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1화 (96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1화>

“……바로 출발하면 돼! ……삼촌?”

류세연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시선을 돌렸다.

거실 한가운데, 완전히 각이 잡혀 있는 헌터용 배낭과 잡낭.

텔레비전 앞, 활짝 열린 무장 상자와 그 위에 걸쳐진 강철봉.

류세연이 거실에 펼쳐진 옷과 장비, 응급 약품을 모두 정리해 배낭과 잡낭을 싸는 동안.

자신은 무장 상자에 강철봉을 한 번 넣었다 뺀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 자신은 남중국으로 가져갈 무기조차 챙기지 못한 것이다!

이때 류세연의 의혹 어린 시선과 어이없어 하는 질문이 날아왔다.

“삼촌. 설마, 지금까지 농땡이 친 거야?”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은 엄청나게 바빴으니까!

“당연히 아니지!”

반사적으로 외치고 설명하려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들.

특급 헌터의 녹색 손의 비밀을 알아냈고!

녹색 다람쥐 니케가 탈출하는 걸 도왔으며!

신기한 약초가 열리는 나뭇가지의 원래 주인, 앙꼬 대장이 출몰하는 PC방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엉뚱한 일을 하는 것. 사람들은 이런 것을 농땡이로 부른다는 것을.

그렇다. 자신은 농땡이를 친 것이다.

너무나 명확한 진실 앞에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침묵이 이어지자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 날아왔다.

“농땡이 부린 게 아니면 뭐 했는데?”

류세연의 비수 같은 외침에 움찔하는 순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외침.

“당연히 아니지! 알바는 엄청엄청 중요한 일을 했어!”

믿음과 의리, 신의 그 자체 특급 헌터의 외침!

‘특급 헌터! 역시 너밖에 없구나!’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녹색 손을 번쩍 내밀며 외쳤다.

“이 완전 훌륭한 약초의 효과에 대해서 토론했어!”

“그렇지! 우리는 이 훌륭한 약초의 효과를 확인했어!”

“그래서 그 약초 효과가 뭔데?”

“바르면 화해지고, 먹으면 엄청 써! 완전 써! 진짜 맛없어! 으웩-.”

“야! 그거 말고 다른 거! 다른 효과 없냐?!”

“앗! 하늘 이은 다음에 이거 먹이면 벌떡 일어나! 내가 바로 보여 줄게! 니케! 니케 어디 있어?!”

니케를 찾는 특급 헌터.

그러나 니케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녹색 다람쥐 니케는 이미 자유를 찾아 탈출했으니까!

“어, 이상하네. 니케 어디 갔지? 세연. 한번 핥아 볼래? 그럼 바로 알 수 있는데!”

특급 헌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녹색 손을 내밀고 바로 핥았다.

할짝-

“으웨엑- 써! 엄청 맛없어! 우웨엑-.”

쪼그려 앉아 고통스러워하는 특급 헌터.

“…….”

류세연의 차게 식은 얼굴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야, 그런 거 아냐! 특급 헌터 얼른 말해 줘!”

“……앗! 맞아! 우리 PC방도 확인했어! 알바랑 같이 놀러 갈 거야!”

당당히 베란다 너머를 가리키는 특급 헌터!

“PC방? 놀러 간다고?”

어이없어 하는 시선이 2배로 강해지는 류세연.

특급 헌터가 입을 열 때마다 농땡이를 피운 게 확실시되는 상황!

“…….”

마치 무게를 지닌 듯한 침묵이 전신을 짓누를 때 짧은 한숨 뒤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아- 삼촌. 내가 짐 싸는 동안 이러고 논 거야? 난 이렇게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서 철저하게 짐을 쌌는데?”

서류철이 불쑥 눈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장의 A4 용지에 적힌 빼곡한 물품들.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세심하게 짐을 쌌는지 알 수 있었다.

‘야! 하루 이틀, 길어야 2, 3일이면 끝날 일이야! 뭘 이렇게 챙겼는데?!’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은 철없는 삼촌이 조카에게 일을 시키고 농땡이를 부린 격이니까!

‘안 된다! 이래선 안 된다!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방법이 없을까?!’

번개같이 머리를 굴리고 사방으로 시선을 돌릴 때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헬스장 강철봉과 무장 상자!

언제나 진실은 가장 강한 설득력을 지니는 법!

천문석은 재빨리 강철봉과 무장 상자를 가리켰다.

“철봉! 남중국에 이 강철봉을 가져갈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어!”

“이 철봉을 가져간다고?”

“앗! 역시 알바는 계획이 있었구나!”

어이없어 하는 류세연과 어째선지 감탄하는 특급 헌터.

“아까 게이트 지역에서 무기 찾아온 거 아냐? 철봉을 왜 가지고 가려고?”

“세연은 뭘 모른다니까! 이 철봉은 엄청 훌륭하잖아! 봐봐! 이렇게 데굴데굴 굴리며 아앗! 약초가 엄청 잘 펴지잖아!”

그륵그륵그륵-

반죽을 펴는 밀대처럼 으깨진 나뭇잎으로 미는 강철봉.

