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12화 (1,01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12화>

[퐁퐁이! 여기야! 장벽 아래!]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몇 번이나 외쳤다.

후우우우웅-

그러나 남은 내력은 한 줌이고, 미친 듯이 몰아치는 비바람과 지상을 갈아엎는 물의 장벽!

허공을 유영하는 초고압의 물 범고래와 물 가오리 떼에 막혀 외침이 전해지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되는 게 없어!!”

[퐁퐁이 여기라고! 옥탑방! 특급 헌터 아는 형……!]

분통을 터트리며 외치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쳤다.

특급 헌터!

찌이익-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잡낭을 열었다.

대환단이 담긴 나무곽.

뽁뽁이에 감긴 포션.

차곡차곡 쌓은 약초잎.

검은색 3x3 큐브.

검은 동전.

……

그리고 잡다한 잡동사니 사이, 찾던 게 보였다!

특급 헌터가 준 나무토막!

천문석은 잽싸게 나무토막을 꺼냈다.

이 나무토막은 피리다!

특급 헌터가 동물 친구들을 부를 때 쓰라고 건네준 ‘울리지 않는 피리’!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넣어 준 나무토막을 입에 물고 불었다!

……-!

구멍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그러나 특급 헌터의 말대로 피리를 불자 변화가 일어났다.

물기둥에 맞고 쉴 새 없이 튕기던 악어가 물의 장벽 정상에서 떨어지고!

악어로 공놀이를 하던 용용이와 퐁퐁이가 파닷파닷- 지느러미를 움직여 물의 장벽 가장자리로 다가와 내려다봤다!

휘히힛-?

구으, 구으읏-?!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용용이와 퐁퐁이!

‘됐다! 지금이다!’

[여기야!]

내력을 실어 외치는 순간 퐁퐁이와 천문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늘 고래 퐁퐁이의 착해 보이는 까만 눈에 생겨난 반가움!

[그래 나야! 물의 장벽! 저 장벽 좀 멈춰……!]

천문석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퐁퐁이가 바로 옆 용용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용용이가 알겠다는 듯이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마음속으로 환호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거대한 물의 장벽 위 깜깜한 밤하늘에서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는 거대한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한 줄기 섬광이 벼락같이 떨어졌다.

콰르르릉-

한 줄기 섬광은 퐁퐁이와 용용이가 앉은 물의 장벽 정상을 잘라 내고!

콰르르르르릉-

하늘에 닿을 듯 솟은 거대한 물의 방벽을 반으로 가르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르르르르르릉-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파아아아앙-

퐁퐁이와 용용이, 악어는 잘려 나간 물의 장벽에 휩쓸려 멀리 날아가고!

콰르르르르릉-

섬광이 수직으로 내리꽂힌 물의 장벽은 둘로 갈라진 폭포가 되어 지상으로 쏟아졌다!

“으아아악-.”

“끝장이다!”

“빌어먹을!!”

……

정예 각성자들의 괴성과 비명이 터지는 순간.

반으로 갈린 물의 장벽이 암반 지대를 휩쓸었다.

콰카카카카카캉-

엄청난 힘이 담긴 격류가 되어 몬스터 웨이브를 단숨에 쓸어버렸다!

정예 각성자들이 뭉친 장소는 강 한가운데 섬처럼 거칠게 몰아치는 격류 한가운데 남겨졌다.

“…….”

“…….”

“…….”

넋을 놓고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바라보던 정예 각성자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 사람!

모두는 봤다.

손을 번쩍 드는 순간 하늘의 검이 떨어졌다!

뇌전(雷電)!

시야를 하얗게 물들인 뇌전은 거대한 물의 장벽을 둘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그 둘로 잘린 물의 장벽이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몬스터 웨이브를 끝장냈다!

모든 각성자들은 경의, 찬탄, 희열, 존경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의 등급외 각성자.

천검 이세기!

이 순간 천문석은 멍하니 격류가 되어 흐르는 해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뭘 본거지?’

하늘 높이 솟은 물의 장벽 정상.

장난감 공처럼 악어를 튕기던 용용이와 퐁퐁이.

울리지 않는 피리로 퐁퐁이를 부르고 눈이 마주치고 물의 장벽이 멈추려는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그 벼락이 용용이와 퐁퐁이, 악어를 한 방에 날려 버렸고.

뒤이어 거대한 물의 장벽을 반으로 갈라 몬스터 웨이브를 박살 냈다.

천문석은 이 벼락의 정체를 봤다.

빛으로 작열하던 검!

이 벼락은 하늘에서 돌연 튀어나온 빛의 검이 만들어 낸 신기였다.

그리고 이 빛의 검을 만들어 낸 각성자가 누군지도 감이 왔다.

탁-

이 순간 등 뒤 멀리서 착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지만 천둥 치듯 머리를 울리는 소리!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소리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보였다.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격류에 둘러싸인 하중도 끝.

수천의 정예 각성자들 너머에 홀연히 나타난 사람.

청바지에 셔츠,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 쓴 한 청년.

길을 걸으면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의 청년이다.

하지만 이 청년의 몸 주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기파(氣波)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청년이 작열하는 빛의 검을 내리쳐 퐁퐁이와 용용이, 악어를 멀리 날려 버리고, 거대한 물의 장벽을 반으로 가른 천외천의 각성자였다!

그렇다. 천외천의 각성자다.

그리고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천외천의 각성자는 단 한 명뿐이다.

진짜 천검 이세기가 나타났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외천의 등급외 각성자 천검!

그리고 자신의 대환단이 전해질 최종 고객!

“……!”

경악도 잠시 천문석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이때 한 각성자가 외쳤다.

“천검! 천검 이세기께서 우리를 구했다!”

