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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30화 (1,03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0화>

“…….”

장철은 홀린 듯이 바위로 다가갔다.

“아직 고정이 안 됐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엇! 특급 헌터 삼촌?!]

……

장철은 쏟아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일렁이는 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발 한발 다가갔다.

“잡아! 가까이 못 가게 막아!”

“으아아악-.”

연구원들이 악을 쓰며 몸을 붙잡고 늘어졌지만, 장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쿵, 쿵, 쿵-

장철은 연구원들을 매단 채로 곰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바로 앞 빛무리가 일렁이는 바위에 손을 뻗는 순간!

번쩍-

은빛 섬광과 함께 외침이 들려왔다.

[정신 차려!]

대인전 랭커 암살검 한경석의 단검!

깡깡, 까가가강-

강철과 강철이 충돌하는 굉음이 터지고 허공에서 불꽃이 우수수- 쏟아졌다.

손을 타고 전신에 전해지는 엄청난 반발력!

경악한 한경석이 반사적으로 각성력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휘청- 발밑이 사라진 듯 몸이 기울어졌다!

피핏-

반사적으로 점멸하는 동시에 엄청난 흡입력이 몸을 끌어당겼다!

흐릿해지는 몸이 진공청소기에 끌려가는 먼지처럼 허공에 떠오른 순간.

하앗-

폭탄이 터진 듯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한경석과 연구원들이 사방으로 나뒹굴고.

까아앙-

각성력이 담긴 단검이 반 토막 나 날아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검과 충돌한 물체의 정체가 보였다.

맨주먹.

[……!]

한경석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맨주먹으로 자신의 강화 강철 단검을 꺾어 버렸다!

강철 해머!

서울 수복 작전! 수십만의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바글거리는 서울에 진입로를 뚫은 1세대 헌터, 강철 해머다!

특급 헌터 삼촌이 바로 강철 해머였다!

이 순간 장철의 손이 빛이 일렁이는 바위에 닿았다.

툭-

찰나의 순간 일렁임은 사라지고 빛나는 수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겨울 호수처럼 잔물결 하나 없이 거울처럼 깨끗한 수면.

하지만 한가지, 수면과 다른 게 있었다.

거울처럼 깨끗한 수면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아직 고정이 안 됐습니다!”

“마력, 각성력, 전기 자극! 어떤 힘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던전과는 다릅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사방으로 나뒹군 연구원들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장철의 머릿속에선 오래전 박혁 이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던전을 찾으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실제 검증한 게 아닌 이론이란 걸 고려하고 들어.’

‘다른 던전과 같은 방법으로 열 수 없을 거다. 우선 껍질을 깨고 다음으로는 심상을 투영해야 한다.’

‘어떻게 심상을 투영하냐면…….’

‘마력 각성자들이 마력을 익히는 기본적인 원리와 같다.’

‘우선 네가 찾은 그 던전을 일종의 거울이라고 생각해라.’

‘몸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마음, 심상을 비추는 거울이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에 심상을 비추는 건,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마력으로 마법을 구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걸 위해 필요한 건…….’

“간절히 바라는 것.”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없이 바라고 다시 바랐다.

2000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단 한 순간도 이 바람을 멈춘 적이 없었다.

장철은 수없이 생각하고 바라 왔던 마음을 담아 불렀다.

‘내 딸 세린이.’

순간 아무것도 비치지 않던 수면에 흐릿한 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던전이 고정된다!”

“이게 무슨?! 어떻게?!”

“잠깐! 계측기! 계측기가 필요합니다!”

연구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일 때.

장철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고 또 불렀다.

흐릿한 상이 점점 또렷하게 초점이 맞아 가기 시작했다.

현수막이 걸린 봉쇄된 도로.

봉쇄된 도로 좌우로 쭉 뻗은 도로.

도로 좌우에 줄줄이 늘어선 거대한 빌딩들, 빌딩 아래 인도를 바쁘게 걷는 두꺼운 옷의 사람들.

……

흐릿한 상은 점점 또렷해지고 곧 현수막의 내용이 선명해졌다.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그리고 이 현수막 너머 콘크리트 위에 세워진 2층 누각이 보였다.

[광화문]

“……어?”

“……설마?!”

“게이트가 왜 없지……?!”

[……!?!]

