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4화>
촤아아아아-
치솟는 파도와 함께 오리배가 공중으로 도약해 항구에 내려섰다.
쿠우웅-
오리배 아래 고정된 미궁 악어 7호가 드러나는 순간, 케인 이사는 다급히 외쳤다.
“오너! 위장이 드러납니다!”
미궁 악어 7호를 위장하기 위해 등 위에 오리배까지 고정했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면 미궁 악어 7호 오너의 비장의 한 수가 드러난다!
“야! 지금 그게 문제 아나! 빨리! 엔진부터 냉각해! 바로 움직여야 한다!”
“네, 넷!”
케인 이사가 냉각수를 들고 움직이는 순간.
워커 실트는 오리배 밖으로 몸을 내밀고 주위를 살폈다.
도망치는 배와 몰려오는 배!
배로 뛰어드는 각성자와 배에서 쏟아지는 각성자!
배와 사람이 뒤엉켜 바다와 항구는 이미 개판인 상황!
섬 안쪽으로 쭉 뻗은 도로를 타고 총성과 괴성, 포효가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총성과 괴성의 목적지! 이 모든 혼란이 시작된 장소가 보였다.
남동쪽 고지대와 서쪽 암반 지대.
파문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빛의 기둥.
시드!
예상이 맞았다!
억울한 누명! ‘전능 옥좌 추락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찾아다녔던 시드가 나왔다!
“시드! 여기서 시드가 왜 나와?!”
게다가 하늘로 솟은 빛의 기둥은 하나가 아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빛의 기둥 두 개가 하늘로 솟아 있었다!
“두 개로 분화까지 했다고?!”
혼돈을 가르는 경계!
세계의 나무의 새순이자 가능성!
시드가 발아하고 던전이 열리고 있다!
간절한 바람과 대가를 치르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과거조차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던전’이 열리려 한다!
마굴, 천공탑의 금지, 대륙 전쟁, 특급 마경에 연결되면 지구는 끝장이다!
아니, 이차원이 아닌 지구의 과거로만 연결돼도 세계 자체에 엄청난 부하를 준다!
평범한 세계, 분기점 없이 직선을 쭉 뻗은 나뭇가지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점 이 세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기점의 존재로 수많은 가지가 원을 그리며 뒤엉킨 닫힌 세계!
이 닫힌 세계에 시드의 부하까지 가해지면 뒤엉킨 가지 전체, 세계 자체가 와르르 붕괴할 수도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시드 확인도 안 하고 차원 방벽을 뚫었어?! 도망친 허신의 추종자냐?! 으아아악-!”
워커 실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때 마력 엔진에 냉각수를 보충한 케인 이사가 반색한 얼굴로 외쳤다.
“엔진,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만 세워 두면 완전히 안정화……!”
1시간? 언제 시드가 연결될지 모른다!
마굴에 갇힌 허신, 마신, 용족. 아니, 평범한 초월종 하나만 튀어나와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참사가……!
‘어, 잠깐?! 대참사?!’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신이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
대한민국 하늘에 떠 있는 짭 전능 옥좌와 마도왕!
옐로스톤 초대형 게이트에 주둔 중인 제국 군단과 군단장!
초월종! 아니, 허신, 마신, 용족이 무더기로 튀어나와도 이 세계가 끝장날 일은 없다.
짭 전능 옥좌와 마도왕, 제국 군단과 군단장이 지구에 있었으니까!
아무리 짭이어도 전능 옥좌는 전능 옥좌!
마도 기관이 살아 있는 전능 옥좌를 가진 마도왕이라면 홀로 허신조차 압도한다!
제국 군단과 군단장은 강철의 폭풍으로 마신과 용족을 말 그대로 갈아 버릴 수 있다!
“설마 이거?!”
이 순간 워커 실트는 깨달았다.
이건 위기가 아닌 기회다!
‘차원 좌표, 에너지원, 통제 장치’ 없이도 ‘배’로 돌아갈 기회!
문제는 하나!
시드가 열리면 이 닫힌 세계에 엄청난 부하가 걸려 세계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문제의 해답은 이미 눈앞에 있었다!
“무림 던전이 열렸다!”
“대환단은 우리 길드가 먹는다!”
“왼쪽, 오른쪽! 어디가 무림 던전이지?!”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
“우선 오른쪽부터 확보한다!”
하나의 시드!
두 개의 빛의 기둥!
둘로 나뉘어 달려가는 각성자들!
하나의 시드가 두 개의 빛의 기둥으로 분화했다!
둘로 나뉜 빛의 기둥은 시드라는 천칭의 양쪽 저울!
한쪽이 열리면 다른 한쪽은 닫힌다!
역으로 말하면 한쪽이 닫히면 반대쪽은 열린다는 의미!
하나로 집중된 부하가 가해지면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 부하가 둘로 나뉘어 가해지면 버틸 수 있다!
100kg을 한번 드는 것보다, 50kg을 두 번 드는 게 쉬운 것과 같은 이치!
즉,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양쪽 입구를 동시에 여는 거다.
