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74화>
‘불발탄?!’
경악한 자신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빼앗듯이 리볼버를 낚아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타아앙-
거짓말처럼 마탄이 쏘아졌다!
“……!”
그 순간의 경악이라니!
검은 폭풍은 운이 좋았을 뿐, 자신도 실전에 나서면 그 이상의 위업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검은 폭풍을 직접 보면서 확신으로 변해 있었다.
각성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름진 얼굴과 그 얼굴에 떠오른 사람 좋은 동네 아주머니 같은 선한 미소!
‘이 사람이 검은 폭풍이라고?!’
직접 만난 검은 폭풍은 그 엄청난 위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타아아앙-
동기들뿐 아니라 교관을 넘어서며 하늘을 찔렀던 자존심이 반쯤 무너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남은 반쪽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특임 소장님. 그것도 한번 보여 주시죠?”
“대장님! 역시 자라나는 새싹들한텐 그걸 보여 줘야죠!”
교관과 헌터 부대 특임대의 열렬한 호응에 어깨를 으쓱하며, 리볼버 실린더에 마탄을 가득 채우는 검은 폭풍.
리볼버를 표적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다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
“…….”
“…….”
“…….”
자신과 동기들의 의아한 시선이 닿는 순간.
검은 폭풍은 표적에 빈 총을 겨누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물러서렴.”
“네……?”
타아앙-
방아쇠가 당겨지고 쏘아질 리 없는 여섯 번째 탄환이 발사됐다.
이 순간 깨달았다.
검은 폭풍이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켜 내고, 마침내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던 이유를!
지금 눈앞에 있는 검은 폭풍의 전투 예지 능력은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신의 주사위를 속이는 천외천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을 수식하는 말 그대였다!
100% 반드시 일어날 일을 비켜 내고!
0%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으킨다!
단순한 예지를 넘어서 확률 변수! 신의 주사위를 속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 그야말로 이능!
감탄을 넘어 경악과 두려움으로 뭐라 말을 이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검은 폭풍이 떠나가며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순간, 두려움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늦게 졸업하렴.”
한계를 넘도록 각성력을 뽑아내 늙어 버린 얼굴.
그 주름진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건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한 말에 담긴 뜻.
“…….”
김태희 대령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짜 최후식, 알바를 찾으면 이세영 소장님의 그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다!
순간 가슴속에서 의욕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좋아! 좀 더 전투 예지를 줄인다!’
김태희 대령은 강철혼에 심상을 집중한 채, 각성력 밸런스를 움직였다!
인위적인 각성력 밸런스 조종!
전투 예지를 줄이고 사이코메트리, 마탄 능력을 더 키운다!
츠츠츠츠츠츠-
천천히 전투 예지에 집중된 각성력이 줄어들 때.
팟-
섬광이 번쩍이고 눈앞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모자와 운동화!
어깨에 이상한 철봉을 메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남자의 뒷모습!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알바! 그 녀석이다!
후흐흐흐흐흐흐흣-
김태희 대령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방금 본 장면은 미래의 자신이 보게 될 광경이다!
전투 예지가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며 미래의 한 장면을 예지한 것!
즉, 조만간 알바 그 녀석은 자신 앞에서 정신없이 도망치게 된다!
하하하하하-
김태희 대령은 통쾌하게 웃으며 장비 위에 후드티와 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 썼다.
밤은 짧고 할 일은 많다!
우선은 정보상부터!
NTM_CHS, 알바의 꼬리를 추적한다!
완전 무장한 김태희 대령은 성큼성큼 걸어 방을 나왔다.
그리고 광화문 태성 빌딩에서 얽혔던 가짜 최후식, ‘알바’를 찾기 위해 호텔 밖 한밤의 푸저우 시가지로 나섰다.
전투 예지 능력자는 신이 아니었기에.
김태희 대령은 알 수 없었다.
알바가 자신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푸저우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바가 자신과 같은 호텔 바로 옆 객실에 투숙했다는 것을.
남중국 푸저우시에 수요일에 천검이 올 예정이고.
천검의 눈에 들에 들기 위해 군벌, 길드, 기업인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이들 모두가 NTM_CHS, 대환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 가지 사실이 무슨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김태희 대령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천문석과 한경석이 던지고 수많은 사람이 데굴데굴 굴려 엄청난 크기로 자라난 스노우볼!
