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97화>
부아아아앙-
민장강을 질주하는 고속 보트 위.
쾅, 쾅, 콰아-
연이어 굉음이 터지고 강을 환하게 밝히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고속 보트 운전대를 잡은 김태희 대령은 섬광이 터지는 사이사이 주위를 살폈다.
보트, 어선, 유람선 온갖 선박이 강 위를 질주하고!
지상에서는 장갑 SUV, 자전거, 버스 온갖 탈 것과 달리는 각성자들이 바글거렸다!
이세기의 계획대로!
수만의 각성자들이 어그로에 끌려 정신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쾅, 쾅, 콰아-
태성 빌딩에서 이미 한번 겪었던 기술.
이세기의 양손에서 터져 나오는 섬광과 굉음을 따라서!
김태희 대령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세기 녀석 도대체 어떤 계통이야? 오러, 마력, 초능력?!’
국가 헌병대에서 수많은 각성자를 만난 자신조차 각성 계통을 알아볼 수 없는 기술!
아니, 생각해 보면 이세기가 펼치는 모든 기술이 기존 각성자들의 기술과 비슷한 듯 달랐다.
근접 박투와 도주는 육체 계통.
강철봉을 사용하는 기술은 무공 계통.
목소리와 섬광을 터트리는 기술은 마력 계통과 비슷하다.
그러나 하나같이 각 계통의 핵심 특징!
육체 각성자의 내구도, 무공 각성자의 스킬, 마력 각성자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세기는 여섯 계통으로 나눠진 각성력 범주를 벗어난 각성자였다!
그리고 김태희 대령은 여섯 계통을 벗어난 각성자를 한 명 더 알고 있었다.
역대 최고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님!.
대부분의 사람은 검은 폭풍이 초능력 계통의 전투 예지 능력자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폭풍이 전투 예지 능력자란 것 자체가 위장이었다!
5연발 리볼버로 보여 준 러시안룰렛!
[1/5, 1/4, 1/3, 1/2 1/1], 100%의 확률이 빗겨 나고.
[0/0], 0% 절대 발사될 리 없는 6번째 탄환이 쏘아진다!
그 어떤 전투 예지 능력자도 불가능한 검은 폭풍만 가능했던 신기!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세영 특임 소장님의 능력은 전투 예지가 아니라 ‘확률 변수 고정’이었다.
결과를 예측하는 게 아닌, 확정된 결과를 향해 과정을 쌓아 나가는 능력!
그야말로 신의 주사위!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능력이었다.
검은 폭풍은 치트키나 다름없는 이 능력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내고, 성공 확률 제로의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켜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런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님과 너무나 비슷한 각성자가 지금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
이세기!
그리고 이세기와 함께 나타난.
검은 폭풍의 장총신 리볼버!
등급외 마력 각성자로 추정되는 꼬맹이!
돌연 튀어나온 재앙급 투명 마수!
북한산의 수호자 뽀미의 후손으로 보이는 새끼 고양이까지!
단 하나만 나타나도 난리가 날 것들이 이세기가 나타나는 순간 줄줄이 튀어나왔다.
‘이세기 녀석, 정체가 뭐지?! 이세영 특임 소장님과는 무슨 관계야?!’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질문이 다시 한번 떠오른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이세기, 이세영!
성, 중간 이름이 같다!
만약 이게 항렬자라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려 살핀 이세기는 20대 초반!
하지만 고위 각성자는 외모만으로 나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만약, 이세기가 노화 역전 각성을 했다면?!’
이 모든 것이 말이 되는 설명 하나가 떠올랐다!
‘설마…….’
깨달음의 전율에 몸이 떨리는 순간, 불쑥 옆에서 튀어나온 손이 운전대를 잡았다.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남매?!”
“남매? 갑자기 뭔 소리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이세기.
김태희 대령은 반사적으로 이세기의 얼굴을 훑어 아직도 생생한 기억 속, 이세영 특임 소장님과 비교했다.
결론은 바로 나왔다.
이세영 특임 소장님이 북극여우라면.
이세기는 머리에 눈이 쌓인 호랑이다.
“전혀 안 닮았는데?!”
“뭔 소리야? 이제 내가 운전할 게. 수고했다.”
김태희 대령은 흠칫 놀라 운전대에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뭐지? 너 굉장히 의심스러워……?”
“뭐, 뭐 뭐가 의심스럽다고?!”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 순간, 피식 웃는 이세기.
“……됐고. 선미로 가라. 적당히 거리 유지해야 하니까 뒤에 녀석들 너무 가까워지면 그 문화재로 떼어 내라.”
이세기의 시선이 홀스터, 검은 폭풍의 리볼버 레플리카에 닿았다.
마탄을 쏴서 붙지 못하게 만들라는 뜻!
국가 헌병대의 존재 의의 자체를 무시하는 말!
