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20화>
비밀 거점 확보에 성공한 천문석은 빠르게 움직였다.
슬라임 점액질에 찰싹 붙은 철검장 무사들을 다시 한번 꽁꽁 묶고.
잽싸게 씻고 밥을 먹고 수레 안을 확인했다.
기절한 파티마 위에 착 앉아 있는 퐁퐁이와 쿨쿨 잠든 용용이.
우선은 파티마부터.
파티마는 초절정의 벽을 넘다가 그 벽에 걸린 상태. 주화입마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었다.
다음은 용용이.
쿨쿨 잠든 용용이의 몸에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기감을 일으켰다.
쿵-
심장이 크게 맥동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태풍이 심상에 그려졌다.
용용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그냥 기다리면 깨어난다.
“네 친구 괜찮아. 기다리면 깨어날 거다.”
구으으-
고개를 끄덕이는 퐁퐁이.
천문석은 커다란 양동이에 물을 받아 용용이를 넣어 주고 파티마를 간이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퐁퐁이에게 말했다.
“쉬다가 혹시 쟤들 이상한 짓 하면 바로 깨워 줘.”
구으읏-!
가슴지느러미로 척 경례하며 씩씩하게 대답하는 퐁퐁이.
김태희 대령은 이미 잠든 상황.
천문석은 슬라임 점액질과 밧줄에 이중으로 묶인 철검장 조직원들을 쓱 한번 살피고 간이침대에 풀썩 쓰러져 죽은 듯이 잠들었다.
순간 제압된 철검장 조직원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움직일수록 단단하게 고정되는 점액질에 손발이 고정되고 입까지 막혔다!
하늘을 나는 이상한 마수가 퐁, 퐁- 물방울을 날리며 감시 중인 상황!
게다가 간이침대에서 잠든 여성 헌터는 미친 러시안룰렛을 하는 진짜 미친놈이었다!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다릴 때다.
푸젠성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러 간 장주님만 돌아오면 이놈들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철검장의 정예 무사들은 이를 갈며 간이침대에 잠든 두 헌터를 노려봤다.
화요일 아침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은 죽은 듯이 잠든 이 순간,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어제부터 푸저우에는 수많은 소문이 퍼졌다.
-NTM_CHS, 최후식, 대환단.
-가짜 최후식, 가짜 대환단, 사기꾼.
-긴급 대피 경보, 거대한 물의 장벽, 바다의 재앙.
-하늘의 검, 뇌전과 함께 둘로 갈라진 물의 장벽.
-물의 장벽에서 쏟아진 격류에 휩쓸려 박살 난 몬스터 웨이브.
-정체불명의 각성자에게 전해진 대환단.
……
이렇게 많은 소문이 퍼진 이유는 월요일 정오 푸저우 시가지에서 시작해 화요일 새벽 마경으로 이어진 정신없는 난장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정신없는 난장판 끝에 남은 건 암반 지대에 널브러진 거대한 마수와 몬스터 사체와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이었다.
NTM_CHS의 정체는 무엇인가?
모두가 쫓던 대환단은 진짜였는가?
대환단을 가져간 각성자는 누구인가?
진짜 바다의 재앙 용용이가 나타난 건가?
의문에 답을 해 줄 소문 속 인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소문만이 푸저우에 퍼져 나갔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대환단이 사라졌다는 것!
이때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소문 하나가 바람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중국에 무림 던전이 나타났다!’
헌터 업계 사람들은 곧 이 소문의 의미를 깨달았다.
가짜 영약의 범람에 영약의 진위 파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무림 던전에서 구한 영약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무림 던전은 영약의 원산지!
밭에서 직접 뽑은 작물처럼 무림 던전에서 구한 영약은 100% 믿을 수 있었다!
즉, 확실한 진품 대환단을 구할 수 있는 무림 던전이 나타난 것이다!
원래라면 난리가 났을 일이지만, 큰 반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NTM_CHS와 대환단으로 한 번 난장판이 된 직후였고, 구체적인 위치가 나오지 않은 소문일 뿐이었으니까.
반면 지금 도시 밖 바위산 암반 지대에는 소문이 아닌 실체, 하급에서 최상급까지 수만에 달하는 마수와 몬스터 사체가 널려 있었다!
마경에 가득하던 마수와 몬스터는 몬스터 웨이브에 빨려들어 박살 났다.
