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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39화 (1,04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9화>

“…….”

천문석은 뉴스 속보에 남일도와 무림 던전이 떴을 때 이미 난장판이 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도착한 남동쪽 고지대.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게 다 뭐야?!”

무너진 펜스와 구겨진 정문!

거대한 무언가가 바닥을 쓸고 지나간 흔적!

사방에 널브러져 데굴데굴 구르는 각성자들과 경비 병력들!

이 모든 것을 보는 순간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무언가 펜스를 뚫은 뒤, 건물 외벽을 타고 빛의 기둥이 솟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무력화시키며!

크애액-

쿨럭, 쿨럭-

“물! 목이 타는 것 같아! 크엌-.”

“커억! 눈! 아무것도 안 보여!”

……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고통스러운 외침과 그때마다 풀썩, 풀썩 일어나는 가루!

가루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작열감이 느껴졌다!

최루 가루다!

그것도 그냥 최루 가루가 아닌 방독면을 쓴 각성자조차 무력화시키는 엄청난 최루 가루다!

잽싸게 나뭇가지로 가루를 긁어내 손끝으로 살짝 만지는 순간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화끈한 작열감!

“이건?!”

천문석은 최루 가루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이건 평범한 최루탄이 아니다.

아니, 가루는 겉모습일 뿐 진짜는 이 가루에 담긴 념(念)!

이건 최루탄이 아닌 가루의 형태를 띤 저주, 주술에 가까웠다!

평범한 최루탄이라는 생각에 호흡을 멈추고, 방독면을 쓰고 몸으로 뚫으려던 각성자들은 가루가 피부에 닿는 순간 당했을 거다!

이중 속임수!

“와, 미친! 이 최루 가루 만든 녀석 잔머리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순간 이곳에 달려온 목적이 떠올랐다.

한경석!

이렇게 감탄할 때가 아니다!

“설마! 경석이도 당한 거야?!”.’

천문석은 잽싸게 심상에 방벽을 세워 념을 막고, 마스크를 하나 더 쓴 채로 각성자들이 뒤엉킨 난장판을 달렸다.

“야, 친구! 나다! 5관 금괴 맡긴 네 친구!”

“너 어디에 있냐?! 문제 다 해결됐어! 삼촌이 용서해 주기로 했어!”

“NTM_CHS! 삼촌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숨어 있으면 빨리 나와!”

……

쉴 새 없이 외치며 주위를 살폈으나 눈물 콧물을 쥐어짜는 각성자 중에 한경석은 없었다!

“물! 물 좀! 캐액-.”

“눈물이 안 멈춰!”

“매워! 더럽게 매워! 크에엑-.”

……

“아니, 무슨 가는 데마다 이 난리야!”

이때 문득 바닥을 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흔적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나온, 짓다 만 건물!

이 건물 안에서 기감이 느껴졌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

천문석은 건물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야! NTM_CHS 조카! 친구! 너 어디 있어? 건물 안에 있냐?!”

외침과 동시에 외벽을 향해 도약하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야 이 씹! 사기꾼 새끼야!!”

“……!”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뻥 뚫린 창문에 올라선 사람이 보였다.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전신 슈트를 입었다!

하지만 8살 남짓 꼬맹이 체형을 보는 순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야, 너 너? 공방 도시 절벽! 크아앙?”

“그래! 맞다 백곰권!”

워커 실트는 대답과 동시에 질문했다.

“부산 해운대 게이트! 악어 괴수 기억나냐?!”

“악어 괴수 로봇!”

서로를 확인한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동시에 외쳤다.

“워커 실트!”

“이세기! 사기꾼 새끼!”

“뭐? 사기꾼?! 야, 내가 왜 사기꾼이야?!”

“너 때문에 내가 얼마가 개고생한 줄 알아?! 됐고! 어서 올라와라! 지금 강체술사랑 던전 걸고 한판 붙고 있다! 이제 곧 던전 열린다!”

빠르게 말을 쏟아 내더니 창문에서 사라지는 워커 실트.

“던전? 설마 뉴스 속보 무림 던전?! 그게 진짜였던 거야?!”

각성 스팟 무림 던전은 이미 장강 유통에서 뚫고 있었다!

당연히 뉴스 속보로 뜬 남일도 무림 던전은 다른 유력자들을 낚으려는 사기라고 생각했다!

빛의 기둥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만, 진짜 무림 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했다! 무림 던전은 하나인데 빛의 기둥은 둘이었으니까!

