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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89화 (99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9화>

“……얼렁뚱땅 튀려고 그러지?! 이 사기꾼 녀석!”

정곡이 찔렸을 때 움찔하는 건 하수!

천문석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반사적으로 외쳤다.

“야, 뭔 소리야? 저 밖에 상황 안 보여? 나랑 같이 저 난장판에서 구르겠다고?! 너 광화문 광장 태성 빌딩 옥상 생각 안 나?! 그 개고생을 다시 하겠다고?! 다 너 생각해서 가라고 한 거야! 와, 와와!”

‘먹혔나?’

힐끗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캐리어를 당기려는 순간 돌아오는 대답.

“캐리어 손잡이는 놓고 말씀하시죠. 알바 씨?”

“…….”

“하, 이 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벗어! 당장 배낭부터 벗어!”

강제로 배낭을 벗겨 내 앞으로 메고 캐리어 셋을 하나로 모으는 김태희 대령!

‘하, 이 녀석 눈치가 왜 이렇게 빨라!’

천문석은 내심 탄식하며 방금 세운 계획을 재빨리 검토했다.

지권인의 수인! 지혜의 빛이 담긴 검지가 톡- 창문에 닿는 순간 뻗어 나간 기감으로 휴먼 웨이브, 민장 호텔로 밀려오는 각성자의 해일을 파악하고 상대할 계획을 세웠다.

거센 황하도 대륙을 가로질러 바다에 닿을 때면 잔잔해지는 법!

거대한 흐름에 맞서지 않고 물길을 돌려 웨이브에 담긴 힘과 기세를 죽인다!

이게 가장 쉽고 간단하며,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이다!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 움직일 때.

그런데 김태희 대령이 찰싹 달라붙고 있었다.

“다 됐다! 가자!”

김태희 대령은 어느새 앞뒤로 배낭을 메고 로프로 꽁꽁 묶어 하나로 만든 캐리어를 잡고 일어서며 외쳤다.

천문석은 바로 설득 방향을 바꿨다.

“야, 그럼 적당히 숨어 있어! 끝나고 다시 만나는 거로 하자! 거기 내 헌터용 배낭만 돌려줘!”

“이 새끼! 또 도망치려고!”

“아니라니까! 이번엔 진짜 위험해서 그래!”

“됐어! 새끼야! 우리는 끝까지 같이 간다!”

“야, 방금 말했잖아?! 나랑 같이 가면 개고생한다니까! 이거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번엔 진짜다!”

“……!”

의심으로 이글이글 불타는 김태희 대령의 두 눈!

“야? 너 나 못 믿어?!”

“어, 당연하지!”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도대체 왜 따라오려는 건데?!”

“꼭 확인할 게 있다!”

“뭔데? 말해 봐! 여기서 확인해 줄게. 그리고 각자도생 오케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젓는 김태희 대령.

“……지금은 때가 아냐.”

“와, 와와! 이 황당한……!”

말문이 컥 막히고 절로 분통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어, 잠깐! 굳이 떼어 놓을 필요 없지 않나?’

김태희 대령은 앞뒤로 헌터용 배낭을 메고, 캐리어 세 개를 로프로 꽁꽁 묶어,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헌터용 배낭과 캐리어가 ‘인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저 안에 담긴 것은 의류와 생활용품뿐, 중요한 물건은 잡낭에 넣었고 헌터용 장비는 아직 대여하지 않았다.

즉, 헌터용 배낭과 캐리어는 인질이 아닌 ‘짐’이었다!

지금 김태희 대령은 자신 대신 짐을 짊어지고, 같이 어그로를 끌며 난장판을 달릴 무보수 짐꾼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거다!

‘뭐야? 이게 이렇게 된다고?! 왜 이렇게 재수가 좋아?! 카캬캌-’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진지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좋아, 따라와. 대신 너 나중에 절대로 나 원망하면 안 된다. 딜?”

“당연하지! 딜…….”

김태희 대령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잡으려다가 움찔 멈췄다.

손을 잡으려는 순간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머릿속으로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

휘이이잉-

머리에서 시작한 소름이 등골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둥둥, 둥둥둥-

어느새 북 치듯 울리는 심장 소리를 따라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다.

전투 예지가 무언가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전투 예지는 이런 식으로 발동하는 이능이 아니었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는 순간 툭 던지듯 들려오는 말.

“뭐야? 철회? 야, 빨리 결정해!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몰라? 각자도생? 딜? 빨리 결정해!”

갈등은 찰나!

김태희 대령은 손을 잡았다.

“딜! 그런데 너 도대체 이름이 뭐야?”

지금 손을 잡은 사람은 악명 높은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이럴 때 말할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천문석은 맞잡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이세기.”

* * *

민장 호텔로 이어지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5층 건물 옥상.

천문석은 밀려오는 휴먼 웨이브를 확인했다.

쿠르르르-

대기를 뒤흔드는 진동이 퍼져 나오고!!

휘잉, 휘이이잉-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자욱한 흙먼지가 밀려왔다!

이 흙먼지 속에는 각성자 수만 명의 기세와 투지가 담겨 있었다!

