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13화>
“그럼 제 공적은 몇 등입니까?”
청년이 질문하는 순간 각성자들은 피식 웃으며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콰아아아아아-
두 동강 난 물의 장벽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물!
콰카카카카캉-
이 엄청난 물이 자신들이 서 있는 하중도 주위에 거대한 격류를 만들어 냈다!
이 거대한 격류가 몬스터 웨이브를 단숨에 휩쓸었다!
흙과 모래, 나무, 바위가 공깃돌처럼 소용돌이치는 격류는 거대한 분쇄기나 마찬가지!
소용돌이치는 격류에 휩쓸린 오크, 고블린 같은 소형 몬스터부터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까지, 모든 마수와 몬스터가 으스러지고 박살 나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전투의 공적 계산은 이미 무의미했다.
처음 몬스터 웨이브와의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사냥한 모든 마수와 몬스터를 모두 더해도 원조 천검이 하늘의 검을 펼쳐 일으킨 이 거대한 파괴의 1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하중에도 모인 모든 각성자들은 외쳤다.
“다른 모두를 합쳐서 원조 천검께는 안 된다!”
“물의 장벽을 반으로 가르신 원조 천검께서 압도적인 1등이시다!”
“원조 천검께서 번쩍 손을 드시는 순간, 떨어진 뇌전이 물의 장벽을 둘로 갈랐다!”
“몬스터 웨이브 자체를 갈아 버리는 이 압도적인 위력!”
우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지고 모두가 일제히 외쳤다.
“원조 천검 이세기!”
“원조 천검 이세기!!”
“원조 천검 이세기!!”
……
쩌렁쩌렁한 외침이 하늘을 떨어 울리고!
두두두두두두둥-
각성력이 실린 수천의 발 구름에 단단한 암반이 북처럼 요동쳤다!
하지만 진짜 천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수천의 정예 각성자들 너머에서 여상한 어조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원조 천검 이세기 님. 저는 몬스터 웨이브 공적 몇 등입니까?”
백 미터가 훌쩍 넘는 거리에서 던진 질문이 수천의 정예 각성자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진동을 뚫고 귀에 쏙 파고들었다.
“…….”
천문석은 문득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
오늘 밤 몬스터 웨이브와의 전투를 모두 내려다본 별의 속삭임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1등.’
환호하는 각성자들은 모른다.
그러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자신이 알고 눈앞에 선 진짜 천검이 알았다.
전생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구라를 치고 사기를 쳤음에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원칙이 있으니.
잡낭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환단이 튀어나왔을 때 도망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마수와 몬스터와 싸워 공적 1위를 찍으려 한 것은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무엇이 대가라고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원칙.
신의(信義).
찌이익-
천문석은 잡낭을 열고 대환단이 담긴 나무곽을 꺼내 주저하지 않고 던졌다.
나무곽은 환호하는 수천의 각성자 머리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탁-
하중도 끝에 선 청년의 손에 잡혔다.
“어……?”
“대환단?!”
“아니, 왜?!”
“원조 천검 님?!”
……
각성자들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쏟아질 때 당연하단 듯이 가볍게 허리를 숙이는 청년.
“감사합니다. 원조 천검 이세기 님.”
하하하하하하-
빙글 몸을 돌린 청년은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한 웃음과 함께 격류 위로 몸을 날렸다.
“무슨!”
“야, 위험!!”
경악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청년은 치솟는 파도를 밟고 달렸다.
“수상비!”
“등평도수!”
“어, 어어?!”
……
정예 각성자들은 넋 나간 얼굴로 휘몰아치는 격류 위를 날듯이 달리는 청년을 바라봤다.
빛도 소리도 없었다.
마력이 요동치지도 않았다.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
청년은 단숨에 휘몰아치는 격류 위를 달려 마경으로 사라졌다.
“…….”
“…….”
“…….”
이 순간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던 각성자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티셔츠에 청바지, 모자에 마스크.
집 앞에라도 나온 듯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수와 몬스터가 소용돌이치는 하중도에 불쑥 나타났다.
수천의 각성자들이 뿜어내는 기세와 각성력에도 변하지 않던 여상한 태도와 담담한 말투.
