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92화>
“할 수 있다!”
휘이이잉-
공중으로 도약한 몸이 강물에 닿는 순간!
의심을 지우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린다!
찰팍, 찰팍-
몇 걸음 비틀거리는 순간 팟- 폭죽처럼 터져 나온 한 줄기 내력이 전신을 휘감는다!
순간 선명하게 떠오르는 심상!
탓탓, 타타타탓-
강물 위로 수백 번 물수제비 뜨는 돌멩이!
내력이 저절로 움직이고 발이! 몸이! 쏘아지듯 나아갔다!
탓, 타탓-
왼발, 오른발!
타탓, 타타탓-
다시 왼발, 오른발!
파파파파파팟-
파티마는 곧 천문석이 장담한 대로 강 위를 질주했다!
“이게 진짜 된다고?!”
김태희 대령이 깜짝 놀라고.
“봐! 내가 된다고 했잖아!”
천문석이 의기양양하게 외칠 때.
“저거 뭐야?!”
“강 위! 강 위에 사람이 있다!”
저지선을 펼치던 각성자들의 경악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가장 놀란 건 파티마 본인이었다!
‘된다! 되고 있다! 진짜로 물 위를 달리고 있다!’
‘발이 빠지기 전에 다음 발을 내디딘다!’
이 간단한 요령에 따랐을 뿐인데 강물 위를 달리고 있다!
호수에 던져진 물수제비처럼!
눈 쌓인 언덕을 미끄러지는 썰매처럼!
순식간에 물 위를 미끄러져 강 중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꽈직 깨져 나갔다!
물 위를 달릴 수 있을 리 없다는 생각!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그은 한계가 산산이 부서지고,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문득 고개를 돌려 이 모든 깨달음을 준 사람을 봤다.
이세기, 스승님!
파티마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입을 열어 외쳤다!
“스승님! 됐습니다! 제가 수상비를 펼쳤어요!”
“ㅁ, ㅁ ㅁㅁ! ㅁㅁ……!”
[뭐라고요? 안 들려요! 내력을 실어서……!]
내력을 실어 외치는 순간.
파티마는 이세기가 뭐라고 외쳤는지 알 수 있었다.
‘야, 입 닫아! 내력 흩어져!”
내력이 가닥가닥 흩어지고 질주하던 몸이 강물 속으로 처박혔으니까!
콰아아아아-
폭발하듯 치솟는 물기둥과 하얗게 일어난 물거품!
강물에 처박힌 파티마는 급류에 휩쓸려 하류로 떠내려갔다!
괜찮다! 처음이 힘든 법 한번 성공했으니 바로 시도하면 된다!
천문석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파티마를 향해 외쳤다.
[괜찮아! 성공했으니까! 바로 돌아와서 다시……!]
툭, 툭-
이 순간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
고개를 돌리자 말없이 손을 들어, 빙글 주위를 가리키는 김태희 대령.
저지선, 도로, 산책로.
모든 곳에서 이글이글 각성력이 끓어오르고 있다.
두 번째 기회는 없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물기둥에 어그로가 제대로 끌렸다.
파티마는 급류에 휩쓸려 멀어지고!
자신과 김태희 대령이 숨은 강변 공원을 향해 각성자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위치가 들키는 건 시간문제!
이제 곧 포위 공격이 시작된다!
‘괜찮다! 상정 범위 안이다! 플랜 B로 넘어가면 된다!’
천문석은 물살에 휩쓸려 멀어지는 파티마를 향해 외쳤다.
[계획 변경이다! 비밀거점에서 만나자!]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다시 내력을 실어 외쳤다!
[여기 최후식이 있다! 내가 바로 최후식이다!]
순간 사방에서 저릿한 살기가 쏟아졌다!
“야, 뭐야?! 너 왜…….”
천문석은 김태희 대령의 어깨를 툭 치고 씩 웃었다.
“이게 플랜 B야. 가짜 최후식 유인 작전. 내가 어그로 끌 테니까 잘 튀고 비밀거점에서 만나자. 그럼 수고!”
천문석은 바로 수풀에서 뛰어나와, 정면 저지선을 향해 달려가며 연신 내력을 실어 외쳤다.
[최후식!]
[NTM_CHS!]
[대환단을 가진 최후식이 여기 있다!]
“…….”
김태희 대령은 빠르게 멀어지는 이세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세기가 ‘최후식과 대환단’으로 어그로를 끄는 사이에 도망쳐 비밀거점에서 다시 만난다.