특급 헌터의 손에 쥐어진 강철봉은 녹색 풀물이 들었고.

류세연의 어이없어 하는 눈빛은 3배쯤 강해졌다.

천문석은 진실을 말했다.

“이 강철봉은 헌터 귀족 중의 귀족.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가 만든 마도구다! 레이의 롱소드!”

“저게 롱소드라고?”

“앗! 어쩐지 엄청 좋아 보였어!”

다시 한번 어이없어 하는 류세연과 감탄하는 특급 헌터.

지금이다! 재빨리 퀘스트를 던져 정신을 딴 데로 돌린다!

“너희 둘에게 부탁할 게 있다. 남중국에 이 강철봉 가져갈 방법을 생각해 줘!”

“걱정 마! 나에게 맡겨!”

“아니, 그러니까. 좋은 무기 놔두고 왜 이걸 가져가려는……?”

“채택되는 사람한테는 원하는 ‘선물’ 줄게!”

“……!”

“……!”

순간 눈빛이 달라진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시선이 강철봉에 닿았다.

“나한테 맡겨 줘!”

“앗! 아앗! 안 돼! 내가 해결할 거야!”

두 사람은 잽싸게 달라붙어 강철봉을 무장 상자에 밀어 넣었다.

땅, 따땅-

그러나 강철봉은 무장 상자 가장자리에 걸려, 들어가지 않았다.

“안 돼! 그냥은 안 들어가!”

“맞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휙, 휙휙-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빠르게 주위를 훑더니 재빨리 달렸다.

“금방 돌아올게!”

단숨에 현관을 지나 사라지는 류세연.

“이거야! 이거라면 가능해!”

거실 구석의 박스성, 천공탑 앞으로 달려가 환호하는 특급 헌터.

계획대로 두 꼬맹이는 완전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상황!

현재 시각은 6시 40분.

인천 공항으로 출발할 때까지 1시간 20분이나 남았다!

느긋하게 샤워 후 옷과 장비를 착용하고 콜택시를 불러 출발하면 된다!

‘카캬카카카-’

성공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천문석은 내심 웃음으로 터트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물에,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녹색 다람쥐 니케, 약초, PC방 형, 앙꼬 대장 모든 게 씻겨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를 털어 내며 욕실에서 나오는 순간,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두 꼬맹이가 동시에 외쳤다.

“알바! 내가 해냈어!”

“삼촌! 내가 해냈어!”

특급 헌터는 거실 중앙으로 달려가 외쳤다.

“알바! 이제 강철봉 가지고 갈 수 있어! 보여 줄게! 얼른 이리 와!”

강철봉을 들어 쑥쑥- ‘무장 상자’에 넣고 빼는 특급 헌터.

“보이지? 엄청 잘 들어가는 거 보이지!”

“…….”

엄청 잘 들어가는 게 보이긴 했다. 아니, 잘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무장 상자]

거실 중앙에 놓인 ‘무장 상자’는 골판지를 접어 상자를 만들고, 그 위에 크레파스로 커다랗게 써놓은 골판지 무장 상자였으니까!

그리고 이게 어디서 왔는지도 감이 왔다.

시선을 돌리자 박스성, 천공탑의 문짝이 사라진 게 보였다.

“무장 상자?”

“무장 상자!”

반문에 확신을 담아 대답하고.

하, 하하하-

카캬카카캌-

허탈한 웃음에 통쾌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특급 헌터.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특급 헌터는 이번에도 상상 이상의 해결책을 내놨다.

강철봉이 들어가는 커다란 ‘골판지 무장 상자’를 직접 만든 것이다!

“와! 역시 넌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하하하-.”

“맞아! 나 열심히 했어! 세연 미안 내가 이겼어! 카캬캌-.”

천문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버럭 외쳤다.

“기각! 완전 기각!”

“뭐? 왜?! 왜 기각이야?! 이거 엄청 훌륭해! 앗! 색을 안 칠해서?! 내가 얼른 색칠할게! 조금만 기다려!”

“후흐흐흣- 어리석은 꼬맹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구나! ‘심플 이즈 베스트!’ 삼촌! 여기 내 해결책을 봐!”

어차피 주의를 돌리는 게 목적.

천문석은 별 기대 없이 세연의 해결책을 봤다.

앞으로 내민 류세연의 손에는 스티커가 놓여 있었다.

[MULTI DOORGYM]

[TT-SPORTS. barbell Stick]

[국내 제작. 크롬 도금 강철봉!]

[멀티 안전 철봉 – 튼튼 스포츠]

“……!”

류세연, 스티커, 강철봉으로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 감이 왔다!

강철봉의 정식 이름은 마도구 제작자 레이의 롱소드다!

하지만 마지막 제련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넘어왔기에, 겉모습은 헬스장 강철봉과 똑같았다!

지금도 헬스장 강철봉인데 류세연이 만든 스티커까지 붙인다면?

[국내 제작. 크롬 도금 강철봉!]

[멀티 안전 철봉 – 튼튼 스포츠]

‘이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라!’

