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21화>
민장강 하류로 내려가는 유람선 갑판.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밀려온 각성자 무리에 휩쓸린 어제, 신동대문 때처럼 정신없이 몰아치는 불운이 시작된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기우일 뿐이었다.
카지노, 불꽃놀이, 호텔 식당까지 타깃의 흔적을 쫓는 건 순조롭게 이어졌다.
지난밤 갑자기 울린 긴급 대피 경보와 돌연 나타난 거대한 물의 장벽에 식겁했지만, 경보는 어느새 해제된 상황.
마혁진은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 타깃의 흔적을 쫓기 위해 유람선을 탔다.
아침 햇살은 따듯하고 강바람은 선선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이 기분!
그런데 이 좋은 기분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힐끗-
마혁진은 갑판 구석으로 시선을 보냈다.
정장을 입은 남자와 화려한 관광객 복장의 남녀 둘.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갑판 곳곳에 보이는 관광객들과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습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 녀석들뿐만이 아니다!
힐끗-
갑판 한쪽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들.
작업복 바지에 가죽 재킷을 걸친 곰 같은 체형의 남자가 콜라에 땅콩을 씹고 있었다.
어제 카지노 입구에서 스쳤던 남자!
그때는 마음이 급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게 지금은 느껴졌다.
낯익음!
자신은 분명 어딘가에서 저 남자를 만났었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만났던 사람은 대부분 악연!
혹시 모를 뒤통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저 남자가 누군지 기억해 내야 했다!
‘누구지? 어디서 만났었지?!’
‘이태성 친구였던 PC방 죽돌이!?’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그러나 바로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몇 번 이태성과 얽히며 만났던 그 녀석은 배우 같은 외모였다.
지금 땅콩을 먹고 있는 남자와는 얼굴과 체형이 완전히 달랐다!
‘저 녀석, 도대체 누구야?!’
마혁진은 곰 같은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억을 쥐어 짜냈다.
염동력과 순간이동 능력.
초능력 계통 각성자의 예리한 촉이 움직였다.
저 곰 같은 남자와 무언가 크게 얽힐 것 같다는 촉이!
이때 집중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남중국해로 빠져나갑니다. 푸젠성 문화 탐방에 참가하신 관광객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흔적을 추적 중인 타깃이 이용한 관광 프로그램 가이드!
마혁진은 바로 시선을 돌려 투어 가이드를 주시했고 곧 투어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됐다.
“어제 일어난 대피 경보로 여행 일정이 변경됐습니다.”
“안전 문제로 민장강 하류를 따라 내려가며 예정된 일정은 모두 취소됐습니다.”
“이제 곧 남중국해로 빠져나가 푸텐, 취안저우, 샤먼 대도시를 거쳐 대만으로 갈 예정입니다.”
단체 관광객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그럼 다음에 정박하는 항구가 어딘가요?”
“유람선은 푸텐 앞바다의 섬, 남일도에 잠시 정박했다가 푸텐으로 바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점심은 푸텐에서 먹게 될 거예요.”
마혁진의 머릿속 지도에 동선이 그려졌다.
남중국해로 빠져나가 남일도를 거쳐 푸텐((浦田)으로 직항한다. 즉, 중간 일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타깃이 남일도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샜다면, 지금까지 추적한 건 모두 허사가 된다!
자칫 지금까지의 추적이 허사가 될 수도 있는 상황.
‘투어 가이드는 타깃의 동선을 알고 있다. 단둘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면?’
생각과 동시가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어제 종일 조사한 결과 타깃의 흔적, 동선, 이 투어 프로그램까지 모든 것에서 촉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느꼈다.
혹시라도 잘못 건드려 타깃이 잠적하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이 정보를 백업 팀에 전달하고 지시에 따르는 거다.
마혁진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갱신된 정보를 백업 팀에 문자로 보냈다.
[타깃이 탔던 유람선 투어 프로그램 일정 변경.]
[남일도(南日島)를 거쳐 점심 무렵 푸텐 도착 예정.]
마혁진이 보낸 문자는 백업 팀, 서울 김철수 사무실의 최설에게 전해졌고.
