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17화 (1,01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17화>

여명이 밝아 오는 이른 새벽.

푸저우시를 향해 밀려오던 몬스터 웨이브가 거대한 격류에 휩쓸려 박살 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두 동강 난 물의 장벽에서는 아직도 폭포수가 쏟아지고, 각성력이 남아 있는 물은 여전히 암반 지대에서 격류가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빠진 암반 지대에는 곳곳에는 고블린에서 오우거까지 온갖 마수와 몬스터가 뒤엉켜 널브러져 있었다.

상급, 최상급 마수와 몬스터 중에는 아직 살아 있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런 개체도 체력이 바닥까지 소진돼 죽은 듯이 널브러진 상태!

하중도에 갇혀 있는 정예 각성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눈을 빛냈다.

대환단은 날렸지만, 헛고생을 한 건 아니었다.

눈앞에 가득한 마수와 몬스터!

전투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마석과 부산물을 회수!

여기에 숟가락을 올리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굉천수에 당해 뒤처졌다가 수십, 수백 명씩 도착하는 각성자들.

바위 언덕에 진지를 만들었던 푸저우 방어부대 군인들.

물의 장벽이 사라진 모습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달려온 푸저우 시민들까지.

여명이 밝아 오는 이른 새벽.

엄청난 대박의 예감에 푸저우 시가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바위산 암반 지대로 달리고 있었다.

이들을 통해 ‘NTM_CHS, 최후식, 대환단’, ‘대환단을 얻은 정체불명의 각성자’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들과 반대로 이른 새벽부터 푸저우시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중국 각 지방의 군벌 수장과 그 수행원들.

“아직도 대환단을 찾지 못했나? 선거는 중요한 게 아냐! 천검의 호의를 사야 한다! 대환단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재금 그룹 추이린 수석 연구원.

“케인 이사는 장갑 버스를 타고 푸저우시로 이동한 걸 확인했습니다. 네! 비행기 탔습니다. 이제 곧 푸저우에 도착합니다!”

-벼락출세한 푸젠성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

“NTM_CHS, 최후식의 대환단은 정체불명의 각성자가 가져갔다고? 됐다! 다른 놈들 손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잘됐다! 컨설팅 업체가 도착하면 바로 안내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웨이 사령관이 기다리는 컨설팅 업체.

현대정보컨설팅 직원들이 탄 비행기가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 위에서 착륙 순서를 기다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이 비행기에 탄 현대정보컨설팅의 직원들은 임제원 실장과 임시 직원 에코와 아리엘 무겐다흐였다.

* * *

에코는 문득 옆을 봤다.

넓은 일등석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와인을 마시며 패션 잡지를 보고 있는 여성.

아리엘 무겐다흐.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와 티 하나 없는 피부.

블라우스 포켓에는 선글라스가 손목에는 명품 시계가, 발에는 명품 샌들이 까딱이고 있었다.

지구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

아무리 봐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리엘 님의 모습은 관광지에 놀러 온 부잣집 아가씨 그 자체였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마도 전쟁 승리 직전까지 갔다가, 차원 용병을 고용해 파산하고 천공탑으로 튄 무기제작자 마도왕 무겐다흐의 모습을 떠올리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모습도 아리엘 님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관광지에서 비행기를 탄 듯한 모습.

당연했다.

자신과 아리엘 님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비행기를 탔으니까.

‘난 여기서 뭘 하는 걸까?!’

하아-

문득 한숨이 새어 나오는 순간 지난 몇 달의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

끝없이 반복되는 회차, 닫힌 세계, 루프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오류를 만들지 않고 잃어버렸던 ‘시계’를 회수해!

혼돈에 그어진 경계, 세계의 나무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시간 오류 수정자의 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잽싸게 인과를 따라 움직여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간신히 탈출해 도착한 세계에서도 차원 도약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신이 도착한 이 세계는 더 크게 닫힌 세계였으니까!

게다가 이 세계에는 자신들을 기다리던 생각지도 못한 사람까지 있었다.

워커 실트.

몇 마디 말을 던지는 순간 단숨에 자신과 아리엘님의 정체를 파악하고!