호텔 방에서 확인한 것과 직접 앞에서 확인한 것은 완전히 달렸다!

휴먼 웨이브!

말 그대로 각성자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었다!

“야, 너 진짜로 저 안으로 들어간다고?! 정말로?

김태희 대령이 외침에 떨림이 담길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의 해일이!

이때 먼지 폭풍 속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이 나타났다.

파티마가 일으킨 잡동사니 회오리바람이다!

“그럼, 넌 여기서 대기…….”

“따라간다! 끝까지 같이 간다!”

반사적으로 외치는 김태희 대령!

“어, 그래. 힘내라.”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난간을 달려 뛰어내릴 타이밍을 잡았다.

휘잉, 휘이이이잉-

자욱한 먼지가 훅 밀려오고 잡동사니 회오리바람이 건물을 지나가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뛰었다.

파아아아앙-

거센 회오리바람에 종잇장처럼 흩날리는 온갖 잡동사니들!

간판, 나뭇가지, 문짝, 쓰레기통, 가방!

탓, 탓, 타타탓-

흩날리는 잡동사니를 밟고 쿵-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달린다!

파아아아앙-

어느새 뽑아 든 강철봉을 앞세워 거센 먼지바람을 가르고!

타닷, 타탓탓-

좌우로 번갈아 땅을 박차 사방에서 날아오는 잡동사니를 피했다!

곧 익숙한 소리와 모습이 보였다!

파앙, 파아앙-

먼지를 날려 버리는 폭발음!

으악, 끄어억-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와 날아오는 간판에 얻어맞는 각성자!

훅 날아간 먼지바람 속에서 장대 빗자루를 휘두르는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라검 파티마 알사우드!

“……!”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빙글 회전하는 장대 빗자루로 뒤를 가리키는 파티마!

이심전심!

해일처럼 밀려오는 추적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민장 호텔 방향을 가리켰다.

“알아! 계획이 있다! 내 뒤로 따라와! 저 호텔 옆을 지나 강변으로 달릴 거다!”

빙글빙글-

장대 빗자루가 두 번 원을 그리고 파티마가 달려오는 순간.

쿵-

천문석은 바로 땅을 박차고 반전, 민장 호텔을 향해 달렸다!

“잡아!”

“발목이든 뭐든 잡고 늘어져!”

“마탄 갈기자니까!”

“안 돼! 사선이 안 나와!”

“멍청한 새끼! 위에서 마탄 사격 금지했어!”

……

자욱한 먼지 속에서 바람에 섞여 쏟아지는 외침들!

지금 할 일은 이 거대한 흐름에 담긴 힘을 빼놓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민장 호텔을 지나 강변으로 달려야 한다!

천문석은 먼지 속에서 튀어나오는 헌터와 용역을 정면으로 뚫었다.

타다다닥-

불쑥 튀어나온 천문석의 모습에 흠칫 놀라 뚫리는 헌터들!

그러나 곧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 어어?!”

“이 녀석 뭐야?!”

“잠깐! 저 새끼?!”

“야! 멈춰! 거기 아냐! 저 녀석이야!”

“최후식! 최후식이 나타났다!”

……

외침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고 거대한 충격이 인파의 해일을 덮쳤다!

‘대환단을 가진 최후식이 나타났다!’

파티마를 향해 밀려오던 흐름이 갈라져 천문석을 향해 밀려왔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먼지바람 속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난장판 도주, 진흙탕 개싸움 모두 자신의 특기!

천문석은 앞을 막고 발목을 잡는 추적자들을 바람처럼 뚫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밀려오는 추적자들은 끝이 없었고, 인파의 밀도가 높아지자 돌진 속도가 팍팍 죽어 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르다! 굉천수를 때려 박을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먼지바람을 뚫고 튀어나오는 김태희 대령!

“비켜! 새끼들아! 비키라고!”

훙훙, 후우웅-

김태희 대령은 캐리어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성난 마수처럼 돌진했다!

“이세기! 이 새끼야! 너 어디야?! 어디로 튄 거야?!”

‘됐다! 김태희 대령이 압력을 줄여 주고 있다!’

“여기다! 놓치면 놓고 간다! 바짝 따라붙어!”

천문석은 크게 외치고 우뚝 솟은 민장 호텔을 향해 도로를 달렸고, 그 뒤로 김태희 대령과 파티마가 따라붙었다.

천문석, 김태희, 파티마.

도로를 달리는 세 사람을 따라서 휘몰아치는 먼지바람, 각성자의 인파가 급류가 되어 쏟아졌다!

콰카카카카캉-

각성자의 인파, 휴먼 웨이브가 지나가는 순간. 그 궤적에 걸리는 가로수, 자동차, 유리창, 보도블록, 모든 게 박살 났다.

천문석은 정신없이 움직여 급류의 힘과 속도를 죽였다.

달리는 궤적은 之, 갈지 자!

콰드득-

가로수를 부러트리고.

콰아아앙-

주차된 자동차를 걷어차 도로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쏟아지는 각성자의 힘과 속도를 죽이며 지권인의 빛으로 흐름을 인도한다!