동네 뒷산에 주인 없는 금덩어리가 널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반 시민에서 어지간한 대형 길드 헌터들까지 모조리 달려가 마수와 몬스터 사체에서 마석과 부산물을 회수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무림 던전 소문은 연기만 무성할 뿐 실제 불이 되어 타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이 연기를 감지한 순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NTM_CHS와 대환단이 나타났을 때도 움직이지 않던 거물.
진짜 대환단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를 기꺼이 치를 재력과 권력을 가진 거물 중의 거물들.
남중국 권력의 정점, 헌터 군벌들이었다!
천검과의 회의를 위해 푸저우에 도착한. 그리고 이동 중인 군벌 수장은 즉시 명령했다.
‘무림 던전을 찾아라!’
자신의 성(省)에서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진 군벌 수장의 명령에 수행원과 푸저우에 박아 놓은 스파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움직임에 각성자들이 사라져 텅 빈 푸저우가 술렁이고.
이 술렁임에 ‘무림 던전 등장 소문’이 넓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이 던진 ‘무림 던전’이란 스노우볼이 데굴데굴 구르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아직 물증도 위치도 공개되지 않았기에 무림 던전 스노우볼은 아주 천천히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느림 움직임만으로도 깜짝 놀란 사람들이 있었다.
“무림 던전! 이게 어떻게 알려진 거야?!”
느긋하게 무림 던전으로 향하는 경로를 점검하던 장철 헌터였다.
* * *
장철 헌터는 경악했다.
이른 아침 위장용 투어 동선을 확인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소문을 들었다.
‘남중국에 무림 던전이 나타났다!’
아직 던전이 고정되기 전인데도 무림 던전이 나타났단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게다가 시가지를 휘저으며 이 소문의 근원을 찾고 있는 사람들.
몸에 밴 절도!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군 출신이다.
남중국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 헌터 군벌이 무림 던전을 캐고 있었다!
아직 ‘남일도’라는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보가 유출됐다면 섬 이름과 위치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
한가하게 경로를 점검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 사실을 장민에게 알려야 했다.
장철은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다 흠칫 놀랐다.
권력의 정점 헌터 군벌이 움직이고 있으면 스마트폰 통화도 위험하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무림 던전을 고정 중인 남일도에는 장강 유통의 인력과 보안 장비가 있었다!
최대한 빨리 남일도로 가야 한다.
장철은 바로 호텔로 돌아와 장강 유통의 직원을 만났다.
“바로 목적지로 가야 한다.”
장강 유통의 직원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1시간 후 유람선이 출발할 수 있게 준비 중입니다! 바로 남중국해로 빠져나가 푸텐으로 갈 예정입니다. 지금 바로 유람선에 타시면 됩니다!”
무림 던전이 고정 중인 남일도는 푸텐 앞바다의 섬!
장철은 즉시 호텔을 빠져나가 유람선을 탔고.
푸젠성 문화 탐방 투어, 위장 여행사는 아침 식사를 마친 단체 관광객들에게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긴급 대피 경보가 내려져 안전 문제로 1시간 후 유람선이 출항할 예정입니다. 관광객분들은 10분 전까지 탑승해 주기 바랍니다.]
“아니. 경보가 울린 어젯밤에는 아무 말도 없더니! 다 끝나니까 출항이라고?!”
아침 식사 중이던 단체 관광객들은 어이없어 하며 유람선에 하나둘 탑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단체 관광객 사이에 정장을 입은 남자와 화려한 복장의 두 남녀가 끼어 있었다.
유람선이 남일도에서 정박하는 것을 확인한 임제원 실장과 에코, 아리엘 무겐다흐였다.
* * *
임제원 실장과 에코, 아리엘 무겐다흐는 유람선 갑판에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가짜 던전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네. 가능하겠습니까?”
임제원 실장의 물음에 에코는 닫힌 세계에서의 기억을 되짚었다.
이 세계의 던전은 뒤엉킨 다른 나뭇가지,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길이었다.
다른 선택으로 변화한 다른 세계에 잠시 갔다 올 수 있는 임시 통로!
원래라면 신에게서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 정도의 업이 아니라면.
아무리 임시 통로라도 이렇게 쉽게 다른 나뭇가지에 연결된 길을 뚫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세계의 차원압이 미친 듯이 올라가면서 이 불가능한 일, 임시 통로 던전이 사방에 열리고 있었다.
