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0화>
“기동 병참 도시 차원 좌표?”
익숙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광경!
북한산에서 회수한 물건을 보낼 때 사용한 기계!
기동 병참 도시의 워커7에 받았고, 기동 도시와의 거래를 위해 장민 대표에게 넘긴 추적기를 말하는 거다!
‘잠깐 이거 넘겨도 되는 건가?’
기동 도시의 워커7과 눈앞의 워커 실트는 다른 시공간의 같은 인물이다!
문득 기억나는 워커7의 말.
물건을 받으면 기동 도시를 떠난다고 말했다.
지금쯤이면 워커7과 엘프는 기동 병참 도시를 떠났을 거다.
워커7과 엘프가 없다면 추적기에 기록된 차원 좌표를 넘겨도 문제없다.
“혹시 추적기 말하는……?”
“추적기! 차원 좌표 추적기?! 그렇지! 그게 있으면 가능하지! 초소형 게이트로 기동 병참 도시랑 연결했구나!”
워커 실트는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추적기 넘기면 이 시드 넘겨준다! 아니, 그냥 연결하면 좆되니까! 안전한 연결까지 책임진다!”
천문석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조건은 둘!
한 가지 일을 도와주는 것과 추적기를 넘기는 것!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워커 실트와 싸워야 한다.
워커 실트는 강적이다!
절벽 결전 때도 한경석의 점멸과 초대형 뱁새의 기습으로 간신히 만년설에 파묻는 데 성공했다!
건물 밖에 남겨진 전투 흔적을 보면 워커 실트는 더욱 강해졌다!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결론을 내고 주먹을 내밀었다.
“좋다! 딜!”
“딜!”
주먹을 툭 치는 워커 실트!
“장철 헌터님! 혹시 추적기…….”
장철 헌터에게 추적기의 행방을 묻자,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계측 설비 위에 널브러진 연구원 손에 쥐어진……!
“추적기? 저게 왜 저기 떨어져 있어?!”
“추적기라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워커 실트는 봤다.
기절한 연구원의 손에 쥐어진 기계!
쥐어팰 때는 무심결에 넘겼지만, 다시 보니 알 수 있었다!
“……!”
한달음에 달려가 집어 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외침.
“차원 좌표 추적기! 와, 미친! 뭐야?! 바로 앞에 두고 몰라봤다고?! 카카카캌-.”
워커 실트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잽싸게 끼어들었다.
“네가 찾던 거 맞지? 던전 고정 빨리 도와줘! 장철 헌터님 쓰러질 것 같다!”
“알았어! 잠깐만! 분화한 시드 두 개 동시에 열어야 해! 하나만 열리면 사고 터진다. 지금 반대쪽 빚의 기둥에 내 부하 갔으니까…….”
워커 실트가 통신기를 잡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통신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계신가요?!
“케인?! 야, 새끼야 뭐 하다가 이제야……!”
다급한 외침이 워커 실트의 말을 끊었다.
-아까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지금 여기 완전 난장판입니다! 신호탄이 터지고! 랭커급 각성자 셋이 붙었어요! 던전 언제 열릴지 모릅니다!
파아아, 까가가강-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와 충돌음!
보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반대쪽 빛의 기둥에서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야, 저거 괜찮은 거야? 내가 가 볼까?!”
천문석의 외침에 바로 고개를 젓는 워커 실트.
“아니! 네가 갔을 때면 이미 늦어! 걱정할 거 없다! 이 정도는 상정 범위다!”
워커 실트는 통신기를 잡았다.
“야!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갈 필요 없다! 통신기 버튼 누르고 던져! 빛의 기둥 10미터 안에만 던져 넣으면 된다!”
-……그냥 던지면 된다고요?! 아니, 그걸 미리 말해 줘야지! 지금까지 미친 듯이 기었는데……!!
통신기에서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워커 실트는 케인 이사의 외침을 씹고 명령했다.
“준비되면 바로 연락해라!”
그리고 벨트에서 펜을 꺼내, 던전 수면 주위 바닥에 원을 그리고는 반짝이는 가루를 뿌렸다.
파스스슥-
그러자 바닥에 쏟아진 가루는 자기장에 끌리는 쇳가루처럼 원에 달라붙어, 순식간에 마력 회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략 2분 후면 열린다!”
“알았어!”
천문석은 대답과 동시에 장철 헌터를 봤다.
“…….”
장철 헌터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러나 그 얼굴과 눈에는 터질 듯한 환희가 담겨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장철은 장세린, 오랜 시간 그리워한 자신의 딸을 만나러 가니까.
하지만 세기말 대한민국에는 장세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장철과 그 부인, 아직 어린 동생 장민. 세린이의 가족도 함께 있었다.
그 가족에게 지금의 장철은 이방인이다.
“…….”
찰나의 순간 수많은 의문과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번 겪었기에 과거를 바꿨다고 현재가 완전히 바뀌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장철 헌터가 하는 행동은 수면에 비치는 달, 허상을 잡는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누가 이 모든 게 헛된 일이니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딸을 만나러 가는 아빠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장철 헌터님. 잘 다녀오세요.”