민장 호텔, 쇼핑몰, 강변 공원 그리고 선착장. 선착장 바로 앞이 1차 목적지다!

자연의 방벽, 거대한 민장강!

민장강에 도착하는 순간 그대로 강변을 따라 북서쪽 강 상류 방향으로 달린다!

강을 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선착장, 공원, 빌딩을 지나서 북서쪽으로 계속 달리면, 결국 안정화 권역이 끝나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마경.

도시와 마경은 다르다!

안전한 도시 안에서라면 전력으로 뒤를 쫓을 수 있지만, 마수와 몬스터가 사방에 널린 마경에서는 지금처럼 추적하는 건 불가능!

몬스터 웨이브를 안정화 권역이 막아 내듯이 휴먼 웨이브를 마경으로 막아 내는 게 자신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함께 어그로를 끌어 줄 두 사람 덕분에 완벽하게 먹히고 있었다.

남중국 미션의 동료, 파티마!

그리고 자원해서 짐꾼겸 미끼가 되어 준 김태희 대령!

“으아아악- 비켜! 비키라고! 이세기, 어디냐?! 너 이 새끼 도망친 거 아냐?!”

먼지바람 속에서 김태희 대령의 의심스러운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통쾌함에 내력을 실어 외쳤다.

[카캬카카카캌- 야, 여기다! 빨리빨리 따라와! 뒤처지면 그냥 버리고 간다!]

으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김태희 대령!

탓, 탓, 타타탓-

회오리바람을 휘감고 뒤를 쫓는 파티마!

천문석은 두 사람을 거느리고 텅 빈 도로 위로 휴먼 웨이브의 물결을 이끌고 달려, 민장 호텔을 지나갔다.

그리고 쇼핑몰 방향으로 흐름을 유도할 때 자욱한 먼지바람 사이로 쇼핑몰 안에서 다급히 뛰어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위험합니다! 나오지 마세요!”

다급히 외쳤지만, 쇼핑몰에서 나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정신없이 달렸다!

콰카카카카카쾅-

하필이면 휴먼 웨이브가 밀려가는 선착장 방향으로!

평소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먼지바람은 각성력이 하나로 뒤엉킨 웨이브 상태!

자욱한 흙먼지 안, 각성력 권역 안에 들어오는 순간 진공청소기에 빨려들 듯 딸려 오게 된다!

천문석은 몇 번이나 외쳤다!

“옆으로 빠져요!”

“휩쓸립니다! 빠지라고요!”

“각성력 범위에 들어오면 끌려들어 와!”

……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일단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은 곧 휴먼 웨이브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속도가 확 죽고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순간, 마침내 깨닫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야, 버텨! 도망치기는 늦었어!”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파아앙-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날아가고 시야가 확 트였다.

이 순간 앞서 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박혀 들어왔다.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

“뭐야? 너희들 왜 거기 있어? 아니, 내 말 못 들었어?!”

“ㅁㅁㅁ! ㅁㅁ ㅁㅁㅁ ㅁ ㅁㅁ?!”

경악한 마혁진의 외침!

그러나 이 외침은 각성력이 담긴 먼지바람에 삼켜졌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아, 각성력 권역 안이라 못 들었구나…….”

이 순간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은 휴먼 웨이브 권역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세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헌터들 다 뭐야?! 너 여기서 뭐…….”

콰카카카카캉-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하듯 쏟아진 흙먼지에 삼켜지는 칠성파 잔당들!

칠성파 잔당들은 순식간에 천문석을 지나, 뒤를 따라 달리는 김태희 대령에게 밀려갔다.

먼지 바람 속에서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 김태희 대령의 외침과 함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하! 시바! 뭐가 이렇게 끝이 없이 튀어나와!”

“으억!”

“악, 아악-.”

“공격 금지! 싸우면 안 된다!”

후우우웅, 쾅쾅쾅-

칠성파 잔당들은 김태희 대령의 캐리어에 얻어맞고, 강철 건틀릿에 쥐어박혀 나뒹굴었다.

파앙, 파아아앙-

이 순간 다가오는 잡동사니 회오리바람!

“이건 또 뭐야?!”

“내 옆으로 모여라! 염동력장으로 막겠다!”

마혁진이 외치는 순간, 잡동사니 회오리바람 안에서 장대 빗자루가 튀어나왔다.

빠아아앙-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바람이 폭발했다.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은 공중으로 튕겨 나가 몰아치는 잡동사니에 얻어맞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만 명의 각성자가 일으킨 거대한 헌터 웨이브에 밟혔다.

으아아아아아아-

비명 소리가 메아리치듯 길게 울려 퍼졌다.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주는 순간 자신과 관련됐다는 걸 스스로 밝히는 꼴!

그렇게 되면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은 푸저우시 모든 각성자의 추적을 받는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마혁진과 칠성파 녀석들을 도와주는 것!

“하- 재수 없는 녀석들. 뭐가 저렇게 꼬여……?”

천문석은 선착장을 향해 달리며 진심을 담아 기원했다.

‘마혁진! 김기철! 칠성파 헌터들! 모두 힘내라! 언젠가 꼭 좋은 날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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