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22화>
할짝할짝할짝-!
정신없이 천강흔을 핥은 지 한참.
퐁퐁이의 몸은 어느새 투명한 영체로 변해 있었다.
퐁퐁이의 본질은 허무의 바다를 유영하는 하늘 고래.
모든 종류의 힘을 삼켜 념의 안개를 뿜어내는 영수(靈獸)였다.
천강흔의 기운을 핥은 퐁퐁이는 념의 안개를 뿜어냈고.
이 념의 안개는 중력에 끌리듯 용용이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트인 사무실을 유영하는 물로 이뤄진 물고기, 해파리, 오징어, 가오리들에 빛이 담기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천강흔의 빛은 퐁퐁이와 용용이를 거치며 변화했다.
눈을 돌릴 수 없는 찬란한 빛, 서기로!
죽은 듯이 잠든 천문석 주위에서 서기가 담긴 물고기가 빙글빙글 유영하고 해파리가 나풀나풀 춤을 췄다.
“…….”
“…….”
“…….”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꽁꽁 묶인 철검장 조직원들이 멍하니 바라볼 때.
퐁퐁이와 용용이는 신나는 얼굴로 할짝, 할짝- 쉴 새 없이 혀를 움직였다.
만장 빙하도 한 줄기 여울에 깨지듯이.
천마신공의 극에 달하고 다시 그 극을 넘어선 흔적.
천강흔(天罡痕)의 단단한 껍질은 사탕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녹아내렸고.
허공을 유영하는 수천의 물고기에 담기는 서기는 점점 짙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찬란한 서기로 빛나는 작은 물고기 하나가 빙글빙글 유영하다가 톡- 천문석의 몸에 닿았다.
순간 물고기에 담긴 찬란한 서기는 천문석의 몸을 타고 흘러, 간이침대 머리맡에 놓인 잡낭으로 스며들더니 그 안에 콕 박힌 검은 동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시작이었다.
한계 이상의 빛이 담긴 물고기, 가오리, 해파리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처럼 휘적휘적 날아와 잡낭 안 흑전으로 흡수됐다.
그러나 모든 빛이 흑전으로 흡수되는 건 아니었다.
큰비가 내리면 우산을 써도 몸이 젖듯이.
톡, 톡, 톡-
천문석, 파티마, 김태희 대령의 몸으로도 빛이 하나둘 스며들었다.
그리고 깊게 잠든 세 사람의 몸도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
“…….”
“…….”
철검장 조직원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
그래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슬금슬금 다가가던 위성 전화기가 몇 번이나 반짝이다가 꺼졌다는 것을.
* * *
“여전히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대기 중인 녀석들을 보내 볼까요?”
주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점은 드러나면 안 된다. 좀 더 기다려 보자.”
“네. 계속 연락해 보겠습니다.”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이고 물러서는 비서.
주호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소파 수십 개가 놓인 거대한 응접실.
그리고 이 거대한 응접실이 좁아 보일 정도로 바글거리는 사람들.
이 사람들 모두가 장웨이 사령관과의 면담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문득 응접실 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통유리 너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시가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저택.
이곳은 바로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의 저택.
자신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12시간 넘게 대기 중인 장소였다.
이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장웨이 사령관의 비서가 나왔다.
응접실에 자리한 수백 명의 간절한 시선이 모이는 순간 비서의 입이 열렸다.
“천화그룹 총서기님?”
“여기 있습니다!”
장년인이 다급히 일어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뛰듯이 달려갔다.
순간 응접실에 남은 이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주호의 가슴속에서도 짙은 실망감이 피어올랐다.
어젯밤 장웨이 사령관이 도착하기도 전부터 지금까지 12시간이 넘게 대기 중인데 여전히 자신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문득 창밖 정원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짝 긴장한 채로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응접실에 있는 사람들처럼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 청탁을 하기 위해 온 유력자들이었다.
응접실에서 대기 중인 인원은 점점 늘어가는데.
언제 장웨이 사령관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황.
