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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05화 (1,00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05화>

“이세기입니다.”

“……!”

케인 이사가 경악으로 굳는 순간.

워커 실트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하- 방금은 원조 이세기더니. 이번은 청년 이세기라고? 아니 맛집도 아니고 뭔 놈의 이세기가 계속 나와?!’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위에서 몬스터 웨이브와 각성자 간에 전투가 벌어진 것 같은데. 남은 흔적이 특이해서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다가 여기까지 내려왔습니다.”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말을 잇는 청년 이세기.

“몬스터 웨이브와 각성자들만 동쪽 산맥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데…… 혹시 군인들이 각성자들만 전투에 밀어 넣은 건가요?”

청년 이세기는 푸저우시 방어 부대가 진지를 세운 바위 언덕을 눈짓했다.

“아냐. 갑자기 튀어나와서 섬광탄을…….”

워커 실트는 설명하다가 멈칫했다.

‘뭐지? 이 녀석 뭔가 좀 이상한데?’

바로 앞에서 대화하는데도 화면 속 사람을 보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워커 실트는 고개를 갸웃하다 대답했다.

“섬광탄을 터트린 헌터가 ‘대환단’이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몬스터 웨이브 유인해 갔다. 푸저우시 방어 부대는…….”

쿠우우우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를 울리는 폭음이 터졌다.

동쪽 바위산 방향!

푸저우시 방어 부대의 마탄 포격이 시작됐다!

쐐애애애애액-

수십 줄기의 마력광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음속 폭음을 터트리고.

우르르르, 콰아-

잠시 후 동쪽 바위산 방향에서 진동과 폭음이 전해졌다.

이게 시작이었다.

쿠웅, 쿠우웅-

간격을 두고 연속해서 쏟아지는 마탄 포격!

“저 마력광!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이잖아?!”

워커 실트가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볼 때.

청년 이세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잘 대처하고 있군요. 올 필요는 없었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빙글 몸을 돌려 산책하듯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

그러나 발을 내딛는 매 순간 몸이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걷는 게 아니라 나뭇잎이 강풍에 날리는 듯한 움직임!

청년 이세기는 순식간에 분지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비탈 너머 푸저우 시가지 방향으로 사라졌다.

“워커 님……!”

경악으로 굳어 있던 케인 이사는 다급히 외치다가 흠칫 놀랐다.

손에 가득한 땀과 전신에 돋아난 소름!

“……!”

이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이세기란 이름의 청년이 나타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압도됐다!

엄청난 실력자, 게다가 이세기란 이름을 가졌다!

이런 실력자가 남중국에 두 사람이나 있을 리 없었다!

‘천검 이세기!’

“워커 님! 당장 뒤를 쫓……!”

다급히 외치는 순간.

워커 실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상급 마스터! 기사 단장급이잖아?! 미친! 상급 마스터가 여기서 왜 나와!”

워커 실트는 청년이 사라진 암반 지대를 바라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완벽하게 갈무리된 힘!

바로 앞에서 대화했는데도 지금에서야 알아챘다!

마도 제국 기사 단장급.

상급 마스터, 마도왕과 비등한 강자가 툭 튀어나왔다!

“워커 님 당장 뒤를 쫓아야 합니다! 이세기! 오너의 친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케인 이사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워커 실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야, 너 헛다리야. 쟤 내 친우 아냐!”

“오너! 마스크랑 모자 때문에 못 알아봤을 수도……!”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는 케인 이사.

케인 이사가 헛다리를 짚은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남중국에서 나타난 상급 마스터급 강자, 게다가 이름까지 이세기다.

당연히 머리에 떠오를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1년도 안 돼 남중국을 하나로 통합한 천외천의 각성자, 천검 이세기!

하지만 워커 실트는 한눈에 알아봤다.

청년 이세기가 자신의 절친이자 전우 천검 이세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절벽 결전!

부산 해운대 거대 괴수, 나이트 아머 격전!

두 번이나 천검 이세기와 주먹을 맞대고 치열하게 싸우고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눴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어조, 기세, 분위기. 모든 게 이세기와 달랐다.

“야, 쟤…….”

케인 이사의 오해를 정정하려는 순간 워커 실트는 번쩍 깨달았다.

‘잠깐! 이거 운빨 터진 거잖아?!’

