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2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대만 타이페이?!
여기서 대만이 왜 튀어나와?!
이거 유람선이라며? 한강 유람선 같은 거 아니었어?!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순간 음료를 서빙하는 종업원이 지나갔다.
“저 잠시만! 이 유람선, 어디로 가나요?!”
“네, 손님. 이 유람선은 민장강을 따라 내려가며 푸저우시 곳곳을 관광하고 남중국해로 빠져나간 후. 해안선을 따라 남쪽 취안저우시, 샤먼시까지 내려간 후에 펑후현을 거쳐 대만 타이난, 타이중을 거쳐 타이페이를 최종 목적지로 하고 있습니다.”
종업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지명들!
바로 머릿속 지도에 경로가 그려졌다.
남중국해로 나가, 해안선을 타고 내려가 대만을 반 바퀴 도는 경로가!
“……!”
눈앞이 아득해져 순간적으로 휘청이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손님 괜찮으세요?”
“자네 괜찮은가?”
종업원과 라텍스 아저씨.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요?”
“네. 얼마든…….”
종업원이 서빙하는 칵테일을 입안에 털어 넣는 순간, 라텍스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거 없어.”
“네?”
“이 유람선, 바로 타이페이로 가는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서 곳곳에 정박하고 관광하며 이동하는 거니까 말이야. 오늘 푸저우시에서만 몇 번이나 정박할 거야. 편한 곳에서 내리면 돼. 그렇지?”
라텍스 아저씨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종업원.
“당연하죠! 자유롭게 하선 가능하십니다. 손님.”
“그렇군요.”
천문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차라리 대만으로 바로 가는 게 더 나았다!
중간중간 정박하고 그때마다 하선할 수 있다는 말은, 그 모든 장소에서 한경석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뜻이니까!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한경석이 탔던 유람선은 푸저우시를 출발해 취안저우시, 샤먼시를 거쳐 대만 타이난, 타이중, 타이페이까지 간다!
굵직굵직한 도시만 이 정도다!
중간에 멈출 자잘한 항구, 관광지를 생각하면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아진다!
자신 혼자서 오늘 안에 한경석이의 위치를 특정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머릿수라도 많으면 한 명씩 떨궈 가며 확인하겠지만, 지금 자신은 혼자!
현재 대환단으로 난장판이 된 푸저우시에서는 인력을 충원할 방법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다!
천문석은 갑판 한쪽 가이드를 눈짓하며 라텍스 아저씨에게 물었다.
“혹시 구체적인 여행 일정 모르시나요?”
어깨를 으쓱하는 라텍스 아저씨.
“아까 서호 공원에서도 말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말을 안 해 줘. 이 여행사 모토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놀라움이라나? 그래서 우리 집에 라텍스 베개, 쿠션, 지압봉, 깔창이 하나 가득이지…… 하-.”
탄식과 함께 투어 가이드와 이야기 중인 부인을 바라보는 라텍스 아저씨.
천문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승객은 구체적인 일정을 몰라도 투어 가이드는 당연히 일정을 알고 있을 거다.
숙소, 식당, 이동 수단을 준비하려면 당연한 일!
그렇다면 투어 가이드에게 직접 일정을 확인하면 된다!
지금까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투어 가이드와 관광객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천문석은 투어 가이드에게 걸어가며 난간 밖, 푸저우 시가지를 살폈다.
멀리 강에서 바라본 도시는 고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파티마는 추적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뒷골목 양아치, 조폭, 조직원들은 걱정할 것 없다.
대형 길드 헌터, 대기업 보안팀이라도 파티마를 잡지는 못할 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남중국 전체에서 천검에게 줄을 대기 위한 강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무림이나 지구나 변함없는 진리, 다굴에는 장사 없는 법!
한가하게 유람선에서 관광하며 대만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천문석은 투어 가이드에게 다가가며 슬쩍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수첩을 꺼내 흔드는 투어 가이드.
“여기에 적혀 있답니다.”
이렇게 쉽게?!
“제가 그 일정을 좀 봤으면 하는데?!”
천문석이 반색해서 말하는 순간.
투어 가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회사 방침이라 구체적인 일정 공유는 힘들어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놀라움!’ 이게 우리 회사 관광상품의 핵심이거든요.”
“맞아! 그래서 홈페이지에도 세세한 일정이 없다니까! 학생, 그래도 걱정할 거 없어. 김 양이 여행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짜는지 올 때마다 깜짝 놀란다니까! 우리 부부 완전 단골이야!”
라텍스 아주머니의 맞장구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투어 가이드.
“후흐흣-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과 밤에도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을 테니 기대해 주세요.”
가이드의 말대로 깜짝 놀랐다.
한강 유람선을 생각하고 탄 배가 대만 타이페이행 배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천문석은 재빨리 접근 방법을 바꿨다.
“서호 공원에서 소란이 있었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일정을 알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훗- 남중국에 처음이라 모르시나 본데. 남중국에서는 아까 서호 공원 소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냥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접촉사고 같은 거예요.”
투어 가이드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니! 백 명이 넘는 각성자가 뒤엉켜 싸웠는데 사소한 접촉사고라고?!
게다가 지금 도시가 실시간으로 난장판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
그리고 아까 다급히 관광객 모아서 튀는 모습을 봤는데?!
황당함에 말문이 컥 막힐 때, 이어지는 이야기.
“게다가 ‘천검’이 곧 이 도시에 방문하거든요! 남중국 전체에서 유력자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높은 분들이 오시는데 소란? 훗-! 당연히 저 소란은 금세 가라앉을 거랍니다!”
투어 가이드의 확신 어린 말투.
소란이 가라앉는다고?