던전을 만드는 건 시간 오류 수정자의 금기를 범하는 것이지만, 이 세계에서라면 그리고 가짜 던전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 가짜 던전을 만들 섬에 ‘시드’ 없습니까?”
“시드? 씨앗이요?”
“네, 던전 씨앗. 쉽게 말하면 아직 고정이 안 된 던전인데. 시드는 불안정해서 그 주위에서 가짜 던전을 만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에코의 대답에 임제원 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군 복무 중 수백 번 던전에 들어가고 마력 각성자들과 작전을 했지만 ‘시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섬에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혹시 방법이 있다면 다시 확인을…….”
이때 아리엘이 불쑥 끼어들어 임제원 실장의 말을 끊었다.
“야! 여기에 ‘시드’가 있을 리 없잖아?! ‘시드’는 그 광신도들이 그렇게 샅샅이 뒤졌는데도 찾는 데 실패한 건데!”
에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 님이 말하는 광신도, 제국 군단이 시드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시드는 아직 발아하지 않은 씨앗이자 가능성, 고정되지 않은 던전이다.
시드가 있다면 원하는 가능성이 발현한 세계를 향해 가지를 뻗게 만들 수 있었다.
무작위로 이어지는 던전이 아니라 원하는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을 수 있다.
즉, 제국 군단이 천공의 탑을 오르며 그토록 찾아 헤맨 마도 황제.
빛의 길을 걸어 승천한 보석과 강철의 황제를 다시 만나는 것도 가능했다!
제국 군단의 서원은 타 대륙의 인류에게 마탑이란 보석과 타이탄이란 강철의 힘을 선사한 보석과 강철의 황제를 타 대륙에 다시 부르는 것!
마도 황제가 다시 돌아온다면 사라진 옛 제국, 마도 제국을 다시 세우는 건 숨 쉬듯 간단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코는 힐끗 아리엘을 살폈다.
대답을 기다리는 임제원 실장 옆 눈을 반짝이며 유람선을 구경하는 아리엘.
마도왕 무겐다흐.
자신은 마도왕과 군단장조차 모르는 마도 황제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마도 황제, 보석과 강철의 황제는 빛의 길을 걸어 승천한 게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빛의 길을 걸었던 것은 맞지만, 그 빛의 길이 이어진 목적지는 하늘이 아니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도 황제는 세계의 나무에 ‘대륙어’를 새겨 넣은 마도의 신이다. 하늘은 진작에 닿았었다.
그가 빛의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하늘이 아니라 ‘고향’이다!
마도 황제 승천의 진실은 귀향이다!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까지 알고 있었다!
워커 실트 마도 제국 최악의 테러리스트이자 마도 황제의 친구가 말해 준 빛의 길을 걸어 고향에 돌아간 이유.
‘걔 김밥 먹고 싶어서 돌아간 거야.’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세계에도 김밥이 있었다!
처음 김밥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김밥이 있다는 말은 이 세계가 마도 황제가 돌아온 고향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곧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도시마다 열린 게이트와 곳곳에 생겨난 균열과 던전. 그리고 사방에 깔린 마수와 몬스터까지.
이곳이 마도 황제가 돌아온 고향이라면 이 모든 것이 말이 안 됐다.
마도 황제, 보석과 강철의 황제라면 이 난장판을 순식간에 정리했을 테니까!
즉, 이 모든 것은 우연이다!
이토록 어이없는 우연이라니!
하하하하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임제원 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 ‘시드’라는 걸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말씀해 주시면 다시 확인을…….”
“아뇨. 됐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네요.”
‘김밥처럼 말이죠.’
에코는 뒷말을 삼키며 웃었다.
그리고 곧 투어 관광객과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 유람선은 민장강 하류로 출발했다.
유람선의 표면상 목적지는 푸텐, 취안저우, 샤먼을 지나 대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유람선의 진짜 목적지는 푸텐 앞바다의 작은 섬이었다.
이 작은 섬을 목적지로 하는 세 집단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유람선 갑판에 서 있었다.
장철 헌터.
임제원 실장, 에코, 아리엘.
마혁진과 김기태, 칠성파 잔당들.
갑자기 퍼진 무림 던전 소문 알리기.
가짜 무림 던전 만들기.
한경석 흔적 추적.
세 집단의 목적은 달랐지만, 이들 모두의 목적지는 같았다.
남일도.
천문석이 잠든 동안에도 아득한 인과는 이어지고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