순간 반사적으로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한테 총을 겨누라고? 새끼야! 그게 국가 헌병대 연대장한테 할 소리냐?!”
“총이 아니라 문화재라며? 야, 그리고 태성 빌딩에서는 그 문화재를 나한테 겨누고 빵야, 뺭야- 잘만 쐈잖아?! 기억 안 나?!”
“슬라임 탄은 마탄 아니라니까!”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 마탄 아닌 ‘슬라임 탄’을 총이 아닌 ‘문화재’로 쏘라고. 오케이?”
“…….”
말문이 막히는 순간 툭, 툭- 던져지는 말들.
“야, 빨리빨리 움직여! 뭐야, 싫으면 내릴래? 당장 저기 강변에 내려 줄까?”
이세기는 씩 웃으며 온갖 차량과 각성자들이 뒤엉켜 밀려오는 강변을 가리켰다.
‘이세기, 치사한 새끼…….’
김태희 대령은 선미로 달려가 리볼버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외쳤다.
‘난, 절대 협박에 굴복한 게 아니다!’
‘이건 다 커다란 큰 계획을 위해서다!’
얼굴, 분위기, 각성력, 모든 게 너무나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
이세기, 이세영!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낼 때까지는 절대 내릴 수 없었다!
특히 이세기 녀석의 실체를 안 지금은 더욱더!
이세영은 힐끗 보트 운전대를 잡은 이세기를 봤다.
-강변 산책로를 달리자 우회한 각성자들이 저지선을 펼쳤고!
-등평도수로 강을 건너려는 계획은 시작하자마자 실패했다!
-게다가 1/5 확률로 찍은 정예 각성자들은 괴수 레이드 팀!
……
쉴 새 없이 터진 불운한 사건들.
그 결과 이세기의 실체를 알게 됐다.
이세기 녀석은 진짜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강 속에서 마수가 튀어나와 배가 뒤집히고!
헌터 군벌이 튀어나와 사로잡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이 재수 없는 이세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님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낼 때까지!
김태희 대령은 슬라임 탄이 채워진 리볼버를 손에 쥔 채로 힐끗힐끗 이세기를 살폈다.
이세영 특임 소장님이 북극여우라면 이세기는 호랑이!
눈매, 입가, 표정, 기질, 분위기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이름, 리볼버, 여섯 계통을 벗어난 능력까지, 이 모든 게 우연히 얽힐 리는 없었다.
이세기는 분명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님과 무언가 관련이 있었다!
‘반드시 알아낸다!’
마음속으로 다짐할 때, 이세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너, 왜 계속 따라오려는 거야?”
‘새끼야! 네가 너무 재수 없어서! 혹시나 잡힐까 봐 그런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세기 새끼의 잔머리면 이렇게 말하는 순간 순식간에 호구가 잡히고 2, 3배로 구를 테니까!
김태희 대령은 잽싸게 또 다른 진실을 말했다.
“꼭 해야 할 질문이 있어서 그래.”
“잘됐네. 배 위에 우리밖에 없잖아? 말해 봐.”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 대답.
“…….”
‘그냥 지금 물어볼까?’
김태희 대령은 한참을 고심하다가 문득 뒤돌아봤다.
대형 길드, 광역 폭력조직, 대기업 보안팀, PMC.
엄청난 수의 각성자가 강과 지상을 달려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도 평소의 남중국이라면 꼭 일어났을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마탄 사격!
너무 정신없이 모든 게 진행돼서 깜빡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남중국이다.
점점 커지는 마경에 안정화 권역이 밀리고, 도시는 개판으로 변해 가던 남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그러나 다시 온 푸저우시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도시 전체의 질서가 유지되고 곳곳에 관광객이 있었고, 정보상에 쫓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보트를 타고, 강을 달려 도주 중인데도 단 한 발의 마탄도 쏟아지지 않았다.
이 모든 변화의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천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남중국에 나타난 천외천의 등급외 각성자!
자신이 이세기에게 할 질문도 그런 등급외 각성자에 관한 질문이었다.
사상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이자 등급외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
한 번도 공식적으로는 나타난 적 없는 등급외 마력 각성자.
등급외 각성자에 관한 정보를 쉽게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특히 검은 폭풍과 무슨 관계인지 모를 이세기에게는 더욱더!
그렇기에 김태희 대령은 깊은 고심 끝에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난장판이 모두 끝나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너 설마……! 야, 난 보증은 절대 안 선다!”
와르르 무너지는 진지한 분위기!
김태희 대령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새끼야! 그런 거 아냐! 질문 하나만 할게! 거짓 없이 사실만을 말한다고 약속해 줄 수 있냐?!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순간 이세기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
“뭐?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 어디서 개수작을! 야, 솔직히 나 혼자였으면 더 빨리 튀었어!”
