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18화>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과 짧은 만남이 끝나고 안내된 사무실.
임제원 실장은 피로한 인상의 부관과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 일을 처리할 부관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부관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툭툭-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헌터 업계 전체가 대환단 때문에 난리인 건 알고 있지?”
“어제와 오늘 새벽까지 이곳 푸저우에서도 대환단 때문에 난리가 났다.”
“NTM_CHS, 가짜 최후식에 가짜 대환단, 사기꾼에. 갑자기 나타난 해일까지 완전히 난장판이 됐다.”
“사령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다른 군벌에서 설계하고 찔러 보기가 들어온 것 같은데…… 꼬리를 잡기 위해 움직일 때 갑자기 그분이 나타나서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하아-.”
부관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을 때.
임제원 실장의 머릿속에는 키워드가 박혀 들고 있었다.
‘NTM_CHS, 가짜 최후식, 가짜 대환단, 사기꾼, 설계, 그분, 대응?!’
남중국 사정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부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때 임제원 실장의 얼굴을 본 부관의 얼굴에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그 표정을 보니.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보군.”
부관은 책상 한쪽에 놓인 서류를 앞으로 던졌다.
“자세한 건 거기 나와 있으니 확인하고, 지금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지.”
임제원 실장은 바짝 긴장했다.
장웨이 사령관은 가벼운 시험이라고 말했지만. 분위기상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의뢰는 날아간다!
이번 의뢰는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이 다음 단계로 성장할 기회!
반드시 잡아야 했다!
집중하는 순간 바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천검께서 대환단을 찾으란 명령을 내린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대환단을 찾은 군벌은 아무도 없다.”
“어제 푸저우에 나타난 가짜 대환단과 가짜 천검처럼. 지금 남중국은 온갖 계략과 사기, 사칭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략과 사기, 사칭의 반 이상은 그 뒤에 군벌들이 있다.”
‘아!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장웨이 사령관님만 대환단을 구하는 것. 최악의 상황은 장웨이 사령관님만 대환단을 구하지 못하는 것인데…….”
부관은 말꼬리를 흐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임제원 실장에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진짜 대환단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뭘 해야겠나?”
“무림 던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무림 던전!
순간 임제원 실장의 머릿속 단서들이 하나로 합쳐져 큰 그림을 그렸다!
지금 전 세계 헌터 시장에서 영약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태.
거기에 더해 온갖 ‘가짜 영약’, ‘가짜 대환단’에 ‘사기꾼’까지 판을 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진짜 대환단이 나타나도 그게 진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진품인지 확신할 수 없는 대환단을 절대 권력자 천검에게 바친다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다!
하지만 100% 진품 대환단을 얻을 방법이 하나 있었다.
가짜가 판치는 헌터 시장이 아닌 원산지에서 구하는 것!
대환단의 원산지, ‘무림 던전’이다!
만약 남중국에 ‘무림 던전’이 나타난다면?!
대형 길드, 레이드 팀, 대형 조직, 대기업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흘리고 사기꾼과 가짜 대환단을 풀어 경쟁자들을 방해하던 거물 중의 거물들이 움직이게 된다.
남중국 헌터 군벌!
임제원 실장은 이 순간 장웨이 사령관의 의도를 깨달았다.
무림 던전이 진짜일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대환단이 나올 리 없는 가짜 무림 던전이기에 더 좋다.
이 계획은 무림 던전의 소문을 퍼트려 경쟁자, 헌터 군벌들의 눈을 돌리는 게 목적이니까!
이런 여론전은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의 특기 중의 특기!
게다가 가짜 무림 던전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인력이 이미 준비됐다.
임시 직원으로 고용한 마력 각성자, 에코와 아리엘!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듯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내심 감탄할 때 부관의 물음이 들려왔다.
“알아들었나 보군, 어때 할 수 있겠나?”
임제원 실장은 가장 중요한 걸 확인했다.
“무림 던전 위치 설정이 핵심인데. 혹시 제한이……?”
“푸젠성 안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전권을 모두 주겠다. 알겠지만 푸젠 군벌과는 작은 연관성 하나 드러나선 안 된다.”
임제원 실장은 빠른 속도로 준비 상황을 되짚었다.
유희명 대표는 이미 서울에 도착했고.
콜센터로 위장한 텔레마케터 사무실도 준비가 끝난 상황.
가짜 무림 던전을 만들 마력 각성자 에코와 아리엘은 저택 밖 차에서 대기 중.
위치만 결정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임제원 실장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오늘 정오에는 푸저우시의 모든 사람이. 오늘 밤 자정에는 남중국의 모두가 ‘무림 던전’ 출현을 알게 될 겁니다.”
