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1화>
촤아아아아-
새하얀 파도를 휘감고 남일도로 다가오는 무언가!
“저건 또 뭐야?!”
“저 물기둥?! 설마!?”
“항구로 돌진한다! 당장 배 빼!”
……
사방에서 외침이 쏟아지는 순간 한 장면이 주호의 머리를 스쳤다.
지난밤 긴급 대피 경보와 함께 나타난 거대한 물의 장벽!
“설마?!”
주호는 단숨에 항구를 달려 외벽을 타고 항만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탓, 타타탓-
같은 생각을 한 각성자들이 정신없이 옥상으로 뛰어 올라오는 순간 하늘로 치솟는 파도!
촤아아아아-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새하얀 물거품이 되어 쏟아질 때 누군가 외쳤다.
“바다의 재앙?!”
순간 비명 같은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바다의 재앙 용용이?!”
“그럴 리가! 여기 남중국해라고!”
“미친, 용용이가 여기서 왜 나와?!”
“푸저우! 어제 푸저우 마경에 용용이가 나타났었다!”
“미친 푸저우에서 이곳으로 이동했다고?!”
……
비명 같은 외침은 점점 커지고, 파도를 바라보는 모두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항공모함조차 반으로 부러뜨리는 바다의 재앙!
지금은 파도가 치솟는 정도지만, 수백 미터의 해일이 밀려오면?!
제방도 없고, 안정화 권역도 아닌 남일도는 단숨에 끝장난다!
그런 바다의 재앙이 항구로 돌진하고 있다!
쿵쿵, 쿵쿵쿵-
하선하던 선박들이 충돌하며 항구에서 빠져나가고!
항구에 대기 중이던 각성자들은 다급히 몸을 돌려 배로 뛰어들고, 고지대로 달렸다.
“장주님! 당장 피해야 합니다!”
심복의 다급한 외침!
주호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기다려라!”
어제 새벽 푸저우에 사이렌이 울렸을 때와는 다르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파도에서는 아무런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호는 끌어올린 내력을 눈에 담고 파도를 살폈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이때 정신없이 도망치는 헌터의 벨트에 걸린 망원경이 보였다!
소리 없이 망원경을 낚아채 단숨에 옥상 위 철탑으로 뛰어올라 망원경으로 파도를 살폈다.
기이이이잉-
헌터용 망원경의 초점이 자동으로 맞춰지고, 얼핏얼핏 파도를 이끌고 질주하는 물체의 정체가 보였다.
노란 몸통과 부리.
동글동글한 몸통을 지닌…….
“……오리배?”
바다의 재앙이 아니다!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놀이용 오리배가 파도를 휘감고 엄청난 속도로 항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
주호는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알아챘다.
강호에 무림인이 있다면 이 세계에는 각성자가 있다!
여섯 계통의 각성자!
지금 저 오리배처럼 파도를 휘감고 질주하는 모습을 만들 수 있는 각성자는…….
초능력 각성자다!
바다의 재앙이 아니라 초능력 각성자가 오리배를 타고 남일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허탈하기까지 한 결말!
“하- 미친놈! 됐다! 걱정할 거 없……!”
헛웃음과 함께 망원경을 내리려는 순간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질주하는 오리배 뒤따라 달리는 한 척의 보트!
“……!”
이 보트를 보는 순간 어째선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섰다.
그리고 초절정 무인의 직감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냈다!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망원경을 들어 보트를 봤다.
기이이잉-
헌터용 망원경의 배율이 쭉 올라가고 렌즈에 초점이 맞는 순간 보트 조종석이 보였다.
유리창 앞 담요를 둘둘 만 동물 둘.
그리고 조종석 핸들을 잡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빚쟁이라도 잡으러 가는 듯 다급한 표정.
설산 비무!
철검장의 반란!
수몰된 비밀 연무장!
알거지가 되어 도망치다가 아무 전조 없이 떨어진 이 세계까지!
이 모든 재앙과 난장판의 원인.
금권 대협 아니, 금권 개새끼가 나타났다!
* * *
“……야, 이 씹! 너도 여기 떨어졌구나!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여! 드디어!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
하하하하하하-
가슴속에서 치솟는 화산 같은 열기를 담아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
문득 머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소리로만 들었지만 생생한 장면!
‘됐고. 너 대환단 절대 주호에게 주지 마라…….’
금권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환단을 건넨 친구, 천검.
천검과 금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친구였다.
그냥 친구가 아닌 대환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넬 정도로 절친한 친구.
천검 이세기.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가 금권 대협의 절친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분노가 사라지고 한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금권 저 녀석, 남일도에는 왜 오지?’
당연히 대환단과 무림 던전 때문이다!
답이 나오는 순간 바로 떠오른 의문.
‘천검 이세기의 절친이 대환단을 먹으러 난장판에 직접 뛰어든다고?!’
말도 안 된다!
천검 이세기는 신의와 의리가 있는 대협!
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힘을 사용할 사람이다!
