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6화 (96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6화>

인천공항 여객 터미널, 21시 50분!

천문석과 파티마는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진교은과 만났다.

“오셨군요. 부사장님!”

진교은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2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입니다.”

비행기 표가 끼워져 있는 파우치가 펼쳐지고 빠르게 이어지는 설명.

“강화 전투복, 방검 방탄복 같은 장비는 필요하면 현지 업체에서 받을 수 있게 조치했습니다.”

“이 카드는 현지 은행 계좌와 연결된 카드고, 이 반지는 ‘중국어’가 각인된 마도구입니다.”

“도시 안과 각성 헌터들과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겠지만, 도시 밖이나 일반 헌터들과 대화할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짐과 무장은 제게 주시면 남중국 공항에서 찾으실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철봉을 가지고 어떻게 공항을 통과할지 고민한 게 어이없게도 목적지에서 찾을 수 있게 조치하겠다는 진교은.

‘최후식 이사님이 인맥을 움직였구나!’

그렇다면 장갑 SUV를 타고 오면서 말한 일도 처리됐을지 모른다.

천문석은 기대 어린 눈으로 진교은을 바라봤고,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통화로 말씀하신 그것 준비됐습니다.”

진교은은 목소리를 낮추고 슬쩍 주위를 살피며 파우치 안에 고정된 지갑 두 개를 펼쳤다.

펼쳐진 두 지갑 안에는 신분증과 여권이 끼워져 있었다.

남중국에서 사용할 위장 신분증과 여권.

장갑 SUV를 타고 출발할 때 이야기한 물건이 어느새 제작이 끝나 도착해 있었다.

“와, 이게 되네?”

천문석이 감탄하는 순간.

진교은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사님 인맥으로 가능했습니다.”

“뒤 세계 업체인데. 방금 퀵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항 CCTV 확보하고 분석 들어갔습니다.”

“늦어도 내일 오전 중으로 ‘타깃’의 동선이 확인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착착 돌아가고 있다.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는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좋아. 그럼 연락은……?”

“이 스마트폰으로 하시면 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튀어나온 스마트폰!

“계산은 끝났으니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천문석과 파티마는 배낭과 잡낭, 무기가 든 안전 상자 일체를 진교은에게 건네고, 준비한 신분증과 여권, 스마트폰을 받았다.

비행기 출발 시각까지는 30분 전.

이제 바로 탑승해 기다리면 된다.

“수고해라. 도착해서 연락할게.”

“네. 최대한 빠르게 동선 확인하겠습니다.”

진교은의 시선이 천문석 부사장에게서 그 옆에 서 있는 파티마에게로 움직였다.

직접 말을 섞은 건 몇 번 되지 않지만, 이미 정체는 알고 있었다.

천문석 부사장에게 낚여, 게이트 너머 지구까지 따라온 바람 사막의 이계인.

그리고 자신이 낚였다는 것도 모른 채, 남중국으로 천문석 부사장과 같이 날아갈 김철수 사무실 신입 사원.

“…….”

무언가 조언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도착하면 개같이 구를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천문석 부사장님, 운이 진짜 정말로 파멸적으로 없으니 될 수 있으면 거리를 두세요.’

‘최선의 대응 방법은 지금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거예요.’

‘……안 그럼. 저랑 최설처럼 된답니다…….’

……

피와 살이 되는 조언들.

하지만 파티마의 신념으로 불타는 눈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안 먹힌다!’

때로는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왜? 파티마한테 뭐 할 말 있어?”

그렇기에 천문석 부사장이 질문했을 때.

진교은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힘내시라고요. 많이많이 힘내세요.”

* * *

천문석과 파티마는 짐 하나 없이 가벼운 몸으로, 순식간에 탑승 절차를 끝마치고 널찍한 일등석 좌석에 앉았다.

“편하게 쉬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일부터다.”

천문석은 편안한 좌석에 몸을 기대며 주위를 돌아봤다.

이 비행기의 목적지는 대만 바로 앞에 있는 푸젠성, 푸저우시, 복주시.

남중국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

복주장락국제기항(福州長樂國際空港)!

평소 반도 차지 않는다던 일등석 좌석은 기업인, 각성 헌터, 길드 집행부로 보이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푸젠성에 무슨 일이 있나?’

귀를 기울이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벌 수장…….”

“연방 총선 준비…….”

“……천검이 푸젠성으로 이동…….”

“대환단을 찾는 군벌…….”

……

단편적인 단어뿐이지만 현재 상황을 짐작하는 데는 충분했다.

천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나타나, 남중국 군벌을 밀어 버리고 절대자의 자리에 오른 천외천의 각성자!

