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96화>
김태희 대령은 앞뒤로 헌터용 배낭을 메고, 로프로 꽁꽁 묶은 캐리어 3개를 들고 지붕 위를 달리고 있었다.
“헉, 흐어억-.”
터질 듯한 심장과 끊어 질듯 가쁜 호흡!
배낭과 캐리어의 무게가 전신을 짓누른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잠시라도 속도를 늦추는 순간, 미친 듯이 달리는 이세기를 놓칠 테니까!
이때 지붕이 끝나고, 이세기가 가속하는 게 보였다.
타다다닷-
단숨에 가속해 지붕 끝에서 도약!
타탓, 탓탓-
가로등, 베란다를 연속으로 밟고 뛰어!
싸사사삭-
가스 배관을 잡고 건물 옥상에 기어올라 빙글 몸을 돌린다!
‘저지른다! 또 저지를 생각이다!’
직감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전력을 다해, 그러나 넓게 퍼져 나가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외쳤다.
“그만 멈……!”
그러나 미쳐 말을 끝맺기도 전에 등 뒤에서 폭죽 터지듯 외침이 울려 퍼졌다.
[NTM_CHS!]
[여기 최후식이 있다!]
[대환단을 원하면 달려라!]
……
순간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외침들!
“저기다! 건물 위다!”
“최후식이 서쪽으로 빠져나갔다!”
……
애써 거리를 벌렸는데 스스로 위치를 밝힌 상황!
정신없이 달리는 발소리가 등 뒤에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세기 이 미친 새끼! 으아아악-.”
김태희 대령은 분통을 터트리면 지붕, 가로등, 베란다를 연속으로 밟고 뛰어 가스 배관을 기어올랐다.
해가 지고 시계가 확 줄어든 상황!
게다가 옥상, 가로등, 지붕, 베란다, 가스관 같은 쉽게 떠올리기 힘든 경로로 달렸다!
원래라면 진작에 꼬리를 끊고 도주에 성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세기 이 미친놈은 추적자들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외쳤다.
지금처럼!
[빨리빨리 따라와! 늦으면 대환단 먹어 버린다!]
우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올 때.
김태희 대령은 캐리어를 팔에 걸고, 미친 듯이 가스 배관을 기어올라 옥상에 도착해 외쳤다.
“미친놈아! 헉- 제발! 그만하라고! 허억- 쫓아오잖아!”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라니까? 그래도 잠시 숨 좀 고르고 갈까?”
씩 웃더니 빙글 몸을 돌려 손을 휘젓는 이세기.
무언가 북동쪽으로 휙- 날아가고 곧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뭐야?! 왜 이리 느려?! 전력으로 달려라!]
[나를 잡으면 대환단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겠다!]
[더 빡세게 최선을 다해 달려라! 대환단이 기다린다! 카캬카카캌-]
“북동쪽이다!”
“도로 방향이다!”
“순간이동 능력자?! 뭐가 이렇게 빨라!”
다급한 외침과 함께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북동쪽으로 멀어졌다.
“…….”
김태희 대령은 멍하니 이세기를 바라보다 물었다.
“너 방금 멀리서 목소리 터지는 기술. 그게 컨트롤이 되는 거였어?”
“뭐, 이거?”
손을 입가에 가져가 뭐라 말하고 휙 뿌리는 순간.
무언가 손에서 튀어나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그리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외침.
[대환단 술래잡기다! 카캬카카캌-]
“……!!”
김태희 대령은 깨달았다.
이세기, 이 녀석은 자유자재로 공간을 넘어 사방에서 외침을 터트릴 수 있었다!
즉, 당장이라도 뒤를 쫓는 각성자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할 수 있는데도 지금껏 일부러 끌고 달렸던 거다!
‘이세기 이 또라이 새끼!’
가슴속에서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분노!
이세기는 사기꾼이 아니라 그냥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이 난장판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 완전 미친놈, 이세기만이 알고 있다!
검은 폭풍과 등급외 마력 각성자의 행방을!
‘시바시바시바! 하필이면 이런 놈이랑 얽혀서는!’
마음속으로 울분을 터트릴 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야, 뭐야? 숨 고르라니까 왜 얼굴이 빨개지냐? 지쳤냐? 배낭이랑 캐리어, 내가 들어 줄까?”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일 때 보였다.
악당처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세기가!
‘이 새끼 설마……?’