대(對) 제국 기사용 무공으로 악명 높은 백곰권까지 펼쳤다!

워커 실트 님은 수정 기둥으로 전생하기 전의 기억까지 찾은 게 분명했다!

책이 가리킨 인과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상대는 마도 제국에 막타를 때리고 수많은 제국 기사, 마도왕, 군단장까지 물 먹인 워커 실트였다!

에코는 직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워커 실트 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마도 제국의 여섯 재앙이 처음부터 재앙이라고 불린 게 아니었다.

전부 워커 실트 님과 얽혀서 재앙이 된 거다.

자신들도 잡히면 그 꼴이 된다!

잡히기 전에 어떻게든 탈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탈출 방법의 키는 천공탑을 통해 이 세계에 온 마도왕.

자신의 옆에 앉은, 지구에 너무나 잘 적응한 아리엘 무겐다흐가 가지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시선을 쏘아 보내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음. 이 스카프 맘에 들었어!”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모습!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머릿속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밥값을 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자신과 아리엘 님이 현대정보컨설팅 그룹과 함께 코타키나발루로 튄 직후, 대한민국 하늘에 화살표가 떠올랐다.

너무나 눈에 익은 화살표!

우레 폭풍의 마도왕 레이 실트의 ‘대마법 추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닫힌 세계!

타 대륙 북부 대전선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를 우레 폭풍으로 갈아 버리고 있을 레이 실트 님이 나타날 리 없었다!

이 세계에서 대마법 추적을 펼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대륙 유일의 타이탄 마스터.

마도 제국 일곱 재앙의 수괴.

전능 옥좌를 떨어뜨린 테러리스트.

레이 실트의 형, 워커 실트!

에코와 아리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코타키나발루가 아닌 한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대마법 추적에 특정 당해 워커 실트 님에게 잡힐 뻔했으니까!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워커 실트 님에게 잡히는 걸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코타키나발루에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이때 현대정보컨설팅의 유희명 대표가 일거리를 물어 왔다.

남중국 연방 총선!

남중국 군벌 중 한 명이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을 고용한 것이다!

중국 선거를 한국의 컨설팅 업체에게 맡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처음 치러지는 연방 총선.

선거 전문가를 찾았을 거고 그 찾는 방법은 당연히 인터넷 검색이었을 거다.

‘남중국은 미국 같은 서구권과는 문화가 다릅니다! 남중국과 비슷한 문화를 가진 최고의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의 바이럴 마케팅에 낚인 거다!

유희명 대표의 계획대로!

그리고 자신과 아리엘 님은 유희명 대표와 거래를 했다.

유희명 대표가 한국에서 바이럴 마케팅 콜센터를 컨트롤하며 ‘워커 실트’를 추적하는 동안.

자신과 아리엘 님은 남중국 군벌 수장이라는 VIP 고객의 신뢰도를 확 끌어올리기 위한 마력 각성자 역할로 병풍을 서 주기로!

그렇게 지금 자신은 임제원 실장, 아리엘 님과 함께 남중국으로 온 것이다.

에코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워커 실트 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장소는 한국의 부산 던전!

그 집요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생각하면 대마법 추적이 한국 밖, 코타키나발루를 가리켰어도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자신이 아는 워커 실트 님이라면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서라도 코타키나발루까지 찾아올 거다!

언제 워커 실트 님이 나타날지 모르는 코타키나발루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닫힌 세계에서 몸만 빠져나오느라 거지 상태에 파트너 초대형 뱁새는 단단히 삐졌는지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필요했다.

-삐진 파트너 초대형 뱁새가 돌아올 시간!

-한국에서 워커 실트 님이 떠났다는 증거를 찾을 시간!

-아리엘 무겐다흐 님이 이 닫힌 세계에 싫증을 내고 천공탑에 다시 들어갈 결심을 할 시간!

이 시간이 흐를 동안 VIP 고객이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병풍을 서면 된다.

그리고 워커 실트 님이 한국에서 떠났다는 물증이 나오면 바로 출발하면 된다.

무기 제작자 마도왕 무겐다흐가 이 닫힌 세계에 온 방법.

천공탑의 문이 열렸던 섬, 제주도를 향해서!

