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08화>
천문석은 오른손은 허리춤에 놓은 채 왼손은 가볍게 앞으로 뻗어 뇌전을 쏟아붓고 있었다.
천외천의 절대 고수처럼, 이 정도는 손가락 까닥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상한 분위기로!
원래 고수는 분위기가 7할 이상인 법!
아무리 경천동지할 무공을 펼쳐도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하면 그 평가가 팍 깎인다!
천문석은 이 분야의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떠돌이 행상, 천문사의 주지, 마도 18문의 입문생, 천마까지!
수없이 그 분야의 대가를 연기했다!
안으로 뒤질 것처럼 힘들어도 겉으로 절대 고수를 연기하는 건 숨 쉬듯이 자연스러웠다!
‘먹혔나?!’
천문석은 절대 고수를 연기하며 이목을 열고 기감을 뻗었다.
느껴진다!
돌처럼 굳은 정예 각성자들의 경악한 시선이!
정예 각성자들은 늪지 트롤을 단숨에 태우고 나무줄기처럼 뻗어 나가는 천뢰의 압도적인 모습에 얼어붙어 전투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전기 무공 찌릿찌릿, 일명 천뢰(天雷)에 남은 내공의 2/3를 때려 박은 효과가 있었다!
플랜 B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다!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으니, 이제 이 강렬한 첫인상만 고정시키면!
‘대환단은 내 것이다! 카캬캌-.’
오른손이 등 뒤를 훑는 순간, 착- 손에 달라붙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
툭, 툭-
두 번 어깨를 두들기고 천뢰가 쏟아지던 왼손을 터는 순간.
파직, 파지직-
현상과 심상이 반전, 쏟아지던 뇌전이 심상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닥, 타탁-
남은 전격이 전신에서 튀어 오를 때.
천문석은 강철봉에 어깨에 걸고 정면을 바라봤다.
범람한 강에 휩쓸린 것처럼 뇌전의 격류에 삼켜져 박살 나 뒤엉킨 마수와 몬스터.
그러나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숫자다.
강렬한 첫인상을 위해 내력의 2/3를 쏟아부어 남은 내력은 1/3 남짓!
당연히 남은 몬스터 웨이브를 모두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실제 공적보다 강렬한 인상이 중요했고. 강렬한 인상, 절대 고수 연기는 자신이 무림 최고의 전문가였다!
당연했다.
자신은 마도 18문의 지존 진짜 절대 고수 천마였으니까!
천뢰의 기운이 담긴 왼손으로 휙 허공을 긁는 순간.
우르르르르르르-
보이지 않는 용이 하늘을 긁는 듯한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세가 솟구치고 전의가 끓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할 수 있다!]
천문석은 사자후를 터트리며 뇌전의 격류가 몰아치는 몬스터 웨이브를 향해 돌진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순간 거대한 함성과 함께 정예 각성자들이 일제히 돌진했다.
“뭐야? 압도된 거 아니었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대답하는 듯한 함성이 돌아왔다.
“삼화 그룹! 가자 마수와 몬스터를 짓이겨 버리자!”
“신화 PMC! 뒤돌아보지 말고 전력으로 달려라!”
“푸젠 길드 레이드 팀! 방패 벽을 세워라!”
“삼합회 형제들! 우리가 선두에서 달린다!”
……
갑자기 자신의 소속을 외치며 전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돌진하는 정예 각성자들!
자신의 무위에 압도되기는커녕 왕 앞에서 돌진하는 영주처럼 사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와, 어이없는 녀석들!’
예상외의 상황이지만, 계획이 어그러지는 건 익숙하다!
천문석은 심상 공간에 몰아치는 천뢰의 내력을 왼손에 담고 몬스터 웨이브를 향해 돌진했다.
[할 만하다!]
[나는 할 수 있다!]
몬스터 웨이브 전투 최고 공적자, 대환단의 주인을 가리는 레이스가 시작했다.
* * *
우르르르-
두 다리로 대지를 짓밟자 땅이 요동치고.
파지지지직-
왼손을 휙 뿌리자 새하얀 뇌전이 날아갔다.
오크 방패병, 기회를 노리던 검치호가 감전되는 순간.
타다다닷-
전력으로 달려가며 어깨에 걸친 강철봉을 내려찍는다.
쾅, 쾅, 콰아앙-
강철봉이 뇌전에 충돌하는 순간 섬광이 터지고 마수와 몬스터가 폭발하듯 으스러졌다.
천문석은 뇌전을 휘감고 몬스터 웨이브를 직선으로 뚫고 달렸다!
우르르르르르-
대지가 요동쳐 고블린, 오크 자잘한 마수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나뒹굴고!
