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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88화 (98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8화>

“……얼마나 개같이 굴렀는지 알아?! 으아아악-.”

당연히 알았다! 마혁진을 낚을 때 영상 통화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건 완전한 역효과!

천문석은 입은 다문 채로 눈앞의 김태희 대령을 재빨리 스캔했다.

턱 언저리에 닿는 작은 키, 구멍 나고 해진 옷과 엉망이 된 얼굴!

4배속으로 재생한 것처럼 쏟아지는 외침!

“야이미친새끼야!서호공원에서여기까지!개같이구르고구르고굴러서가간신히……!”

분노, 울분, 고통이 담긴 절절한 외침!

이 순간 김태희 대령이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출근, 등교를 위해 모두가 잠든 월요일 새벽 4시의 아파트!

왈왈, 와그륽왈콸콸왈-!

아파트에 잠든 모두를 깨울 때까지 절대 짓는 걸 멈추지 않는 미친 치와와처럼! 김태희 대령은 절절한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이래서 별명이 미친 치와와였구나!’

깨달음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니, 뭘 감탄하고 있어?!’

도둑이 든 것처럼 난장판이 된 방과 앞뒤로 짊어진 헌터용 배낭!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캐리어까지!

김태희 대령은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

“야! 너 딱 걸렸…….”

외치는 순간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르는 의문들!

의문, 내가 머무는 호텔 방을 어떻게 찾았지?

-정답, 파티마가 가르쳐 줬으니까!

의문, 왜 호텔 방을 가르쳐 줬지?

-정답, 장비를 회수하기 위해서!

의문, 파티마는 어디 가고 이 녀석 혼자 있어?

-정답, 뒤를 쫓는 각성자들을 끌고 유인 중이니까!

의문, 그냥 전화를 걸면 되잖아?

-정답, 전화를 걸 수 없는 상태니까?

“……!”

천문석은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파티마에게 전화했다.

-지금은 전화기가 꺼져 있어!

예상대로 꺼져 있는 전화기!

“야! 전화! 얘 전화 왜 안 받아!?”

“……!”

쉴 새 없이 분노를 토해 내던 김태희 대령이 움찔 멈췄다. 그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하듯 대답했다.

“아까 네가 영상 통화 걸었잖아? 갑자기 끊기고 사방에서 각성자가 몰려오는 바람에 스마트폰이…….”

“스마트폰 부서졌다고?!”

“맞아. 그래서 내가 짐이랑 장비 챙기러 온 건데…….”

스마트폰이 박살 나고 연락이 끊기자, 파티마는 자신이 호텔 방으로 돌아올 것을 예상하고 김태희 대령을 보낸 거다!

그리고 김태희 대령, 이 녀석은 어제 적으로 싸운 자신의 동료 파티마의 지시를 따른 거고!

“…….”

천문석은 말없이 파티마를 바라봤다.

‘뭐지, 이 녀석? 어제까지 싸우고 도망치기까지 했는데, 짐 챙기란다고 진짜로 짐 챙기러 왔다고?’

너무나 익숙한 냄새가 났다!

음모, 협잡, 사기, 꿍꿍이, 딴생각의 냄새가!

“너, 뭔가 의심스러운데?”

“뭐, 뭐 뭐가 의심스러워?!”

방금까지 분노를 토해 낸 게 무색하게 화들짝 놀라는 김태희 대령!

하지만 지금은 꿍꿍이속을 밝혀낼 때가 아니다!

추적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파티마를 빼내는 게 먼저!

“됐고! 너 여기로 보낸 걔 지금 어디 있는데? 위치 알지? 어디야?!”

천문석은 잽싸게 헌터용 배낭을 낚아채 짊어지고 외쳤다.

“바로 출발할 거니까! 빨리!”

“잠깐 내 짐 좀 챙기고……!”

“야! 시간 없어! 여기도 언제 걸릴지 몰라! 바로 튀어야 해!”

“금방 찾아!”

다급한 외침과 함께 방 밖으로 뛰어나가는 김태희 대령.

“야 언제 찾으려고……!”

제지하려던 천문석은 멈칫했다.

방 밖으로 달려간 김태희 대령은 바로 옆방으로 뛰어들어가 배낭을 메고 나왔다.

“캐리어는 내가 챙길게!”

그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널브러진 짐을 캐리어에 쑤셔 박았다.

천문석은 멍하니 자신의 방과 김태희 대령의 방을 번갈아 바라봤다.

‘바로 옆방에 김태희 대령의 숙소가 있었다고?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순간 오늘 하루 일어난 ‘우연’들이 머리를 스쳤다.

유람선에서는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을 만났고!

