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86화 (98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6화>

천문석이 칠성파 잔당을 고용하고 유람선을 타고 민장강을 내려온 지 20분!

멀리서 투어 가이드의 외침이 들려왔다.

“푸젠성 문화 탐방 7팀 여러분 모여 주세요! 이제 10분 후 하선합니다!”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이제 유람선에서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

이제 가이드와 대화 후 유람선에서 내려,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다.

-가이드에게 일정 알아내기.

-호텔 방에 놓아둔 장비 회수.

-파티마, 김태희 대령 빼내기.

-칠성파가 만든 철검장의 비밀 거점 먹기.

-비밀 거점을 기반으로 은밀하게 푸저우시를 수색한다!

푸저우시에서 한경석을 찾는 시간제한은 수요일까지.

이후 마혁진과 칠성파가 보내 준 정보를 분석한 진교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럼 부탁한다!”

천문석은 부하들과 대화 중인 마혁진에게 손을 흔들고 성큼성큼 가이드를 향해 걸었다.

“야, 잠깐만!”

다급한 외침과 함께 달려와 나란히 걸으며 묻는 마혁진.

“아까 약속 확실한 거겠지? 네가 찾는 사람의 발견 여부와 상관없이 블랙리스트에서도 지워 주는 거 맞지? 나중에 다른 말 하는 거 아니지?”

마혁진은 몇 번이나 확인한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아까 얼굴 보고 통화했잖아? 왜 이태성 길드장 아닌 거 같냐? 가짜일까 봐? 다시 통화시켜 줘?”

“아니 그건 아닌데…….”

마혁진은 말끝을 흐리며 생각했다.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태성 길드장.

하지만 자신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태성과 부딪쳤다.

방금 전 통화한 사람은 이태성이 확실했다!

지금 자신이 궁금한 건 이태성의 진위가 아니라 지금 갑판을 가로지르는 이세기의 정체였다.

처음에는 흥분에 그냥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식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과 친분이 있는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이태성 길드장과 직접 통화하고, 블랙리스트에서 지워 주기로 약속까지 받아 냈다.

사기꾼, 구라쟁이, 재앙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던 이세기가 이태성 길드장을 설득한 거다!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이세기는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태성 길드장을 향해 그냥 친한 동네 형에게 말하듯 툭 말을 던졌다.

‘이태성 길드장님. 칠성파 애들 좀 쓸 일이 생겼는데, 블랙리스트에서 지워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돌아오는 이태성 길드장의 반응도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자신과 부하들을 쓱 훑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얽힌단 말이지? 알았다. 크크크크킄-

그리고 길게 이어지던 어쩐지 등골에 소름이 돋는 웃음소리!

그때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이태성은 누가 청탁을 하거나 압력을 넣는다고 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녀석이었다면 움직이는 재앙, 인간 자연재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거다!

국회의원, 재벌 3세, 보이스피싱 조직, 게임 아이템 사기꾼, 사냥터를 통제하는 길드.

눈에 밟히는 건 모조리 박살 내는 게 이태성이다!

그런 이태성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게이트 전쟁의 영웅 검은 폭풍이나 강철 해머 같은 전우뿐!

하지만 이세기는 이태성의 전우도 1세대 헌터도 아니다!

겉모습은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20대 초반 평범한 대학생!

당장이라도 싸우면 1초도 걸리지 않아 제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깃발을 꽂고 직접 싸웠기에 너무나 잘 알았다.

이세기의 상상을 초월한 싸움을!

양손이 부딪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섬광과 굉음!

감각이 교란되고 초능력이 봉인되는 기이한 힘이 담긴 공격!

신동대문 지하터널에서 김태우 대령과 함께 2:1로 싸울 때도 이세기를 제압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열사의 사막에서 스카라베 징수관을 피해 고물을 주워 파는 극한의 생활을 거치며 한계를 넘어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이세기는 자신보다 더 강해졌다.

열사의 사막에서 재회한 순간,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는 찰나의 순간에 폭풍 같은 공격을 받고 기절했다.

이제는 이세기와 다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듣도 보도 못한 기술!

미친 잔머리와 주도권을 쥐고 판을 움직이는 머리!