장철은 고개를 살쩍 끄덕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특급…….”
뒷말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특급 헌터와 장민 대표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
“특급 헌터, 장민 대표님께는 제가 잘 전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장철 헌터는 말없이 눈빛으로 답했고.
천문석은 성큼 뒤로 몸을 뺐다.
이 순간 워커 실트는 외쳤다.
“준비 끝났다! 케인, 아직이냐?!”
-거의 다 왔습니다! 미친! 이 녀석들 장난 아니에요! 유형화된 오러가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습니다!
“유형화된 오러? 검강?! 와, 저쪽도 장난 아니네! 이거 괜찮은 거야?!”
“대단하긴 하지만, 어차피 분화된 시드는 서로의 거울상이다. 내 부하가 가지고 있는 통신기로 연결하면 거울에 비치는 상처럼 여기서 열면 저기도 열리고, 여기서 닫으면 저쪽도 닫힌다! 거울 앞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간단히 통제할 수 있다!”
천문석의 감탄에 워커 실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인데…….”
‘어째서일까? 뭔가 중요한 걸 까먹고 있는 느낌인데…….’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통신기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워커 님!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던집니까?!
“바로 던져! 암반 위로! 걸리지 않게 미끄러트려라!”
그르르르륵-
바로 통신기가 암반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세 랭커의 전투 소음이 섞여들었다.
파아아아앙-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거센 바람 소리!
깡, 까까가깡-
강철과 강철이 충돌하는 금속성 폭음!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친구! 이세기가 보내서 왔다! 당장 뒤로 빠져!
“……바람검?! 쟤가 왜 저기…… 앗!”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 깨달음의 섬광이 터졌다.
남일도에 솟은 빛의 기둥은 둘이다!
남동쪽 고지대의 빛의 기둥!
서쪽 암반 지대의 빛의 기둥!
고지대로는 자신이 암반 지대로는 파티마가 달려갔다!
그리고 이렇게 둘로 갈라진 이유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나타난 던전과 장철 헌터에 정신이 팔려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
광화문. 태성 빌딩. 푸저우 시가지, 마경, 남일도로 이어진 이 모든 난장판의 목적!
암살검 한경석!
천문석은 격전을 벌이는 랭커급 강자 셋 중 두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바람검 파티마!
암살검 한경석!
파티마가 달려간 서쪽 암반 지대에 이번 일의 타깃 한경석이 있었다!
천문석은 다급히 외쳤다.
“야, 워커! 잠깐 멈춰! 반대쪽 빛의 기둥! 거기 내 동료가 있어!”
“어? 야!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 야, 케인! 통신기 잡아! 당장 멈춰!”
“야! 네 부하 통신기 던졌잖아!”
“아차! 창문! 창문으로! 발광 신호 보내면 돼!”
천문석과 워커 실트가 창문으로 달려가는 순간.
도미노가 차례로 쓰러지듯 사건이 연속해서 터졌다.
그르르르륵-
통신기는 암반 위를 미끄러져, 짭 무림 던전 경계 안으로 들어갔고.
파아아아앙-
그렇게 남동쪽 고지대와 서쪽 암반 지대의 빛의 기둥이 하나로 이어졌다.
이 순간 주호와 장철이 던전에 투영하던 간절한 바람이 연결됐다.
암반 지대와 고지대에 자리한 두 개의 수면에 맺히는 선명한 상!
무림 던전.
세기말 대한민국.
순간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수면에 막혔던 주호와 장철의 손이 그 안으로 쑥 파고 들어갔다.
“……!”
“……!”
첨벙 물결이 치솟고 아득한 공간으로 떨어지는 감각이 주호와 장철에게 전해졌다!
암살검과 바람검의 협공을 받던 주호가 한발 먼저 반응했다.
콰아아-
십자로 소용돌이치는 검강이 공간을 찢어발기는 순간, 미끄러지듯 수면으로 몸을 던지는 주호!
[안 돼!]
다급한 외침과 함께 주호를 끄집어내려 수면으로 점멸 이동하는 한경석!
“멈춰! 들어가면 안 돼!”
폭발적으로 가속해 한경석을 향해 손을 뻗는 파티마!
촤아아아-
주호, 한경석, 파티마 세 사람이 하나로 뒤엉켜 무림 던전의 수면에 빠져들었다.
원래라면 무림 던전이 열리는 순간 세기말 대한민국은 닫혔어야 했다.
하지만 둘로 분화한 시드는 워커 실트에 의해 이미 하나로 연결됐다.
지금 상황은 시소의 좌우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킨 것과 같았다.
주호가 사라진 시소는 하늘로 솟구치고.
장철이 앉아 있던 시소는 땅으로 떨어졌다.
첨벙-
간신히 버티던 장철이 수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 돼! 지금 빠지면 완행이야! 완행! 야, 막아!”
