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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75화 (97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75화>

천검 이세기가 내단을 찾아 일진광풍이 되어 날아가고.

천문석은 더 웨스턴 푸저우 민장 호텔에서 잠든 일요일 밤.

대환단 스노우볼이 한국을 넘어 남중국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여기에 얽혀 들어간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김태희 대령은 뒷골목 정보상을 훑으며 NTM_CHS의 정보를 모았고.

마혁진과 김기태, 칠성파 헌터들은 비밀 거점을 만들고 NTM_CHS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천검을 만나기 위해 푸저우시로 이동하는 유력자들이 움직였다.

용역, 조폭, 헌터, 기업인, 조직원, 군벌 말단과 한탕을 노리는 뒷골목 양아치까지.

모두에게 푸저우시에 온 NTM_CHS와 그가 가진 진짜 대환단의 정보가 퍼져 나갔다.

천문석은 이런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햇살 냄새가 가득한 침대에서 편안히 잠들었다.

설령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으리라.

대환단은 열사의 사막에서 기동 병참 도시에 공물로 바쳤고.

어차피 자신의 손을 떠난 물건을 가지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천문석이 잠든 침대 옆 협탁에는 잡낭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잡낭 안 깊은 곳에는 그 주인조차 상상하지 못할 물건이 들어 있었다.

[무림 던전 주호 -> 천문석 -> 기동 병참 도시 -> 인공정령 아수라 비서 -> 특급 헌터 -> 잡낭]

긴 인과를 거쳐 돌아온 대환단!

사슴이, 반짝이, 퐁퐁이가 찾아낸 적염성 마탑의 머릿돌.

가끔 반짝이는 검은 동전 2개와 소리 나지 않는 나무 피리!

이 모든 게 손만 뻗으면 닿는 협탁 위, 잡낭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천문석은 이것을 알지 못한 채 쿨쿨- 꿀잠을 잤다.

이렇게 밤이 지나고.

월요일이 아침이 밝았다!

* * *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른 아침 베란다.

천문석은 진교은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링크를 누르자 푸저우시 지도와 그 위에 그어진 선이 보였다.

암살검 한경석의 동선!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에서 시작한 선은 북서쪽 푸저우 도심지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다가 서호 공원을 지나 도시 서쪽 끝 민장강에서 끝났다.

그리고 적힌 문자 내용.

[타깃의 흔적은 푸저우 도심 서쪽 ‘민장강 북항’에서 끊겨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이동한 것 같습니다. 동선 추적에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ㅇㅇ 이쪽에서도 동선을 확인해 볼게.]

천문석은 답문을 보내고 탄식했다.

“경석이 이 녀석, 어디로 튄 거야?”

계획이 시작부터 어긋났다!

-아침, 동선 추적이 끝나고 경석이 위치를 특정!

-점심, 한경석을 만나 회유하고, 선물을 사서 출국!

-저녁, 최후식 이사에게 한경석 인계 후 집으로 돌아간다!

플랜 A, 날로 먹기 계획이 틀어졌다!

이제 플랜 B,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문득 베란다 너머 시가지로 시선을 돌리자.

이른 아침인데도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이 사람들이 풍기는 기세는 딱 용역, 조폭, 경호원 스타일!

매의 눈을 한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군가를 찾고 있다!

직감하는 순간 떠오른 불안감.

‘설마, 경석이가 잡혔거나 쫓기고 있는 거 아냐?!’

하-

헛웃음이 터지고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지금 찾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한경석이다!

최후식 이사, 삼촌에게 꼬맹이처럼 쥐어박혀서 그렇지, 그 정체는 대인전 랭커, 암살검!

점멸 반지와 은신 망토를 착용한 한경석이 복잡한 시가지에서 잡혔거나 쫓기고 있다고?

한경석이 역으로 추적자들을 작살 내고 다닐 가능성이 더 컸다!

게다가 거리를 지나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을 살피는 모습을 보면 한경석을 특정하고 찾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한경석을 찾아야 할까?’

의문을 품는 순간 툭툭- 머릿속에서 생각이 튀어나왔다.

이곳 푸저우시는 남중국의 절대자 천검의 방문을 앞둔 상황.