모두가 넋을 놓고 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고요한 수면이 불어오는 바람이 흐트러지듯 선명하게 초점이 맞은 상이 일그러졌다.

‘껍질을 깨고 상을 고정해야 한다!’

“정제 마석! 당장 정제 마석이 필요하다!”

장철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넋을 놨던 연구원들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정제 마석! 모조리 가져와!”

“계측기! 캠! 바로 기록해야 한다!”

“대표님이 가져오신 추적기도 필요합니다!”

……

정신없이 움직이는 연구원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몰아치고 있었다.

멀쩡한 광화문.

사라진 광화문 게이트.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지금 던전이 비추는 상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 대한민국이다!

*   *   *

남일도 서쪽 산속 암반 위.

에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뭔가 수치가 좀 이상한데…… 아리엘 님! 차원압 이상하지 않나요? 방금 요동친 것 같은데?”

암반 반대쪽 앵커를 박아 넣던 아리엘은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했다.

“누가 간절한 바람을 시드에 투영하나 보지?”

“아니, 아까 한참 이야기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씨앗에서 싹이 자라나려면 단단한 껍질을 깨야죠!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껍질이 깨지지 않으면 시드는 발아하지 못한다니까!”

발끈한 에코가 외치는 순간.

아리엘은 피식 웃으며 시계를 보고 툭 던지듯이 대답했다.

“10분 후에 우리가 차원 방벽 뚫고, 가짜 던전을 열면 껍질은 깨진 거잖아?”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지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리엘 님의 말이 맞았다.

가짜 던전을 열기 위해 차원 방벽을 뚫는 건 ‘시드’를 감싼 껍질을 깨는 것과 같다.

그 순간 모든 조건을 맞춘 누군가 심상을 투영하면 시드는 발아한다.

‘이 섬에 시드가 있다면 말이다!’

에코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모든 조건이 맞는다면 말이다.’

시드가 발아하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도 아닌 수많은 우연이 겹쳐야 한다.

이 섬에 시드가 있을 것.

시드에 강렬한 심상을 투영할 사람이 있을 것.

그 심상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력과 에너지원이 준비됐을 것.

심상을 고정하고 시드를 발아시켜, 원하는 가능성을 향해서 가지를 뻗게 할 것.

……

하나하나가 일어날 확률은 반이라고 해도, 이 모든 우연이 겹쳐 일어날 확률은 곱 연산으로 길게 이어진다.

1/2 x 1/2 x 1/2 x 1/2 x 1/2…….

1보다 작은 확률이 겹쳐지면 한없이 0에 가까워지듯, 이 모든 우연이 겹쳐 일어날 확률은 극도로 낮았다.

‘걱정은 이제 그만!’

14시 51분!

가짜 무림 던전을 열기 9분 전이다!

“아리엘 님! 시작하죠!”

“잠깐만! 앵커 하나 남았어!”

쿠웅-

암반에 마지막 마력 유도 앵커가 박혀 들어갔다.

“됐다! 이제 시작하자!”

아리엘과 에코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선체 마력을 움직였다.

기사가 밖에서 안으로 침잠한다면.

마법사는 안에서 밖으로 뻗어 나간다.

심상 공간에 만들어 낸 상(象)을 혼백, 영육, 세계를 잇는 마력에 투영한다!

콰직, 콰지직-

액화 정제 마석 앰플이 깨지고, 뇌가 녹아내릴 듯한 초고순도의 마력이 확 퍼져 나왔다!

이 순간 아리엘과 에코는 마력을 움직였다.

팟, 팟, 팟-

암반에 박아넣은 24개의 앵커가 불이 켜지는 등처럼 마력광을 뿜어내고.

파스스스슥-

앵커에서 시작된 선이 암반 위에 그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원이다.

24개의 앵커가 그려내는 원 안에, 48글자의 마력 문자가 새겨지고.

겹겹이 이어지는 동심원 안에 적층 마력 회로가 그려졌다.

차원 방벽 돌파와 포켓 차원 연결!

이 둘이 가짜 무림 던전을 열기 위한 핵심 마력 회로였다!

콰지직-

아리엘은 액화 정제 마석을 연신 깨트리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 진짜 시드 있는 거 아냐? 뭐 이렇게 더뎌?!”