“아니면 그냥 비밀 거점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시가지를 가리키며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이세기.
“내가 얘네들 유인하고 있어서 시가지는 널널할 거야. 어때?”
“……!”
너무나 혹하는 제안!
어젯밤 푸저우시 정보상을 찾아다니다가 사고가 터져 도망치는 걸 시작으로. 서호 공원에서 그토록 찾기를 바라던 이세기와 맞닥뜨리며 온종일 난장판에서 굴렀다.
17시간 시간 이상 정신없이 싸우고 도망치고 뚫고 달린 상황.
체력은 간당간당하고 각성력도 거의 바닥!
빌려온 최상급 정제 마석은 몇 개나 사용했는지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 지금 이세기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하게 들렸다.
‘지금이라도 비밀 거점으로 빠져서 기다리고 있을까?’
배낭, 캐리어를 인질로 잡았고 비밀 거점에는 이세기의 동료도 있다!
게다가 이세기는 사기꾼에 미친놈이지만 신의가 있었다!
동료를 버리고 튈 녀석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비밀 거점으로 빠지면 이세기는?’
“야, 나 떠나면 너는 어떡하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 뒤쫓는 애들, 저기 보트 타고 민장강 상류 마경으로 유인해서 꼬리 끊은 다음에 거점으로 갈게.”
편의점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사 오겠다는 것처럼 가볍게 말하는 이세기.
“…….”
짧은 침묵 후 김태희 대령은 질문했다.
“마경? 그 몬스터 나오는 마경?”
“어.”
“뒤쫓는 애들을 유인한다고? 그러니까 여기 바글바글한 각성자 수만 명을 전부다?”
“맞아.”
“푸저우 안정화 권역 밖에 있는 마경까지?”
“그렇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기.
김태희 대령은 질문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수만 명의 각성자들을 마경까지 유인한 다음에. 마경에서 꼬리를 끊고, 도시 안 비밀 거점으로 돌아오는 게 계획이란 거지?”
“맞아! 그게 내 계획이야!”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기.
짧은 침묵.
“…….”
허탈한 웃음.
하, 하하하-
그리고 분노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새끼야! 뭘 그렇게 돌아가! 그냥 지금 비밀 거점으로 가면 되잖아! 그냥 계획 변경해!”
“안 돼! 안 바꿔! 절대 안 돼!”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부하는 이세기!
“……!”
말문이 컥- 막히고, 깊은 빡침이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를 때.
이세기는 피식 웃으며 툭- 말을 던졌다.
“선착장에서 애들 대충 다 빠졌네. 야, 빨리 결정해. 같이 갈 거야? 아님, 캐리어랑 배낭이라도 내가 들까?”
“…….”
“야, 빨리빨리 정해!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몰라?! 열까지 세고 출발한다! 일이삼사……!”
‘어떻게 하지? 가? 말아?! 넘겨? 말아?!”
파파파팟-
김태희 대령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육칠팔구십! 출발!”
그리고 이세기가 빙글 몸을 돌려, 주저하지 않고 달리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그 뒤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시바시바! 이세기 이 치사한 새끼!’
이세기를 마경으로 혼자 보낼 수도, 인질로 잡은 짐을 건네줄 수도 없었다!
이번 일에 걸린 건 상상을 초월하는 돈, 이권 같은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게이트 전쟁의 영웅 검은 폭풍과 등급외 마력 각성자의 행방이다!
혹시라도 이세기가 뒤를 쫓는 각성자들에게 잡혀 푸젠성 군벌에게 끌려간다면?!
배낭과 캐리어를 넘겼는데 이세기가 비밀 거점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주 작은 위험성도 감수할 수 없었다!
처음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잡으러 온 이세기를 역으로 자신이 지켜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닥칠 줄은!
김태희 대령을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이세기를 따라 달렸다.
‘뭐가 이렇게 거지 같아! 으아악-.’
* * *
천문석은 가로수, 베란다, 창문턱을 밟고 뛰어 가로등을 잡고 주르륵- 미끄러져 도로에 내려왔다.
뒤를 쫓던 각성자들은 모두 기탄에 실린 외침에 유인된 상황!
선착장까지 뻥 뚫린 도로가 나타났다.
예상 그대로!
카캬카캌-
천문석은 바로 선착장을 향해 달렸고,
“같이! 헉- 같이 가 새끼야!”