자신이 잡은 호텔에서 한경석은 쇼핑,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 이벤트를 즐겼으며!

자신이 우연히 말을 걸었던 라텍스 아저씨는 한경석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바로 옆 방에는 한국에서 자신을 쫓아 온 김태희 대령이 머물고 있었다!

우연? 한두 번은 우연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나는 건 말이 안 됐다!

무공의 극에 달했던 전생 천마의 직감, 알바의 극에 달했던 현생 알바의 촉이 움직였다!

우연이 아닌 필연!

이 모든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

‘뭐지? 뭐가 이유지?!’

지금 필요한 건 합리적 추론이 아닌 벼락 치듯 답을 꿰뚫는 직관!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어제 광화문에서 오늘 푸저우시까지 겪었던 모든 사건, 만났던 모든 인물을 떠올렸다!

무아지경에 빠지는 찰나의 순간 뇌리를 파파팟- 스치는 수많은 장면!

잡힐 듯 말 듯, 떠오를 듯 말 듯 한 무언가가 뇌리를 간지럽히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야, 오고 있어!”

“……!”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뭐가 온다고?”

“네 동료! 여기로 오고 있다고! 빨리 이리로 와봐!”

창문에 바짝 붙어 외치는 김태희 대령.

“뭔 소리야?”

반사적으로 창으로 걷는 순간 느껴졌다.

구으으으으응-

김태희 대령이 서 있는 창문이 진동하고 있다!

“……!”

한달음에 달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보였다.

인도, 차도, 골목!

시가지 모든 곳에 들끓는 인파!

버스, 승합차, 자전거, 오토바이, 헌터, 용역, 보안팀! 수천, 수만의 인파가 민장 호텔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저게 왜 여기로 와?”

의문은 바로 풀렸다.

밀려오는 거대한 인파의 앞쪽,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 보였으니까.

간판, 흙, 자전거, 덤불, 나뭇가지 같은 온갖 잡동사니가 바람에 휩쓸려 소용돌이치고 있다.

‘설마?!’

내력을 집중하는 순간 잡동사니 소용돌이 속 장대 빗자루를 휘두르는 무인이 보였다.

파티마 알사우드!

바람검 파티마가 뒤에 붙은 꼬리를 끌고 민장 호텔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경석이 흔적이 남겨진 민장 호텔로!

* * *

“아니, 왜 하필 여기로 유인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바로 돌아오는 대답.

“새끼야! 저거 다 너 때문이잖아!”

“저게 나 때문이라고?! 뭔 소리야?!”

쿵, 쿵-

김태희 대령은 답답하단 듯 호텔 유리창을 두들기며 외쳤다.

“너 푸저우 서쪽! 민장강 북항으로 가기로 했다며? 그래서 저 꼴통 녀석이 서호공원에서 여기까지 유인하고 있는 거잖아?!”

“……!”

서호공원, 시가지 11시 방향.

민장 호텔, 시가지 5시 방향.

민장강 북항, 시가지 10시 방향.

11시에서 시작해!

12, 1, 2, 3, 4, 5시까지!

파티마는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11시 서호공원에서 5시 민장 호텔까지 꼬리를 달고 유인했다!

10시 방향 민장강 북항으로 이동한 자신에게 꼬리가 붙지 않도록!

다른 각성자였다면 중간에 잡히고 벌써 끝났을 거다!

하지만 지금 저기서 달리는 건 초절정 무인, 바람검 파티마다!

파티마는 어떤 그물로도 잡지 못하는 바람처럼, 거목을 날려 버리는 태풍처럼 달렸고!

그 결과, 뒤를 쫓는 추적자들은 점점 늘어나 마침내 저 엄청난 인파의 물결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휴먼 웨이브!

천문석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몬스터 웨이브는 그냥 마탄을 갈기고 박살 내면 된다!

하지만 휴먼 웨이브는 용역, 헌터, 조폭……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어떻게 하지?!’

“야, 너 어떻게 할 거야?!”

스스로에게 묻는 동시에 들려온 김태희 대령의 외침!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파티마가 그냥 이 녀석을 보냈을 리 없다!

당연히 뭔가 계획이 있었을 거다!

계획을 듣고 대응하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김태희 대령에게 확인했다.

“너희 계획 있지? 짐 챙기고 계획이 어떻게 돼?”

“…….”

“야! 시간 없어! 빨리 말해!”

“어…….”

“뭐? 제대로 말해!

김태희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없다고! 그냥 이 호텔이랑 방 호수 가르쳐 주더니 짐 챙기라고만 말했어!”

“……!”

천문석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인파.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파티마.

그러나 이곳은 사막의 항구 도시 바나처럼 파티마에게 익숙한 도시가 아니다.