이 거대한 스노우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NTM_CHS을 추적하는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외지인!
김태희 대령은 당당하게 푸저우시의 뒷골목으로 나아갔다!
나비보다 수천수만 배 커다란 김태희 대령이 날갯짓을 시작한 이 순간.
따악-
천문석은 샤워 후 캔맥주 뚜껑을 따고 있었다.
* * *
“캬- 시원하다! 파티마? 야, 야! 맥주 진짜 안 마셔? 빡센 하루 끝에는 맥주를 마셔 줘야 하는데?”
“…….”
베란다 앞.
무릎 위에 곡도를 올려놓고 정좌한 파티마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든 모습!
천문석은 내심 흡족하게 웃었다.
이번 남중국행은 감이 아주 좋았다!
검객의 표상이나 다름없는 저 모습을 보라!
심상에 그려낸 검에 온 마음을 담아 이상(理想)을 투영하고 있다.
초절정에 달한 무인이 처음 검에 발을 디딘 무인처럼 정진하는 모습.
파티마의 수련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수련법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건, 장마철 장대비가 아닌 천 년 동안 멈추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이니까.
파티마 알사우드는 가장 먼 길에 마음을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온 마음을 담아 우직하게 걷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앞길을 열어 줄 수 있었다!
초절정!
초인경의 시작을 넘어 그 앞으로 성큼 나아갈 동력! 무공을 전수해서!
‘어떤 무공을 전할까?’
굉천수, 구인창, 마종권, 데굴데굴, 생사팔문의 보법, 관음천수도…….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무공!
이때 활짝 열린 베란다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바람이 몸을 타고 도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깨달았다.
예전에 생각했듯 파티마 알사우드, 바람검에게 어울리는 무공은 따로 있었다.
시작된 곳 없이 불어오고, 끝난 곳 없이 사라지는 바람.
푸른 하늘, 창천에 흔적 없이 부는 바람.
창천무흔(蒼天無痕).
천하십절의 검절이자, 무림 맹주!
오랜 적수이자, 더 오랜 친우!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의 창천검!
‘파티마에게 이세기의 창천검을 전한다!’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바로 이거다! 이것 이상으로 파티마에게 어울리는 무공은 없다!
천문석은 문득 시선을 돌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베란다 밖 밤하늘을 바라봤다.
지상의 불빛에 가려진 별빛.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느낌이 왔다.
언젠가 아득한 하늘의 인과로 이세기와 파티마가 만나는 순간 보고 듣게 되리라!
오랜, 정말 오랜 친구의 그 잘생긴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고,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돌멩이 미친 새끼야! 내 창천검을 네가 왜 가르쳐?! 아니, 그보다 내 창천검을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유쾌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맥주캔을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들어 올리고 얄밉게 말했다.
“억울하면 직접 와서 따지던가?”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경쾌한 웃음과 함께 남은 맥주를 마시고 맥주캔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깡-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햇살 냄새가 가득한 침대!
역시 이번 남중국행은 정말 느낌이 좋았다.
어쩐지 오늘 밤 꿈에서는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만 같았다.
요새 너무 자주 등장하는 스승님이 아니라. 신나게 물장구치고, 즐겁게 나뭇가지 검을 휘두르고, 죽 한 그릇에 환하게 웃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마보를 서는 동생들과 빡빡이 이세기, 흐릿한 기억 속 적예를 보게 될 것만 같았다.
삶은 유한하나 그 본질은 무한히 이어지니.
찰나의 삶, 찰나의 꿈에서 그리워하는 이들을 다시 만나리라.
천문석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잠들었다.
* * *
남중국 후난성(湖南省), 장가계.
쏟아지는 달빛 아래, 날카로운 봉우리 수백 개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검날 봉우리 첨단.
한 남자가 미동조차 없이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검 이세기!
순간 일진광풍이 불어오고.
휘이이이잉-
이세기는 문득 시선을 내려 주위를 돌아봤다.
겹겹이 산맥을 타고 펼쳐진 수백 개의 검날 봉우리!
이 검날 봉우리는 이세기의 기억 속 모습과 일치했다.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지기 전 무림에서 봤던 것과 같다.
그리고 이곳의 지명도 같았다.
호남성 장가계.
하-
헛웃음을 터트린 이세기는 문득 말했다.
