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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06화 (1,00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06화>

“이세기 새끼!”

거지꼴의 헌터가 숨을 몰아쉬고 다리를 질질 끌고 달리며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슬쩍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상위 1%의 강자다!

“저런 강자까지 당했다고? 하아-.”

이세기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 익숙한 외침.

묻지 않아도 저 헌터의 상황이 짐작 갔다.

그동안 자신의 얼굴과 이름은 남중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환단을 찾으란 명령을 내린 후 ‘이세기’란 이름이 퍼지게 됐다.

아직 일반에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길드, 조직, 대기업 같은 단체의 수뇌부는 전부 알게 된 상황.

하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고 이세기란 이름도 흔했다.

당연히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를 사냥하러 남중국을 돌아다닐 때 몇 번이나 저런 광경을 보게 됐다.

“이세기 새끼! 으드득-.”

이를 갈며 이세기를 욕하는 피해자!

그렇다. 저 헌터는 피해자였다.

“또 어떤 사기꾼놈이 내 이름으로 사기를 쳤나 보네…….”

이세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남중국에선 ‘이세기’란 이름으로 온갖 사기가 난무하고 있었다.

‘우리 형이 이세기 사촌이다!’

‘내가 이세기랑 잘 아는 사이다!’

‘우리 길드장님이 이세기 전우다!’

‘이 영약이 이세기가 찾는 대환단이다!’

……

남중국 어느 도시를 가건 ‘이세기 사기 사건’ 피해자가 있었고, 몇몇 사기꾼들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이용해 아예 대놓고 사칭하기도 했다.

‘내가 바로 천검 이세기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멀쩡한 자기 이름을 놔두고 ‘이세기’란 이름으로 사고를 치는 건 석(石), 돌멩이 녀석의 특기였으니까!

혹시나 돌멩이 녀석이 나타났나 싶어 정신없이 달려가 확인하길 수십 번!

언제나 결론은 돌멩이가 아닌 그냥 사기꾼이었다.

수십 번이나 사기꾼을 응징했는데도 점점 사기 행각은 심각해졌고.

사기꾼 두 녀석이 서로를 가리키며 당당히 주장하기까지 했다.

‘내가 진짜 이세기다!’

‘아니다! 내가 진짜다! 저 녀석은 가짜 이세기다!’

어이없게도 몇몇 방어부대 지휘관까지 사기꾼에게 넘어가 뇌물을 주고 줄을 대기까지 했다.

헌터 군벌들이 앞장서 사기꾼을 처벌하기 시작했는데도 ‘이세기 사기’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이세기를 사칭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면 가장 큰 피해를 내는 ‘이세기 사칭 사기’는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곧 돌멩이를 찾아 남중국을 떠날 예정이었다.

천검 이세기는 떠나도 연방 총통은 사라져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정보는 가능한 한 알려지지 않아야 했다.

“…….”

문득 고개를 돌려 거지꼴로 힘겹게 달리는 헌터를 바라봤다.

“헉, 허억- 이 새끼!”

이제는 욕할 힘도 없는지 숨을 몰아쉬며 ‘이 새끼’를 외치는 헌터.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새끼.

이것도 돌멩이가 지어 준 자신의 별명이었다.

‘이세기 이 더럽게 잘생긴 새끼.’

‘이세기 잘생긴 새끼!’

‘이세기 이 새끼!’

……

점점 짧아지다가 결국에는 ‘이 새끼.’ 세 글자까지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돌멩이가 부르던 별명을 들어서일까?

거지꼴로 달리는 헌터에 대한 호기심과 측은지심이 치솟았다.

‘무슨 사정인지 들어 보고 도와줄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헌터가 커다란 바위를 돌아가는 게 탁 트인 시야로 보였다.

마탄 포격을 쏟아붓는 바위 언덕!

그리고 이 바위 언덕에 저지선을 펼친 푸저우시 방어부대!

머릿속에 사기에 당한 헌터를 도와줄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이 떠올랐다.