그 누구도 이 강철봉이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가 이름을 걸고 만든 마력 무구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다!

빼박이다!

이건 그냥 헬스장 철봉이 된다!

그냥 대놓고 메고 다녀도 그 누구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거다!

원래 헌터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이 많으니, 그냥 맛이 좀 간 헌터로 볼 게 분명했다!

당연히 출국 수속에서도 헌터용 무기가 아닌 철봉, 헬스 장비로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해결책!

천문석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승인! 완전 승인! 훌륭하다! 류세연!”

“하하하- 봤지? 내가 이 정도야!”

“앗, 아앗! 알바! 내 무장 상자! 이게 더 훌륭하잖아! 내 상자는 이렇게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니까!”

골판지 상자에 들어가 반듯이 눕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 만세!”

“만세?!”

특급 헌터가 반사적으로 손을 치켜드는 순간, 콰드드득- 골판지 상자가 폭발하듯이 찢어져 나갔다.

“아아앗! 내 무장 상자가?! 으아아-!”

특급 헌터가 녹색 손으로 머리를 잡고 괴로워할 때 천문석은 단호히 외쳤다.

“류세연 승리!”

“드디어! 내가 해냈어!”

“으어어- 콩콩 황제가 됐어…….”

류세연이 환호하고 특급 헌터가 좌절할 때.

천문석은 강철봉을 완벽하게 위장할 스티커를 붙였다.

[TT-SPORTS. barbell Stick]

그 어떤 마법도 불가능한, 이 싼마이한 감성이라니!

이제 집에서 할 일은 하나만 남았다.

남중국에 데려갈 부하, 조력자를 선택하는 것!

천문석은 옷을 갈아입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누구를 데려갈까?’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

김철수, 진교은, 최설, 악당 4인조, 바람잡이.

철수 형은 현실 러브시그널로 정신없는 상황이고 바람잡이는 오늘 들어온 신입이다.

그렇다면 후보는 여섯이다.

진교은, 최설, 악당 4인조!

카지노 딜러 출신 진교은.

상해 삼합회 보스 비서 출신 최설.

삼합회의 인맥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매력적이다.

하지만 역으로 삼합회의 은원에 얽혀 들어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최후식 이사가 인맥과 정보로 지원해 줄 예정이라 한경석의 행방을 찾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게이트 전쟁 이후, 군벌들로 갈라져 치안이 무너졌던 남중국의 상황!

남중국의 도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폭력 조직과 불법과 합법에 발을 걸친 헌터, 용역, 단체들이 득실거리는 범죄 도시 상태다.

혹시나 의도치 않은 충돌이 발생한다면 서울과 연락을 유지하고 탈출로를 확보할 무력과 생존력을 모두 갖춘 동료가 필요했다.

여기에 딱인 네 사람이 있었다.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범죄 도시에 익숙한 남미 출신 악당 4인조!

그리고 이 4명 중에서 한 명을 고른다면 누굴 고를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엠마.

핑핑 돌아가는 잔머리와 지원에 특화된 원딜 궁수!

게다가 남미 최대 카르텔에 찍히고도 무사히 한국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한 그 놀라운 생존력!

‘이번 남중국행의 동료는 엠마다!’

미리 연락하면 눈치 빠른 엠마는 바로 튄다!

위치를 확인한 후, 콜택시로 기습적으로 픽업한다!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부르르르-

이때 스마트폰이 진동하고 화면에 이름이 떴다.

[황 비서님, 장강 유통.]

“네, 황 비서님.”

-헉, 허억- 악마, 아니 VIP, 지금 옥탑방에 계시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외침.

문득 고개를 돌리자, 특급 헌터는 사방이 터져 나간 골판지 무장 상자에 쪼그려 앉아 우울한 얼굴로 나무토막을 보고 있었다.

“네, 특급 헌터 여기 있습니다.”

-왜 전화를! 아니, 거의! 거의 다 도착했어요! VIP 어디 못 가게 좀! 꼭 좀 부탁드려요! 헉, 허억-

다급한 전화가 끊기고 잠시 후.

다다다다닥-

정신없이 옥상을 달리는 발소리와.

쿵, 쿵, 쿵-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울하게 앉아 있던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달려가 현관문을 열며 외쳤다.

“황 비서 누나! 왜 이렇게 늦었어!”

“헉- 최선. 허억- 최선을 다해 달려왔어요!”

허리를 꺾고 숨을 몰아쉬는 황 비서.

그리고 그 뒤로 한 사람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청바지에 셔츠, 눌러쓴 야구 모자.

긴 원통형 화구통을 멘 이국적인 외모의 여성.

“……!”

여성을 보는 순간 번쩍 눈이 뜨였다.

적염성을 떠나 안개 길잡이의 인도로 도착한 사막의 항구 도시 바나!

그 바나의 난장판에서 얽혀, 게이트를 통과해 지구까지 같이 온 동료!

압도적인 힘을 지닌 초절정의 무인이자,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자동으로 모든 걸 해결해 줄 파트너!

이번 남중국 퀘스트 최고의 동료가 눈앞에 있었다.

파티마 알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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