시드는 간절한 바람을 구현하는 던전.
마스터급 강자라도 동시에 양쪽 입구를 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은 워커 실트였다!
타이탄을 개발하고!
전능 옥좌를 날려 버리고!
고난 끝에 타이탄을 부활시키고!
스카라베 왕국의 살인적인 사채마저 모두 갚았다!
강철조차 닳아 사라질 수많은 사건·사고!
수천수만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낸 게 바로 자신이다!
‘할 수 있다!’
워커 실트는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공구 벨트에 걸린 기계를 케인 이사에게 던졌다.
“케인, 받아라! 통신기다!”
“네? 통신기요? 갑자기 이건 왜……?!”
“빛의 기둥에서 나오는 파문! 일종의 EMP 때문에 통신이 맛이 갔다! 저 빛의 기둥, 고정되지 않은 던전이다!
“네? 저게 던전이라고요?!”
자신도 모르게 빛의 기둥을 바라보는 케인 이사.
“그래! 던전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저 던전을 고정해야 한다!”
“네? 지금 둘이서 던전을 고정한다고요?!”
케인 이사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드는 순간.
워커 실트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쏟아 냈다.
“그래 너와 나 둘이서! 저 두 던전을 동시에 고정해야 한다!”
“어려울 건 하나도 없다! 내가 신호하는 순간 통신기 버튼만 누르면 된다!”
“저 빛의 기둥이 솟는 장소! 주위 10m 안에서 통신기 버튼만 누르면 던전이 고정된다!”
“…….”
케인 이사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던전 고정은 수십 명의 각성자가 정제 마석을 쏟아부어도 최소 몇 주, 최대 몇 달은 걸리는 일이다!
얼핏 봐도 남일도에 열린 던전은 보통 던전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빛의 기둥!
대기로 퍼져 나가는 소리와 진동, 파문!
얼핏 봐도 위험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던전이다!
‘그런 고등급 던전을 고정하는 게 통신기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고난도의 던전 고정 작업이 이렇게 쉽다면 던전을 닫는 건 더 간단하다는 이야기다!
헌터 업계! 아니, 세계 정치, 경제, 사회 전체를 통째로 뒤흔들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오너! 그게 어떻게 가능……?”
다급히 묻는 순간 버럭 돌아오는 외침.
“야! 보안!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워커 님! 혹시 던전을 닫는 것도 가능…….”
재빨리 호칭을 정정하고 묻는 순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포효가 터졌다.
크아아아앙-
“새꺄! 맹호출격 맞으래?! 급하다! 빨리 움직여! 달려! 당장 달려가라!”
“네, 넷!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케인 이사는 반사적으로 오리배에서 뛰어내려 서쪽 암반 지대를 향해 달렸다.
“발이 보이지? 새꺄! 더 빨리! 빨리빨리 뛰어!!”
워커 실트는 케인 이사를 향해 외치는 즉시, 오리배 아래 미궁 악어 7호에 손을 올렸다.
파지직-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프레임이 뒤틀리고, 곳곳에 파이고 깨진 미궁 악어 7호의 전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물에서 가속하는 것과 육지를 달리는 건 완전히 다르다! 바로 지금이 리미트를 해제할 때다!
워커 실트의 머릿속에서 고속연산이 시작되고 입에서 명령어가 튀어나왔다.
띠디디디딛띠딛디디띧디딛띧디-
스카라베 지하 왕국 언어의 원형, 기계어!
파직, 파지지직-
미궁 악어 7호의 전신에서 마력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손끝에 감각이 전해졌다!
철컥, 철컥, 철컥-!
리미트가 해제되는 감각이!
“동쪽 고지대! 빛의 기둥이 떨어지는 전파탑이 목표다!”
번쩍 손을 들어 가리키며 외치는 순간.
기이이잉, 쿵-
미궁 악어 7호는 오리배를 짊어진 채로 회전!
크아아아아앙-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내지르고!
쿵쿵, 쿵쿵쿵쿵-
남동쪽 고지대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워커 실트는 고지대에 솟은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광소를 터트렸다!
“시드가! 분화된 시드가 나타나다니?! 드디어 내가 운이 트이는구나! 카카카카캌-!”
차원 좌표 가진 친구를 찾기 위해 시작한 남중국행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세기를 쫓다가 대형 폭력 조직에 수배가 걸리고!
-장갑 버스 뒤로 몬스터 웨이브가 따라붙더니!
-갑자기 터진 섬광탄에 장갑 버스가 전복됐으며!
-바다의 재앙에게 걸려 공처럼 튕기다가!
-축소한 장갑 버스와 그 안의 금괴를 모두 날렸다!
여기에 화룡점정!
마침내 만난 천검 이세기는 자신의 절친 이세기가 아니었다!
불운, 불운!
그리고 또 불운!!
차원 좌표를 가진 절친 이세기, 전우 이세기, 사기꾼 이세기는 찾지 못한 채 황당한 사건·사고만 끝없이 이어졌다.