이세기는 바람을 잡아타고 사기 피해자를 빙 돌아 달려, 바위 언덕 위 푸저우시 방어부대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내려온 거대 거북이 사건으로 푸젠성 군벌의 주요 지휘관과는 이미 안면을 튼 상황.

천검 이세기는 자신을 알아본 푸저우시 방어부대 지휘관에게 바로 지시했다.

“저기 암반을 달려오는 헌터. 사기에 당한 것 같다.”

이세기 사기는 남중국 전체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긴말은 필요 없었다.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푸저우시 방어부대 지휘관이 바짝 긴장해 대답할 때.

이세기는 하늘을 가로지른 마탄 포격이 떨어지는 몬스터 웨이브를 바라봤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탄 포격과 몬스터 웨이브를 뒤쫓는 각성자들.

그런데도 몬스터 웨이브는 멈추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바위산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신기에 가까운 유인.

누가 저렇게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해 달리는지 바로 감이 왔다.

분지에서 만난 꼬맹이가 말했던, 갑자기 나타나 섬광탄을 터트리고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했다는 헌터다.

새삼 감탄스러웠다.

마탄 포격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각성자들이 쫓고 있는데도.

몬스터 웨이브는 조금도 흩어지지 않고 선두의 헌터를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았다.

도주, 유인, 도발, 전투.

모든 것에서 경지에 올라야 가능했다.

남중국에서 만난 수많은 강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다!

이세기는 한참 동안 멀어지는 몬스터 웨이브를 바라봤다.

간만에 돌멩이 녀석을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오늘 밤에만 이세계 꼬맹이, 사기 피해자, 몬스터 웨이브 유인 헌터까지 셋이나 되는 강자를 만나서일까?

바람결에 실려 오는 몬스터 웨이브의 포효 사이로 돌멩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시바시바! 개시바!’

하-

헛웃음을 터트린 이세기는 문득 든 생각에 방어부대 지휘관에게 확인했다.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하는 헌터, 누군지 확인됐나?”

지휘관은 바로 대답했다.

“푸저우시 각성자들을 자원병으로 데려온 ‘최후식’이란 이름의 헌터였습니다.”

‘최후식.’

예상대로 돌멩이 녀석의 이름도, 돌멩이 녀석이 본명보다 더 자주 쓰는 자신의 이름도 아니었다.

천검 이세기는 웃었다.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자신이 남중국에서 할 일은 거의 다 끝났다.

재앙급 마수의 내단을 손에 넣었고, 엉망진창이던 방어태세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중국 군벌 수장이 모두 모일 수요일에 대환단을 회수하고, 연방 총선이 시작되면 마침내 만나게 된다.

오랜 친우 돌멩이를!

이세기는 터질 듯이 가슴에 차오르는 웃음을 담아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

바람 소리를 닮은 휘파람이 퍼져 나가고 검대의 십자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휘이이잉-

이세기는 한 줄기 일진광풍이 되어 푸저우시를 향해 날아갔다.

* * *

워커 실트.

김태희 대령.

천검 이세기.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세 사람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만났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7호! 빨리빨리 와라! 이야아압-.”

워커 실트는 개조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미궁 악어 7호를 기다렸고.

“헉, 허억- 이 새끼.”

김태희 대령은 이를 갈며 짐을 찾으러 바위 언덕을 올랐으며.

“……최후식이라고?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구나. 돌멩이 녀석이랑 뭐 이렇게 닮았어.”

천검 이세기는 바람을 타고 달리며 피식 웃었다.

이 순간 푸저우 시가지에서도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두 사람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상하네? 남중국 카지노가 원래 이렇게 휑했나?”

장철 헌터는 한경석이 이동한 무림 던전행 동선에 있는 카지노를 점검했고.

“각성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칠성파 마혁진은 한경석의 흔적을 쫓아 부하들과 함께 카지노로 들어갔다.

장철 헌터와 칠성파 마혁진은 카지노 입구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이 순간 장철 헌터와 칠성파 마혁진의 시선이 마주쳤다.

게이트 전쟁 때 악연으로 얽혔던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장철 헌터의 얼굴에선 잘생김이 숨어 버렸고.