‘그런데 뭐?! 던전을 걸고 한판 붙는다고? 던전이 열린다고?! 아니, 잠깐 누구랑 붙는다는 거야?!’

천문석은 잽싸게 외벽을 타고 기어올라 창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야, 이거 진짜 던전……!”

다급히 외치던 천문석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굳어 버렸다.

사방에 널브러진 각성자들.

부서진 설비와 박살 난 위장 벽과 간이 장벽.

난장판이 된 층 한가운데 자리한 바위와 그 위에서 물결치는 수면!

던전이다!

남일도에는 진짜 던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던전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앙-

“백곰권! 무한맹타! 와다다다다다닷-!”

곰처럼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붓는 워커 실트 맞은편.

한 손은 던전 수면에 올린 채 맨손을 방패처럼 내밀고 버티는 헌터!

곰 같은 체형!

수염이 잔뜩 난 얼굴!

허리춤에 걸린 망치와 작업복까지!

특급 헌터 삼촌!

장강 유통 장민 대표의 오빠!

워커 실트의 일방적인 공격에 두들겨 맞는 헌터는 장철 헌터였다!

“장철 헌터님!”

천문석이 달리며 외치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날아왔다.

“……!”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절박한 시선을 보내는 장철 헌터!

“어, 뭐야? 아는 사람?”

여전히 폭풍 같은 공격을 퍼부으며, 고개만 돌려 묻는 워커 실트!

“야, 그만! 그만 공격 멈춰! 내가 아는 사람이야!”

천문석은 다급히 달려가며 외쳤다.

“안 돼! 아니 못 해! 무한맹타는 말 그대로 무한(無限)! 적이 쓰러지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는 백곰권의 비기 중의 비기!”

말보다 행동으로 막는 게 빠르다!

쿵-

진각을 밟아 폭발시킨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비틀었다.

발, 무릎, 허벅지, 허리, 가슴, 어깨, 팔을 거치며 비틀리고 비틀린 내력이 손에 담긴다!

콰드드득-

비틀린 와류에 흡(吸)자결의 묘리를 담아 펼치는 전사경!

전사경이 실린 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순간.

촤르르르륵-

채찍이 기둥에 감겨들 듯이 손에 감겨드는 것이 있었다!

천문석은 잽싸게 손을 낚아챘다!

휙, 휙-

손에 딸려 오는 줄자 둘!

“아, 아앗! 내 현철 줄자! 백곰권 무한맹타의 비기가! 안 돼! 으아앗!”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분통을 터트리는 워커 실트!

장철 헌터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백곰권 무한맹타의 비밀은 검은 강철로 만든 줄자 2개였다.

놀랍지도 어이없지도 않았다.

워커 실트 녀석의 백곰권은 전부 이 모양이었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협잡과 사기, 기만으로 이뤄진 기술들!

앗! 하는 순간 말려들고. 어, 어?! 하다 순식간에 당한다!

지금 눈앞의 장철 헌터처럼!

“야! 잠깐만 시간 줘! 내가 설득할 테니까!”

“뭐?! 승부를 중지하라고! 백곰권 무한맹타는 결코 멈추지……!”

천문석은 낚아챈 줄자를 층 구석으로 던졌다.

“앗! 안 돼! 내 현철 줄자!”

타다다닷-

워커 실트는 기겁해서 달려갔고.

천문석은 바로 장철 헌터에게 외쳤다.

“장철 헌터님! 지금 무림 던전 열 때가 아니에요! 남일도 뉴스 속보 떴어요! 당장 튀어야……!”

다급히 외치던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혔다.

걸레짝이 된 작업복과 땀과 먼지로 엉망인 얼굴.

워커 실트의 맹공을 받아 낸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파르르 경련하고 있다.

장철 헌터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다.

그런데도 장철 헌터의 두 눈에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타오르고, 던전 수면에 닿은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이 분위기?’

이때 장철 헌터의 입이 열리고 힘겨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면.”

“수면이요?”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던전 수면에 비친 상이 보였다.

상판이 뚝 잘려 나간 다리.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강변.

강을 왕복해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커다란 유람선.

‘……이거?!’

끊긴 다리, 인파, 강변, 유람선.

당장이라도 외침이 들려올 것 같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

광화문 게이트가 열렸던 세기말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장철 헌터가 손을 뻗은 던전은 무림 던전이 아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된 세기말 대한민국.

장세린, 장철의 딸이 있는 던전이었다.

* * *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장철을 보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강철 같은 의지가 타오르는 눈?