그 천검이 푸젠성으로 움직이고 있다.

왕이 움직이며 신하가 따르는 법이고, 신하가 보이면 줄을 대려는 이들이 모여들기 마련!

일등석 좌석에 앉은 이들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게이트 전쟁 이후 수십 개로 쪼개졌던 남중국이 천검의 이름 아래, 남중국 연방으로 다시 태어난다!

게이트가 열리고 각성자가 등장한 이래, 인적 자원의 가치는 그 어떤 시대보다 커진 상황!

남중국 연방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소비, 생산 시장이 생겨나는 지금.

주위의 기업인과 헌터, 길드 모두는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남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껏 소리 죽여 대화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에서 오늘 하루 남중국 헌터 팀장과 얽히며 수없이 되새겼던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

‘대환단!’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이 ‘대환단’을 찾고 있다!’

‘‘대환단’만 있으면 엄청난 보상, 거대한 이권을 받아 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영약이 씨가 말랐고, 한국, 일본, 동남아, 러시아까지 영약이라는 영약은 모조리 사라지고 있다!’

‘오늘 광화문과 태성 빌딩이 아작 난 사건의 배후에 ‘대환단’이 있다더라!’

……

대환단!

대환단!!

대환단!!

……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는 단어, 대환단!

기동 병참 도시에 공물로 바친 대환단!

젠장젠장젠장!

왜 그때 대환단을 공물로 바쳐서는!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대환단은 자신의 손을 떠나 아아 비서에게 넘어간 후다!

지금 생각할 건 가출한 한경석을 찾아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다!

천문석은 들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지워 버리고 생각을 돌렸다.

한경석이 비행기에서 내린 곳은 푸저우, 복주시에 있는 창러 국제공항!

한국과 남중국. 아니,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게이트에 설치된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중심으로 펼쳐진 안정화 권역에 인구와 인프라가 집중된 상태다!

당연히 한경석도 푸젠성 복주시 안정화 권역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장갑 SUV를 타고 오며 복주시 상황은 검색을 마쳤다.

복주시는 게이트 전쟁으로 박살 난 다른 남중국 도시와 마찬가지!

민장강(閩江)이 흐르는 시가지의 인구는 대략 400만 명!

도시 밖에는 던전, 균열, 마경이 뒤엉켜 펼쳐져 있고.

도시 안에는 헌터, 길드, 조폭, 용역, 조합, 기업 세력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비가 걸리는 순간. 누가, 어느 조직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복마전!

사실상 안전지대가 없는 무법 지대가 남중국 푸젠성 복주시였다.

‘하필이면 남중국 도시로 도망갔냐? 경석아!’

절로 탄식이 나왔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남중국 도시만큼 한경석에게 어울리는 도시도 없었다.

카멜레온 은신 망토와 점멸 반지!

은신과 기습의 달인인 대인전 랭커!

한경석의 능력은 복주시 같은 복잡한 도심지에서 120% 발휘된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최후식 이사와 오리온 길드가 있는 한국과 남중국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암살검 한경석이 사고를 치기도 전에 최후식 이사에게 붙잡혀 처절한 응징을 당한다.

게다가 모든 한국 헌터의 억제기, 인간 재앙 이태성도 있었다.

즉, 암살검 한경석이 사고를 치고 스노우볼이 굴러도 그 앞에는 최후식과 이태성이라는 절벽이 있기에 문제가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중국에는 암살검 한경석을 제지할 절벽도, 브레이크를 걸어 줄 사람도 없다.

능력의 120%를 발휘할 수 있는 전장에 브레이크가 풀린 폭주 장갑차, 암살검 한경석이 풀려 난 거다!

게다가 한경석은 NTM_CHS, 진짜 대환단을 가지고 있는 용의자로 추적을 당하고 있었고, 하필이면 푸젠성 복주시에 있었다.

천검이 오고 있는, 그리고 그 천검을 따라 헌터, 조직, 기업, 헌터 군벌이 움직이는 곳 푸젠성, 복주시에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시비가 붙어 스노우볼이 구르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최소 오늘 광화문에서 일어난 난장판은 가뿐히 넘어서는 거대한 아수라장이 펼쳐질 거다!

아수라장이 펼쳐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경석이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인구 400만의 거대한 복주시에서 은신과 기습의 달인을 찾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천문석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헌터 나라 서버를 날려 버리고.

뒤 세계 업자를 수배해 여권과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가지고 있는 짐과 장비를 검색 없이 복주시로 옮겨 줬다.

게다가 이미 공항 CCTV를 확보해, 동선 추적에 들어갔다.

한경석의 행방을 알아내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에서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를 넘어서는 거대한 영향력이 느껴졌다.

