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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93화 (99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93화>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모두가 마경으로 모이고 있을 때.

제주도에서 출발한 비행기 한 대가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비행기에선 간만에 작업복을 벗고 청바지에 셔츠를 입은 여행객 한 명이 내렸다.

장강 유통 장민의 부탁으로 제주도를 거쳐 남중국 푸젠성까지 온 장철 헌터였다.

“다음 목적지가…….”

장철 헌터는 스마트폰으로 장민이 보내 준 목적지를 확인하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민장 호텔로 가 주세요.”

택시가 푸저우 시가지를 향해 달릴 때.

장철은 택시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했다.

이세영 포획 작전 실패 후 이태성과 헤어져 바로 제주도로 내려갔다.

새로운 무림 던전 때문에!

무림 던전은 인위적으로 각성자를 만들어 내는 각성 스팟, 비밀 유지를 위해서는 고려할 게 많았다.

특히 새로운 무림 던전이 위치한 곳은 한국이 아닌 남중국 푸젠성이었다.

당연히 걸리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 녀석 남중국에 있는 던전은 어떻게 확보한 거야?’

장철은 새삼 감탄했다.

장민은 무림 던전이 클리어되자마자, 남중국 푸젠성에 있는 던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과 거래를 트고, 무림 던전이 있는 푸젠성 군벌 수장 장웨이 사령관과도 인맥을 뚫었다.

가장 어려운 정치적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셋!

1. 무림 던전까지의 은밀한 이동 경로 확보.

2. 던전 주위 마수와 몬스터 정리.

3. 던전 입구의 완전한 고정.

장강 유통 대표 장민에게는 충분한 인력과 재력, 인맥이 있었고 순식간에 문제점들이 처리됐다.

그리고 마무리 작업과 던전 입구 고정, 보안 점검만 남겨졌을 때 서울에서 사고가 터졌다.

어지간한 사건·사고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장민이지만 비서실에서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기겁해서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사고를 친 건 자신의 조카이자 장민의 말썽꾸러기 아들, 특급 헌터였으니까!

크크크킄-

장철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특급 헌터는 이번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를 쳤다.

국가 헌병대의 대규모 검거 작전이 벌어진 광화문으로 달려간 것이다.

언제나 냉철했던 장민은 당황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무림 던전의 마무리를 부탁하고 서울로 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태성과 헤어져 제주도를 거쳐 이곳 남중국 푸젠성 푸저우시까지 오게 됐다.

자신이 할 일은 간단했다.

앞으로 무림 던전에서 각성할 예비 각성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던전까지 이동하며 보안 점검을 하고, 무림 던전의 마지막 고정 작업을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무림 던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특정 호텔, 특정 여행사를 이용해야 했다

더 웨스틴 푸저우 민장 호텔.

푸젠성 문화 탐방 투어.

위장 호텔과 위장 여행사.

혹시나 새어들어 올지 모를 스파이를 걸러 내고, 무림 던전의 정확한 위치를 숨기기 위해서 5성급 호텔과 여행사까지 인수.

언제나 철저한 장민이 큰 그림을 세우고, 장강 유통 기획실이 세부 사항을 채워 넣어, 복잡한 이동 경로를 만들었다.

과한 조치 같지만, 무림 던전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각성 스팟!

말 그대로 무공 각성자를 찍어 내는 던전이니까!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민장 호텔에서 안내인과 만나 문화 탐방 투어에 참가.

푸저우시를 관광하고 유람선을 타고 민장강을 따라 내려가는 거다.

민장강, 남중국해, 취안저우, 샤먼, 타이난, 타이중, 타이페이까지!

무림 던전은 유람선의 경로 중 한 곳에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최종 목적지인 대만 타이페이가 아닌 중간 기착지에 있었다.

남중국해를 빠져나와 취안저우에 닿기 전에 나오는 섬.

남일도(南日島).

이곳이 바로 새로운 무림 던전이 있는 섬이었다.

장철은 머릿속으로 일정을 짚어 봤다.

-푸저우 시가지 관광에 하루.

-유람선을 타고 남일도까지 가는데 다시 하루.

-남일도에서 무림 던전 입구가 고정될 때까지 하루에서 이틀.

길어야 3, 4일이면 장민이 부탁한 일은 모두 끝난다.

그때쯤이면 이태성도 이세영 포획 작전에서 스카라베 종복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을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가면 된다.

장민이 맡긴 이번 일은 사실 자신에게는 간만의 휴가나 다름없었다.

장철은 느긋하게 택시 시트에 기댔다.

부아아앙-

택시는 텅 빈 시가지를 빠르게 달려 순식간에 민장 호텔에 도착했다.

* * *

민장 호텔 스위트룸.

장철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노을이 드리운 민장강 상류 방향, 각성력과 투지가 일렁이고 있었다.