예상과 다른 현실에 절로 탄식이 터졌다.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장웨이 사령관.
남중국 권력의 정점, 헌터 군벌 수장!
그러나 장웨이가 푸젠 군벌 수장이 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천검이 푸젠 군벌 수장 리웨이 상장을 날려 버리고 내전이 터졌을 때.
해안부대 지휘관인 장웨이에게 천검에게 줄을 대라고 조언한 게 자신이었다.
천검은 내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그 덕에 장웨이는 100명도 안 되는 부하를 거느리던 해안부대 지휘관에서 푸젠 군벌 수장으로 벼락출세했다.
그 인연으로 장웨이 사령관과 만나 천검이 여는 파티에 참석하려 했다.
그런데 쉽게 만나리라 생각한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장웨이 사령관은 아직 푸젠 군벌 내부 계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는데도 지금 응접실에 대기 중인 유력자만 50명이 넘었다.
시세와 기류에 민감한 기업인, 헌터 업계의 거물, 유력 가문의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유력자들은 장웨이 사령관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 때문에 모인 것이다.
천검 이세기!
파티와 회의를 여는 장소가 이곳 푸저우라는 게 장웨이 사령관의 입지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지금 이곳의 유력자들은 어떻게든 파티에 참석해 남중국의 새로운 절대 권력자, 천검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은 줄줄이 면담 순서가 뒤로 밀려나 언제 장웨이 사령관을 만날지 기약이 없다!
게다가 NTM_CHS와 대환단을 추적한 ‘마혁진과 칠성파’ 녀석들은 어제부터 연락 두절!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고자 은밀히 준비한 ‘비밀 거점’과의 통신도 몇 시간 전부터 끊겼다!
승승장구하던 지난날과 달리 푸저우에 오고부터 모든 것이 꼬이고 있었다.
하아-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화입마를 입은 채로 떨어진 이세계.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세계에서 새롭게 철검장 세우고 무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힘과 재력, 세력을 손에 넣었다!
주호는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하늘을 뚫을 듯한 마천루와 생각지도 못한 기물들!
내상을 치료하고 심마를 다스리며 경지가 올랐고!
신 철검장을 세워 상해 삼합회를 집어삼켜 커다란 기반까지 만들었다!
기세가 오르고 부하들의 사기가 끓어올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은 폭풍처럼 몰아칠 때!
하지만 격랑이 몰려오고 있다!
남중국 연방 의회 총선과 연방 총통이 될 천검, 이세기라는 격랑이!
주호는 서자로 태어나 적자를 제치고 철검장을 이어받아 사자련에서 고위직까지 올라간 인물.
일반적인 무림 고수와 달리 몰아칠 때와 숙일 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은 남중국 권력 구도에 대격변이 일어나는 연방 의회 선거 한 달 전!
헌터 군벌 모두가 바짝 긴장해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럴 때 잘못 움직였다가 걸리면 박살이 난다.
지금은 납작 엎드릴 때였다.
3년만 내실을 다지면 더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이를 갈고 있는 삼합회다!
천검 이세기를 딱 한 번만 만나면 삼합회는 간단히 해결된다.
자신과 천검 이세기는 무림에서 이 세계로 같이 떨어진 이방인!
천검 이세기라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자신을 모른 체할 리 없었다.
아무리 백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삼합회라고 한들 남중국 연방 총통, 절대 권력자가 된 천검을 거스르지는 못 한다.
그런데 천검은커녕 그전 관문인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기도 너무나 힘들었다.
‘혹시 줄을 댈 다른 사람은 없나?’
순간 천검과의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람이 생각났다.
자칭 금권 대협.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고 금권 대협과 얽혔던 사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황당한 설산 비무에서 개같이 굴러 내상을 입어 심마에 빠지고, 조카의 반란으로 철검장까지 잃었다. 그리고 수레에 짐짝처럼 실려 도망치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 세계에 떨어졌다.
“…….”