“아까 말했잖아요. 차원압이 요동쳐서 그래요. 그래도 정제 마석 순도가 높아서 시간은 맞추겠네요.”

콰직-

에코는 액화 정제 마석을 암반에 던지며 대답했다.

에코와 아리엘이 밟고 선 남일도 서쪽 암반 위에 가짜 무림 던전을 만들기 위한 마력 회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남일도 남동쪽 건물 안에서는 시드, 고정되지 않은 던전에 장철 헌터가 심상을 투영하고, 연구원들과 한경석은 정제 마석을 깨뜨려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남일도의 서쪽과 남동쪽!

에코와 아리엘.

장철과 한경석, 연구원.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때 마혁진은 마일도 남동쪽 산으로 이동했고.

철검장주 주호는 심각한 얼굴로 중앙 항구를 보고 있었다.

*   *   *

“각성자들이 많군.”

주호의 뜬금없는 말에 심복이 바로 대답했다.

“명령만 내리시면, 각성자들을 밀어내고 항구를 장악하겠습니다.”

주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항구를 장악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항구 너머 바다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수많은 배들!

저 배 안에 누가 타고 있을지 모른다!

자잘한 헌터들이 아닌 대형 길드, 대기업 혹은 헌터 군벌의 정예 무사들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푸저우 뒷골목에 은밀하게 퍼지는 정보를 얻은 즉시 대형 페리선으로 남일도까지 왔다.

원래라면 적어도 2일의 여유는 있었을 거다!

하지만 갑자기 방송에서 긴급 속보를 때리며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2, 3일의 시간 여유는 날아가 버렸고, 생각보다 많은 각성자들과 유력자들이 더 빠르게 더 많이 모여들고 있다!

항구에 가득한 각성자, 바다를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배! 이 모두가 경쟁자다!

하지만 주호는 자신이 있었다.

남일도에 이 섬에서 무림 던전을 찾는다고 끝이 아니다.

1. 무림 던전에 들어가.

2. 대환단을 가지고 돌아와.

3. 남일도를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건 2번! 대환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

대환단은 무림의 무가지보!

당연히 무림 던전에 들어간다고 대환단이 굴러다니는 건 아니다.

무림에서 대환단을 얻을 수 있는 장소는 단 한 곳뿐!

소림사(少林寺).

그리고 용담호혈(龍潭虎穴) 그 자체인 소림사에서 대환단을 빼낼 수 있는 건 자신이 유일하다!

장기 계획은 무림 던전 자체를 먹는 것!

하지만 그걸 위해선 대환단을 확보해 천검 이세기를 만나야 한다!

주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명령했다.

“페리선은 항구 끝에 붙이고, 신호가 올 때까지 대기한다!”

“2인 1조! 10개 조로 나눠 섬을 동서로 수색한다!”

“남은 인원은 최대한 마찰을 피한 채 페리선에서 대기한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던전 입구를 발견하는 즉시 신호탄부터 쏘아 올린다!”

철검장의 정예 무사들이 남일도의 동서와 페리선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홀로 항구에 남은 주호는 천천히 내력을 끌어올리고 마음속에 검을 세웠다.

“……!”

이 순간 초절정,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인경에 오른 무인의 직감이 움직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전신에 전율이 흐른다!

주호의 섬뜩한 안광이 좌우로 갈라진 도로를 훑었다.

왼쪽. 섬 남동쪽 고지대로 이어지는 도로!

오른쪽. 섬 서쪽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도로에 시선을 두는 순간 바로 촉이 왔다!

지금의 고요는 태풍 전야!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솟구쳐 대기를 비트는 열기가 느껴진다!

섬의 남동쪽 고지대, 서쪽 바위산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장소는 둘!

몸은 하나!

하지만 문제는 없다.

철검장의 정예 무사들을 보냈으니까!

신호탄이 터지는 승부의 순간 폭풍처럼 몰아친다!

힐끗 시선을 둔 항구에 걸린 시계는 14시 55분!

‘아직 시간은 많았다!’

주호는 마음에 세운 검을 벼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달래고, 내력과 기세를 가다듬으며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엇- 저거 뭐야?!”

촉이 왔던 고지대도 바위산도 아니다!

“……!”

반사적으로 외침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바다!

그리고 하늘로 치솟는 새하얀 파도!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러 남일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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