장강 유통에서 파견 나온 안내인의 정보.

대환단을 가진 헌터가 나타나 민장강 상류 방향으로 미친 듯이 도망치는 상황이다.

직접 보지 않아도 지금 강변의 상황이 어떨지 짐작됐다.

대환단을 얻기 위해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고 있을 거다.

게다가 그 헌터의 이름이 최후식이었다.

“하- 최후식이라니!”

장철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너무나 익숙한 이름, 최후식.

하필이면 오리온 길드 최후식과 같은 이름을 가진 헌터가 대환단을 가지고 나타나 저 난장판을 만든 주인공이었다!

‘한번 구경이라도 가 볼까?’

생각지도 못한 우연에 호기심이 솟았으나 곧 고개가 저어졌다.

어차피 동명이인, 게다가 대환단도 자신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은 난장판 때문에 변경된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내일 아침 푸젠성 문화 탐방 7팀과 함께 유람선을 타고 남중국해로 나가, 무림 던전에서 내리면 된다.

장철은 문득 무림 던전이 있다는 섬의 이름을 불렀다.

“남일도.”

예전이라면 새로운 던전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신없이 달려갔을 거다.

아직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던전이라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2000년 1월 1일 한국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

장철은 보라색 노을로 물든 하늘을 바라봤다.

최초의 게이트가 열렸던 2000년 1월 1일.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바라본 하늘도 지금처럼 보라색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던전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 허상이라고 한다.

그 말이 진실이길 바랐다.

그래서 게이트가 열리고 20년.

그날을 재현하는 허상, 던전을 찾아 헤맸다.

던전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 허상이라면 그 던전 안에서 잃어버린 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장세린.

잃어버린 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딸.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졸린 눈으로 달려와 다리를 꼭 안아 주고.

매일 저녁 퇴근할 때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달려와 ‘치킨! 아빠 오늘 치킨 사 왔어?!’ 외치던 아이.

허상일지라도 괜찮았다.

다시 한번 그 작은 몸을 안아 줄 수 있기를 20년 동안 바랐다.

여전히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장철은 스마트폰을 꺼내 앨범으로 들어가 사진을 터치했다.

군데군데 타고, 곳곳에 꿰맨 흔적이 남은 너무나 익숙한 곰 인형 사진이 화면에 떴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던전에서 천문석이 가져온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

그리고 그 곰곰이의 비밀 주머니에서 세린이가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보물을 찾았다.

천으로 만든 공깃돌.

한 장이 모자란 치킨 쿠폰.

장민이 선물한 네 잎 클로버.

가족 모두 놀러 간 놀이공원 티켓.

그리고 젊은 자신과 아내, 어린 장민과 곰곰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세린이가 찍힌 가족사진.

“…….”

장철은 스마트폰 화면 속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 사진은 세린이가 아빠, 엄마, 고모와 함께 있다는 너무나 분명한 증거였다.

자신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던전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 허상이라 해도 괜찮았다.

그 허상 속 세린이는 엄마, 고모, 이번에는 늦지 않은 아빠와 함께 웃고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장철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천문석 고맙다.’

이 순간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

[특급 헌터]

정신없이 서울로 올라간 동생의 스매쉬로 엉덩이에 불이 났을 조카의 영상 통화!

장철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순간 화면 가득 보이는 눈동자!

“깜짝이야! 야, 뭐야?”

-나야 삼촌! 특급 헌터!

바로 화면이 멀어지고 납작 엎드린 꼬맹이, 특급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엉덩이에 불이 나서 엎드린 모습이다!

“야, 너 살아 있냐? 엉덩이도 무사하고?! 크크킄-.”

-당연하지! 내 엉덩이는 강철이야! 전혀! 완전! 하나도! 안 아파! 장민은 이제 아무것도 아냐!

-특급 헌터 들려!

전화기 너머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에 순간 굳어 버린 특급 헌터.

-커억-! 아파! 엄청 아파!! 내 엉덩이 어디 갔어! 으아악-

특급 헌터의 어색한 연기가 이어지고.

화면 구석 씨익 웃는 세연과 허탈한 표정의 장민이 보였다.

장철은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잘 있나 보네. 삼촌 보고 싶어서 전화했냐? 삼촌이 여기서 선물 사 갈까?!”

-선물? 앗! 중국에도 한우 팔아? 등심! 한우는 등심이 최고야!

중국에서도 한우를 찾는 고기에 진심인 꼬맹이!

장철은 조카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세상에는 한우보다 맛있는 거 엄청 많아!

-…….

대답 없이 긴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화면 속 얼굴만 봐도 대답을 알 수 있었다.

[email protected]ㅁ@??

“어, 그래 나중에 한우 사 갈게 구워 먹자.