이세기의 플랜 B는 완벽하게 먹혔다.
강물에 휩쓸려 멀어지는 파티마, 자신이 숨어 있는 공원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방에서 치솟는 각성력과 찌르는 듯한 살기는 모두 최후식이라고 외치며 돌진하는 이세기에게 모였으니까.
지금 몸을 돌려 달리면 단숨에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수 있다.
“…….”
그러나 김태희 대령은 저지선으로 달려가는 이세기에게서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세기와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들었다.
“하, 이세기 새끼…….”
김태희 대령은 탄식하고 콰득- 최상급 정제 마석을 깨트렸다.
파스스스스-
액화된 마석이 강철혼에 빨려드는 순간.
그르르르륵-
헌터용 배낭을 앞뒤로 멘 채 캐리어를 끌고 달리며 외쳤다.
“같이 가 새끼야! 우리는 끝까지 같이 간다!”
* * *
짙은 노을이 드리우기 시작한 늦은 저녁.
천문석과 김태희 대령이 두 사람으로 인해 푸저우시를 관통하는 민장강 강변이 난장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난장판은 북서쪽 민장강 상류, 안정화 권역 밖 마경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각성자의 해일을 유인하고 꼬리를 끊고 숨기 위해서.
하지만 그 마경에는 푸저우시에서 보이지 않던 군벌들이 이미 저지선을 펼치고 있었다.
푸저우시 방향이 아닌 도시 서쪽을 향해서!
이 저지선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움직임이 없나?!”
“길드, 조직, 조합, 기업 보안팀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긴급 동원 중이라고 변명을 하는데…… 아무래도 최후식을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후식, NTM_CHS!
대환단을 가지고 나타난 헌터!
“얼빠진 녀석들!”
지휘관은 분통이 터졌다.
최후식을 잡아 대환단을 얻고 천검의 호의를 사겠다고?!
하나같이 정신 나간 놈들이다!
천검이 대환단을 찾으라고 명령한 건 맞다.
그러나 지금은 몬스터 웨이브가 밀려오는 긴급 상황!
이런 긴급 상황에 대환단을 추적하다가 저지선이 뚫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도시로 새어들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터진다!
그리고 그 대참사는 그냥 끝나지 않는다.
내일과 모레 천검과 군벌 수장들이 푸저우시에 모인다.
천검은 돈과 권력, 향락과 유흥.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남중국의 권력의 정점 군벌 수장들과 너무나 다른 모습.
그럼에도 군벌 수장들은 천검을 남중국의 절대자로 받아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력을 다해서 안정화 권역을 지키고 마경의 마수와 몬스터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검은 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외도 유예도 없다!
일반인의 피가 흐르는 순간, 군벌의 피도 흐른다!
저지선이 뚫리고 푸저우시에 대참사가 터지는 순간, 군벌에게도 대참사가 터진다!
이게 대환단을 가진 최후식이 나타났는데도 푸저우에 주둔 중인 핵심 군벌이 움직이지 못한 이유였다.
“어쩔 수 없다! 각성자를 동원할 수 없으면 포격을 쏟아부어 갈아엎는다!”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장교와 병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몬스터 웨이브의 돌진력을 죽일 장애물과 차량 방벽이 세워지고 전차, 장갑차, 포대가 촘촘히 배치됐다.
푸저우 군벌이 서쪽에서 접근 중인 몬스터 웨이브에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빵빵, 빠아앙-
압축 공기 폭발음과 함께, 마경에 놓인 도로를 가로지르는 장갑 버스가 있었다.
이 장갑 버스 뒤에는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먼지구름이 따라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가 터져 나오는 먼지구름!
이 먼지구름은 푸저우시를 향해 밀려가는 몬스터 웨이브였다!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탄 장갑 버스는 몬스터 웨이브를 꼬리로 달고 푸저우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장갑 버스 운전석의 케인 이사는 외쳤다.
“워커 님! 이제 1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아직 7호는 연락……!”
두두두두둗-
장갑 버스 지붕을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포탑 구멍에서 얼굴이 튀어나왔다.
워커 실트.
“됐다! 7호랑 연결됐어! 민장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좌표 입력 끝났다!”
“그럼 워커 님……?”
“그래! 계획은 차질 없다! 민장강에 도착한 미궁 악어 7호를 타고 튀면 된다!”
카카카-
하하하-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크아아아아아-
하나로 뭉친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의 포효가 대기를 떨며 울렸다.
장갑 버스는 거대한 몬스터의 해일, 몬스터 웨이브를 끌고 푸저우시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푸저우시는 2일 후 천검이 방문하는 도시!