이 모든 게 금권 대협 그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재앙의 화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돌이키면 금권 그놈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신 철검장을 세우고 천검 이세기와 인연을 맺게 됐으니까.
그리고 지금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다시 금권을 만나기만 한다면 바로 천검과 만날 수 있었다.
금권 대협은 천검 이세기의 절친한 친구니까.
‘혹시 금권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는 순간.
집무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한 사람을 안으로 불러 들렸다.
이번에도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갔다. 면담 순서가 줄줄이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기약 없이 계속 기다려야 하나?’
주호가 내심 갈등할 때, 계단 방향 문이 열리고 응접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피로한 인상의 30대 서양인 남자가 성큼성큼 응접실을 가로질렀다.
응접실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남자에게 모였다.
남자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직선으로 응접실을 가로질러 문에 다가섰다.
응접실에서 대기 중이던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생겨날 때 집무실 문이 다급히 열리고 비서가 튀어나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케인 이사님 오셨습니까! 사령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남자가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깊은 탄식이 사방에서 새어 나왔다.
“하아- 젠장!”
“벌써 4시간인데…….”
“4시간? 하! 난 7시간째 대기 중이다.”
……
탄식하는 사람 중에는 주호도 있었다.
이때 스마트폰을 붙들고 잇던 비서가 다급히 다가왔다.
“장주님. 꼭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이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대환단이 있는 던전이 나타났습니다.”
“……!”
대환단이 있는 던전이라면 하나뿐이다.
자신과 천검 이세기가 온 무림으로 연결되는 던전!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비서의 입에서 예상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무림 던전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무림 던전!’
반사적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제 가짜 대환단 사건처럼 이 무림 던전도 가짜라면?’
비서는 스마트폰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무림 던전이 있는 장소가 알려졌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지도 위 섬.
남일도(南日島)!
푸저우 남쪽 푸텐 앞바다의 섬이다.
지금 당장 움직이면 오늘 안에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확인하지? 칠성파 녀석들? 부하들을 보네? 아니면 내가 직접 움직일까?!’
빠르게 머리를 굴릴 때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조용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보였다.
어느새 목소리가 사라지고 조용하게 변한 응접실. 소파에 앉고 벽에 기댄 유력자들의 귓가에 수행원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곧 몇몇 유력자들이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켜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이건 진짜다!’
직감하는 순간 주호는 바로 저택에서 나와 차를 타고 출발했다.
진짜 대환단을 얻을 수 있는 던전이 나타났다.
무림 던전!
무림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제 일어난 가짜 대환단 사건으로 진짜 대환단의 가치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바로 내일, 대환단을 원하는 천검이 푸저우에 모습을 드러낸다!
곧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무림 던전에 모일 거다!
대환단이 소림사에 있다는 건 상식이었으니까!
그러나 무림 던전 소림사에서 대환단을 꺼내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무림의 신투조차 실패한 대환단을 빼내는 데 성공한 유일한 사람!
초절정 무인이자 사자련 청해성 지부장!
단혈철검 주호, 자신만이 무림 던전에서 대환단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짜 대환단을 손에 넣는 순간 바로 천검 이세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럼 삼합회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아니지!’
순간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무림 던전에는 대환단만 있는 게 아니다!
사파의 하늘 사자련에서 자잘한 흑도방파까지 자신과 끈이 닿은 수 없이 많은 세력이 있다!
무림 던전만 확보하면 영약과 비급, 무사들을 무제한으로 수급할 수 있다!
철검장을 제2의 사자련으로 만들 수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야망이 끓어오르는 순간.
주호는 맹세했다.
‘남일도의 무림 던전! 내가 먹는다!’
이때 조수석에 앉은 비서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장주님. 우선 비밀 거점으로 이동할까요?”
주호는 즉시 명령했다.
“아니, 한시가 급하다! 비밀 거점은 칠성파에 맡긴다. 대기 중인 인력 전원 완전무장하고 항구로 이동해 배를 확보한다! 바로 남일도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