혼자서 꼬리를 끊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

게다가 아무리 초절정 무인이라도 다굴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어차피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을 난장판에서 빼내고 비밀거점으로 숨으려 했으니 계획이 크게 변한 건 없다!

김태희 대령은 알아서 빠져나왔으니 이제 파티마만 난장판에서 빼내, 꼬리를 끊고 비밀거점으로 숨으면 된다!

문제는 파티마가 자신의 역할을 너무 잘했다는 것!

아직 거리가 있는데도 밀려오는 휴먼 웨이브의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구으으응-

폭발하는 함성에 창문이 울리고!

부르르르-

치솟는 기세에 대기가 요동친다!

백, 천, 만 단위를 훌쩍 넘어서는 각성자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다!

함성은 기세를 끌어올리고 치솟는 기세는 각성력을 폭발시킨다!

폭발한 각성력이 용광로에 치솟는 열기처럼 대기를 뒤흔들고 있다!

그야말로 휴먼 웨이브!

지금 저 휴먼 웨이브 안으로 들어가면 같이 휩쓸린다!

휩쓸린다 해도 자신이라면 충분히 파티마를 빼낼 수 있다!

하지만 빼낸 후에 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피해 꼬리를 끊고 비밀거점으로 숨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고 전의가 치솟는다!

지금 저 휴먼 웨이브에 휩쓸린 각성자들은 바짝 말리고 기름을 잔뜩 먹인 장작이나 마찬가지 상태!

잘못해서 한번 불이 붙으면 모든 것이 재가 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가출한 경석이를 찾으러 왔다나 대참사라니! 절대 안 될 말!

지금 필요한 건 치수(治水)!

범람하는 강을 다스리듯, 날카롭게 벼린 예기를 죽이고 들끓어 폭발하는 기세를 끊어 내는 것!

파티마를 빼내고 비밀거점으로 튀는 건 그다음에 할 일이다!

“야, 너 어떻게 할……!”

“기다려! 확인할 게 있다!”

천문석은 손을 들어 김태희 대령의 말을 끊고 수인을 짚었다.

지권인(智拳印).

지혜의 륜을 짚어 마음을 담고.

심즉동(心即動).

이 마음으로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움직인다.

파슥-

수인을 짚은 검지에 지혜의 빛이 생겨나는 순간 창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츠츠츠츠츠-

검지 끝에 맺힌 빛은 오래된 전구처럼 명멸했다.

“……!”

김태희 대령은 명멸하는 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감을 뛰어넘는 초감각에 전해지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압도적인 감각!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빛이 명멸하는 매 순간 어두워지고 밝아진다!

방이, 하늘이, 땅이! 세상 모든 것이 알바 녀석의 검지 끝의 맺힌 빛에 따라 명멸한다!

‘어떻게?! 마력? 초능력?! 육체?! 마탄?!”

무수한 각성자와 만난 자신조차 처음 보는 계통의 능력!

아니, 계통은커녕 지금 뭘 하려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천천히 나아가는 검지가 유리창에 닿는 순간 무언가 일어난다는 사실뿐!

쿵쿵, 쿵쿵쿵쿵-

검지가 유리창에 가까워질수록 미친 듯이 뛰는 심장!

검지 끝이 톡- 유리창에 닿는 순간 명멸하던 빛은 픽- 꺼지고, 우뚝 움직임을 멈추고 반개한 눈으로 창밖을 내려다봤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지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모습!

“……!”

김태희 대령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홀린 듯이 이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반개한 눈을 뜨는 순간,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섬광이 쏟아졌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바짝 마른 입 안!

‘알바, 이 녀석 뭐야?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지금 뭘 한 거지?!’

수없이 떠올렸던 의문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칠 때.

알바의 입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계획이 섰다!”

“하, 시바! 더럽게 빡세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아, 이게 다 내 업보구나!”

“김태희 대령 안녕이다!”

“관광 잘하고 한국 잘 가라!”

“앗! 그 캐리어는 우리 거지? 내가 가지고 갈게!”

“그럼 수고!”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더니 잽싸게 달려와 캐리어 손잡이를 낚아채는 알바.

탁, 탁-

캐리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캐리어 우리 건데?”

“…….”

탁, 탁-

“김태희 대령님? 저기 놔주셔야 캐리어 가져가는데……?”

“…….”

김태희 대령은 어느새 공손히 존대하며 캐리어를 잡아당기는 알바놈을 바라봤다.

알바, 가짜 최후식, NTM_CHS.

아직 진짜 이름이 뭔지도 모르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이 녀석은 사기의 신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더니 숨 쉬듯 자연스럽게 치던 구라!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이번에도 얼렁뚱땅 튀려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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