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87화 (98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7화>

마혁진은 손에 들린 검은 동전을 살폈다.

500원 동전 크기.

옆면에 새겨진 빗금.

앞과 뒷면에 양각된 별과 용.

뻥 뚫린 구멍처럼 각성력을 빨아들이던 검은 동전.

하지만 어느새 검은 동전은 평범한 동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마혁진은 동전에 각성력을 밀어 넣고 염동력장을 펼쳐 튕겼다!

팅-

각성력을 담은 채 허공으로 치솟아.

핑그르-

염동력장 속에서 회전하는 검은 동전, 흑전.

흑전, 이세기의 담보에서는 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세기가 말한 대로!

‘뭐지, 이 이상한 흑전은?’

1세대 헌터로 온갖 아이템과 마도구를 본 마혁진도 본 적 없는 기이한 흑전!

마혁진은 염동력장 속에서 회전하는 흑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곧 피식 웃었다.

이세기 녀석은 그 자신처럼 이상한 흑전을 담보로 던져 주고 갔다.

어차피 돌려줄 흑전, 지금은 이 이상한 검은 동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탁-

마혁진은 회전하는 동전을 낚아채고 몸을 돌려 갑판 구석에 모여 있는 부하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잘못 끼운 첫 단추, 서울 수복 작전! 아니, 최초의 게이트가 열렸던 그 날!

그때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큰 실수를 되돌릴 기회가 왔다!

최악으로 치달았던 이태성과의 관계를 ‘0’으로 돌리고, 헌터 업계에서 비상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악연으로 시작한 이세기의 주선으로!

‘반드시 이 기회를 잡는다!’

마혁진은 흑전을 꽈득 움켜쥐며 다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흑전을 던져 넣고 부하들에게 외쳤다.

“모두 모여라! 조를 나누고 연락망을 확인한다!”

칠성파 조폭들은 순식간에 모여들어 조를 짜고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순간 마혁진의 주머니 속에 담긴 흑전은 깜빡 짧게 반짝였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그 말 그대로 수많은 원인과 결과로 천문석에게 전해진 2개의 흑전 중 하나가 염동력자 마혁진에게 전해졌다.

신에게서 운명을 사는 화폐.

원인과 결과, 인과를 비트는 인과 역전의 동전이 그 역할을 시작했다.

* * *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천문석은 단체 관광객 사이를 지나 투어 깃발을 든 가이드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 아까…….”

“앗! 아까 그분! 친구분들이랑 이야기는 잘하신 거예요?”

“네. 하하- 정말 만날지 생각지도 못한 친구라.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저 아까 하던 이야긴데…….”

“네, 기억하고 있어요. 잠시만요.”

투어 가이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승객들을 향해 외쳤다.

“잠시만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그리고 성큼 갑판 구석으로 걸어가 말을 잇는 투어 가이드.

“푸저우시에서의 일정이 궁금하다고 하셨죠? 어디 보자…….”

투어 가이드는 일정 수첩을 펼쳐 쓱쓱 확인하더니 바로 고개를 들었다.

“잠시 후 도착하는 호텔에 숙소를 잡고 쇼핑, 저녁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 이벤트가 예정됐네요. 이게 오늘 마지막 일정이에요.”

쇼핑,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

듣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불꽃놀이’, 이게 핵심이다!

특급 헌터라면 절대 지나치지 않을 이벤트!

당연히 특급 헌터와 같은 꼬맹이 감수성인 한경석이라면 절대 불꽃놀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확신이 들었다!

불꽃놀이 이벤트를 파고들면 한경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재수가 좋아?! 설마, 경석이 녀석 바로 찾는 거 아냐?! 혹시 칠성파 놈들 고용할 필요도 없던 거?!’

생각지도 못한 행운!

평소라면 뒤이어 찾아올 불운을 걱정했겠지만, 이번만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호 공원에서 만난 김태희 대령에 이어서 유람선에서 만난 염동력자 마혁진까지!

지금 자신의 운빨은 하늘을 찌르는 상태니까!

카캬카캌-

천문석은 재빨리 머릿속 계획의 맨 앞에 한 줄을 추가했다.

1. 쇼핑,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 이벤트가 벌어지는 호텔을 확인한다!

2.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을 난장판에서 빼낸 후 비밀 거점으로 이동!

3. 이미 얼굴이 팔린 두 사람을 대신해 자신이 숙소에서 짐과 장비를 회수!