“장자지몽. 무림과 이 세계 어디가 꿈속의 세계인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말하는 순간, 다시 한번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
이 바람결에 어째선지 오랜 친우의 목소리가 실려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 새끼! 또 뜬구름 잡는 소리 하네! 야! 그럴 시간에 땅을 파! 한 푼이라도 벌어야 잘살지!’
지금 당장이라도 나타나 외칠 듯한 너무나 생생한 외침!
하하하-
이세기는 웃음과 함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돌멩이가 있을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순간 겹겹이 펼쳐진 산맥과 검날 봉우리 너머 아득히 먼 곳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이세기는 스마트폰을 꺼내 능숙하게 실행시켰다.
곧 스마트폰 화면에 아득한 하늘에서 찍은 바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몇 시간 전 명령해 확보한 위성 영상!
콰르르르르르-
격류를 일으키며 휘몰아치는 바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몸길이 5미터 남짓한 악어가 바다를 헤엄치고.
그 악어를 장난치듯 툭툭 건드는 두 존재가 보였다.
강적을 예감한 자신이 호남성까지 달려오게 만든 두 존재.
새하얀 작은 몸의 흰 돌고래.
영체와 실체에 걸쳐진 작은 고래.
어이없게도 강적의 정체는 마수가 아닌 작은 고래 둘, 아직 어린 신수(神獸)였다.
하-
헛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파아아아앙-
버닷물이 폭발하듯 치솟고!
포그르르르르-
엄청난 물방울이 하늘로 쏟아졌다!
5미터 남짓한 악어는 단숨에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그리고 신나게 바다를 질주하는 흰 돌고래와 작은 고래 사이를 공처럼 갈지자로 오갔다.
흰 돌고래와 작은 고래, 두 신수는 5미터 남짓한 악어를 공처럼 바닷물과 물방울로 튕겨 내며 놀고 있었다.
단지 영상을 보는 것만인데도 두 신수의 마음이 전해졌다.
신남, 기쁨, 즐거움, 재밌음…….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을 느끼는 순간, 두 신수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재앙급 마수도 거대 괴수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서 인간을 지켜 주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각성 동물이라 부르는 존재다.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를 압도하는 강대한 힘에 깜짝 놀라 이곳까지 달려온 게 허무하게도 각성 동물 둘이 나타났을 뿐이다.
하하하하하-
이 순간 이세기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나감을 느꼈다.
‘이제 떠날 때구나.’
걷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하여 평생 업고 다닐 수는 없는 법.
아이는 넘어지고 엎어지며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고 쑥쑥 성장해야 한다.
푸젠성 푸저우시에서 12 헌터 군벌들을 만나 마지막 교통정리를 하고, 연방 총선이 끝나면 남중국 연방은 성립한다.
그러면 자신이 할 일은 끝난다.
마수와 몬스터.
마경, 던전, 균열.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
여전히 남중국 곳곳에는 위협이 남아 있으나, 연방의 힘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연방 총선이 끝나면 언제나 주기만 한 친구, 돌멩이를 만나 작별하고 무림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 전에 꼭 할 일이 있었다.
빈손으로 간다면 돌멩이는 자신의 목을 조르며 외치리라!
‘야, 이세기 새끼야! 빈손? 어, 빈손으로 왔다고?! 와, 이 얼척없는 녀석!’
진심으로 빡쳐할 돌멩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
하하하-
이세기는 시원한 웃음과 함께 몸을 던졌다
휘이잉-
바람을 타고 비상해!
파아아앙-
일진광풍이 되어 쏘아진다!
돌멩이가 엄지를 척 세울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
대환단은 군벌들이 구하고 있으니 자신은 다른 것을 모으면 된다.
건네주는 순간 돌멩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컥- 말문이 막힐 가장 비싼 물건!
이 세계에서 가장 헌터업이 발달했다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지식인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영물의 내단(內丹)!
이게 가장 비쌌다!
이 세계의 영물이라 할 수 있는 각성 동물을 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
지금까지 100마리가 훌쩍 넘는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를 잡았으나 얻은 내단은 없고, 기이한 힘을 지닌 돌멩이만 튀어나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러했듯 일심으로 정진하면 하늘은 답을 내려 줬으니까!
‘나올 때까지 잡는다!’
이세기는 기감에 걸리는 가장 강대한 괴수, 마수를 향해, 한 줄기 일진광풍이 되어 쏘아졌다.
휘이이이잉-
오랜 친구에게 건네줄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의 내단을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