칠성파 마혁진은 연속된 고난에 팍 삭아 버렸으니까.

한경석의 동선을 점검하는 장철 헌터.

한경석의 흔적을 추적하는 칠성파 마혁진.

두 사람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다른 이들이 하나둘 푸저우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금 그룹 추이린 수석 연구원.

현대정보 컨설팅 그룹 임제원 실장.

임 실장과 일하게 된 에코, 아리엘 무겐다흐.

벼락출세한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

천검 이세기가 향하는 푸저우시에서 또 다른 인과가 얽히고 있었다.

촤아, 촤아아-

이때 한 사람과 한 각성 동물, 한 영수를 태운 미궁 악어 7호가 민장강 지류를 헤엄쳐 분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궁 악어 7호 위에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푸저우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력장이 바다의 재앙 용용이의 몸으로 스며들고.

용용이의 몸에서 정제된 마력이 미궁 악어 7호의 마력 엔진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력 엔진이 쿵쿵- 심장 뛰듯 맥동하며 뿜어낸 마력 파동은 하늘 고래 퐁퐁이에게 흡수됐다.

어린 하늘 고래 퐁퐁이.

허공도의 하늘 고래는 힘을 삼켜 념(念)이 담긴 안개를 뿜어내는 영체와 실체를 오가는 영수.

마력 엔진에서 뿜어낸 마력 파동이 퐁퐁이의 영체를 가득 채우는 순간.

파스스스슥-

퐁퐁이의 전신에서 념이 담긴 하얀 안개가 흘러나와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의 호흡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변화가 시작했다.

하늘 고래의 념(念)이 담긴 안개는 바람을 현실로 바꾸는 힘을 가졌고.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 알사우드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발만 걸친 초절정의 벽을 완전히 넘는 것!

원래라면 긴 세월이 걸렸을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무심코 던진 눈덩이들이 데굴데굴 굴러 수많은 선연(善緣)을 한자리에 모았다.

-마력장을 숨 쉬듯 마력으로 정제하는 각성 동물 용용이.

-마력을 파동으로 변환시키는 마력 엔진이 장착된 미궁 악어 7호.

-힘을 삼켜 념이 담긴 안개를 토해 내는 어린 하늘 고래 퐁퐁이.

-그리고 새로운 무의 경지를 체험하고, 깊은 무아지경에 빠져든 파티마.

이 모든 선연이 한자리에 모인 결과.

단 하나만 없었어도 중간이 끊긴 도미노처럼 멈췄을 일이 일어났다.

[게이트 마력장 -> 각성 동물 용용이 -> 미궁 악어 7호의 마력 엔진 -> 하늘 고래 퐁퐁이 ->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 알사우드]

게이트 마력장은 하늘 고래의 념이 담긴 안개로 변화했고.

파티마 알사우드는 무아지경 속에서 길게 호흡했다.

후, 하-

끊어질 듯 가늘고 긴 호흡으로.

파스스스-

하늘 고래의 념이 담긴 안개가 스며든다.

바람을 현실로 구현하는 념의 안개는 파티마의 심상 공간으로 흘러 들어가 영육과 혼백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의 극을 찾아 긴 시간 원 대륙을 방랑하고 게이트 너머 지구까지 찾아온 무인, 바람검의 바람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파티마 알사우드는 깊은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 완전히 넘지 못한 벽, 초절정의 벽을 다시 넘기 시작했다.

촤아, 촤아아-

미궁 악어 7호는 점점 더 느리게 강을 거슬러 올랐고.

구으, 부으으-

용용이와 퐁퐁이는 더욱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원인과 결과라는 씨줄과 날줄을 엮여 짜낸 직물 인과.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만들어 낸 기연(奇緣)이 파티마에게 이어졌다.

휘이이이잉-

이 순간 한숨 소리를 닮은 바람과 어이없어 하는 눈빛을 닮은 별빛이 쏟아져, 이 모든 선연과 인과를 시작한 사람을 휘돌고 비췄다.

“이게 아니었는데…… 시바시바! 개시바!”

몬스터 웨이브를 끌고 바위산을 향해 달리는 천문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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