“……와, 와!”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말문이 컥 막히고 울화통이 치솟았다.
더 분한 건 이세기 새끼의 저 말을 반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세기는 사기, 도주, 잔머리의 달인!
자신이 없었다면 이미 각성자의 해일을 끌고 마경으로 튀었을 거다!
‘치사한 새끼! 하, 시바! 어떡하지?! 마석을 준다고 해 볼까? 돈을 좀 찔러 주면?!’
김태희 대령은 대안을 찾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
-자신도 빌려온 물건이다!
한 10억쯤 찔러 준다면?!
-이세기 같은 강자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할 것이다!
‘하, 시바! 이걸 놓쳤다니!’
같이 도망 좀 쳤다고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거로 생각해서는 안 됐다.
당연히 질문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건넬 수 있는 합당한 대가는 하나뿐이었다.
김태희 대령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강철 건틀릿, 강철혼을 낀 손을!
이때 천문석은 마음속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치와와 녀석! 카캬카카캌-.”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로 내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였다!
강철 건틀릿을 넘기고 질문을 하겠다는 생각!
김태희 대령과는 처음에는 적으로 만났지만, 서호 공원, 민장 호텔, 짐꾼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것!
천문석은 손을 뻗어 강철 건틀릿을 낀 손을 툭 쳤다.
“야, 됐어 넣어 둬. 농담이다. 모든 일 마무리되면 질문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 거짓 없이 사실만을 대답해 줄게.”
“어……?”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김태희 대령의 눈이 커질 때.
천문석은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세기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이세기. 너 이 새끼……!”
김태희 대령의 떨리는 목소리.
“야, 벌써 감동하지 말고. 다 끝나고 감동해라. 뭐, 내 완벽한 계획 덕분에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카캬카카캌-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하하하하핰-
김태희 대령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치켜세웠다.
“당연하지!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감이 왔어! 완벽한 계획이다! 쟤들이 다 낚였잖아!”
30분 후!
두 사람을 태운 고속 보트와 그 뒤를 따르는 각성자의 해일은 텅 빈 민장강 수상 초소를 지나 안정화 권역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속 보트가 강변에 멈춰 서는 즉시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은 불빛 한점 없는 거대한 숲, 마경에 도착했다.
“전력으로 달린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파사사사사삭-
두 사람이 거센 수풀을 헤치고 마경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거대한 각성자의 해일이 밀려왔다.
“저기다!”
“마경 안으로 달리고 있다!”
“바로 뒤를 쫓자!”
“꼬리를 잡을 수 있다!”
“멈춰! 잠시만 기다려?!”
“뭔가 이상해! 군인들이 없어!”
……
정신없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마경에서 오늘 하루 수십 번 보고 들었던 섬광과 외침이 터져 나왔다.
쾅, 쾅, 콰아-
[최후식이 여기 있다!]
[선착순 1등만 대환단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준다!]
[카캬카카카캌-]
개인이 집단이 되는 순간 이성과 판단보다 감성과 충동이 앞서게 되는 법!
게다가 시가지와 달리 우회할 도로도 자동차도 없는 마경이다!
숲을 가로지르는 저 불빛을 잡는 순간, 최후식과 대환단이 손에 들어온다!
지금 할 일은 심장이 터져라 달리는 것뿐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수만의 각성자들은 휴먼 웨이브라는 말 그대로 거대한 해일이 되어 마경을 향해 밀려갔다!
이 순간 마경 서쪽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장갑 버스를 타고 질주하는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
“이거 마력 엔진이 왜 이래?!”
“설마 문제가 생긴 건가요?! 이제 곧 푸저우 인근 마경입니다!”
“아니, 장갑 버스는 괜찮아! 미궁 악어 7호 마력 엔진 출력이 갑자기 강해졌어! 계획대로다! 이대로 달리면 된다!”
두드드드드드드-
질주하는 장갑 버스 뒤를 쫓아 밀려오는 거대한 흙먼지와 몬스터 웨이브!
이건 우연도 불운도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인과였다.
천문석이 그동안 무심히 던졌던 수많은 스노우볼.
그 스노우볼들은 아득한 하늘의 인과를 따라서 데굴데굴 굴렀다.
무림 던전, 공방 도시, 세기말 대한민국, 계단 산, 적염성, 열사의 사막, 해운대 게이트를!
그리고 처음 던질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거대한 스노우볼이 되어 돌아왔다.
워커 실트와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오고 있었다.
[모두 힘을 내라!]
[여기 최후식이 있다!]
[카캬카카캌-]
천문석과 그 뒤를 따라 몰아치는 각성자의 해일을 향해서!
천문석과 워커 실트.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휴먼 웨이브와 몬스터 웨이브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밀려오고 있었다.
푸젠 군벌이 저지선을 펼친 푸저우시 인근 마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