4. 칠성파 애들이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진교은의 예측에 따라 한경석을 만난다!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가이드님. 그 호텔 이름이 뭔가요?”

투어 가이드는 문득 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손을 들어 강변을 가리켰다.

“저기 호텔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가이드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강을 내려다보는 높게 솟은 호텔이 보였다.

[MIN JIANG HOTEL]

“…….”

눈을 비비고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호텔은 없었다.

천문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투어 가이드에게 확인했다.

“설마 민장 호텔은 아니죠?”

“맞아요. 저 호텔이에요.”

“쇼핑,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 그걸 전부 다 저 호텔에서 하는 건 아니죠? 그렇죠?!”

“아뇨. 저 호텔에서 모두 해요.”

“관광코스! 관광코스가 매번 같지는 않겠죠?!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 맞죠?! 당연히 저 호텔이 빠질 때도 있는……!”

“그건 맞는데. 저 호텔은 고정 코스예요. 저희 사장님이 저 호텔…… 앗! 흩어지시면 안 돼요! 전 이만! 여행 잘하세요!”

투어 가이드는 다급히 외치며 달려갔고.

천문석은 넋이 나간 얼굴로 가까워지는 호텔을 다시 봤다.

낯익은 빌딩.

낯익은 쇼핑몰.

낯익은 주차장과 정원.

어젯밤 체크인했고 여전히 자신과 파티마의 짐이 있는 낯익은 호텔.

[MIN JIANG HOTEL]

‘더 웨스틴 푸저우 민장.’

한경석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호텔은 자신과 파티마가 숙박 중인 호텔이었다.

“…….”

천문석은 돌처럼 굳은 채로 가까워지는 호텔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저 호텔에 한경석의 흔적이 있다고 확정된 건 아니다!

만약 한경석의 흔적이 있다고 해도 종일 삽질을 한 건 아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원래 등잔 밑이 더 어둡고 가까울수록 놓치기 쉬운 법!

‘여전히 내 행운은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외치는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었네. 민장 호텔에서 내린다며? 이거 가져가.”

‘라텍스 아저씨?’

문득 몸을 돌리자 예상 그대로의 얼굴이 보였다.

관광버스, 유람선에 태워 주신 라텍스 아저씨가 커다란 쇼핑백을 내밀고 있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선물까지 받기는…….”

“집에 많아. 진짜 너무 많아…… 그러니까 받아.”

커다란 쇼핑백이 손에 걸리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

“……!”

반사적으로 본 커다란 쇼핑백 안에는 사자, 기린, 고양이, 고래 스티커가 붙은 단단히 포장된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아, 그 라텍스 베개?”

“맞아. 라텍스 동물 베개, 동물 바디필로우, 방석 이것저것 넣었어. 압축된 상태니까 풀면 확 커질 거야. 가져가서 동생들 줘.”

“이걸 전부 저를 주신다고요? 이거 기념품으로 사신 거 아닌가요……?”

“집에 많아. 그리고 저기서 또 살 예정이니까 걱정할 거 없어…….”

라텍스 아저씨는 가까워지는 민장 호텔을 가리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왔는데 오늘 또 왔어. 당연히 이번에도 사겠지. 라텍스 동물 베개가 줄어들지를 않아…… 집이 동물원이 되어 가고 있어. 하-.”

짧은 한숨에 담긴 복잡한 감정.

천문석은 쇼핑백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집에 꼬맹이들이 좋아 하겠……!”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꼬맹이들이 좋아한다!’

[꼬맹이 = 특급 헌터 = 류세연 = 한경석!]

한경석이 푸저우 시가지에서 관광한 건 어제!

눈앞의 라텍스 아저씨가 어제 푸저우 시가지에서 쇼핑했다면 동선과 ‘시간’이 겹친다!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라텍스 아저씨를 봤다.

‘어제 왔는데 오늘 또 왔어.’

‘어제 왔는데 오늘 또 왔어.’

‘어제 왔는데 오늘 또 왔어.’

……

라텍스 아저씨의 탄식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쇼핑백 속 라텍스 동물 베개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슴푸레 떠오르는 한 가지 확신!

‘설마, 설마! 설마!!’

천문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제 저 호텔 라텍스 상점에서 라텍스 동물 베개를 사실 때…….”

“살 때 뭐?”

의아한 듯 반문하는 라텍스 아저씨.

꿀꺽-

천문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질문을 이었다.

“혹시 이런 사람 없었나요? 후드를 푹 눌러쓰고 낯을 좀 가리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툭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 한경석! 경석 양을 알아?”

