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77화 (97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77화>

“……알바 그놈이 서호 공원에 오게 해 주세요!!”

하늘에 외치는 순간 대답이 들려왔다.

하늘이 아닌 등 뒤와 좌우 골목에서!

“왔구나!”

“예상대로 여기로 왔구나!”

“NTM_CHS!”

“한 번에 들이쳐서 잡는다!”

우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골목과 고택에서 쏟아져 나오는 용역, 헌터, 조폭, 조직원들 수십 명!

와드드득-

김태희 대령은 강철혼에 사념파를 담아 정면으로 돌진했다!

“으아악- 젠장젠장!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 * *

“아- 한가하고 편하다.”

천문석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돌아봤다.

북과 남, 둘로 나뉜 커다란 호수.

그리고 남쪽 호수에 뜬 두 개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인 공원.

서호 공원!

단체 관광객에 끼어 서호 공원에 도착한 지 20분! 지금은 자유 관광 시간이었고, 천문석은 투어 가이드를 시야에 둔 채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태양은 쨍하다.

쌀쌀하던 서울과 달리 푸저우시는 화창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돼서일까?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풀려 어느새 진짜 관광을 온 것처럼 느긋해진다.

으아아아-

천문석은 한껏 기지개를 켜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태양 아래에서 느긋하게 걸었던 게 얼마 만이지?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진짜 이게 얼마 만이지?!”

문득 현재에서 과거로 기억을 되짚는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로또 추첨을 기다리며 집에서 뒹굴 때?

-부산 해운대 게이트를 지나 지구로 돌아왔을 때?

-적염성을 떠나 마침내 항구 도시 바나에 도착했을 때?

-제주도 임옥분 여사님 집에서 뒹굴다가 농수로에서 물썰매를 탔을 때?

-서울 사태가 끝나고 키즈 카페에서 잘리고 쉴 때?

-철수 형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때?

-키즈 카페 부점장으로 스카우트 됐을 때?

……

그러나 장면이 떠오른 매 순간 고개가 좌우로 저어졌다.

-로또는 꽝!

-게이트를 나와선 격전!

-항구 도시 바나에선 난장판 도주극!

-농수로 물썰매는 등짝 스매싱 결말!

-키즈 카페에서 잘리고 쉴 때는 사역에 동원됐다가 신검 좌절!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서울 사태 발생!

-키즈 카페 부점장이 되고 악마 꼬맹이들을 만났다!

“……!”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사고가 터졌다!

키즈 카페 부점장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맘 편하게 쉬었던 기억이 없었다!

‘아니, 뭐야?!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했다고?!’

충격적인 진실에 휘청이는 순간.

타다다다닥-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번에도 사고가 터진 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꽃장식 페도라를 쓰고 전력으로 달려오는 파티마가 보였다.

“뭐야? 너 왜?”

파파파팟-

파티마는 대답 없이 길옆 수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파티마가 달려온 방향에서 들려오는 외침!

“어디로 간 거야?! 예비 각성자님!”

“야! 네가 그렇게 들이대니까 도망치지!”

“달려!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천문석을 힐끗 보고 뛰어갔다.

이들은 천문석을 못 알아봤지만, 천문석은 이들을 알아봤다!

파티마를 둘러싸고 수작을 부리고 영입 제안을 하던 사람들이다!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던 인간 집어등, 파티마가 더는 참지 못하고 튄 거다!

“저, 언제까지 이걸…….”

수풀 속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서호 공원에는 관광객이 가득한 상황.

게다가 한경석의 동선을 확인할 방법도 알아냈다.

단체 관광객과 같이 움직이는 것!

이제 단체 관광객과 움직인다면 더는 파티마로 이목을 돌릴 필요가 없다.

“이제 안 해도 될 거 같아. 돌아가서 옷 갈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페도라를 휙 벗어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하와이얀 셔츠를 벗어 머리와 얼굴에 둘둘 두르는 파티마.

“됐습니다!”

“카메라도 나한테 넘겨라.”

천문석은 카메라를 건네받아 목에 걸었다.

자유시간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7분 남짓!

이제 곧 단체 관광객들은 민장강 북항으로 이동해 유람선을 탄다.

그럼 이번 미션도 클리어다!

천문석은 한껏 무료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가이드를 눈짓했다.

“따라가자.”

천문석은 관광객 사이로 스며들어 천천히 걸었다.