그리고 원조 천검의 손에서 던져서 허공을 날아 청년의 손에 전해진 나무곽.
몬스터 웨이브 1등 공적 상품, 대환단!
“……!”
“……!”
“……!”
이 모든 사실이 합쳐지는 순간, 남중국의 난장판에서 수십 년 구른 정예 각성자들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결론이 튀어나왔다.
“설마?!”
“이세기 님?!”
“원조 천검 이세기 님?!”
경악한 외침이 터지고 다급히 고개를 돌렸을 때 원조 천검 이세기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휘이이이잉-
누군가의 절절한 분노가 끓어 넘치는 외침만이 소용돌이치는 격류 너머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시바! 하늘의 저울! 시바시바! 하늘, 땅! 새꺄! 으아아악-!”
하중도에 갇힌 푸저우시 정예 각성자 수천 명은 바람결에 실려 오는 외침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당했다!’
‘당했구나!’
‘시바! 당했다!!’
* * *
“……더하다더니…… 하늘, 땅! 새꺄! 으아아악-!”
너무나 익숙한 외침에 바람결에 실려 들려왔을 때.
격류를 지나 숲을 달리던 청년, 천검 이세기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지는 순간 몇 시간 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바위 언덕 진지를 지나 푸저우시에 거의 도착했을 때 도시 전체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그리고 민장강에서 거대한 물의 장벽이 치솟아 동쪽 바위산, 몬스터 웨이브와 푸저우시의 각성자들이 격전을 벌이는 전장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격전 중에 물의 장벽이 무너지면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그렇기에 바로 반전해서 달렸고 물의 장벽에 가까워졌을 때 바로 알아챘다!
거대한 물의 장벽을 일으킨 건 며칠 전 위성 영상으로 확인한 작은 고래 둘, 아직 어린 신수였다.
두 신수의 분노에 엄청난 무게로 마경을 박살 내며 전진하는 물의 장벽!
허공을 유영하는 수백의 물로 이뤄진 물고기들과 거센 강풍!
그리고 장벽과 태풍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 차원문과 이어진 거대한 힘의 격류까지!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신수는 물의 장벽 정상에서 악어를 장난감 공처럼 튕기고 있었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힘!
기회는 단 한 번!
첫 공격이 빗나가는 순간 대참사가 터진다!
바로 창공을 달리는 바람의 틈에 숨어들어 접근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보게 됐다.
콰카카카쾅-
모든 것을 갈아엎으며 전진하는 거대한 물의 장벽 앞.
기절한 사람을 등에 업고 미친 듯이 달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썼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무림 던전에서 만났을 때와 똑같은 상황.
설산에서 철검장의 무사들에게 쫓겼다면 이번에는 거대한 물의 장벽에 쫓기고 있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저 불운과 얼마든지 혼자 도망칠 수 있으면서도 그 앞에 수천의 푸저우시 각성자들이 있기에 도망치지 않는 모습까지!
세상이 넓다 해도 이런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의 친우 석(石), ‘돌멩이’다!
바다 건너 한국에 있어야 할 돌멩이가 남중국 푸젠성 바로 눈앞에 있었다!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려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이건 하늘의 안배다!’
어린 시절 돌멩이는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막아 주는 나무처럼 온갖 사건·사고와 불운과 재앙을 대신 막아 내는 제방이었다!
이 순간 초절정에 달한 직감이 번뜩였다.
‘돌멩이는 이번에도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줄 거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여기야! 그래 나야! 물의 장벽! 저 장벽 좀 멈춰……!]
돌멩이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치는 순간.
이 거대한 재앙을 일으킨 두 신수의 눈에 생겨난 반짝임!
두 신수는 파닷파닷- 물의 장벽 가장자리로 움직여 지상의 돌멩이를 내려다봤다.
휘히힛-?
구으, 구으읏-?!
고개를 갸웃하던 두 신수는 놀랍게도 돌멩이를 알아봤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물의 장벽 주위에 몰아치던 힘의 격류가 사라졌다.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
이세기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천검(天劍)!