김태희 대령은 숨을 몰아쉬며 캐리어를 끌고 따라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선착장에서 고속 보트 한 척이 민장강으로 빠져나왔다.
“헉, 흐억, 흐어억-.”
김태희 대령이 갑판 위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쉴 때.
천문석은 민장강 중앙으로 보트를 몰며 주위를 훑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민장강!
구경꾼을 태웠던 배들은 해가 지며 이미 사라진 상황.
강은 텅 비었고, 환하게 불이 밝혀진 강변에선 여전히 혼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어디야?!”
“최후식 어디냐?!”
“안 보여! 이쪽도 없다?!”
“이 새끼 어디로 튄 거야?!”
“시가지! 도시로 빠진 거 아냐?!”
……
강변에 가득한 불빛이 하나둘 시가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김태희 대령이 시가지로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흩어지고 있다!
“됐다! 야, 이대로 빠져나가면 되겠다!”
어느새 다가온 김태희 대령이 환호하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야, 또 뭔 짓을 하려고…… 하-.”
김태희 대령이 탄식하는 순간.
천문석은 강변을 살피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아직 꼬리를 끊을 때가 아니다.
만약 지금 여기서 꼬리를 끊는다면?
뒤를 쫓던 수만의 각성자들이 푸저우 시가지로 쏟아져 수색을 시작할 거다.
반면 안정화 권역 밖 마경에서 꼬리를 끊는다면?
각성자들은 푸저우 시가지가 아닌 마경을 수색하게 된다.
당연히 푸저우 시가지는 텅텅 비게 되고.
한경석 흔적 찾기, 비밀 거점 숨어들기, 한경석 픽업 모두 간단히 해결된다.
즉,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보트를 타고 빠져나가선 안 된다.
“나 대신 운전대 좀 잡아줘!”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김태희 대령이 깊은 탄식과 함께 운전대를 잡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야, 걱정할 거 없어. 다 계획대로야. 이제 다 끝났어. 쟤들 유인해서 민장강 상류까지 이동한 다음에! 마경에서 꼬리 끊고 잽싸게 비밀 거점으로 돌아오면 모두 끝난다! 어때 간단하지?”
“…….”
김태희 대령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성으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직감이 지금 당장 외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 마!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나 김태희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천문석은 갑판에 올라 내력을 실어 강변을 향해 외쳤다.
[여기다!]
[강! 민장강 한가운데다!]
[최후식이 배를 타고 도망치고 있다!]
……
“야, 시선 돌리지 마라! 섬광 터진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셋을 세고 손을 들어 굉천수를 살살 터트렸다.
쿵, 번쩍-
쿵쿵, 번쩍-
……
굉천수의 섬광에 깜깜한 강이 환하게 밝혀지고, 곧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이 순간 천문석은 다시 외쳤다.
[민장강 위다!]
[최후식이 배를 타고 튀고 있다!]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이 탄 고속 보트가 섬광과 함께 민장강 상류를 향해 달리고.
부아아아아앙-
선착장에서 쏟아진 배들과 강변과 도로에 흩어진 각성자들이 섬광을 따라, 그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강 위에는 지상처럼 저지선을 펼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변수는 없다.
이대로 민장강을 거슬러 마경에 도착해 수만의 각성자가 뒤엉킨 난장판을 만들고, 잽싸게 꼬리를 끊고 도망치면 된다!
비밀 거점으로 몰래 돌아와 마혁진이 추적하고 진교은의 분석한 장소에서 한경석을 픽업하면, 이번 남중국 미션은 클리어다!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환호를 담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 웃음소리를 따라 수만의 빛무리가 질주했다.
천문석과 빛무리는 민장강 상류, 푸저우 안정화 권역 북서쪽 마경으로 움직였다.
계획대로!
그러나 뒤를 따르는 빛무리 사이에는 천문석이 예상하지 못한 불청객이 끼어 있었다.
촤아, 촤아아-
흑갈색 암석 갑각을 드러낸 채 강을 거슬러 오르는 미궁 악어 7호.
미궁 악어 7호의 갑각 사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
그런 파티마의 품 안에 웅크려 쿨쿨 잠든 각성 동물 용용이와 어린 하늘고래 퐁퐁이.
파티마, 용용이, 퐁퐁이.
미궁 악어 7호는 셋을 태운 채 점점 더 빠르게 가속하고 있었다.
천문석과 수만의 각성자가 향하는 목적지.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오는 마경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