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04화>
‘이세기?!’
워커 실트는 강으로 시선을 돌리는 동시에 잽싸게 고글을 내리고 배율을 조정했다.
기잉, 기이이잉-
곧 한밤중인 강을 헤엄쳐 오는 각성자가 보이고,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며칠이나 남중국에 굴렀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천검의 이름 ‘이세기’는 어지간한 조직의 두목급은 모두 알고 있지만, 여전히 비밀!
이세기란 이름은 지금처럼 마경에서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강을 헤엄치는 각성자가 외치는 것 같은 수식어는 붙일 수 없다!
“……이세기 미친 새끼!”
‘이세기 미친 새끼!’
입에 착착 달라붙는 외침!
게다가 외침에 담긴 절절한 분노에서는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워커 실트는 직감했다.
지금 저기서 헤엄쳐 오는 각성자는 자신의 절친이자, 전우 이세기와 얽혔다!
깨달음의 순간 강을 향했던 고개가 빙글 회전했다.
강변에 처박힌 장갑 버스.
장갑 버스가 굴러떨어진 숲.
갑자기 나타나 섬광을 터트린 각성자!
그리고 그 각성자를 따라 밀려가는 몬스터 웨이브와 그 뒤를 쫓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저 각성자가……?!’
천검 이세기를 찾아 푸저우시로 왔는데 도시에 들어가기도 전에 만났다고?!
너무나 공교로운 상황이다!
하지만 주위로 전염되는 불운과 강을 헤엄쳐 오며 분통을 터트리는 헌터가 말하고 있었다!
지금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하는 각성자가 바로 자신의 절친이자, 전우 천검 이세기라고!
남중국을 그렇게 헤매도 만나지 못한 천검 이세기.
그런 이세기를 푸저우시 마경에 도착하자마자 만났다.
게다가 그 이세기의 동료로 보이는 각성자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행운이 연속되는 상황!
지금 동쪽으로 달리는 이세기만 쫓아가 만나면, 기동 병참 도시의 차원 좌표를 손에 넣고 마침내 배로 돌아갈 수 있다!
카카카카카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 혹시 이세기가 아니라면?!’
예전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뒤를 쫓아 확인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무조건 전진만을 외치던 예전 워커 실트가 아니다.
가짜 레이, 무겐다흐와 에코를 쫓으며 개같이 구르고 굴러 용의주도함을 손에 넣었다!
지금 자신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 당장 몬스터 웨이브를 유인한 이세기(추정)를 쫓아가 확인한다!
2. 강을 헤엄쳐오는 이세기(추정)의 동료를 확인한 후에 움직인다!
결론은 순식간에 났다.
몬스터 웨이브를 쫓아갔는데 자신이 찾는 이세기가 아니면 모든 계획이 엉망진창이 된다!
공방 도시 절벽 결전.
무겐다흐, 에코 추격전.
부산 해운대 게이트 공방전.
모두 무작정 직진하다가 난장판이 됐다!
급할수록 안전하고, 용의주도하게!
강을 헤엄쳐 오는 이세기의 동료를 만나 진짜 이세기인지부터 확인한다!
마음의 결정을 한 순간, 워커 실트는 전복된 버스 안에 외쳤다.
“케인! 야! 케인 움직일 수 있냐?!”
“네! 멀쩡합니다! 장비 챙겨 바로 나가겠습니다!”
“좋아! 바로 나와서 강변으로 달려와! 만날 사람이 있다!”
“네? 만날 사람이면……?”
“내 절친 동료가 나타난 거 같다!”
워커 실트는 장갑 버스에서 뛰어내려 강변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야, 여기야! 여기로 오면 된다! 잠깐 기다려 밧줄 던져 줄게!”
파아아앙-
공구 벨트에서 튀어나온 밧줄이 압축공기 폭발음과 날아가고, 강 위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잡았어!”
워커 실트는 벨트에 걸린 다목적 와이어건에 밧줄을 걸고 트리거를 당겼다.
기리리리릭-
밧줄은 순식간에 감겼고 강을 헤엄치던 각성자는 곧 강변에 도착했다!
“헉, 허억- 이세기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흐어, 흐어어-.”
강변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는 각성자.
워커 실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야, 너 지금 외치는 이세기가 혹시…….”
“아, 감사…….”
김태희 대령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둠 속, 게다가 미친 듯이 헤엄을 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에게 밧줄을 던져 주고 와이어건으로 강변까지 당겨 준 사람!
10살 남짓한 꼬맹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어떻게 마경에……? 혹시 저 장갑 버스 타고 온 거야?! 부모님은 저 안에 계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는 김태희 대령.
워커 실트는 아차 싶었다.
너무 마음이 급해 깜박했다.
자신은 지구인이 보기에 꼬맹이!
이 모습으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예전이라면 바로 백곰권부터 펼쳤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용의주도 그 자체!
게다가 눈앞의 녀석은 절친 이세기의 동료일 수도 있었다!
잽싸게 빙글 고개를 돌리자 해결 방법이 보였다!
으아아악-
악을 쓰며 전복된 장갑 버스 문을 잡고 기어 올라오는 케인 이사!
“잠깐만 기다려!”
“잠깐, 너 어디 가려고?!”
워커 실트는 한달음에 장갑 버스로 달려가 외쳤다.
“야! 빨리 케인! 빨리빨리 튀어나와! 급해!”
“네, 네! 워커 님!”
오너의 긴박한 외침에 케인 이사는 전력을 다해 몸을 끌어올리고 바로 버스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케인 이사가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강변을 가리키며 말을 쏟아 내는 오너.
“저기 강에서 건진 각성자 보이지? 제가 내 절친 동료 후보다!”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세기의 동료라고!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물에 흠뻑 젖은 채 비틀비틀 일어나는 헌터가 보였다.