“설마?!”
번쩍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가능성!
‘저 녀석 지금 남중국의 천검이 자기 친구란 걸 모르는 건가?!’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천검은 흔한 별호!
이세기란 이름은 아는 사람만 알고, 그 얼굴과 출신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권이 천검을 만났다면 남일도에 올 리 없었다!
천검은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이자 대환단을 찾는 장본인이다!
그런 절대 권력자의 절친이 대환단 좀 얻겠다고 남일도의 난장판에 끼어들 리 없었다!
‘이거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서자로 태어나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가문까지 집어삼킨 주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금권을 천검에게 데려가면?!’
천검은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보답을 하리라!
눈이 번쩍 뜨이고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갔다.
내력이 실린 외침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문득 다른 계획이 떠올랐다!
금권은 부하를 붙여 추적하고 지금은 무림 던전과 대환단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설산 비무에서 시작된 상상을 초월한 난장판!
금권이 남일도에 도착하면 그 난장판이 재현된다!
저 녀석을 천검에게 데려가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남일도 무림 던전과 대환단을 확보하는 건 금권 녀석이 난장판을 만들기 전인 지금만 가능하다!
주호는 바로 고개를 돌려 남일도 안으로 뻗은 도로를 봤다.
부하들을 보냈고 각성자들이 정신없이 달려 도망치는 도로!
도로는 남동쪽 고산 지대와 서쪽 바위산으로 이어진다!
무림 던전은 분명 고산 지대와 바위산 둘 중 한 곳에 있다!
‘어디로 갈까?’
주호는 고심하는 순간 바로 결정하고 명령했다.
“1시 방향! 저 파도를 일으키는 오리배! 그 뒤를 따라오는 보트를 감시해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심복에게 망원경을 던지는 동시에 달렸다.
서쪽 바위산을 향해서!
팟, 파파파파팟-
순식간에 옥상을 가로질러 훌쩍 뛰어내리더니 서쪽 도로를 달려 사라지는 주호!
심복은 즉시 망원경으로 바다를 확인했고 곧 발견했다.
하얗게 치솟는 파도 사이로 얼핏 보이는 오리배! 그리고 이 오리배 한참 뒤에서 질주하는 보트!
바로 통신기를 잡고 항구와 페리선에서 대기 중인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1시 방향! 오리배를 따르는 보트를 주시해라! 이 보트를 끝까지 추적한다!”
철검장 정예 무사들의 시선이 오리배를 지나 보트에 꽂히고.
천문석은 철검장 정예 무사들의 타깃이 됐다.
이 순간 남일도와 그 주위 바다의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너! 남일도입니다! 속도를 줄이죠?!”
“아니! 이대로 섬 위까지 올라간다! 난장판이 된 항구! 뭔가 일어나고 있다!”
촤아아아아아-
미궁 악어 7호에 묶인 채 바다를 질주하는 오리배, 케인 이사와 워커 실트!
“됐다! 누군지 몰라도 저 오리배 덕분에 시간이 확 줄었다! 모두 준비해라! 항구에 닿는 즉시 움직인다!”
“네! 짐을 챙기겠습니다!”
“야! 저기 항구! 항구 봐봐! 저 난장판으로 지금 들어가자고?!”
부아아아앙-
오리배의 궤적을 따라 질주하는 보트, 천문석과 파티마, 김태희 대령!
[아직이야? 더 깨트려?!]
“더! 더 쏟아부어! 으아악-.”
“마력 농도가 한계치입니다! 마력 오염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콰직, 콰직-
액화 정제 마석을 깨트리는 한경석!
으아아아악-
악을 쓰며 던전에 간절한 바람을 쏟아붓는 장철 헌터!
안절부절못하는 장강 연구소 연구원들!
“이게 도대체?! 갑자기 왜 난장판이 된 거야?!”
현대정보컨설팅 그룹 임제원 실장이 항구에 도착했고!
“대환단! 무림 던전은 내 거다!”
철검장주 단혈철검 주호는 서쪽 바위산을 향해 날 듯이 숲을 달렸다!
남일도 사건에 얽힌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항구 건물에 걸린 시곗바늘이 90도 직각을 그렸다.
오후 3시, 약속된 15시 00분이 됐다.
가짜 무림 던전을 준비하던 에코와 아리엘이 움직였다.
“3시 정각입니다. 아리엘 님?”
“준비 끝났어! 바로 시작해!”
에코는 즉시 마력 회로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가짜 무림 던전을 뚫기 위한 마력 회로의 핵심.
차원 방벽 돌파, 포켓 차원 연결 마력 회로가 활성화됐다!
팟, 파파팟-
암반 위에 박힌 12+12개의 앵커, 24+24개의 마법 문자에 마력광이 생겨나고 적층 마력 회로가 단숨에 활성화됐다.
빠아아앙-
굉음과 함께 치솟은 빛이 허공을 찢어 버리고.