최설은 바로 천문석 부사장에게 위치 링크가 포함된 문자를 보냈다.
[타깃이 탔던 유람선, 남일도로 이동 중. 지도(클릭)]
그러나 천문석은 이 문자를 볼 수가 없었다.
문자가 도착한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방전돼 충전 중이었고.
천문석은 20시간 이상 이어진 난장판에 간이침대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 * *
철검장 비밀 거점 3층.
천문석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간이침대에 잠들어 있었고. 그 뒤 간이침대에는 마찬가지로 죽은 듯이 잠든 김태희 대령과 파티마가 있었다.
감시를 맡긴 퐁퐁이마저 어느새 천문석 가슴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
지금 이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슬라임 점액질과 밧줄에 이중으로 묶인 철검장 조직원들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러시안룰렛에 기가 죽었던 것도 잠시.
철검장 조직원들은 기이한 마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퐁, 퐁, 포오옹-
몸에서 물방울을 하나둘 흩날리며 점점 더 긴 간격으로 꾸벅, 꾸벅- 잠들락 말락 머리를 끄덕이는 마수!
‘조금만 더!’
‘그래 잠들어라!’
‘잘한다! 완전히 자는 거다!’
철검장 조직원들이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하는 어느 순간.
툭-
퐁퐁이의 고개는 완전히 침상에 박히고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좋았어!’
‘드디어!!’
‘완전히 잠들었다!’
꽁꽁 묶인 철검장 조직원들은 마음으로 환호성을 터트리며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바로 움직이자!’
‘잠깐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
“…….”
1분 2분 3분…….
숨소리마저 죽이고 집중해서 바라보는 5분 동안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간이침대의 세 사람과 한 마수!
‘됐다!’
‘바로 연락하자!’
‘저기로 움직이면 된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10미터 남짓 떨어진 테이블에 놓인 위성 전화기.
하나로 묶인 철검장 조직원들은 시선은 간이침대에 둔 채로 작은 소리 하나 없이 슬금슬금 위성 전화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간이침대 앞에 놓인 커다란 양동이에서 물이 스르륵- 촉수처럼 솟아올랐다.
‘……!’
‘……!’
철검장 조직원들이 기겁해서 멈추는 순간.
촉수에서 뚝, 뚝- 떨어져 나온 물 덩어리가 작은 물고기, 오징어, 해파리가 되어 사무실 안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규모는 작지만, 너무나 유명한 광경!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유영하는 물로 이뤄진 생명체들!
헌터 업계에 발을 들인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모두가 한 번쯤은 본 광경!
어젯밤 긴급 대피 경보를 울리게 한 바다의 재앙, 용용이의 능력이다!
철검장 조직원들이 경악하여 얼어붙는 순간.
허공을 유영하던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퐁퐁이의 얼굴에 닿았다.
촤아-
차가운 물에 깜짝 놀라 번쩍 고개를 드는 퐁퐁이.
순간 퐁퐁이의 동글동글 까만 눈에 보였다.
허공을 유영하는 물로 이뤄진 작은 물고기들.
그리고 양동이에서 머리를 쑥 내민 하얀 벨루가.
친구?!
구읏-!
퐁퐁이가 가슴지느러미를 휙휙 흔드는 순간.
촤르르륵-
양동이의 물은 살아 있는 것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으로 떠오른 물 위에는 꼬리로 벌떡 일어선 새하얀 벨루가, 분노한 용용이가 있었다.
히이이이-
휘파람을 닮은 울음소리가 퍼져 나가고 모든 것을 찢어발길 광포한 기운이 눈에 맺혔다.
그리고 이 광포한 시선이 천천히 주위를 훑었다!
철검장 조직원들이 사색이 되어 덜덜 떨고.
텅 빈 허공에서 응결한 수증기에서 물고기, 오징어, 해파리, 돌고래가 쏟아져 나왔다.
그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태풍이 몰아치고, 중력이 강해지고, 공기가 무게를 가지고 짓눌렀다.
압도적인 각성력!
이 시선이 죽은 듯이 잠든 천문석에게 닿으려는 순간.