비행기에서 봤듯이 사방에서 유력자들이 천검을 만나 호의를 사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이런 유력자들이 가장 원하는 물건이 바로 ‘대환단’이다!

즉, 지금 눈앞에 깔린 용역, 조폭, 헌터, 조직원, 양아치 등등은 대환단을 원하는 유력자들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컸다.

광화문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태성 빌딩을 아작 낸 남중국 헌터 팀장과 그 부하들처럼!

‘NTM_CHS에 대한 어떤 정보가 전해졌을까?’

천문석은 광화문, 태성 빌딩에서 구른 기억과 베란다 너머 시가지에 깔린 용역. 헌터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어떤 정보가 퍼졌을지 생각했다.

-헌터 나라 사이트에 올린 대환단 사진 수십 장.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에서 확인된 위치 정보.

-한국 출신 헌터일 거라는 당연한 추론.

이 정보를 종합하면 지금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답이 나온다.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거실 한쪽을 봤다.

한 치의 떨림도 소리도 없이 공간을 가르는 곡도!

바람검이라는 이름과 달리 바람 한 점 일으키지 않고 곡도를 움직이는 무인이 보였다.

갈색 피부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머리카락!

얼핏 봐도, 자세히 봐도 외국인 그 자체!

파티마 알사우드!

순간 빠르게 플랜 B가 수정됐다!

섣불리 정보상을 찾아가거나 탐문 하는 건 최악의 선택!

진교은이 한국에서 끊긴 동선을 추적하는 걸 기다리며.

자신과 파티마는 이미 밝혀진 한경석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듣는 노래, 읽는 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경석이 움직인 동선을 추적하면 경석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움직였을지 감이 올 거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현장에서만 알아차릴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까!

천문석은 계획이 서는 순간 바로 외쳤다.

“바람검! 준비해라 나가자!”

찰나의 순간 곡도가 검집으로 돌아가고 두 눈에 푸른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언제든지!”

파티마는 전장에 나가는 무사처럼 기세를 끌어올리고 절도있게 대답했다.

과연 초절정의 무인!

어지간한 상대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기세!

하지만 플랜 B에 필요한 건 초절정 무인 파티마가 아니다!

“야, 그거 아냐! 너 옷 가져온 거 좀 꺼내 봐라.”

“네?”

파티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배낭을 뒤집었고 티셔츠, 티셔츠, 티셔츠,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가 쏟아졌다.

“……안 되겠다. 우선 쇼핑부터 하자. 밥은 쇼핑하고 동선 추적하면서 적당히 먹기로 하고, 우선 나가자.”

천문석은 파티마와 함께 호텔에서 나와 바로 옆 쇼핑몰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후식 이사에게 받은 카드를 과감하게 긁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모자에 운동화, 여기에 끈을 묶은 강철봉을 어깨에 멘 천문석.

“좋아! 난 이 정도면 되겠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

파티마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진짜로 이 모습으로 움직인다고요?”

빙글 고개를 돌리자 완벽한 위장을 끝낸 파티마가 보였다!

하와이얀 셔츠에 5부 리넨 바지.

어깨에 걸친 기다란 플라스틱 화구통.

그리고 꽃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페도라까지!

바람 사막의 초절정 무인 파티마는 관광객 파티마로 변신했다!

“좋아! 아주 훌륭해!”

“저, 이 꽃 달린 모자라도 다른 거로……!”

“안 돼! 그 꽃장식 페도라가 포인트야! 바로 결제해 주세요!”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젓고 카드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리고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지시했다.

“내가 알아서 따라갈 테니까. 앞장서서 쇼핑몰 한 바퀴 걸어 봐라.”

“…….”

이해할 수 없는 지시.

그러나 지금 눈앞의 청년은 원 대륙을 그토록 헤매도 찾지 못한 진정한 무의 스승.

믿고 따라야 한다!

파티마는 인파가 가득한 쇼핑몰을 성큼성큼 걸었다.

천문석은 그 뒤 10미터 거리를 두고 따라가며 주위를 살폈다.

느껴진다!

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파티마에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리고 그 움직임에 따라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

천문석은 앞서 걷는 파티마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봤다.