촤아아아-
찢어진 허공에서 쏟아진 마력이 물이 되어 마력 회로에 차올랐다.
암반 위에 그려진 적층 마력 회로가 물이 담긴 연못이 되는 순간.
아리엘은 마력을 움직였다.
“일으켜 세운다!”
연못의 물이 회전하는 동시에 역방향으로 회전하는 마력 회로!
기이이이잉-
물과 마력 회로의 회전은 점점 빨라졌고 어느 순간 수직으로 일어섰다!
빛과 물이 담긴 원반, 적층 마력 회로는 수직으로 일어선 채로 빠르게 회전했다!
“바로 안정화한다!”
콰직, 쾨지직-
외침과 동시에 정제 마석을 깨트리고, 회전하는 적층 마력 회로로 성큼 다가가는 아리엘.
에코는 이 모습을 바라보며 준비를 시작했다.
아리엘 님이 입구를 안정화하면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단계뿐!
세계의 파편, 포켓 차원과 이 빛의 원반, 던전 입구를 연결하면 의뢰는 끝!
가짜 무림 던전이 완성된다.
던전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세계의 파편으로 이뤄진 포켓 차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으나 닫힌 세계.
이 닫힌 세계를 헤매다가 마력이 떨어지는 순간 들어간 곳, 바로 이곳을 튀어나오게 된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완벽하게 안전한 가짜 던전이 완성되는 거다!
‘이번 의뢰도 끝났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아리엘의 외침이 들려왔다.
“됐다! 입구 잡았어! 포켓 차원 연결해!”
“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에코의 손이 품 안을 훑는 순간 사슬이 풀린 회중시계가 튀어나왔다.
차르르륵-
사슬이 빙글빙글 손에 감기고 회중시계가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 뚜껑이 열리고.
찰칵-
에코는 멈춰있는 시간 오류 수정자의 시계 용두를 눌렀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초침!
찰칵, 찰칵-
에코는 연신 용두를 눌러 차원 방벽의 틈을 탐색했다.
“……!”
그리고 문득 무언가 걸리는 순간.
콰직-
정제 마석을 깨트리고 휙- 시간 오류 수정자의 시계로 허공을 그었다.
이 순간 수직으로 일어선 채 회전하던 빛의 원반 적층 마력 회로가 멈추고.
엄청난 마력이 담긴 빛이 파도가 쏟아져 나왔다.
빛의 파도는 용트림하는 거대한 격류가 되어 남일도 남동쪽으로 뻗어 나갔다!
구우우우우웅-
빛의 격류에서 뿜어져 나온 파문에 하늘이 무너질 듯 요동치고 땅이 꺼질 듯이 진동했다!
느낌만이 아니다!
진짜로 세계가 요동치고 차원 방벽이 흔들리고 있다!
아리엘! 27개의 마탑을 먹어 마도 전쟁 승리 직전까지 갔던 마도왕 무겐다흐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에코 이 녀석 뭐야?!’
가짜 던전을 뚫는 것뿐인데!
이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 유동이라니!
대마법을 발동한 듯한 빛의 격류와 파문이 퍼져 나가고 있다!
“……!”
아리엘은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빛의 격류를 바라보다 번쩍 깨달았다!
설마, 의뢰인이 화려하게 열어 달래서 이렇게 한 건가?!
‘와, 에코 이 미친 녀석! 화려하게 해 달라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빛의 격류에서 쏟아지는 마력은 진짜다!
자신이 생각날 때마다 쥐어박고 구박한 에코는 예전의 에코가 아니었다!
빛을 잃지 않은 마탑!
무한한 마력의 원천, 마력장 지대와 연결된 마탑을 소유한 마도왕 급의 힘을 보여 줬다!
이게 시간 오류 수정자의 힘?!
‘잠깐! 이 정도 힘이면 워커 실트?! 그 최악의 테러리스트도 날려 버릴 수 있는 거 아냐?!’
아리엘은 문득 든 생각에 잽싸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탄성부터 터트렸다.
“와! 에코 너 엄청나구나?! 야, 그래도 너무 화려한 거 아니냐? 육지에서도 보이겠는데? 하하하하-.”
아리엘은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툭- 에코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나 에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왜 대답이 없어? 혹시 아까 쥐어박아서 그래? 내가 사실 악의가 있던 건…….”
길게 변명을 늘어놓을 때 휙- 몸을 돌리는 에코.
“……!”
에코의 잔뜩 굳은 얼굴을 보는 순간.
아리엘은 잽싸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미안! 앞으로는 절대! 안 쥐어박을…….”
그러나 아리엘의 사과는 얼빠진 목소리에 끊겼다.
“……저거 왜 저러죠?”
“……어?”
번쩍 든 고개에 보이는 손.
에코의 손은 남동쪽으로 천천히 뻗어 나가는 빛의 격류를 가리키고 있었다.
“…….”
짧은 침묵 후 아리엘은 물었다.
“저거 네가 한 거 아니었어?”
“……네?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