이전에 천검과 결전을 벌이지 않았다면, 케인 이사처럼 방금 만난 청년 이세기가 진짜 천검 이세기라고 헛다리를 짚었을 상황이다!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한 각성자!

-그 각성자의 정체를 말해 준 헌터!

-갑자기 툭 튀어나온 기사 단장급 강자!

3연속 운빨!

미친 듯한 천운이 따르고 있었다!

감이 오고 촉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천검 이세기가 가지고 있는 기동 병참 도시의 ‘차원 좌표’를 손에 넣는다!

옐로스톤 초대형 게이트 ‘마력장’과 하이브리온 군단장의 ‘돌’을 빌리면 게이트를 열 수 있다.

도망친 허신을 추적하기 위해 자신과 마도 황제, 강철 도시의 노움들이 만들어 낸 기동 병참 도시행 게이트를!

그리고 기동 병참 도시의 설비면 돌아갈 수 있다!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자라나는 천공의 탑을 여행 중인 동료들이 있는 배로!

카카카카카캌-

워커 실트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웃음을 터트렸다.

“워커 님!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합니다! 저 청년, 천검 이세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케인 이사가 다시 한번 외치는 순간.

워커 실트는 고개를 휙휙 젓고 대답했다.

“야, 천검 내 절친이라니까!”

“공방 도시 절벽에선 백곰권으로 개싸움을 했었어!”

“모자랑 마스크로 얼굴 좀 가린다고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워커 실트는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쟤는 절대 ‘천검 이세기’가 아니다!”

* * *

워커 실트가 확신을 담아 선언하는 순간, 장갑 버스 앞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청년.

천검 이세기는 문득 동쪽 바위산을 바라봤다.

쐐애애액-

줄줄이 포탄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가고 있었다.

재앙급 마수와의 전투로 한발 늦게 몬스터 웨이브 발생을 알아채고 뒤를 쫓았다.

그러나 몬스터 웨이브가 향하는 방향이 푸저우시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저우시는 남중국의 군벌 수장들이 모일 도시.

어떻게 몬스터 웨이브 대응을 하는지 확인할 기회였다.

그래서 느긋하게 몬스터 웨이브를 쫓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이세기의 시선이 움푹 파인 분지로 향했다.

분지에서 만난 꼬맹이.

그 꼬맹이를 보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초인경에 달한 기감으로도 근원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온갖 힘이 뒤엉킨 육체!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지가 흐릿해져 깜박 사라지는 존재감!

이세기는 한눈에 알아봤다.

겉모습만 꼬맹이일 뿐 어린아이가 아니다!

게이트라 부르는 차원 통로에서 건너온 존재다!

‘설마, 전설의 요괴선, 마굴에 갇혀 있다는 마신인가?!’

바짝 긴장해 조심조심 말을 걸었다.

그리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 그 성품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꼬맹이는 요괴선도 마신도 아닌, 그냥 평범한 강자였다.

분명 자신보다 약하지만, 생사결을 펼치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

꼬맹이는 무공의 고수가 아닌 싸움의 강자였다!

그리고 그 성품은…….

하-

순간 헛웃음이 터지고 꼬맹이와 비슷한 성품을 지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공의 고수가 아닌 싸움의 강자.

자신보다 분명 낮은 경지지만, 전력으로 싸우면 승패가 짐작되지 않는 개싸움을 해야 할 강자.

이세기의 시선이 검대에 걸린 십자검으로 움직였다.

이 검혼 십자검을 건네준 사람, 자신의 친우 돌멩이!

방금 분지에서 만난 기이한 강자는 자신의 친우 돌멩이를 닮아 있었다!

이때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돌멩이와 다시 만나면 비무나 해 볼까?’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에 돌멩이 녀석의 얼굴이 그려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멩이는 어이없어 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툭 내뱉을 거다.

‘비무? 새끼야! 비무하고 싶으면 돈 가져와! 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하하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는 순간.

이세기는 빙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북동쪽 바위산 방향에는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해 달리는 헌터와 각성자들이.

남동쪽 바위 언덕에는 푸저우시 방어 부대가 마탄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자신이 달려올 필요도 없었다.

예전의 난장판은 거짓말인 듯, 남중국 각성자들과 군인들은 신속하고 안전하게 몬스터 웨이브를 처리하고 있었다.