170이 훌쩍 넘는 키!

무공으로 단련된 바른 몸과 곧게 선 목!

정기가 번뜩이는 두 눈과 칼날 같은 콧날!

꽃장식 페도라를 쓰고 하와이안 셔츠에 리넨 5부 바지, 샌들까지!

관광객 복장을 했음에도 파티마에게선 쉽게 범접지 못할 기세와 위엄이 느껴졌다!

당연했다.

파티마는 자신이 통에 넣어 데굴데굴 굴린 압둘라 왕자의 누나, 왕족이었으니까!

내력을 갈무리했음에도 은연중 드러나는 기세와 남 앞에 서는 자 특유의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이 모든 게 합쳐지자 이미 파티마를 아는 자신조차 위엄을 느꼈다.

당연히 쇼핑몰의 일반인, 용역, 헌터들은 홀린 듯 바라보면서도 움츠러들었다!

파티마에게 저런 옷을 입힌 것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효과가 너무 좋아 과유불급이었다!

저렇게 튀어서는 오히려 다른 시비가 걸릴 위험이 있다!

“하- 이거 분위기를 확 죽여야 하는데! 방법이……?”

고심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문득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저거다!’

딱-

손가락을 튕긴 천문석은 재빨리 파티마를 따라잡아 말했다.

“야, 얼른 따라와! 저기 네 부족함을 채워 줄. 아니지, 넘치는 걸 덜어 줄 물건이 있다!”

“…….”

파티마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따라 천문석을 따라 매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매장에서 나온 파티마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이건?”

위엄이 가득했던 얼굴에 떠오른 의문, 의혹, 황당함!

목에 걸린 카메라 하나로 분위기가 대폭 깎여 나가고 그냥 비범한 관광객처럼 보였다!

“아주 잘 어울린다!”

“…….”

툭툭-

천문석은 파티마의 어깨를 두 번 두들기고 바로 앞장섰다.

“자! 가자! 이제 경석이 움직인 동선대로 움직이면 된다!”

쇼핑몰에서 나온 천문석과 파티마는 북쪽 푸저우 시가지 중심으로 이어지는 한경석이 움직인 동선을 따라 이동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됐다.

파티마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집어등처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과 이목을 모으는 동안.

천문석은 누구의 제지도 관심도 받지 않고 한경석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3시간 후!

인파를 몰고 다니는 파티마와 10미터 거리.

천문석은 양꼬치와 과일 주스를 들고 서호 공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천문석은 양꼬치를 씹으며 직접 이동한 한경석의 동선을 생각했다.

양꼬치, 과일 주스 등등 먹자골목.

라텍스 침구, 백도 우롱차 전문점.

한글 간판과 메뉴판이 붙은 관광객용 식당.

……

천문석은 한경석이 움직인 동선을 한경석과 같은 속도로 걷고 멈추며 이동했다.

그리고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

바로 옆에 대장간, 헌터 용품점이 있는데 라텍스 침구, 백도 우롱차 전문점이라고?

한경석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를 방문했다!

둘!

한경석은 관광하듯 천천히 걸으며 라텍스 침구, 백도 우롱차 전문점에서 정확히 30분씩 시간을 보냈다!

‘암살검 한경석이 라텍스 베개를 30분 동안 구경했다고?!’

게다가 이 느린 발걸음과 느긋한 움직임!

한경석은 자신이 쫓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깨달음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의문들!

‘뭐지?! 이 녀석 왜 이렇게 움직인 거지?!’

사고를 치고 도망친 상황.

기댈 인맥도 기반도 없는 남중국이다.

게다가 언제 분노한 최후식 이사가 쫓아와 헤드락을 걸고 핵 꿀밤을 먹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느긋하게 관광객처럼 움직이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도대체 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벼락 치듯 뇌리를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관광객처럼!

‘설마?!’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는 순간 보였다!

한경석의 동선을 따라 걷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먹자골목, 양꼬치, 과일 주스 매대!

-라텍스 침구, 백도 우롱차 전문점!

-한글 간판과 메뉴판이 붙은 식당!

이 모든 장소에서 봤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는 작은 깃발.

[푸젠성 문화 탐방 7팀]

단체관광 인솔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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