워커 실트가 외쳤을 때 천문석은 이미 반전해서 달리고 있었다.
“이 줄자 사용해!”
천문석은 날아온 줄자를 낚아채는 동시에 장철을 향해 던졌다.
드르르르륵-
단숨에 뻗어 나간 줄자가 장철의 손에 감겼다.
“됐다! 우선 빼네!”
워커 실트가 환호성을 터트리고.
천문석이 줄자를 잡아당기는 순간,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졌다.
콰르르르릉-
천장이 와르르 무너지고 외침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튀어나왔다.
“지금이다! 던전 안으로 밀어붙여!”
무너진 천장에 튀어나온 건 노란 오리배를 짊어진 거대한 악어였다.
오리배 악어는 땅바닥을 구르는 대포알처럼 던전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경로에는 던전 수면에 반쯤 몸이 빠진 장철과 그를 끌어당기느라 무방비 상태인 천문석이 있었다.
천문석은 기감이 느껴지는 장소로 반사적으로 돌멩이를 차올려 집어던지고 몸을 돌렸다.
순간 오리배 위에 탄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
경악, 황당, 공포, 난감, 어이없음……!
이 모든 감정이 뒤엉킨 얼굴에서 튀어나온 외침.
“네가 여기에 왜 있어?!”
오리배에 탄 사람의 외침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잊고 있던 게 하나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혁진! 야, 숙여!”
“뭐?”
반문하는 순간 소리 없이 수십 번 도탄한 돌멩이가 경악한 마혁진의 뒤통수를 때렸다.
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 마혁진!
쿠르르르르르-
대포알처럼 밀려오는 오리배 거대 악어!
등 뒤에는 탈진한 장철 헌터가, 앞에는 산사태처럼 밀려오는 오리배 악어가 있다!
그리고 이 오리배 악어를 염동력장으로 던진 마혁진은 기절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
넉 냥의 힘으로 천근 거력의 방향을 비튼다!
하아앗-
기합을 터트려 끌어올린 내력을 담아 진각을 밟는 순간.
뻥 뚫린 옥상에서 휙- 마력광이 날아오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스!”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마력광이 대지에 퍼지는 순간.
그리스! 바닥의 마찰력은 한없이 0에 가까워졌다.
대지를 때리는 진각은 마찰력이 사라진 바닥에 주륵- 미끄러졌고.
바닥을 미끄러지는 오리배 악어는 2단 추진체를 점화한 듯, 확 치고 나와 천문석의 가슴을 때렸다!
컦-
천문석은 불의의 일격에 외마디 비명을 터트리고!
주르르르르륵-
오리배 악어에 받힌 채로 던전 수면으로 밀려갔다!
이때 미친 듯이 달려오는 워커 실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여기 봐! 이 장치! 시계를 역설계해서 만든 앵커다!”
“지금 들어가는 시드!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세계의 나무 뒤엉켜 있다! 수면에 비친 장소로 한 번에 이동 못 해!”
“급행이 아니라 완행이다! 뒤엉킨 나뭇가지를 몇 번 가로질러 이동할 거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 장치! 이 파란 버튼 눌러!”
“앵커 마법! 세계에 닻이 박히고 고정된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고 돌아올 때! 이 파란 버튼을 다시 눌러!”
“세계에 박힌 닻, 앵커가 뽑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받아!”
파아아앙-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동그란 장치!
탁-
천문석이 장치를 낚아채는 순간.
워커 실트의 입에서 기계음이 튀어나왔다.
띠디디딛딛디디딛디딛디딛-
“미궁 악어 7호! 이제 네 명령도 들을 거다! 여기는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메에에에에에에-
오리배 악어 입에서 염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
워커 실트는 크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외침을 터트렸다.
“화이팅! 힘을 내! 외쳐라! 할 수 있다! 할 만하다!!”
천장이 무너지고 오리배 악어에 받혀 미끄러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천문석은 손을 흔들며 자신이 수없이 외쳤던 말을 외치는 워커 실트를 봤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전혀 할 만하지 않았다.
목이 콱 막히고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었다.
“……시바!”
컼 막힌 입으로 터트린 외침이 마지막이었다.
탈진한 장철 헌터.
오리배 악어에 받힌 천문석.
불의의 일격을 맞고 기절한 마혁진.
모두와 함께 미끄러지는 미궁 악어 7호.
그르르르륵-
세 사람과 한 로봇은 수직으로 일어선 수면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촤아아아아-
던전 수면이 크게 치솟고 전후좌우,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아찔한 부유감이 쏟아졌다.
이것이 천문석이 오래전 하늘에 고했던 질문, 천문(天問)의 대답이었다.
주호, 한경석, 파티마는 무림 던전행 던전 시드에 떨어지고.
천문석, 장철, 마혁진은 세기말 대한민국을 향해 자라난 가능성, 던전 시드에 떨어졌다.
천문석이 얽힌 사건이 늘 그러했듯, 이번 사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