* * *
장웨이 사령관의 저택에서 나와 숙소로 이동 중인 장갑 SUV.
임제원 실장은 차를 타는 즉시 현대정보컨설팅의 유희명 대표에게 연락했다.
“대표님. 방금 의뢰인과 미팅을 끝냈습니다. 의뢰인이 의뢰 전에 실력을 보길 원하십니다.”
-실력을 본다고? 어떻게?
“잠시만 정리 좀…….”
임제원 실장은 머릿속 내용을 빠르게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무림 던전…….”
그리고 입을 열자마자 탄성이 터지고 말이 이어졌다.
-아, 무림 던전! 그렇지! 무림 던전에서 나온 대환단이면 100% 진품이지! 무림 던전으로 대환단 경쟁자들을 낚는다! 괜찮네! 제대로 먹히겠어! 지금 남중국 상황에서는 어중간한 선거 운동보다 천검에게 잘 보이는 게 훨씬 낫지! 우선 고려할게…….
“…….”
임제원 실장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유희명 대표는 ‘무림 던전’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돌아가는 상황을 모조리 파악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유희명 대표, 선배가 겨우 마케팅 업체에서 일했다는 말이 의심스러웠다.
‘이 정도면 거의 예지 능력자 아냐? 선배 혹시 마케팅 업체가 아니라 국가 헌병대에서 일했던 거 아냐?!’
새삼스레 의심하는 순간 돌연 스마트폰 너머에서 황당해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야, 너 지금 엉뚱한 생각 하고 있지? 혹시 내가 전투 예지 능력자라고 헛다리 짚고 있냐?
‘뭐야? 이제는 마음까지 읽어?!’
흠칫 놀라는 순간 웃음기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 새끼가 헛다리는! 야, 너 우리 이모를 못 봐서 그래. 내 찍기는 아무것도 아냐! 우리 이모가 이런 쪽으로 진짜 귀신같다니까!
-……아침 안 먹어?
이때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린 목소리. 그리고 유희명 대표의 웃음을 참는 듯한 외침이 이어졌다.
-아냐. 이모, 전화 다 했어. 당연히 아침 먹어야지! 회춘한 이모가 차려 준 아침인데. 크크큽-
“대표님 옆에 누구 계십니까?”
-아, 진짜 미치겠네! 크크킄- 어, 간만의 서울이잖아? 지금 우리 이모 집에 와 있어. 한강뷰 100평 아파트! 와, 여기 장난 아냐! 앗! 그렇지! 마침 잘됐네. ‘무림 던전’ 위치는 우리 쪽에서 지정하는 거로 했지?!
“네!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받았습니다. 보고도 일이 끝난 후 사후 보고로 하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연관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바로 ‘무림 던전’ 만들 위치 찍어 줄게! 이모! 여기 지도에서 아무 데나 한 곳 찍어 봐!
“네? 대표님! 지금 뭐를……?!”
가짜 무림 던전의 위치는 이번 의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 사항이다!
‘찍기라니?!’
이렇게 어이없는 방법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다급히 저지하려는 순간 폰 너머에서 유희명 대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위치 정했다!
“대표님! 아니 선배!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제원아! 믿어! 우리 이모 장난 아니다! 그보다 우리 익명 광고랑 텔레마케터 사무실 의뢰한 업체 거기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무슨 사무실이라고 했는데…… 명함을 가져온 거 같은데 보이지 않아서……?
“김철수 사무실. 담당자는…….”
-아! 그렇지 김철수 사무실! 담당자는 진교은 사원! 기억났다! 그럼 서울 텔레마케터 사무실은 내가 컨트롤 할게. 에코랑 아리엘한테 익명 광고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말해 주고! 그럼 밥 든든하게 먹고, 무림 던전 준비 끝나면 연락해라. 본격적인 바이럴 시작할게! 그럼 난 아침 먹으러 간다! 무림 던전 위치는 바로 문자로 보낼게!
“잠깐! 선배! 그 무림 던전 위치……!”
다급히 외쳤으나 유희명 대표의 전화는 이미 끊긴 후였다.
“하아- 선배…….”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뒷좌석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익명 광고 시작됐습니까?!”
“우리 아침은 어디서 먹는데? 숙소는?!”
에코와 아리엘의 기대감이 가득 담긴 물음.
“전광판, 버스, 지하철, 포털까지 광고 계약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쯤이면 서울과 부산 시내에 일제히 광고가 붙었을 겁니다. 그 ‘워커’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한국에 있다면 곧 반응이 올 겁니다.”
“드디어!”