누가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바로 감이 왔다.

이태성 길드장!

전화 한 통으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을 박살 내는 게 이태성 길드장이다.

이태성 길드장이 중국에 가지고 있는 인맥과 영향력이면 CCTV를 따서 동선을 추적하는 정도는 순식간이다!

이제 한경석이 있는 위치만 특정하면 설득하는 건 간단했다.

그냥 손을 내밀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야, 이제 집에 가자. 꼬맹이들 기다린다.’

웃으며 마주 손을 잡을 모습, 가짜 금괴 이야기에 깜짝 놀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난장판이 된 광화문.

엉망진창이 돼버린 태성 빌딩.

폭삭 주저앉은 이태성 길드장의 자택.

암살검 한경석이 무심코 굴린 스노우볼이 이 모든 난장판의 시작이었다.

-가짜 금괴를 제련해 만든 1kg 골드바 112개.

-NTM_CHS 아이디로 헌터 나라에 올린 대환단.

한경석 덕분에 종일 난장판에서 구르고 생각지도 못한 남중국행 비행기까지 타게 됐다.

그럼에도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암살검 한경석, 친구의 행동에는 호의가 담겨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씩 웃으며 주위로 향했던 주의를 거뒀다.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

남중국 푸저우, 복주시에 도착하면 한밤중!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자고 일어나는 순간 이번 퀘스트가 시작된다.

가출한 한경석 찾기.

주변 여건은 암울하지만, 상황은 나쁘지 않다.

빠르면 하루, 길어도 2, 3일이면 끝낼 수 있다!

대환단을 쫓았던 남중국 기업, 길드, 용역들에게 NTM_CHS에 관한 정보가 넘어갔겠지만, 돌아가는 내막과 세세한 정보를 아는 남중국 헌터 팀장은 국가 헌병대와 함께 재금 연구소 봉쇄선에 갇힌 상황이다!

아무리 남중국 상황이 개판이어도 불과 2, 3일이다.

뭔가 사건·사고가 터지려 해도 ‘얽힐 거리’가 있어야 터지는 법!

얽힐 거리는커녕, 비행기를 타는 것도 제주도에 이어 2번째인 자신이 남중국에서 사건에 휘말릴 리 없었다!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탄탄한 탄성이 느껴지는 일등석 좌석에 몸을 기대며 안대를 쓰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치 한 달 만에 잠드는 사람처럼 순식간에 잠으로 빠져들었다.

이 순간 주위를 살피던 파티마는 눈을 빛내며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손님.”

“저, 저, 저. 와인 전부.”

다른 승객들을 가리키며 한 주문.

스튜어디스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곧 서로 다른 와인이 담긴 잔 5개와 함께 치즈와 볶은 땅콩이 준비됐다.

파티마는 오랜 시간 원 대륙을 방랑하며 무공을 갈고닦았다.

그때 지렁이로 꼬맹이를 놀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거칠고 기괴한 음식도 먹었다.

하지만 그 신분은 사막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알사우드 가문의 후계자였다.

후계자 교육의 첫 단계는 안목이었다.

물건,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놓인 와인과 치즈, 견과류에 가슴이 뛰었다.

파티마는 몸에 밴 기품 어린 동작으로 스팀 타월로 손을 씻고 와인을 마시고 치즈와 땅콩을 입에 던져 넣었다.

말린 약초, 오래된 책, 덜 마른 나무.

혀끝에 감도는 와인의 수십 가지 향과 그윽한 치즈의 풍미, 달콤 짭조름한 볶은 땅콩!

입안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새로운 음식을 만나는 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았다!

여행의 시작이 너무나 훌륭했다.

파티마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자신이 본 가장 큰 성보다 몇 배나 거대한 건물이 세워진 대지 위, 직선의 도로가 쭉 뻗어 있다.

이 도로 위에서 강철의 새가 대기를 찢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착륙하고 있다.

이미 영상과 사진으로 몇 번이나 본 광경이지만, 직접 보는 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쿵쿵, 쿵쿵쿵-

심장이 북을 치듯 울리고 기대감이 한도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파티마는 와인을 마시고 치즈, 땅콩을 먹으며 홀린 듯이 창밖을 바라봤다.

이 거대한 강철의 새가 날아오르는 순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지리라!

그리고 강철의 새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스승님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웃음과 희열이 끓어 올랐다.

바람 사막의 후계자 자리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최고의 선택을 했다!’

파티마는 기대감에 터질 듯한 가슴으로 비행기가 뜨는 걸 기다렸다.

그랬기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진교은과 헤어지기 직전, 마치 불쌍한 사람을 보듯 자신을 보았던 그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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