여전히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포근하다.

걷고 있는데도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지루한 정오.

그러나 이 무료한 정오가 미친 듯이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지루함, 무료함이었으니까!

한경석 찾기 미션은 착착 진행 중이고 불필요한 이목도 끌지 않았다.

지금껏 빡세게 굴렀지만, 이젠 괜찮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 끊으면 되니까!

천문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투어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자유시간이 4분 남짓 남았을 때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

“뭐야?”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섬에서 치솟는 기세!

“싸움이다!”

“각성자끼리 붙었다!”

우와아아아-

환호성과 함께 주위의 모두가 섬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천문석은 도로 가장자리에 멈춰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불길하다! 너무나 불길하다!

무료하다고 생각한 순간 일어난 패싸움!

방금 전 떠올린 기억!

마음을 놓는 순간 터지는 사고!

그동안 몇 번이나 개고생하게 된 메커니즘대로다!

저 섬으로 접근하는 순간 사건·사고에 휩쓸릴 거라는 감이 왔다.

“우리는 바로 빠진…….”

무료한 표정으로 걷던 투어 가이드가 다다닥- 경쾌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싸움 구경하러 가는 모습!

“우선 따라간다!”

천문석은 가이드를 쫓아 인파를 헤쳐나가며 귀를 기울였다.

구경하는 관광객과 일반인 너머.

헌터, 용역, 조폭, 뒷골목 양아치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녀석이 진짜…… 라고?!”

“맞아! 정보상 놈들이 추적했다!”

“NTM_CHS를 캐고 다니다가 낚였다!”

“맹달! 그놈이 함정을 파서 확인했다.”

“한국에서 왔다!”

“하! 멍청한 녀석! 그놈이 맞구나!”

“그럼 그것도 가지고 있는 거 아냐?!”

……

이때 구경꾼 사이로 멀리 포위망을 만들고 선 헌터, 용역, 조폭들이 보였다.

이들에게 가려져 싸우고 있다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벽을 만든 이들의 욕망 어린 시선과 달뜬 호흡. 흥분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면 충분했다.

천문석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짐작했다.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한국에서 NTM_CHS의 정보를 손에 넣은 녀석이 대환단을 찾겠다고 이곳 푸저우시까지 온 거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정보상을 찾아가 들쑤시고 다니다가 저 사달을 냈을 거다!

‘멍청한 녀석!’

천문석은 이번 미션의 파트너 파티마를 봤다.

자신은 한경석의 동선을 추적할 때도 혹시나 싶어, 파티마를 변장시켜 같이 움직였다.

이국적인 외모의 파티마에게 이목과 어그로가 끌려 자신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게 하려고!

그런데 대놓고 정보상을 찾아가 NTM_CHS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건 자신이 무언가 아는 게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멍청한 짓이다!

천문석은 바로 옆 파티마에게 속삭였다.

“그만, 더 가까이 가지 말자. 이런 놈이랑 얽히면 골치 아프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다가 저기 가이드 돌아가면 바로 뒤에 붙자.”

그리고 가이드에게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엄청난 각성력!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어, 어어?!”

“뭐야?! 쟤들 왜 쓰러져?!”

“어, 이쪽으로 움직인다!”

“피해! 좌우로 피해!”

구경하던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포위망을 세웠던 헌터와 용역, 조폭들이 와르르- 쓰러졌다.

그리고 보였다.

용역, 조폭, 헌터, 조직원 백여 명과 뒤엉켜 싸우는 각성자의 모습이!

찢어지고 구멍 난 옷 너머로 보이는 방검방탄복과 강화 전투복.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여 포위망을 벗어나는 몸놀림!

한 손에는 건틀릿을 다른 손에는 충격봉을 들고 끊임없이 때리고, 후리고, 밀고, 당기고, 집어 던졌다!

싸우는 게 아닌 쥐어박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압도적인 전투!

“뭐야? 저 녀석 멍청한 짓을 한 것치고는 잘 싸우네? 그런데 왠지 익숙한 것 같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문득 눈이 마주쳤다.

“……!”

“……!”

깨진 강화 헬멧 너머로 보이는 경악한 표정!

자신의 얼굴도 똑같을 거다.

갑자기 서호 공원에 나타나 조폭과 용역을 두들겨 패는 저 각성자는.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었으니까!