찰싹, 찰싹-
불쑥 튀어나온 지느러미가 용용이의 머리를 때렸다.
이 순간 허공을 유영하던 물로 이뤄진 물고기, 오징어, 해파리, 가오리 수천 개체가 일제히 멈춰 서고.
철검장 조직원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
“……!”
꾸벅꾸벅 졸던 마수가 바다의 재앙, 용용이의 머리를 때렸다!
끝장이다!
모조리 박살 난다!
철검장 조직원들이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가슴지느러미를 번쩍 치켜들고 빙글 몸을 돌리는 용용이.
포그르르르-
순간 폭발하듯 쏟아진 물방울이 용용이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히이이-?!
번쩍 정신이 드는 순간 동글동글한 얼굴이 보였다.
첫 번째 친구한테 줄 깡통을 주우러 부산에 내려갔다가 만난 두 번째 친구!
퐁퐁 고래가 바로 앞에 있었다!
히이이-?
구으, 구으읏-!
깜짝 놀라 다급히 묻는 순간 바로 대답하고.
퐁퐁, 퐁퐁퐁-
퐁퐁 고래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간이침대로 날아갔다.
히이잇-?
용용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친구를 따라갔다.
곧 퐁퐁이와 용용이는 간이 침상 위에 죽은 듯이 잠든 천문석의 가슴 위에 나란히 앉았다.
휘이, 히이이-?
용용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순간.
구으, 구으응-!
퐁퐁이는 친구에게 장난감을 자랑하는 꼬맹이처럼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펼쳐 천문석의 몸 곳곳을 가리켰다.
……-!
순간 용용이의 눈이 확 커졌다.
친구가 가리키는 곳!
잠든 인간의 몸 곳곳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차가우면서 뜨겁고.
뜨거우면서 서늘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기운!
가슴, 배, 다리, 등, 어깨, 팔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선연한 기운!
천문석 본인 외에는 누구도 느낄 수 없던 힘, 천강흔을 퐁퐁이와 용용이, 둘은 감지했다!
퐁퐁이는 바로 움직였다.
반투명하게 변한 가슴지느러미를 뻗어 쓰윽, 쓰으윽- 자유롭게 움직이는 천강흔을 쓸었다.
파스스스스-
천강흔은 빗자루에 쓸리는 낙엽처럼 퐁퐁이의 가슴지느러미에 쓸려 이불 밖으로 드러난 팔에 모두 모였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선연한 빛이 용용이와 퐁퐁이의 마음에 쏟아져 들어왔다.
……-?!
용용이가 경악한 얼굴로 이 모습을 바라볼 때.
퐁퐁이는 혀를 내밀어 팔에 모인 선연한 빛을 할짝 핥았다.
파스스슥-
반투명한 영체가 오색으로 반짝이는 퐁퐁이.
깜짝 놀란 용용이도 조심스레 혀를 내밀어 선연한 빛, 천강흔을 핥았다.
할짝-
……-!!
찌릿찌릿한 감각이 전신을 달리고 머릿속으로 바람이 휑- 불어온다!
반짝이는 별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몸이 붕 떠서 별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만 같았다.
무한한 별의 바다 너머 하늘을 향해 뻗은 거대한 빛의 나무에서 누군가의 신나는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얼른 와! 나 이제 다 잤어! 이제 만나러 갈 거야! 엄청 신나고 재밌게 놀 거야! 우히히히힛-.’
목소리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별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별의 바다는 어느새 사라지고 동글동글한 친구의 웃는 얼굴만 보였다!
……-!
……-!
시선이 마주치고 할짝- 혀를 내밀어 입가에 남은 빛을 핥는 순간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반짝이는 두 눈과 반쯤 벌어진 입가에 담긴 선명한 감정, 즐거움!
휙, 휙휙-
퐁퐁이와 용용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착, 차착-
간이침대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혀를 쏙 내밀었다.
그리고 천강흔을 핥기 시작했다.
단 것을 금지당한 꼬맹이가 한 달 만에 사탕을 핥듯이 정신없이!
할짝할짝할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