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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0화 (96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0화>

느껴진다!

콩콩, 콩콩콩콩-!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니케의 심장 소리가!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리는 파파팟-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니케는 이미 한계에 몰린 상황!

아이의 편식을 고치겠다고 강제로 당근을 먹였다가 영원히 당근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지금처럼 약초를 강제로 먹였다간, 니케는 영원히 약초를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당장 막아야…… 어, 잠깐! 약초 트라우마? 별로 큰일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약초 트라우마는 최선의 결과!

실제 상황은 그보다 훨씬 나쁠 수 있었다!

오늘 일어난 태성 빌딩 난장판처럼!

그렇다!

니케는 그 귀여운 외모와 달리, 재앙급 마수에 필적하는 능력을 지닌 각성 동물!

혹시 저 엄청 쓴 약초를 먹고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분노하기라도 한다면?

제2, 제3의 태성 빌딩 난장판이 재현된다!

약초를 쥔 특급 헌터의 손이 니케의 입에 닿는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잠깐!”

순간 우뚝 멈추는 손과 빙글 돌아가는 고개.

특급 헌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쏟아 냈다.

“앗! 알바 먼저 발라 줄까? 이거 바르니까! 화- 한 게 엄청 시원해! 키즈카페랑 놀이터에서 넘어져 엉엉 우는 친구들! 빈 병 줍다가 ‘으아, 으어억 내 허리!’ 했던 검사 할아버지도 번쩍 허리 펼 것 같아! 알바한테 처음으로 발라 줄게!”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치고 선명한 녹색으로 물든 손을 쭉 뻗었다.

톡-

손등을 스치는 순간 직선으로 그어지는 녹색의 선.

이 녹색의 선에서 마치 파스를 뿌린 것처럼 화한 느낌이 퍼져 나갔다!

“뭐야?! 이 나뭇잎, 진짜 효과가 있는 거였어?!”

“당연히 효과 있지! 이 약초, 앙꼬 대장이 PC방 형 시켜서 앙꼬 준 나뭇가지라니까!”

“앙꼬 대장? PC방 형? 앙꼬 대장이 앙꼬한테 준 나뭇가지를 네가 왜 가지고 있는…… 어, 이거 전에도 같은 이야기하지 않았냐?”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외침이 이어졌다.

“내가 잘 설명해 줄게! 앙꼬 대장은 엄청난 부자에다가 부하도 잔뜩 있단 말이야. 당연히 앙꼬 대장이 가지고 있던 나뭇가지도 엄청엄청 좋은 거지! 이 엄청 좋은 나뭇가지 어떻게 얻었냐면……?!”

특급 헌터는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앙꼬 대장 부하! PC방 형이랑 뾱뾱이 화살 쏘기 승부해서 땄어! 그 형 완전 장난 아냐! 손을 이렇게 하고 화살 쏘는데 뾱뾱이 화살이 막 빙글빙글 날아오는 거야?! 이기는 거 엄청 힘들었어! 바닥 데굴데굴 구르고! 하늘 이어서 간신히 이겼다니까! 앙꼬, 분해서 엉엉 울고! PC방 손님 형이랑 누나들 깜짝 놀랐어!”

카카카카컄-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통쾌하게 웃는 특급 헌터.

“알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앙꼬 대장.

앙꼬 대장 부하, PC방 형.

뾱뾱이 화살 쏘기 승부로 딴 나뭇가지.

분해서 엉엉 우는 키즈카페 앙꼬.

……

귀로, 머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는 중요한 게 하나 빠져 있었다.

왜, Why, 이유!

“야, 그러니까 이유를 말해야……!”

반사적으로 외치던 천문석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어, 내가 왜 이유를 묻고 있지?’

순간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자신은 특급 헌터에게 말려들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밑도 끝도 없는 엉망진창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야, 됐어 대답할 필요 없어! 이제 그만!”

다급히 외쳐 대화를 끝내려는 순간, 특급 헌터는 답답하단 듯이 대답했다.

“왜 모르는 거야? 이건 엄청엄청 귀한 나뭇가지야! 그래서 내가 알바한테 준 거잖아! ‘겉 고등어, 속 한우 등심’ 사 온 날! 기억 안 나?!”

맥락 없는 설명 끝에 툭 튀어나온, 귀에 쏙 박히는 말!

‘겉 고등어, 속 한우 등심 사 온 날!’

순간 번쩍 기억이 떠올랐다.