도시의 치안이 잡혔고 외부의 위협에 대한 대응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연방 총선과 연방 의회 구성뿐.

천검 이세기가 남중국에서 할 일은 끝나고 돌멩이에게 친구로서 은혜를 갚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세기는 검대를 봤다.

십자검 옆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

주머니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 주머니 안에는 수십 마리의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를 사냥해 마침내 찾아낸 ‘내단’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남중국의 모든 군벌 수장이 모이는 회의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 회의의 대외적인 목적은 연방 총선 공동 선언문 작성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남중국 헌터 군벌이 찾아올 ‘대환단’을 회수하는 것!

이제 곧 친우가 건네준 무림의 무가지보 ‘대환단’에 ‘영물의 내단’이란 덤을 더해서 돌려줄 수 있었다.

이세기는 이제 알고 있었다.

게이트, 던전, 균열, 마수와 몬스터.

자신이 온 무림은 이 세계와 던전으로 연결된 세계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알았던 어린 돌멩이와 무림에서 만났던 젊은 돌멩이는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생, 현생, 후생.

사람의 인지로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그려내는 삼생의 인연!

‘돌멩이는 내 친구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어린 돌멩이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 외상으로 쌀을 사 왔던 이른 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삶은 그 끝이 정해져 있으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니…….’

한달음에 달려간 자신 앞에서 돌멩이 녀석은 마치 득도한 도사처럼 읊조리다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카캬캌- 나중에 갚는다니까! 전생, 현생, 후생 삼생의 인연이 아득하니. 현생에 안 되면 후생에 꼭 갚는다! 약속! 자, 오늘은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가 쏘는 쌀밥이다! 모두 박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한 솥 가득 흰 쌀밥을 지어 추운 겨울을 이겨 낸 동생들과 나눠 먹었다.

환한 미소와 웃음소리.

그리고 자신은 쌀값을 대신해 쌀집 아가씨와 10번 만나야 했다.

하-

헛웃음이 새어 나오는 순간 불현듯 말이 튀어나왔다.

“삶은 그 끝이 정해져 있으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니…….”

힘겨운 보릿고개에 외상으로 쌀을 가져와 밥을 지어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은 어린 돌멩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환단을 자신에게 건넨 훌쩍 자란 청년 돌멩이.

언제나 현명했던 친구의 말대로다.

전생, 현생, 후생.

아득한 삼생의 인과가 어떻게 얽혔던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니.

형이자 부모이며 스승이었던 어린 돌멩이.

그리고 젊은 돌멩이는 여전히 자신의 친구였다.

“…….”

이세기는 문득 고개를 들어 북동쪽을 바라봤다.

바위 언덕, 푸저우시, 그리고 바다를 지나 북동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나온다.

돌멩이 녀석이 있는 한국이.

남중국 연방 총선이 시작되는 그날이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이다.

돌멩이와 다시 만나는 순간의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대환단과 영물의 내단을 함께 내미는 순간 경악할 돌멩이!

그러나 경악은 잠시일 뿐이다.

곧 그 얼굴은 환희로 물들고 적예가 이름 붙인 비열한 악당 웃음을 터트리며 외치리라.

‘이세기 이 새끼! 네가 드디어 한 건 했구나! 카캬카카캌-’

“그래 내가 드디어 한 건 했다.”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순간 직접 보는 것처럼 그 표정이 그려지고,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이 새끼!”

“이거 진짜 소리가 들려오는 것…….”

피식 웃는 순간 이어지는 외침!

“시바! 헉, 허억- 이세기 미친 또라이 새끼!”

“……!”

상상이 아니라 진짜 목소리다!

돌멩이와 함께한 어린 시절, 대환단을 구하라고 명령한 최근!

수백 수천 번 들어 너무나 익숙한 절절한 분노와 울분이 가득 담긴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세기 이 새끼!”

바로 앞 암반 지대에서!

휘이이잉-

이세기는 반사적으로 기척을 죽이고 바람을 타고 달렸다.

그리고 곧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한 헌터가 물과 흙, 땀으로 엉망인 모습으로 연신 분통을 터트리며 달리고 있었다.

“이세기 또라이 새끼! 헉, 허억-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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