마치 끌어당기는 것처럼 사방에서 밀려오는 불운까지!

‘이세기, 이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몇 번이나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하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김기철과 부하들의 이야기!

강릉 이상 던전에 빨려 들어가 부산 해운대 게이트로 탈출할 때까지 부하들이 겪은 믿기지 않은 일들!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이세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세기와 얽힌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났다!

-농악을 울리는 원숭이 수인 무리.

-쾌속선을 몰고 나타난 엄청난 부호.

-불의 뱀을 두르고 하늘을 날아오던 엄청난 강자.

-사막 위를 달리는 수백 척의 배와 거대한 요새.

하나같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부하들의 이야기에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것들도 나왔다.

열사의 사막을 달리는 초거대 악어거북 위에 세워진 기동 병참 도시!

엄청난 비용 때문에 자리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한 기동 병참 도시의 마스터도 이세기와 친분이 있었다!

김태희 대령, 이태성 길드장만이 아니었다.

지구, 게이트 너머 이세계, 이상 던전과 연결된 차원들까지!

믿을 수 없게도 이 모든 곳에 이세기와 얽힌 녀석들이 있었다!

이제는 이세기가 갑자기 ‘검은 폭풍’, ‘재금 그룹 오너’, ‘남중국 천검’에게 전화를 걸어,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마혁진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마혁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챘다.

김태희 대령 + 이태성 길드장!

생각지도 못한 거물의 등장에 얼이 빠진 채 자신을 따라 걷고 있는 마혁진.

‘마혁진 이 녀석! 내가 김태희 대령, 이태성 길드장 급의 거물로 생각하고 있구나!’

어이없지만 당연한 오해였다.

자신도 직통으로 전화를 걸고 사면을 받아 주는 모습을 봤다면 같은 오해를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오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마혁진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한경석을 추적할 테고, 이태성 길드장의 블랙리스트에서 지워질 테니까!

그야말로 윈-윈!

구라의 최고봉,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구라를 쳤다!

‘카캬캌-.’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터트리며 얼빠진 표정의 마혁진에게 말했다.

“야! 정신 차려! 이거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야!”

“뭐……?!”

“생각해 봐? 이게 쉬운 일이면 이태성 길드장이 블랙리스트에서 이렇게 쉽게 지워 줬겠냐?”

“……!”

흠칫 놀라는 마혁진.

천문석은 유람선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타깃이 민장강을 타고 남중국해로 빠져나가 취안저우, 샤먼, 대만으로 이동 중이라면? 만약 그렇게 되면 뭐가 제일 중요하겠냐?”

마혁진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깃은 멀어지고 추적할 동선과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대한 빠르게 뒤를 추적해서 흔적을 발견하고, 보고 동선을 파악해야 했다.

즉,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

“맞아. 시간이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

자신은 대환단을 가진 NTM_CHS, 최후식이란 누명을 썼고.

파티마, 김태희 대령은 최후식의 동료로 알려진 채 대환단을 노리는 각성자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대형 길드, 대기업, 다국적 기업, 군벌. 그리고 천검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대환단을 노리는 거물들이 더 많이 모여든다.

데드라인은 천검과 군벌 수장들이 도착하는 수요일!

그 전에 푸저우시에 한경석이 있는지 확인을 끝내고 이탈해야 한다.

이게 자신이 마혁진과 칠성파 잔당의 사면을 주선하면서까지 고용한 이유였다.

‘이상 던전에서 빡세게 굴리고, 깜빡하고 하늘 고래호에 버려두고 온 것도 조금은 영향을 끼쳤고 말이야.’

천문석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알았지! 야, 마혁진! 이번에는 잘하자! 좀! 알았지?!”

“알았다. 최선을 다할 테니까. 걱정…….”

진지한 얼굴로 손을 잡으려던 마혁진은 멈칫했다.

“왜? 뭐 할 말 있으면 빨리해! 관광객들 모이고 있어! 이제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마혁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 몇 살이냐?”

“……!”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흠칫 놀라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노화 역전 각성한 거냐? 말투만 봐서는 4, 50대 같은데, 아까 이태성한테는…….”

말끝을 흐리는 마혁진!

천문석은 마혁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아차! 이런 실수를 하다니!’