파지지직, 쾅, 쾅, 콰아앙
쉴 새 없이 퍼져 나가는 뇌전과 벼락, 강철봉에 뿔마, 이각수, 검치호, 변이된 흑곰이 박살 나 널브러졌다!
천문석은 압도적인 모습으로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내고, 몬스터 웨이브 반발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반발장이 흩어지자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무겁던 몸이 가벼워지고, 정예 각성자들의 사기가 끓어오르며 기세가 폭발했다!
거대한 전차가 밀고 달린 듯 뻥 뚫린 공간!
이 공간으로 삼합회, PMC, 대기업 보안팀이 밀고 들어갔다!
“지금이다!”
“밀고 들어가라!”
“압력을 줄여야 한다!”
콰앙, 콰아아앙-
검, 도, 해머, 도끼창!
냉병기에 담긴 각성력이 폭발하고!
타탕, 타타타탕-
이글거리는 마탄의 저주가 반발장과 몬스터의 육체를 태워 버렸다!
수만의 마수와 몬스터에 비하면 선두에서 돌진하는 천문석과 그 뒤를 따라 쐐기처럼 파고드는 정예 각성자들은 그야말로 한 줌이었다.
그러나 기세가 오르는 순간 주도권이 넘어왔고, 주도권을 잡는 순간 각성자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돌진했다.
천둥 벼락을 휘감은 천외천의 강자!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이세기 앞에서 싸우고 있었으니까!
우르르르르르-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장에!
하아아아아앗-
피 끓는 함성이 터지고 강철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 순간 천둥 벼락을 휘감고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달리는 천외천의 강자.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미친놈들이 그만해!’
‘적당히 사리면서 싸우라고!’
그러나 아무리 마음속으로 외쳐도 단 한 명의 각성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시바시바개시바! 너네 도대체 왜 그래?! 8대2라고! 지금처럼 싸우면 너희 적자야!’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분통을 터트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우르르르르르- 쾅, 쾅, 쾅-.”
입으로 우렛소리, 벼락을 터트리며.
파파파파파파팟-
손을 옷에 비벼 만든 정전기로 뇌전을 일으키고.
깡깡, 까가가깡-
미친 듯이 강철봉을 내려치고 있었으니까!
대기를 울리고 시야를 태우는 천둥 벼락은 허초(虛招)!
진짜는 어깨가 빠질 듯이 내려치는 오른손의 강철봉이었다!
그렇다!
지금 천문석은 짭 천둥 벼락을 휘감고 압도적인 무위를 펼치는 듯한 사기를 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꿈에서 만난 스승님에게 입었던 내상 때문에 내력이 간당간당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아직은 그래 아직은 상정 범위 안이다!
난 할 수 있다!
대환단은 반드시 내가 먹는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압도적인 공적을 세운다!
그걸 위해 목이 터져라 우레와 천둥소리를 내지르고!
지문이 다 닳도록 손을 비벼 정전기를 일으켜 뇌전을 날렸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강제 동원된 각성자들!
몸을 뺄 생각만 하던 청개구리 놈들이 너무 잘 싸우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탕-
반발장을 태우고 마수와 몬스터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마탄!
고블린, 오크 같은 소형 몬스터뿐만 아니라 변이된 곰, 일각마 같은 중형 마수까지 마탄 사격에 픽픽 쓰러지고 있다!
척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이다!
이 미친놈들이 8대2 배분 전투에서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탄에 새겨진 마력은 저주처럼 몬스터 반발장과 육체, 마석으로 옮겨붙는다!
즉, 지금처럼 마탄을 쏟아부으면 마석과 부산물이 모조리 마력에 오염돼 쓰레기가 된다.
마탄 난사는 헌터들의 금기 중의 금기!
헌터 업계의 오랜 격언대로 마탄을 빵야빵야 쏘면, 통장에 먼저 빵야빵야 구멍이 뚫리고 파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 놈들! 특히 삼합회 녀석들은 더럽게 비싼 정품 마탄을 마치 공짜 마탄처럼 쏟아붓고 있었다!
후두두둑-
마탄이 긁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갈대처럼 쓰러져 나가는 마수와 몬스터들!
“……!”
마탄을 갈긴 삼합회 각성자들과 눈이 마주치자, 파파팟-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재빨리 탄창을 갈아 끼고 마탄을 다시 쏟아부었다!
“……!?!”
‘이 녀석들 돌았나?! 100% 적자인데 정품 마탄을 이렇게 쏟아붓는다고?!’
그리고 들려오는 외침!
“하나에 일제히 밀고 들어간다!”
“흐름을 끊고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준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였다.