아니, 오히려 소란은 더욱 커질 거다!
지금 일어난 소란은 천검이 원하는 대환단 때문에 일어난 일!
천검을 만나기 위해 남중국 전체에서 모여드는 유력자들은 대환단을 얻기 위해서 난장판에 끼어들 테니까!
즉, 지금 푸저우시의 소란은 이제 시작일 뿐!
곧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칠 거다!
당장이라도 이 모든 사실을 자신만만한 표정의 투어 가이드에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쉬운 건 자신이니까!
천문석은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남은 일정만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중간에 내려야 하는데 좀 걱정이 되셔요.”
아-
짧은 탄성과 함께 힐끗 주위를 돌아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품 안에 손을 넣는 투어 가이드.
됐다! 언제나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
한번 물꼬를 틔웠으니 세세한 일정을 모두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
오늘 안에 모든 일정을 알아내 서울에서 백업 중인 진교은에게 넘기면 한경석의 동선을 파악하고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이때 수첩을 꺼내던 투어 가이드가 깜빡했다는 듯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럴 때 댈 이름은 하나밖에 없었다.
천문석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세기입니다.”
이 순간 투어 가이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기라고?”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
천문석은 문득 가이드 어깨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이 순간 갑판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하얗게 센 머리.
형형하게 빛나는 검은 눈.
검붉게 타고 거칠게 일어난 얼굴.
기름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몸과 팔다리.
딱 보는 순간 던전 노역장에서 1년은 빡세게 구른 죄수가 생각나는 남자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돌처럼 굳어 있었다.
어쩐지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 얼굴!
그러나 지금 보이는 반응만 봐도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세기란 이름으로 굴렸던 수많은 상대 중 한 명일 거다!
‘하필 지금!’
천문석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고 가이드에게 한 걸음 다가가 계단을 등졌다.
마치 처음부터 눈이 마주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누구지?!’
* * *
이 순간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쿵, 쿵, 쿵, 쿵-
천둥 치듯 울리는 발소리에서 느껴지는 확신!
이세기라고 외쳤을 때 만났던 놈이 분명했다!
상대가 누군지는 알아야 입을 털 든 구라를 치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부딪치기 전에 상대가 누군지 기억해 내야 한다!
천문석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오리온 길드 현장 면접에서 일기일원공에 입문한 후 얽힌 인물들!
그중에서 이세기라 외치고 굉천수 눈뽕을 먹인 놈들만 추리면 된다!
배송 경주, 무림 던전, 신동대문 퀘스트, 몬스터 웨이브, 한·중·일 조폭 길드, 거대 괴수 위에서의 대전, 제주 사태, 카지노 나이트, 간첩선 사건, 부산 던전 배송 의뢰, 세기말 대한민국, 강릉 이상 던전, 계단산, 적염성, 항구 도시, 기동 병참 도시…….
기억을 되짚는 순간 줄줄이 튀어나오는 사건들과, 파파팟 끝없이 눈앞을 스치는 얼굴들!
‘뭐야?! 얘네들한테 전부 이세기라고 말하고 굉천수의 눈뽕을 먹였다고?!’
새삼 경악하는 순간.
쿵-
갑판을 울리는 발소리가 멈추고,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기……?”
이 찰나의 순간 천문석은 고뇌했다.
‘도대체 누군데 내 이름을 알지?!’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혹시 잘못 본 거 아닐까?!’
이세기는 흔한 이름!
사람을 잘못 봤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낯이 익은 사람이 자신을 이세기라고 부를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
자신의 등 뒤에 멈춰 선 헌터는 자신을, ‘이세기’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혹시 아시는 분이세요?”
이때 투어 가이드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지금!’
이대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플랜 B, 먼저 아는 척을 한다!
“누구신…….”
잽싸게 얼굴에 의문을 담고 의아한 듯한 질문과 함께 몸을 돌린다.
“…….”
“…….”
다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깨달음의 환희, 만남의 반가움과 기쁨을 담아 외친다.
“와! 아니, 이게 얼마 만……!”
이때 갑판 계단에서 줄줄이 나타나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어째선지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 얼굴들.
던전 노역장에서 1년은 빡세게 구른 죄수가 생각나는 남녀가 줄줄이 계단을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치며 올라오는 남자.
“길드장님! 거점에 연락했고, 보트 준비도 끝냈습니다! 최후식 동료가 어디서 나타나든 바로 추적 가능합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는 순간, 팟- 깨달음의 섬광이 터졌다.
강릉!
강릉 이상 던전에 같이 빨려 들어가 구른 칠성파 중간 보스 김기철이다!
‘칠성파 김기철? 잠깐 그렇다면?!’
눈앞의 어쩐지 낯익은 남녀를 다시 보는 순간 오버랩되는 장면.
찢어지고 해진 옷!
땀과 흙먼지로 엉망인 얼굴!
미친 듯이 노를 저어 경련하는 팔다리!
눈앞의 남녀는 김기철과 같이 이상 던전에 빨려 들어왔던 칠성파 잔당들이다!
지금 딱 필요한 인재들이 나타났다!
“와! 뭐야?! 어떻게 여기서 만나! 야! 너희, 나 기억나지?!”
천문석은 번쩍 손을 들어 흔들며 반갑게 외쳤다.
“……!”
“……!”
“……!”
칠성파 잔당들은 단숨에 굳어 버리고, 중간보스 김기철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너, 너, 너너너?!”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다. 이상 던전에서 너희들을 구해 준…….”
이 순간 혼을 불사르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 너 이 새끼!!”
“……!”
천문석은 이 외침을 듣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 어쩐지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 얼굴의 남자에게 물었다.
“마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