안동 간 고등어 상자에 한우 등심을 포장해 장민 대표의 타워 팰리스에 방문했을 때다.

특급 헌터는 눈물을 줄줄 울리며 한우 등심구이를 먹었고, 고등어 쇼핑백을 가지고 돌아가는 자신에게 나뭇잎이 붙은 나뭇가지를 주며 말했다.

‘알바 이거 가져가. 앙꼬 대장이 앙꼬 준 건데. 알바 줄게.’

‘그거 먹고 화날 때, 이걸 마구 휘두르면서 소리치면 괜찮아져. 나도 그랬어. 알바, 힘내.’

“……!”

분명 그때 받은 건 나뭇잎이 한두 개가 붙은 앙상한 나뭇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현관을 보자 잎이 무성한 화분이 보였다!

이 순간 천문석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

자신이 별생각 없이 빈 화분에 꽂아 둔 나뭇가지가 저렇게 잎이 무성한 화분으로 자라났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어떻게?!”

“내가 엄청 열심히 키웠거든!”

녹색 손으로 화분을 가리키며 자랑스레 대답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옥상 화분의 나무들도 쑥쑥 키워 낸 전력이 있다.

하지만 이건 옥상 화분이 쑥쑥 자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분명 잎은 생생했지만, 나뭇가지는 바짝 말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저렇게 잎이 가득한 모습은 숯덩어리가 된 나무가 시간을 돌려 생명을 새롭게 얻은 것과 마찬가지!

상식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오늘 하루 그 불가능한 것들을 몇 번이나 봤다!

‘혹시 게이트 너머에서 넘어온 나무라면?!’

“특급 헌터. 저 나무 이름이 뭐야?!”

“응? 나무 이름? 그냥 나무인데? 앗! 이 나뭇잎 이름은 알아! PC방 형이 말해 줬는데…… 풀을 나무에다가 붙여서 키운 거랬는데…… 이름이 뭐랬더라?”

특급 헌터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앗! 기억났어!”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으로 나뭇잎을 내밀며 외쳤다.

“센트라!”

센트라!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시감!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센트라]

-닛산 센트라.

-센트라 코인.

-명진 센트라임 3차 아파트.

……

예상과 전혀 다른 검색 결과.

“특급 헌터. 좀 더 자세히 설명…….”

부르르르-

이때 특급 헌터의 손에 채워진 헌터용 시계가 진동했다.

“앗! 황 비서 누나!”

타닥-

특급 헌터는 재빨리 헌터용 시계를 누르더니 외쳤다.

“황 비서 누나, 대발견이야! 나? 여기 알바네 옥탑방! 빨리 뛰어와! 이번엔 진짜진짜 대발견이라니까! 황 비서 누나한테 꼭 해 줄 게 있어! 이번엔 지렁이 아냐! 풍뎅이도 아니라니까! 알았어! 약속약속! 그러니까 빨리…….”

녹색으로 물든 손을 위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신나게 외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의 생각이 빤히 읽히고, 곧 나타날 황 비서가 맞이할 운명이 눈에 선했다.

선명한 녹색으로 물든 옷과 망연자실한 얼굴.

이제 곧 니케에 이은 2번째 피해자가 생겨난다!

“야, 그만……!”

다급히 저지하려는 순간, 휙-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아 입과 손으로 헌터용 시계를 가리는 특급 헌터!

“아냐!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 올 때 꼭…….”

이때 톡- 발을 건드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리자 어느새 발 앞까지 기어 온 녹색 덩어리가 보였다.

니케!

그리고 녹색 덩어리 사이로 보이는 절박한 눈빛!

반짝, 반반반반빡-

니케는 천문석에게 필사적으로 눈빛을 보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니케의 간절한 외침이 전해지는 순간.

짜르르- 마음이 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굳게 닫혀 있는 베란다 문이 있었다.

정신없이 통화 중인 특급 헌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니케.

굳게 닫힌 베란다 문.

찰나의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

천문석은 손을 뻗어 니케의 몸을 감싼 녹색 덩어리를 톡- 건드리고 조용히 베란다 문을 열었다.

녹색 덩어리는 소리도 기척도 없이 데굴데굴 굴러, 문틈을 통과했다.

이 순간 콰드득- 균열이 생겨나는 녹색 덩어리!

니케는 단숨에 녹색 덩어리에서 탈출해 정신없이 벽을 타고 올라, 반쯤 열린 창문을 밟고 자유를 향해 도약했다!