경석 남자 이름 뒤에 붙은 양(孃).

뭘 더 확인하고 할 것도 없었다.

이 순간 남중국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젯밤 민장 호텔에 도착.

오늘 아침 푸저우 시가지로 나와.

하루 종일 시가지를 샅샅이 훑었고.

서호 공원에서 김태희 대령을 만나 난장판이 됐으며.

유람선에서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들을 포섭했다.

이 긴 하루의 목적, 한경석 흔적 찾기.

그러나 경석이의 흔적은 자신이 숙소를 잡은 민장 호텔, 우연히 말을 걸고 친해진 라텍스 아저씨에게 있었다.

“…….”

천문석은 아직 환한 하늘을 바라보며 온 마음을 담아 뜻을 전했다.

‘하늘님. 진짜 이러시긴가요?’

* * *

유람선이 민장 호텔 앞 선착장에 접근하는 짧은 시간!

천문석은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투어 가이드!

“제 친구가 하루 전에 지나간 팀에 있던 것 같은데. 혹시…….”

“개인 신원은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투어 가이드는 철벽!

천문석은 잽싸게 라텍스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달려갔다.

“아, 한경석 그 아가씨! 원래 6팀 소속인데 깃발을 놓치고 낙오해서 데리러 올 때까지 우리랑 같이 쇼핑했어!”

지금 투어 가이드가 들고 있는 인솔 깃발은 푸젠성 문화 탐방 ‘7팀’!

한경석이 참가한 팀 푸젠성 문화 탐방 ‘6팀!’!

예상대로 한경석은 같은 관광 회사의 단체 관광객에 끼어서 움직였다!

“혹시 어디로 갔는지도 아시나요?!”

“6팀 투어 가이드가 픽업해서 우리랑 같은 관광코스를 돌았을걸? 먹자골목, 기념품점, 서호 공원, 북항에서 유람선 타고 내려왔을 거야. 지금 우리처럼 말이지. 아마 다음 일정도 우리랑 비슷하지 않을까?”

됐다! 생각 외의 변수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상정 범위 안! 계획을 크게 변경할 정도는 아니다!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천문석은 잽싸게 인사하고 진교은에게 변동 사항을 알렸다.

“한경석의 끊긴 동선! 더 웨스틴 푸저우 민장 호텔이야! 호텔이랑 라텍스 매장에 칠성파 애들 보내서 확인해. 한경석 위치 찾으면 바로 문자로 쏴 줘!”

-네! 부사장님!

이제 움직일 때다!

천문석은 전화를 끊고 갑판 가장자리 난간으로 달려갔다.

유람선은 어느새 선착장에 멈춰 섰고 하선 준비를 하는 중!

천문석은 바로 난간을 휙 뛰어넘어 선착장에 착지하는 순간 바로 달렸다.

한경석이 흔적을 남겨 놓은 장소는 라텍스 상점과 식사, 카지노, 불꽃놀이를 구경했을 민장 호텔이다!

쇼핑몰, 호텔에는 CCTV가 있다!

CCTV를 확인해 시간대를 특정하고 결제 기록을 뽑아내면 빠른 추적이 가능하다!

여기선 자신이 직접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남중국의 마혁진과 칠성파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서울의 진교은이 분석하면 한경석의 동선 추적은 시간문제!

자신이 할 일은 한경석의 동선 추적이 끝나고 위치가 특정되는 순간 찾아가 데려오는 거다.

즉, 자신은 계획의 1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3단계, 2단계로 순서로 넘어가면 된다.

3단계. 바로 앞에 있는 민장 호텔에서 짐과 장비를 회수!

2단계.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을 난장판에서 빼낸 후, 철검장의 비밀 거점으로 이동한다!

계획을 세운 천문석은 전력으로 달렸다.

한달음에 선착장, 강변 공원, 쇼핑몰을 지나 들어간 호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여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헌터용 배낭을 앞뒤로 메고 커다란 캐리어를 양손에 하나씩 끌고 있는 거지꼴의…….

“……미친 치와와? 너 왜 여기 있냐? 몰골은 또 왜 그 모양……?!”

천문석이 멍하니 말하는 순간 거지꼴을 한 김태희 대령의 입에서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씹! 최후식 새! 아니 알바…… 아니 야! 너 도대체 이름이 뭐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새끼야! 내가 어! 내가! 얼마가 개같이 굴렀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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