아니다. 장철 헌터의 두 눈에 담긴 건 절박함이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창밖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몰아치는 생각들!

장철 헌터, 워커 실트.

남일도, 빛의 기둥, 무림 던전.

대환단, 한경석 가출 사건, 푸저우시.

……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지금.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천문(天問).

사문 대대로 이어지는 업을 담아 하늘에 던진 질문이 만들어 낸 필연!

마침내 하늘이 대답했고.

그 답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세린이 아빠, 장철 헌터 앞에 세린이가 있는 던전, 세기말 대한민국이 나타났다!

수많은 의문과 질문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하지만 장철 헌터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깨달았다.

“…….”

“…….”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행동이다!

“……!”

천문석은 장철 헌터에게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어느새 줄자를 주워 온 워커 실트를 봤다.

“설득 끝났냐? 빨리 나오라고 해! 시드 동시에 연결하려면 이제 움직여야 해!”

“미안하다.”

“뭐?”

워커 실트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강철봉을 겨눴다.

“진짜 미안하다!”

“…….”

짧은 침묵 후 워커 실트는 버럭 소리쳤다.

“와, 미친! 너 지금 그쪽에 붙겠다는 거야?!”

“진짜 미안하다! 여기엔 깊은 사정이 있다!!”

워커 실트는 뒷목을 잡았다.

“와, 와! 와!! 너한테 낚여서 그 개고생을 했는데! 뭐?! 미친! 좋다! 제대로 정정당당하게 다시 붙……! 어, 잠깐만?!”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몸이 멈칫했다.

워커 실트의 눈이 번뜩이고 사고가 가속됐다!

파파파팟-

머릿속에 섬광이 번뜩이고 가속된 사고 속에서 키워드가 몰아쳤다!

이세기, 사기꾼, 예측 불가, 미친 잔머리, 싸우면?

엉망진창 난장판, 개고생, 재앙의 화신, 검은 불운!

‘흑전!’

워커 실트는 번쩍 깨달았다.

자신은 예전의 워커 실트가 아니다.

하지만 절친이자 사기꾼 이세기는 자신의 사고 예측이 먹히지 않는 승부의 달인이다!

이대로 이세기와 싸우면 9할 9푼 9리의 확률로 양패구상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장난다!

시드가 이어지고 닫힌 세계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아니, 자신이 이겨도 문제다!

이세기 녀석에게 찰싹 붙은 검은 불운이 흘러나와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테니까!

‘최선의 선택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시드를 먹는 계획을 포기하고 원래 계획으로 돌아간다.

원래 계획!

이세기가 가진 차원 좌표.

하이브리온 군단장의 가보.

옐로스톤 마경의 초대형 게이트.

차원 좌표, 가보, 초대형 게이트!

셋을 이용해 기동 병참 도시로 가는 통로를 뚫는 것!

‘원래 계획으로 돌아가는 게 타당한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이건 기회다!

검은 재앙이 붙어 있는 이세기의 힘을 빌릴 기회!

이세기를 옐로스톤 마경에 둥지를 튼 제국 군단에게 데려가면!

“……!”

순간 전율이 전신을 흘렀다!

수십 대의 타이탄과 제국 기사!

맹약으로 이어진 마도사!

법의 집행자, 사법 기사!

하이브리온 군단장!

옐로스톤 마경의 제국 군단은 허신, 마신조차 갈아버린 강철의 폭풍 그 자체다!

하지만 이세기는 흑전의 주인이다!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의 업은 과거 현재 미래, 삼생을 관통해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조차 변화시킨다!

원인과 결과, 인과를 잇는 힘 업(業)!

업이 쌓여 찾아오는 운명은 신조차도 피할 수 없는 필연!

이세기와 제국 군단이 만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한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때 하이브리온 가문의 가보, 초대형 게이트, 이세기의 차원 좌표로 기동 병참 도시행 게이트를 열고 튀면 된다!

계획이 세워지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된다! 이건 반드시 먹힌다!’

가속된 사고 속에서 이 모든 계산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워커 실트 강철봉을 겨눈 이세기에게 말했다.

“좋아! 던전 시드 넘기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던전을 넘긴다고?!”

‘워커 실트 이 녀석이 이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닌데?!’

깜짝 놀란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조건 뭔데?! 혹시 돈 빌려 달라는 거면…….”

“야! 나 돈 엄청나게 많아! 조건은 돈이 아니라, 나랑 같이 한 가지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리고?”

“기동 병참 도시 차원 좌표! 너한테 있지? 그거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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