휘이이이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단숨에 비상하는 니케!

이 순간 녹색 하늘다람쥐 니케와 천문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다람쥐와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지닌 보편적 감정이 시선으로 전해졌다.

고마움!

고마움!!

고마움!!

고마움!!

니케의 시선에 담긴 절절한 고마움이 마음을 찌르르- 울리는 순간.

천문석은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대답했다.

‘무사히 도망쳐라! 니케!’

특급 헌터가 새로운 타깃, 황 비서에 정신이 팔린 사이 니케는 완벽한 탈출에 성공했다!

녹색 손을 가진 무시무시한 대두목이 있는 거실에서.

바로 옆, 한 번만 팔짝- 뛰었으면 보였을 143개의 보물 도토리에서!

탈출하는 다람쥐, 니케.

건승을 빌어 주는 어른, 천문석.

열심히 통화 중인 꼬맹이, 특급 헌터.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찰나의 순간에 이어졌다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그러나 하늘의 인과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으니, 이 순간 또 다른 인과가 이어지고 있었다.

* * *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엉망진창 대화 끝에 툭 튀어나온 단어를 말했다.

“센트라?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검색 엔진을 바꿔가며 몇 번이나 검색했지만, 나오는 건 자동차와 코인, 건물 이름뿐!

“분명 어디서 들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

센트라 잎이 달린 나뭇가지의 원래 주인에게 물어보면 된다!

핵심은 PC방 형이다.

PC방은 숨지도 도망치지도 못한다.

즉, PC방 이름만 알면 PC방 형이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PC방 형을 만나면 의문의 답을 가진 원래 주인을 만날 수 있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수없이 들어 귀에 익은 꼬맹이.

앙꼬 대장!

힐끗 살핀 거실 시계는 6시 20분.

인천 공항으로 출발할 8시까지는 1시간 40분이 남았다.

‘우선 PC방 이름을 확인하고 돌아와서 찾아간다!’

천문석은 쪼그려 앉아 황 비서와 대화 중인 특급 헌터에게 바로 확인했다.

“특급 헌터. 아까 뾱뾱이 화살 대결했다는 PC방 이름 뭐냐?”

“황 비서 누나 잠깐만! 긴급 상황이야!”

-네? 긴급 상황이요?! 갑자기 무슨…….

헌터용 시계에서 흘러나온 당황한 목소리.

특급 헌터는 헌터용 시계에 크게 외치고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달려갔다.

“알바! 여기서 보여! 저기 저! 피시방이야!”

“제너스 PC방?”

“아니, 그 PC방 말고! 왼쪽왼쪽왼쪽!”

“스폐셜알파베타……?”

“아니! 더더더! 왼쪽으로 간 다음에 뒤뒤뒤로…….”

“착한 PC방?”

“그 PC방 바로 옆 건물에 있는 PC방이야!”

“야, 그냥 이름을 말하면 간단한…….”

천문석은 PC방 간판을 찾는 순간 특급 헌터가 이름을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멀리 언덕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 벽에 달린 간판.

[ฮาดรอน PC방]

“…….”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손 망원경을 하고 PC방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를 봤다.

“저 PC방 이름 뭐라고?”

“…….”

“PC방 형 이름은 아냐?”

“PC방 형은 PC방 형인데?”

“그렇지. 당연히 그렇겠지. 하하하-.”

생각 그대로의 대답.

천문석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다가 외쳤다.

“왜 간판을 한글로 안 적는 거야?!”

특급 헌터는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완전 맞아!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한글로 써야지! 왜 한글로 안 적어! 알아볼 수가 없잖아!”

천문석은 바로 동의했다.

“간판은 반드시 한글로 쓰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완전 찬성이야! 내가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샀는데! 꼬불꼬불 글씨라 랜덤으로 달라고 했거든? 아이스크림 누나! 치약 맛 나는 아이스크림 줬어! 꼭꼭! 이름은 한글로 써야 해!”

“그렇지! 한국인데 당연히 알아볼 수 있어야지!”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두 사람은 의기투합, 격하게 공감했다.

강렬한 감정은 다른 감정을 지워 버리는 법!

무장 상자와 강철봉.

센트라와 나뭇가지.

PC방 형과 앙꼬 대장.

머리에 떠올랐던 의문은 어느새 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두 사람이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 류세연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끝났다! 삼촌. 짐 다 쌌어! 이제 바로 출발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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