‘이 녀석들도 알아챘구나!’

내심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외침.

“삼합회의 향주! 천검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삼합회 향주는 두 손을 모으고 깊게 허리를 숙였다.

“……!”

천문석은 멍하니 삼합회 향주를 바라봤다.

삼합회 향주가 천검이라 부르며 손을 모으고 깊게 허리를 숙인 사람은…….

“……나?”

천문석 자신이었다.

* * *

‘뭐지? 지금 이 녀석이 미쳤나?!’

‘진짜 천검이 있는데? 왜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해?!’

“야, 너 지금 뭐 하는……?!”

다급히 외치는 순간 사방에서 외침이 쏟아졌다.

“역시 하늘의 검, 천검!”

“푸젠 레이드 팀! 인사드립니다!”

“신화 그룹 보안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샤먼 길드! 부길드장! 사의를 표합니다!”

……

줄줄이 허리를 숙이며 외치는 정예 각성자들!

‘이 녀석들이 단체로 미쳤나?!’

평소라면 ‘와, 재수!’라고 외치고 잽싸게 이용해 튀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그가 있었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이자 대환단의 최종고객, 진짜 천검 이세기가!

최대한 잘 보여야 할 진짜 천검 앞에서 정예 각성자들이 자신에게 환호하고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천검 이세기!”

“하늘에 닿는 검!”

“천검 이세기!”

“뇌전을 부르는 검!”

“천검 이세기!”

“종신 연방 총통 천검!”

……

천검 앞에서 천검을 사칭하는 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천문석은 다급히 손을 저으며 버럭 외쳤다!

“야, 아냐!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아니라고 말했잖아!”

“네?”

“아니라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정예 각성자들.

천문석이 잽싸게 설명하려는 순간.

처음 헛다리를 짚었던 삼합회 향주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멍청한 녀석들! 아까 천검께서 하신 말씀 못 들었냐!”

삼합회 향주는 빙글 몸을 돌려 더욱 깊게 허리를 숙였다.

“원조! 분명 원조라고 말씀하셨다!”

‘잠깐! 지금 이 녀석 설마……?!’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삼합회 향주는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이분은 그냥 이세기가 아닌! ‘원조’ 이세기! ‘원조’ 천검 이세기시다!”

“……!”

“……!”

“……!”

모두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스치고 폭발하듯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원조 천검 이세기!”

“하늘에 닿는 검!”

“원조 천검 이세기!!”

“뇌전을 부르는 검!”

“원조 천검 이세기!!”

“종신 연방 총통 천검!”

……

정예 각성자들은 광기 어린 눈으로 땅을 구르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물의 장벽을 가른 진짜 천검이 아니라.

그냥 손만 들고 있던 자신을 향해서!

“……!!”

말문이 컥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천검(天劍)?

난장판에서 검(劍)은 쓰지도 않았다!

장법과 강철봉만 휘둘렀는데 천검이라고?!

‘그만해 미친놈들아! 여기 진짜 천검 있다고!!’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순간.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저분이 천검?”

“하늘에 닿는 검!”

“뇌전을 부르는 검!!”

“종신 연방 총통 천검!!”

……

진짜 천검의 점점 커지는 깜짝 놀란 외침!

목소리에 담긴 내력에 성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천문석은 이 목소리에 숨겨진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외침에 끝에 숨겨진 다급히 숨 삼키는 소리!

‘풉-’

‘하늘에 닿는 검! 풉-!’

‘뇌전을 부르는 검!! 푸풉-!!’

‘종신 연방 총통 천검!! 푸풉흡-!!’

진짜 천검은 사력을 다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전생의 돌멩이 시절에서 현생 알바까지.

수많은 구라와 사기를 쳤어도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황당한 상황.

하지도 않은 사기를 주위 사람들이 치고, 그 쪽팔림은 모두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외침!

“이분이 원조 천검 이세기!”

“하늘과 땅을 잇는 진정한 천검, 뇌전을 불러오시는 분!”

“원조 천검께서 신분을 감춘 채 ‘대환단’을 걸어 남중국 각성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몬스터 웨이브를 처리하도록 계획하셨다!”

“원조 천검께서 몬스터 웨이브 전투 공적 1등에게 대환단을 내리겠다고 공언하셨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남중국의 절대자이신 천검을 찬양해라!”

……

신앙 간증을 하듯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정예 각성자들의 찬양!

‘그만, 제발 그만해! 미친놈들아!!’

당장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이 멍청한 각성자들을 모조리 쥐어박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저기 있는 사람은 천검이다!

잡낭 안에 있는 대환단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해 준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대환단의 최종 수요자, 진짜 천검이다!

경거망동해서 완전 사기꾼으로 찍히고 대환단까지 가짜로 찍힐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어떡하지?! 시바! 이걸 뭐라고 해명하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해명 방법을 찾을 때 문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하하하하-

여전히 나이,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웃음소리.

그러나 이 웃음을 듣는 순간 어째선지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진짜 천검을 보는 순간 탄성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검께서 대환단을 걸고 몬스터 웨이브를 처리하도록 계획하셨다니!”

“사실은……!”

천문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잽싸게 나서서 외치는 삼합회 향주.

“그렇다! 원조 천검께서는 몬스터 웨이브 전투 공적 1등에게 대환단을 약속하셨다.”

“아! 역시! 천검! 그 대의에 탄복! 또 탄복했습니다!”

진짜 천검은 감탄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아니, 이분 왜 이러지?! 어, 잠깐 방금 웃음이랑 몸짓 뭔가 익숙한……?’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진짜 천검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툭 날아왔다.

“그럼 제 공적은 몇 등입니까?”

“……!!”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을 날려 버리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