그 이름 그대로 내력과 하늘의 기운을 공명시켜, 두 신수가 자리한 정상을 날려 버리고 물의 장벽을 둘로 잘라 냈다!
물의 장벽은 마치 바위산을 둘로 쪼갠 듯 하늘로 솟은 모습 그대로 거대한 폭포수처럼 물을 쏟아 내 암반 지대의 몬스터를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하중도에 떨어져 내렸다.
탁-
착지하는 순간 흠칫 놀라는 등을 보인 돌멩이.
그리고 돌멩이가 빙글 몸을 돌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아챘다.
돌멩이 녀석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림 던전에서 만난 자신이 이 세계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지금 자신은 몸 주위로 기파(氣波)를 퍼트려 분위기를 감추고 내력으로 목소리도 변화시켰으니까.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쫓는 수많은 눈과 귀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득한 하늘 위에서 위성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과 친분이 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온갖 날파리가 꼬여 들게 된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기에 말을 걸려 했다.
이 순간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각성자가 외쳤다.
“천검! 천검 이세기께서 우리를 구했다!”
그리고 쏟아져나온 광기 어린 외침과 환호성!
황당하게도 각성자들은 돌멩이 녀석을 ‘천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돌멩이 녀석! 또 내 이름을 팔았구나!’
어이없어 하는 순간 돌멩이 녀석의 얼굴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 드러났다.
당혹!
그리고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원조 천검 이세기에 완전히 경도된 광기 어린 각성자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돌멩이!
-몬스터 웨이브 공적 1등 상품 대환단!
곧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돌멩이 녀석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간단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이세기 사칭범의 장단에 맞춰 주는 것!
이세기는 돌멩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 공적은 몇 등입니까?”
하하, 하하하하-
이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한 웃음과 함께 회상이 깨어졌다.
이세기는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웃고 또 웃었다.
돌멩이의 단호한 얼굴과 주저하지 않는 움직임. 그러나 잘게 떨리던 손!
문득 시선을 내리자 내단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불룩 커진 게 보였다.
이 주머니 안에 돌멩이가 자신에게 던져 준 나무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나무함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이 외침만으로도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무림의 무가지보 대환단!
돌멩이는 무림 던전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주저하지 않고 대환단이 담긴 나무함을 건넸다.
약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돌멩이는 여전히 돌멩이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외상을 그어도.
이세기란 이름으로 온갖 사고를 쳐도.
‘새꺄! 내가 원조 이세기야!’라고 억지를 써도.
돌멩이는 여전히 자신의 친우였다.
이세기는 문득 고개를 돌려 분통을 터트리는 외침이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늘, 땅! 으아악!”
하늘과 땅을 욕하며 달려가는 돌멩이.
돌멩이가 달려가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떠올리는 순간, 오래전 버려진 산속 사당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동생들과 자신 앞에서 돌멩이가 토해 내던 열변이 기억났다.
‘하늘에는 선악도 마음도 없으니! 외워라! 각자도생! 자력갱생! 자강불식!’
‘각자도생! 자력갱생! 자강불식!’
‘각자도생! 자력갱생! 자강불식!’
……
당장이라도 귓가에 들려올 듯 생생한 목소리.
석(石), 돌멩이, 천문석.
이 세계에는 예상대로 자신의 친우가 있었다.
하지만 막연한 짐작과 직접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웃음이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하늘에는 마음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으니…….”
이세기는 검대에 매달린 주머니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돌멩이 조금만 기다려라. 이 대환단은 내가 이자를 몇 배로 부쳐서 돌려줄 테니까.”
이세기는 절절한 외침이 들려오는 숲을 향해 말하고는 아득한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휘이이이이잉-
한 줄기 일진광풍이 되어 푸저우시를 향해 달려갔다.
연방 총선이 시작되는 날, 끈질기게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 시선도 끝이다.
그날 자신이 별호가 어째서 천검인지 보여 주리라.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다시 만나리라.
대환단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돌멩이 녀석을!
자신이 대환단과 영물의 내단. 그리고 엄청난 덤을 건네는 순간.
돌멩이 녀석이 지을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한 웃음이 터졌다.
하하,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