“하나!”
으악, 쿵-
“하나!!”
으아악, 쿵쿵-
“하나!!”
으아악, 쿵쿵쿵-
……
10여 미터의 방패 벽!
괴수 레이드 팀이 하나라는 구령에 합을 맞춰 몬스터 웨이브를 파고들었다!
그 방패 벽에 걸린 마수와 몬스터가 두부처럼 으깨져 통로가 뻥 뚫리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탓-
이 순간 방패 벽 뒤를 받치는 육체, 오러 각성자가 바닥에 깔린 마수와 몬스터를 확인 사살했다.
맞물린 기계처럼 돌아가는 전투!
압도적인 인상을 새기고 최고 공훈을 세워야 대환단을 독식하는데, 정예 각성자들은 만만치 않았다!
천문석은 잽싸게 머리를 굴려 공적을 계산했다.
아직은 자신이 1위다.
그러나 레이드 팀과 삼합회, 대기업 보안 같은 정예 각성자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싸우는 정예 각성자들이 끝이 아니었다.
쐐애애액, 쿠우웅-
멈추지 않고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와 웨이브를 때리는 마탄 포격과!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과 함께 멀리서 가까워지는 수많은 각성자들까지!
몬스터 웨이브는 아직 기세가 살아 있고 승패도 완전히 기울진 않았다.
하지만 저 각성자들이 밀려와 마탄을 쏟아부으면 전투의 추가 한쪽으로 확 기울어진다!
그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천뢰에 내력을 집중해 내력이 말라붙어가는 자신과는 달리.
정예 각성자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가파르게 공적을 쌓아 올리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는 역전된다!’
대환단을 독식하기 위해서는 일반 각성자들이 밀려와 마탄을 쏟아붓기 전에 압도적인 공적을 쌓아야 한다!
바람검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
같이 공적을 쌓을 동료의 존재가 절실했다!
하지만 둘 다 비밀 거점에 미리 보내 둔 상황!
으아아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내력을 쥐어짰다!
우르르르, 쾅쾅-
입으로 우렛소리와 벼락을 터트리고.
깡깡, 깡깡깡깡-
손으로는 쉴 새 없이 강철봉을 내려치며 몬스터 웨이브를 향해 돌진했다.
대환단, 성채 빌딩을 위해서!
* * *
천문석이 정예 각성자들과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로 대환단 레이스를 펼치고 있을 때.
민장강 지류와 연결된 분지 강변에는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마력 엔진 왜 이래?! 정상 출력인데! 왜 속도가 이 모양이야! 가속하라고! 가속해! 젠장! 신호는 또 왜 안 잡혀!”
타탓타타타탓-
워커 실트는 미친 듯이 개조 스마트폰을 두들겼고.
‘하아-’
케인 이사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지에 도착한 지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곧 도착한다던 미궁 악어 7호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남중국에 온 후로 계획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도시로 숨어들자고 해 볼까?’
문득 든 생각에 쪼그려 앉은 오너를 보는 순간.
워커 실트는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터트렸다.
“됐다! 신호 잡혔다! 7호! 거의 다 도착했다!”
“이번에는 진짜인가요?!”
케인 이사의 의심스러운 눈빛.
“당연하지! 이제 곧 보일 거다! 빨리빨리 가속해라! 7호!”
워커 실트는 스마트폰 화면에 컨트롤 패널을 띄우고 속도를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촤아, 촤아아-
물살을 가르는 흑갈색 암초, 미궁 악어 7호가 나타났다!
“됐다! 준비해라! 바로 타고 튄다!”
“넵! 워커 님!”
케인 이사는 벌떡 일어나 축소된 장갑 버스가 담긴 헌터용 배낭을 메다가 멈칫했다.
촤아, 촤아아-
느릿느릿 물살을 가르고 다가오는 미궁 악어 7호 위에 무언가 얼핏 보였다.
“……!”
케인 이사는 반사적으로 눈에 각성력을 담고 자세히 살폈다.
흑갈색 암초 위로 드러나는 실루엣…….
“……오너. 미궁 악어 7호 위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요?”
“뭔 헛소리야?! 7호 위에 사람이 왜 있어?!”
워커 실트는 고글을 내리고 배율을 조정했다.
위잉, 위이잉-
곧 초점이 맞춰지고 야시 모드가 켜졌다.
“…….”
짧은 침묵 후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짜잖아!”
미궁 악어 7호의 위장용 암석 갑각 위에 진짜로 사람이 있었다!
워커 실트는 바로 알아봤다.
원 대륙식 가부좌를 틀고 원 대륙식 마나 호흡법을 펼치는 원 대륙 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