게다가 무림 던전이 나왔다는 섬에는 던전 시드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전화위복! 던전 시드는 둘로 분화했다!
둘로 분화한 던전 시드를 동시에 열면 마침내 닫힌 세계를 탈출해 ‘배’로 돌아갈 수 있다!
긴 고난의 끝에 마침내 행운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 행운에는 마지막 시련이 딸려 있었다!
하늘로 솟은 빛의 기둥에서 퍼져 나오는 파문!
이미 누군가 시드에 간절한 바람을 투영하고 있다!
하지만 워커 실트는 그 어떤 존재라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갈망, 간절한 바람?!
옛옛친구, 옛친구, 친구!
셋과 얽히며 겪은 온갖 사건·사고와 시련, 개고생들!
바위산이 자갈이 될 정도로 구르고 또 굴렀다!
그 결과 자신 안에 쌓인 깊은 빡침과 갈망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김밥 먹고 싶다고 온갖 미친 짓을 했던 돌철 녀석이 당장 나타나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워커 실트는 끓어오르는 희열을 담아 선언했다.
“이 던전 시드는 내가 통째로 먹는다! 비켜라! 비켜! 카카카카카캌-!”
쿵쿵, 쿵쿵쿠웅웅-
리미트가 해제된 미궁 악어 7호는 오리배와 워커 실트를 실은 채 남동쪽 고지대 전파탑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주호, 에코, 한경석.
-장철, 아리엘, 마혁진.
무림 던전과 세기말 대한민국!
던전을 열기 위해 경쟁 중인 두 그룹에 새로운 경쟁자가 끼어들었다!
워커 실트.
지구 최고의 마도 공학자이자 최악의 테러리스트. 그리고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였다.
* * *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둘로 나뉘어 빛의 기둥을 향해 달려간 직후.
부아아아아앙-
천문석과 일행을 태운 보트도 남일도 항구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빠져나오려는 배와 밀고 들어가려는 배가 뒤엉켜 바다는 이미 난장판!
“완전히 막혔어! 배로는 못 들어가!”
김태희 대령의 말대로 항구로 밀고 들어가다간 배가 아작 날 상황!
“잠깐만 확인 좀 해 보고!”
틱틱, 틱틱틱-
재빨리 번호를 누르고 스마트폰을 귓가에 댔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다!
“전화 되는 사람?!”
“안 됩니다! 연결되지 않습니다!”
“저 빛의 기둥이 전파를 교란하고 있어!”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도 마찬가지!
남일도 항구에서 대기 중인 마혁진뿐만 아니라 서울 백업팀도 연결되지 않는다!
천문석은 항구를 향해 내력을 실어 외쳤다.
[마혁진! 야, 마혁진 항구에 있냐?!]
외침과 동시에 항구로 기감을 뻗었으나, 마혁진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다와 육지에서 일어난 난장판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쿵쿵, 콰드드득-
바다에선 뒤엉킨 배가 충돌해 깨지고 박살 나고!
우와아아아악-
육지에선 각성자들이 환호성과 괴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달렸다!
모두가 달리는 목적지는 둘이다!
섬 남동쪽 고지대에 솟은 빛의 기둥!
섬 서쪽 암반 지대에 솟은 빛의 기둥!
빛의 기둥을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저 빛의 기둥이 남일도에 있다는 무림 던전이다. 당연히 한경석은 둘 중 한 곳에 있을 거다!
감이 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기고 계획이 세워졌다.
보트로 들어가는 건 여기까지!
무리하게 들어가면 유일한 탈출 수단이 부서진다!
인원을 셋으로 나눠야 한다.
보트를 지킬 사람.
빛의 기둥을 확인할 사람.
두 개의 빛의 기둥을 동시에 확인해 한경석을 픽업!
바다에서 대기 중인 보트를 타고 대만으로 튄다!
천문석은 계획이 완성되는 즉시 신호탄을 꺼내 파티마에게 던졌다.
“파티마, 신호탄이다! 뒤에 줄 당기면 하늘로 솟아오른다!”
“네? 신호탄이요? 이건 왜……?!”
파티마가 의아한 얼굴로 신호탄을 받는 순간 빠르게 계획을 설명했다.
“배로는 더 못 들어간다! 계획 변경이다!”
“서쪽과 남동쪽! 이곳 항구 앞바다까지 셋으로 인원을 나눈다!”
“바람검, 너랑 내가 섬으로 들어가고! 치와와, 넌 이곳 보트에서 대기한다!”
“타깃을 찾는 순간 신호탄 쏘아 올리고! 바로 항구로 돌아와 보트 타고 탈출하는 거다!”
누구나 한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계획!
하지만 김태희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야! 저 빛의 기둥 심상치 않아! EMP 마력장이 전파 교란하고 있어! 저런 던전은 들은 적도 없어! 너무 위험해!”
빛의 기둥이 심상치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전신에 찌릿한 전율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위험하고 심상치 않아도 반드시 가야 한다.
저 빛의 기둥 아래에 있는 건 암살검 한경석, 친구였으니까.
천문석은 김태희 대령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치와와. 날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