박살 나 프레임만 남은 강화 헬멧.
마력장이 다했는지 빛을 잃고 곳곳이 찢어진 강화 전투복.
잠시도 쉬지 않고 24시간은 도망친 사람처럼 피곤이 겹친 얼굴과 부들거리는 다리.
그리고 몰아쉬는 호흡 사이로 이를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허억- 이세기 미친 새끼!”
“…….”
케인 이사는 확인했다.
“이세기. 워커 님의 절친. 그러니까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아! 내 절친이 바로 천검 이세기다. 저 녀석 내 절친의 동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빨리 가서 확인해라. 난 꼬맹이 모습이라 확인이 안 된다.”
눈을 빛내는 워커 실트.
케인 이사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저 각성자,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한테 ‘이세기 미친 새끼.’라고 욕하고 있는데…… 동료라고요?”
“바로 그거야!”
워커 실트는 희열이 깃든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고 얼굴 바짝 붙이고 말을 쏟아 냈다.
“저 분노 어린 외침! 저게 바로 증거다! 저 녀석 내 절친의 동료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
“내 절친이 사람은 좋은데, 검은 마물이랑 잘못 얽혀서 재수가 없다. 그래서 내 절친 동료가 되면 저렇게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알았지? 빨리 달려가 확인해라! 맞으면 당장 추적 시작해야 한다!”
“…….”
오너와 만난 후 항상 그러했듯 이번에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너와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 이사의 숙명!
케인 이사는 한달음에 달려가 직설적으로 질문했다.
“방금 외치신 ‘이세기’가 천검 이세기입니까?!”
그러자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나 숨을 고르던 김태희 대령이 고개를 들었다.
눈에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 광화문 태성 빌딩에서 남중국 푸저우시까지 어제와 오늘 사이 일어난 수많은 사건이 머리를 파파팟 스쳤다!
2일 전 광화문 대규모 검거 작전을 계획 중이던 자신에게.
2일 후 남중국 마경에서 죽을 듯이 헤엄치게 될 거라고 말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닌, 어제와 오늘 2일 동안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거대한 난장판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바로!
NTM_CHS!
가짜 최후식!
자칭 원조 이세기다!
그런데 지금 그 ‘이세기 새끼’가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 이세기’냐고 묻는 사람이 나타났다!
김태희 대령은 100%의 확신을 담아 외쳤다.
“절대! 이세기 새끼는 절대로 천검이 아닙니다!”
* * *
강에서 건져낸 헌터가 푸저우시로 떠난 강변.
워커 실트는 쪼그려 앉은 채, 맛이 간 개조 스마트폰에 마력을 밀어 넣으며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내 절친이 맞는 것 같았는데…… 원조 이세기라고?”
워커 실트는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간 동쪽 바위산 방향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확인해 볼까?’
문득 떠오른 생각.
하지만 바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화요일!
천검 이세기와 남중국 군벌 수장들이 모두 모이는 수요일까지는 불과 하루 남았을 뿐이다!
미궁 악어 7호의 도착이 늦어지는 지금, 더는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수배를 건 녀석들을 피해 푸저우시로 은밀히 들어가고,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과 만나게 해 줄 인맥을 뚫는데 하루는 너무나 촉박한 시간이다!
지금은 촉이 아닌 이성과 계획을 따라야 할 때다!
마음의 결정을 하는 순간.
케인 이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워커 님. 장갑 버스 준비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워커 실트는 벌떡 일어나 마력을 밀어 넣던 개조 스마트폰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곧 몬스터 웨이브 마력장에 맛이 갔던 추적기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지도 위에서 점멸하는 빛!
예상 도착 시각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은 미궁 악어 7호.
혹시 문제가 생겼나 걱정한 미궁 악어 7호가 느리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과 케인 이사가 대기 중인 강변을 향해서!
지금 이동 속도면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한두 시간!
원조 이세기란 각성자가 몬스터 웨이브를 끌고 간 덕분에 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
“됐다! 7호가 오고 있다! 장갑 버스부터 회수한다!”
워커 실트는 장갑 버스 차체에 마석을 붙이고 마력 회로를 활성화했다.
곧 장갑 버스 표면에 숨겨진 마력 회로가 드러났다.
파스스스스-
마력광이 차체를 통째로 삼키는 순간.
츠츠츠츠츠츠-
장갑 버스는 서서히 그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케인 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이 모습을 봤다.
나이트 아머의 핵심 마력 회로, 거대화 마력 회로다!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듯한 모습!
이 마력 회로는 나이트 아머의 엄청난 가격의 7할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런 마력 회로가 장갑 버스에 새겨져 활성화됐다.
경차에 슈퍼카 아니, 전차 엔진을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
게다가…….
“이 마력 회로가 장갑 버스에도 적용 가능했던 건가요?”
워커 실트는 스마트폰을 살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당연히 되지.”
“아니, 분명 연방 정부에서 들어온 요청에는 나이트 아머 말고는 마력 회로 적용이 안 된다고…….”
“구라였어.”
“네?”
“하도 귀찮게 굴어서 적당히 구라 친 거야. 장갑 버스 축소 다 끝나면 헌터용 배낭에 담아라! 난 7호 좀 확인할 테니까! 이상하네! 신호를 계속 보내는데도 왜 속도가 그대로지? 마력 엔진 출력은 괜찮은데……?”
워커 실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돌연 탄성이 들려왔다.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 이야기 속 외발 도깨비 상자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이 커다란 버스가 작아지다니!”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마력 회로가 활성화된 장갑 버스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청바지에 셔츠.
푹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허리에 걸린 롱소드를 제외하면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의 청년.
그런 청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아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몸을 돌린 찰나의 순간에!
“누구냐?!”
워커 실트가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청년은 가볍게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이세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