“아침은 숙소로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면 바로 드시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호텔 이름이 잠시만…….”
임제원 실장은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더 웨스틴 푸저우 민장. 민장 호텔입니다. 식사 후에는 바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좋아! 아주 만족스러워!”
에코와 아리엘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 톡- 문자가 도착했다.
유희명 대표에게서 온 문자였다.
[우리 이모가 찍어 준 무림 던전 위치 <- 클릭]
짧은 한 줄의 문장에서 전해지는 불길함!
이번 의뢰의 성패가 달린 ‘가짜 무림 던전’ 위치를 이모가 찍어 준 곳으로 정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정보컨설팅이 연이은 대박을 치고 해외에까지 진출한 것은 모두 선배, 유희명 대표의 신기에 달한 줄타기 덕분이었다!
임제원 실장은 링크를 클릭했다.
바로 푸젠성 해안가 지도가 뜨고, 푸저우시 남쪽 푸텐시 바로 앞 작은 섬이 보였다.
다행히 엉뚱한 장소가 지정되지는 않았다.
“하아-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
임제원 실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콜센터로 위장한 텔레마케터 사무실에 문자를 넣었다.
본격적인 컨트롤은 선배가 해도 밑 작업은 지금 시작해야 한다.
우선은 냄새를 풍기는 것부터!
[바이럴 준비를 시작한다. 대환단을 얻을 수 있는 무림 던전이 남중국에 나타났다!]
장웨이 사령관이 계획하고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이 실행할 계략!
가짜 무림 던전!
뒷골목 비각성 헌터에서 남중국 권력의 정점 군벌 수장까지.
대환단을 원하는 모든 이들을 끌어들일 커다란 사기극이 지금 시작됐다!
임제원 실장은 스마트폰 화면에 뜬 지도를 살피며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렸다.
호텔에서 식사 후 바로 배를 타고 출발한다.
민장강 하류로 내려가 남중국해로 진입, 해안선을 따라 푸텐시까지 내려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가짜 무림 던전이 생길 섬, 남일도(南日島)!
* * *
바이크 수레와 한 헌터가 푸저우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거친 엔진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바이크 수레, 김태희 대령.
“헉, 허억-.”
숨을 몰아쉬며 그 뒤를 쫓는 헌터, 천문석이었다.
부앙, 부앙, 부아앙-
바이크 수레는 속도를 조절해 가며 한참 동안 도로를 달려 어느 건물 앞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야 멈췄다.
끼이익-
마침내 바이크 수레가 멈추고 엔진이 꺼지는 순간.
“흐어엌-.”
천문석은 주차장 바닥에 픽 쓰러져 당장이라도 숨이 널어 갈 듯 헐떡였다.
‘믿을 수 없었다!’
마경에 있을 리 없는 건물과 주차장!
바이크 수레가 멈춘 이곳은 푸저우 시가지 건물 앞이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길어야 1, 20분! 적당히 화가 풀리면 바이크 수레를 세우고 태워 줄 거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태희 대령은 마경에서 이곳 푸저우 시가지 중심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린 것이다!
“야, 이 미친 치와와……!”
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 내는 순간.
부앙, 부아앙-
바이크 수레에 다시 시동이 걸리고 질문이 툭 던져졌다.
“뭐야? 부족해? 우리 좀 더 달릴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김태희 대령!
‘이 녀석 진심이다!’
천문석은 즉시 분노를 멈추고 널브러진 채로 손을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까. 쌤쌤인 거 같아. 우리 이제 감정 없는 거다?”
김태희 대령은 씩 웃으며 성큼 다가와 손을 잡고 흔들었다.
순간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의 시선이 서로의 다른 손으로 향했다.
전법륜인 딱밤 자세를 잡은 천문석.
장총신 리볼버를 잡은 김태희 대령.
“…….”
“…….”
짧은 침묵.
하, 하하-
하, 하하-
어색한 웃음.
“이제 좀 쉬자. 뒤질 거 같다.”
“그래. 얼른 처리하고 쉬자.”
극적인 합의.
천문석은 벌떡 몸을 일으켰고.
김태희 대령은 바이크 수레를 놔둔 채로 성큼성큼 건물로 걸어갔다.
“야, 어디가? 숙소 잡아야지!”
“뭐야? 너, 혹시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거야?”
“…….”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주차장과 이어지는 작은 부두와 보트.
민장강과 맞닿은 강변에 자리한 3층 건물.
그리고 건물 입구에 달린 오래된 간판.
[검철 공방]
“……!”
간판을 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
검철, 철검!
마혁진에게 정보를 얻은 철검장의 비밀 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