‘뭐야? 갑자기 무슨 나이 이야기야?! 99살이다! 새끼야!’라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99살은 전생에 현생의 나이를 더하고 마굴과 세계를 걷던 시간까지 대충 모두 합친 나이였으니까!

‘이거 어떡하지?!’

무림이었다면 ‘야, 내가 마도 지존 천마야!’ 한마디면 간단히 해결된다!

무림 공적 천마는 수많은 이해관계로 배분이 더럽게 높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곳은 지구!

게다가 자신과 마혁진은 만나면 민증부터 까고 형, 동생을 가르는 아직 유교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한국 사람이었다!

천문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냥 눈 딱 감고 전생 나이까지 모두 합쳐서 말해?!’

‘반로환동! 노화 역전 각성을 했다고 구라를 쳐?!’

하지만 한국에서 나이는 무조건 민증이다!

그리고 자신의 민증에 박힌 나이는 50대의 반도 안 되는 나이, 23살!

‘그냥 사실대로 23살이라고 말할까?!’

하지만 마혁진은 이태성 길드장과 동년배 최소 40대! 아니, 하얗게 센 머리와 삭은 얼굴만 보면 60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인다!

빤히 쳐다보는 마혁진의 얼굴에 생겨날,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들려온다!

빤히 쳐다보는 마혁진의 입에서 튀어나올, 황당해하는 외침이!

‘뭐? 스물세 살! 23살이라고?! 너 서른도 안 됐다고?! 와 이 핏덩이 새끼가! 형도 아니고 아버지뻘한테 지금까지 반말을……!’

팟-

이때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화제는 더 큰 화제로 덮는다!

천문석은 잽싸게 잡낭으로 손을 넣으며 말을 돌렸다.

“야, 됐고. 이거나 받아라!”

“너 지금 말 돌리…….”

더럽게 눈치 빠른 마혁진의 눈매가 좁혀지는 순간.

잡낭 안을 훑는 손끝에 걸리는 익숙한 금속 질감!

‘찾았다!’

천문석은 금속 질감의 물체에 재빨리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주입하고 마혁진에게 튕겼다.

핑그르르르-

탁-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얼굴로 날아오는 물체를 낚아채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건 뭐……?”

천문석은 말을 끊고 외쳤다.

“우리 거래의 ‘담보’다! 잡은 손에 각성력을 집중해 봐라! 내력을 밀어 넣었으니까. 1, 2분 정도는 너도 느낄 수 있을 거다!”

“담보? 내력? 1, 2분 정도 느낀다고?”

마혁진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각성력을 손에 모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

느껴진다!

손에 모인 각성력이 뻥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라지고 있다!

“각성력이 사라진다고?!”

깜짝 놀라 되묻는 마혁진!

‘화제전환 성공! 카캬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안으로 빨아드리는 거다. 아니지 도로 뱉지 않으니까 사라지는 건가? 야, 하여튼 그거 엄청 귀한 물건이다! 일 끝날 때까지 ‘담보’로 맡겨 둘 테니까 나중에 돌려줘! 난 간다!”

내심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재빨리 외치고 몸을 돌려 달렸다.

“담보? 야, 이게 뭔지 말해 줘야지!”

“엄청엄청 귀한 거야! 그럼 나중에 보자! 따라오지 마!”

천문석은 크게 외치고 한달음에 갑판을 달려 단체 관광객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

마혁진은 한참 동안 이세기가 스며든 단체 관광객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내렸다.

마치 욕조의 물이 구멍에 빨려 들듯 각성력을 빨아드리는 무언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이세기가 던져 주고 간 ‘담보’가 이 손안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세기와 처음 얽혔을 때처럼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고 찌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1세대 헌터, 초능력 각성자의 직감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장 손을 펼쳐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이세기를 따라가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한참 동안 고심할 때, 돌연 각성력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사라졌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펼치는 순간 손바닥에 놓인 ‘담보’가 보였다.

별이 새겨진 동그란 금속.

“동전?”

마혁진은 손바닥에 놓인 동전을 들어 올렸다.

이세기가 튕겨 주고 간 담보는 앞뒤 면에 별과 용이 새겨진 검은 동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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