남중국 곳곳에서 모여든 각성자들이 바글거리는 상태다!
그 정도 각성자면 이 정도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즉, 자신들은 잽싸게 민장강 상류 마경에서 미궁 악어 7호를 타고 튀면 된다!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오너!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너도 아주 훌륭한 전투 운전이었다!”
카카카-
하하하-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는 서로를 칭찬하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인생은 예측 불허.
워커와 케인 이사가 몬스터 웨이브를 끌고 장갑 버스로 질주할 때.
푸저우시에 모인 각성자들은 최후식과 대환단을 쫓아 민장강을 달렸고.
푸저우 군벌은 포격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갈아엎을 계획을 세웠다.
천문석, 김태희 대령.
워커 실트, 케인 이사.
푸저우시 헌터 군벌.
하나로 뒤엉킨 수많은 각성자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vs 휴먼 웨이브.
그리고 포격을 준비하는 푸저우 군벌.
모두가 푸저우 안정화 권역 밖, 마경으로 모이고 있었다.
거대한 난장판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민장강의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던 파티마 앞에 흑갈색 암초가 나타났다.
파아앙-
강물을 때려 허공으로 몸을 띄워 암초 위에 내려서는 순간.
파티마는 깨달았다.
‘암초가 아니다!’
울퉁불퉁 솟은 단단한 흑갈색 바위가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움직이고 있었다!
‘생명체?!’
흑갈색 바위에 손을 올리고 내력을 밀어 넣는 순간 전해지는 감각!
촤아, 촤아아아-
급류를 거스르는 암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길게 쭉 뻗은 머리와 좌우로 흔들리는 꼬리.
거센 물살을 가르는 두툼한 다리 넷.
암석 갑각 등과 불쑥 튀어나온 배.
……
“악어?”
몸통만 5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악어가 민장강을 거슬러 상류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악어에서는 생명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기이한 일!
하지만, 지금은 이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방금 전 자신은 수상비를 펼쳤다!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세기, 스승님은 무학의 일대 종사가 맞았다!
대지(大智)는 약우(若愚)라 했던가!
황당하고 어이없던 요령!
‘발이 빠지기 전에 다음 발을 내디뎌라!’
너무나 간단한 이 요령으로 강물 위를 달렸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수상비를 자신이 직접 펼친 것이다!
강물 위로 다리를 뻗고 그 위를 달리던 순간에 느낀 그 희열!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파티마는 알고 있었다.
대공을 이루는 순간은 언제나 찰나!
심상에 담았던 마음과 호흡!
다리를 뻗던 감각, 몸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파티마는 즉시 울퉁불퉁한 암석 감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촤아, 촤아아-
거대한 악어는 파티마의 무게에 한 뼘 더 물속으로 가라앉은 채 민장강 상류로 나아갔고.
찰팍, 찰팍-
흑갈색 암석 갑각 사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따뜻한 햇볕에 깜빡 잠들었던 두 각성 동물은 차가운 물살을 맞고 눈을 떴다.
데굴데굴 굴러 일어난 새하얀 벨루가와 반투명한 하늘 고래.
용용이와 퐁퐁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물이 찼지?!’
용용이는 바로 이유를 찾았다.
악어 한가운데 처음 보는 인간이 앉아 있었다!
우리 멋진 악어 위에 몰래 올라타다니!
용용이의 분노에 강물 속에서 꼬물꼬물 촉수가 튀어나오는 순간.
구으, 구으으-
퐁퐁이는 휙휙 고개를 저었다.
……??-
그리고 퐁퐁, 퐁퐁퐁- 열심히 지느러미를 휘저어 공중을 날아가, 가부좌를 튼 인간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구으, 구으으-!
‘엄청 따뜻해!’
……!!-
용용이도 잽싸게 날아가 퐁퐁이 옆에 웅크려 누웠다.
스르륵- 스며드는 포근한 온기!
콩콩- 두근- 기분 좋은 심장 소리!
퐁퐁이와 용용이는 금세 새근새근 잠들었다.
부산 앞바다, 제주도,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거쳐 민장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거대한 악어.
미궁 악어 7호는 잠든 퐁퐁이와 용용이, 무아지경에 빠진 파티마를 태운 채로 민장강 상류, 워커 실트가 입력한 좌표를 향해 나아갔다.
푸저우 안정화 권역 밖 마경으로!
천문석과 인과가 얽힌 모두가 같은 장소, 마경으로 모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