순간 특급 헌터의 얼굴이 활짝 펴지고, 신이 난 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알바네 집 옥상! 거기 평상이 완전 명당이야! 거기서 구워 먹으면 엄청엄청 3배로 맛있어! 알바! 알바가 구워야 해! 알바 완전 한우 굽기 장인이잖아! 아앗! 내가 엄청 좋은 약초도 키웠어! 삼촌 오면 내가 얼굴에 발라 줄게! 장민 엄청 걱정하잖아!

“장민이 걱정한다고?”

-맞아! 장민이 삼촌 얼굴이 완전 맛이 갔데! 잘생김이 꼭꼭 숨어 버렸대! 걱정 마! 내가 키운 약초 바르면 숨어 버린 잘생김이 다시 나올 거야! 내가 잔뜩 발라 줄게!

“……장민?”

화면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미 장민은 사라진 후!

장철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 그래. 고맙다. 삼촌 얼굴까지 걱정해 주고. 가슴이 막 아리네…… 너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냐?”

-앗! 그렇지! 삼촌 중국 갔다며?! 알바도 중국 갔거든?!

“알바? 네 절친 옥탑방 천문석. 걔가 중국에 왔다고? 왜?”

-그건 엄청난 비밀이야! 절대 말할 수 없어! 하여튼 삼촌 혹시 알바 만나면 내 말 꼭 전해 줘!

“왜? 직접 전화…….”

-전화기 꺼져 있어! 알바 엄청 바쁜가 봐!

“어, 말해. 뭔데?”

장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휙휙 주위를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알바한테 꼭 전해 줘야 해. 지금 세연이랑 장민이 음모를 꾸미고 있어! 선물! 세연이 말한 선물 절대 사 오면 안 돼! 지금 옥탑방에…….

-특급 헌터! 비밀이랬잖아!

타다다다닥-

다급한 외침과 발소리!

화면 속에 불쑥 나타나 특급 헌터를 덮치는 류세연!

-으앗! 세연! 어떻게?! 삼촌! 알바한테 꼭 전해! 선물! 선물은 함……! 우헿이엫헤헿헤-

특급 헌터는 자지러지는 웃음이 터졌고.

류세연은 달아오른 얼굴로 쉴 새 없이 간지럼 공격을 했다.

그리고 화면 구석 장민은 입을 가린 채로 연신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나 의리 그 자체, 특급 헌터는 자지러지게 웃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삼촌! 알바! 후히헤잏- 함정! 우히히히힣- 세연 선물이 함정이라고……! 꼭! 알바아아! 우히히헤힣-

특급 헌터의 사력을 다한 외침과 함께 영상 통화는 뚝- 종료됐다.

역시 특급 헌터, 자신의 조카다웠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절친 알바에게 전할 경고를 남겼다!

세연의 선물을 절대 사 오면 안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경고를!

정작 알바가 어디 있는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이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우연히라도 알바. 천문석을 만날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

그러나 이렇게 허술해야 특급 헌터였다!

“특급 헌터 알바한테 꼭 전해 주마! 크크크-.”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보였다.

낙조가 드리운 창문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지만, 장민의 말대로 맛이 가고, 잘생김이 숨어 버린 얼굴이었다.

장철은 힐끗 스마트폰 화면 속 가족사진을 보며 말했다.

“세린이가 다시 보면 몰라보겠는데…….”

그러나 장철은 완전 맛이 가고, 잘생김이 꼭꼭 숨어 버린 이 얼굴이 아주 맘에 들었다.

이건 자신이 20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렇기에 장철은 가족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장세린, 딸을 향해 마주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었다.

“아빠는 잘 있으니까. 세린이 너도 씩씩하게 치킨도 많이 먹고 즐겁게 지내야 한다.”

장철은 스마트폰을 품에 넣고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상념은 그만, 할 일을 할 때다.

일렁이는 기세와 폭발하듯 치솟는 각성력!

최후식과 대환단.

그 뒤를 쫓는 남중국의 각성자들.

이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난장판이 민장강 상류, 안정화 권역 밖, 마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쁜 소식은 아니다.

저 난장판이 도시의 각성자들을 모두 빨아들여서 도시가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 틈에 위장 관광코스를 점검하면 된다!

장철은 몸을 돌려 호텔 방에서 나가며 전화를 걸었다.

특급 헌터가 간지럼에 자지러지게 웃으면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절친, 알바 천문석에게

신호가 한번 울리는 순간.

익숙한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특급 헌터의 말대로 알바 천문석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특급 헌터. 혹시라도 문석이를 만나면 꼭 전해 주마.”

‘힘들겠지만 말이야…….’

장철은 피식 웃으며 호텔 방을 나와, 천문석이 각성자들을 모조리 끌고 달려가 휑해진 시가지로 나왔다.

불과 몇 시간, 간발의 차이로 장철과 천문석의 동선이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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