이미 천공탑은 닫혔지만, 괜찮다.

자신은 ‘책과 시계’를 되찾은 시간 오류 수정자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마도 전쟁 승리 직전까지 갔던 마도왕, 무기 제작자 무겐다흐였으니까!

자신과 아리엘 님이 힘을 합치면 천공탑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다!

그때까지 자신은 시간 오류 수정자, 타 대륙의 냉기 마법사 에코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상급 마력 각성자 에코였다.

에코는 문득 든 생각에 통로 너머 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임 실장님. 목적지가 어디라고 하셨죠?”

임제원 실장은 힐끗 창문 밖을 보고 말을 이었다.

“비행기가 많아 착륙이 지연되네요. 공항에 착륙하면 바로 이곳으로 갈 겁니다.”

임제원 실장은 보고 있던 태블릿에 쓱쓱 메모하고 내밀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지도가 떠 있었고 그 위에 원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푸젠성 푸저우시 저택.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

잠시 후 비행기는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임제원 실장과 에코, 아리엘은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고용주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서.

* * *

푸젠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저택.

이 저택은 천검 이세기를 마력 폭탄으로 날려 버리려다가 역으로 당한 전 푸젠 군벌 수장 리웨이 상장의 저택이었다.

천검 이세기가 박살 냈던 저택은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됐고 장웨이 사령관이라는 새 주인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 저택 응접실은 이른 새벽인데도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응접실에 모인 이들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천검과 남중국 군벌 수장 전원의 회의가 열리는 내일. 회의 전에 예정된 파티에 어떻게든 초대받으려는 것!

내일 열리는 파티는 평범한 파티가 아니었다.

새로운 남중국 연방의 권력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길드장, 집행위원, 기업인, 공무원, 정치인…… 수많은 사람이 응접실에서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이때 장웨이 사령관은 약속한 인물들을 만나고 있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사령관님! 현대정보컨설팅그룹의 임제원 실장입니다.”

임제원 실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했다.

“…….”

장웨이 사령관은 대답 없이 임제원 실장 뒤, 가면을 쓴 채로 은은한 마력을 드러내는 두 사람을 이채 띤 눈빛으로 봤다.

“저 두 사람은 마력 각성자인가?”

장웨이 사령관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임제원 실장은 재빨리 대답했다.

“이번 의뢰를 위해 초빙한 최상급 마력 각성자입니다.”

“내 의뢰를 위해 최상급 마력 각성자를 초빙했다. 좋아. 아주 좋아!”

장웨이 사령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

이 순간 임제원 실장의 머릿속에서 장웨이 사령관에 대해 알아낸 정보들이 주르륵 나열됐다.

푸젠성 군벌 사령관 장웨이 사령관.

원래 해안부대 사령관이었으나, 푸젠성 군벌 수장 리웨이 상장이 날아갔을 때 즉시 천검에게 줄을 대고 벼락출세.

그렇게 푸젠성 군벌 수장 자리까지 오른 인물.

다른 군벌 수장들과 달리 역사와 기반이 없기에 이번 연방 총선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중국 각 성의 군벌 수장들은 그 성내에 자리한 수십 개 군벌의 대표!

아무리 천검이 뒤를 봐준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 뿌리를 뻗은 다른 군벌들을 모두 제거하고 홀로 푸젠성 군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장웨이 사령관의 계파가 푸젠 군벌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주도권을 쥐었지만, 여전히 리웨이 상장과 다른 군벌의 세력은 건재했다.

그래서 이번 연방 총선이 중요했다.

남중국 연방으로 정치 지형이 변화하는 격변기.

이번에 획득한 연방 의회 의석수는 장웨이 사령관이 푸젠성 군벌을 장악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때 깊은 생각에 빠졌던 장웨이 사령관이 번쩍 눈을 떴다.

“……바이럴 마케팅이 전문이라고?”

“네! 최선을 다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연방 총선 승리를 안겨 드리겠습니다!”

장웨이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총선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됐고. 그 전에 가볍게 실력을 한번 보도록 하지.”

“네? 실력이라면……?”

임제원 실장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반문하는 순간.

장웨이 사령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툭 질문을 던졌다.

“무림 던전이라고 아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