚫린 천장에서 거센 바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워커 실트는 차원 좌표 추적기를 번쩍 들어 올리고 바람을 향해 기계어를 영창했다.

띠띧디디디딛디디디디디딛-

케페니안 차원 좌표 입력!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쏟아졌다.

[……정지! 잠깐만! 그만! 안 돼! 으아아악-]

띠딛이디디딛딩디디디딛-!

그러나 기계어 영창은 멈추지 않았고.

[0:09]

카운트다운이 한 자릿수로 들어가는 순간.

쿠우웅-

뻥 뚫린 천장에서 뚝 떨어진 사람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마스터! 제가 왔습니다! 충성충성!”

아리엘 무겐다흐가 돌아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

워커 실트는 말없이 마력 스패너를 내밀었고.

아리엘은 한참 동안 갈등 어린 눈빛으로 마력 스패너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 깡, 까앙-

* * *

촤아아아아-

수면으로 떨어지는 순간 아득하게 멀어지는 방향감각과 시간 감각!

깜빡- 세계가 암전하는 순간.

“……!”

천문석은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구르르르르르-

빛의 길을 미끄러지는 거대한 악어.

그 등 위에 단단하게 결착된 오리배.

자신은 기절한 장철, 마혁진과 함께 오리배를 타고 있었다.

[이게 무슨……?!]

흠칫 놀라 기억을 되짚는 순간 깨달았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던전 수면에 처박혔다. 지금 이곳은 던전 안이다!

반사적으로 오리배 밖으로 기감을 뻗는 순간, 압도적인 감각이 전해졌다.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고 끝도 없이 뻗어가는 기감!

무한에 가까운 아득한 공허!

하늘의 끝에는 무수한 별이 뿌려졌고!

이 별을 향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의 선이 뻗어 있었다!

마치 태양을 향해 자라나는 나뭇가지처럼 아득한 공허를 가로질러 별을 항해 뻗은 빛의 선들!

천문석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과 일행이 탄 오리배 악어는 이 빛의 선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니, 무슨 던전이 이렇게…… 어? 이거 뭔가 익숙한데…….]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신동대문 지하 터널!

초거대 사슴벌레를 타고 신동대문 지하 터널을 달렸을 때와 같다!

그때 이 아득한 공간을 지나 도착한 곳은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이었다!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뚫린 통로구나!’

깨달음의 순간, 하늘의 별빛이 흔들리고 악어가 미끄러지는 빛의 길이 요동쳤다!

쿠쿠쿠쿵-

문득 시선을 내리자 신동대문 때와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신동대문의 직선으로 쭉 뻗어 있던 빛의 길과는 다르다.

산속 도로에 나무가 쓰러진 것처럼, 쭉 뻗은 빛의 길 곳곳에 또 다른 빛의 길이 가로로 걸쳐져 있었다.

쿠웅-

오리배 악어가 가로로 걸쳐진 빛의 길을 타고 넘는 순간, 파도치듯 빛 방울이 튀어 올라 쏟아지고 심상에 장면이 떠올랐다.

-별의 바다를 유영하는 투명한 고래와 그 뒤를 쫓는 범선의 선원.

-맨손 맨발에 거친 로브를 입은 채 달을 올려다보는 사람.

-술에 취해 휘파람을 불면서 지게에 실려 가는 남자.

-분노한 새끼 사슴을 피해 도망치는 초짜 사냥꾼.

-가마솥에 돌을 넣고 정성을 담아 끓이는 여자.

……

수많은 장면이 심상에 쌓이자, 순간 너무나 귀에 익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으으으-

히이, 히이잇-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였다.

첨벙, 첨벙-

돌고래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듯 빛의 길에서 튀어나오는 반투명한 형체 둘!

퐁퐁, 퐁퐁퐁-

빛나는 물방울을 흩날리고.

촤아, 촤아아-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물결을 휘감았다.

눈에 익은 하늘 고래와 흰 돌고래가 아득한 하늘의 별을 향해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는 듯한 다급한 움직임!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퐁퐁이! 용용이?!]

구으, 구으읏-?

히잇, 히이잇-?!

아득한 별을 향해 날아오르던 퐁퐁이와 용용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히히히힛-

카캬카카캌-

키즈 카페에서 수없이 들었던 꼬맹이들 웃음소리!

순간 심상에 그려진 수많은 장면 속 존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범선의 선원.

로브를 입은 사람.

술 취한 남자.

도망치는 초짜 사냥꾼.

돌을 끓이는 여자.

……

이들 모두와 천문석의 시선이 얽혔다.

아득한 인과를 넘어 시선이 닿는 순간.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천문석 또한 미소 지었다.

염화미소(拈華微笑).

시공을 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전해지고, 심상에서 수십 수백 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순간 다급한 외침이 때려 박듯 뇌리에 전해졌다!

[야! 앞, 앞에 봐!]

[어?]

생각지도 내용에 반문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미끄러지는 거대 악어 앞에 빛의 길. 아니, 거대한 빛의 장벽이 나타났다!

“……!”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거대 악어는 빛의 장벽과 충돌했고 아득한 현기증과 함께 깜빡- 세계가 암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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