* * *

눈으로 내력을 끌어올리고 파파팟- 빠르게 비벼도 사라지지 않는 얼굴!

맞다! 분명하다!

광화문 태성 빌딩!

마력 오염 봉쇄선 안에 갇혀 있을 국가 헌병대 대령!

집이 와르르 무너져 분노한 이태성 길드장에게 쥐어박힐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이 푸저우시 서호 공원에서 싸우고 있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돌아오는 괴성!

으아아악-

김태희 대령의 움직임에 방향성이 생겼다!

연신 적들을 쥐어박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번쩍 깨달았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남중국이다!

게다가 김태희 대령은 부하 없이 홀로 용역, 조폭들을 쥐어박고 있다!

즉, 지금 저기서 싸우는 사람은 국가 헌병대 대령이 아니라 그냥 김태희 각성자로 싸우고 있는 거다!

태성 빌딩에서 김태희 대령을 피해 도망쳤던 건 그 뒤에 있는 국가 헌병대와 공권력 때문!

혼자 나타난 김태희 대령은 지금의 자신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NTM_CHS를 추적하다가 푸저우시 각성자 들과 싸움이 붙은 상황!

지금은 압도적으로 쥐어박고 있지만, 다굴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김태희 대령은 각성력이 마르는 순간 작살 나게 된다!

‘이걸 모르지 않을 텐데? 나한테 돌진한다고?!’

문득 드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니 서호 공원 입구로 이어진 길이 보였다.

김태희 대령은 자신이 아니라 도주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눈이 뒤집혀 자신에게 달려들면 투어 가이드 추적에 문제가 생기지만, 그것도 문제없다!

자신 대신 김태희 대령과 싸워 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하와이얀 셔츠를 얼굴에 둘둘 감은 너무나 믿음직한 파트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혹시 싸우게 되면 죽이진 마라.”

“네?”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반문하는 파티마.

그러나 이 말은 농담도 비유도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파티마는 초절정의 초입에 발을 들인, 하늘 아래 가장 강한 힘 강기(罡氣)를 사용하는 무인이니까!

카캬카카카캌-

통쾌한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길 가장자리 벤치 등받이 위에 올라 혀를 찼다.

“쯧쯧쯧- 내가 저 녀석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원한을 사더니!”

스스로 행한 업보가 불러온 재앙에 붙잡혀, 엉덩이에 불이 났을 특급 헌터와 같다!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 대령으로 수많은 헌터들을 던전 노역장에 처박은 업보가 터졌다!

남중국에서 동료 하나 없이 외롭게 싸우는 저 모습이라니!

천문석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용역, 조폭을 쥐어박으며 가까워지는 김태희 대령의 싸움을 구경하면서 동시에 힐끗힐끗 투어 가이드를 살폈다.

그리고 김태희 대령이 20여 미터 거리로 가까워졌을 때, 투어 가이드가 시계를 봤다.

그리고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몸을 돌렸다.

‘민장강 북항! 유람선을 타러 가는구나!’

천문석은 김태희 대령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야! 앞으로 착하게 살고 잘 도망가라! 화이팅!”

그리고 벤치 등받이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각성력이 담긴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하늘님! 감사합니다!]

“……뭐야 저 녀석? 하늘님? 갑자기 왜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 바라보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외쳤다.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최후식!]

순간 김태희 대령에게 쥐어박히면서도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던 용역, 헌터, 조폭 모두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최후식!

이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흩어진 조각이 하나로 맞물렸다.

NTM_CHS!

‘C.H.S.’는 이니셜이다!

수백 명의 각성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야구 모자에 운동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강철봉에 끈을 달아 어깨에 멘 청년.

별다른 기세도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는 청년이 벤치 등받이를 밟고…….

찰나의 순간 모자 아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눈과 눈!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철렁 내려앉는 가슴!

전율이 전신을 달리고, 소름이 등골을 타고 우수수 일어났다!

모두는 이성을 넘어서는 직관으로 깨달았다!

힘을 숨긴 강자다!

NTM_CHS.

CHS, 최후식.

저 청년이 최후식이다!

“NTM_CHS 최후식이 나타났다!”

거대한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김태희 대령을 향해 구르던 스노우볼이 방향을 바꿨다.

벤치 등받이를 밟고 서 있는 천문석을 향해서.

“뭐? 최후식이 나타났다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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