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58화>
부으으으응-
장갑 SUV가 언덕을 오르고 곧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자신의 옥탑방이 있는 류세연의 건물!
어째서일까?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때 돌아온 것인데. 마치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생경함마저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순간 오늘 하루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종로 안전 호텔, 112개의 골드바, 한경석 공방, 가짜로 밝혀진 금괴, 다시 만난 바람잡이, NTM_CHS, 대환단, 남중국 헌터, 난장판이 된 광화문, 국가 헌병대, 태성 빌딩 도주극, 검은 폭풍의 리볼버, 김태희 대령과의 전투, 우레 폭풍 마수 니케, 무너진 이태성 길드장의 집.
그리고 윙슈트 탈출까지.
하루에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심기일전 인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남중국 푸젠성으로 도망친 한경석을 찾아오기 위해서!
원래라면 김태희 대령이라는 꼬리가 붙어 다급하게 움직여야 했겠지만, 그건 간단히 해결됐다.
마력 오염과 재금 연구소 방역팀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우연으로 인해서!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터트리며 뒷좌석에 말했다.
“야, 다 왔다. 내릴 준비 하자.”
“…….”
“…….”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잠들어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입을 반쯤 헤- 벌린 채 웃다가 잠든 특급 헌터.
특급 헌터의 겨드랑이를 안은 채로 고개를 떨군 류세연.
두 사람 사이에 몸을 쑤셔 넣은 냠냠이와 아수라 도장.
모두가 잠든 뒷좌석에서 문득 느껴지는 껄끄러움!
껄끄러움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특급 헌터의 재킷 주머니에서 살짝 고개를 내미는 작은 하늘다람쥐가 보였다.
특급 헌터의 딱밤을 맞고 기절했던 니케!
순간 니케와 천문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니케는 시선이 마주치는 즉시 눈을 꼭 감고 축 늘어져 죽은 척했다. 그리고 곧 진짜로 잠들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 전, 수백의 헌터와 군인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마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
천문석은 피식 미소 지으며 잠든 두 사람을 깨울 마법의 단어를 말했다.
“야, 일어나. 저녁 먹어야지.”
쓰읍-
쓰으읍-
두 꼬맹이가 동시에 입가의 침을 훔치며 일어나는 동시에 장갑 SUV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언제든 일 거리 있으면 불러줘라. 이거 내 명함이다.”
[부산 전술 운전단 출신.]
[언제나 신속 정확하게 모시겠습니다.]
장갑 SUV는 부드럽게 원을 그려 멀어지고 천문석, 류세연, 특급 헌터는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언제나처럼 제일 처음 움직이는 건 특급 헌터였다.
“땅! 경주 시작! 1등이 오늘 저녁 뭐 먹을지 정하는 거야!”
“앗! 반칙이지 같이 출발해야지!”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건물 계단을 뛰어올라가고 천문석은 건물 구석에 주차된 차에 고개를 까닥이고 바로 뒤를 쫓았다.
그리고 천문석의 시선이 닿았던 차 안, 장강 유통의 직원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황비서님. VIP 방금 집으로 돌아온 것 확인했습니다.”
-……
“네. 대표님 오실 때까지 잘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
오늘 일어난 난장판을 마무리 지은 최종 보스. 특급 헌터의 천적이 지금 이 순간 서울로 날아오고 있었다.
특급 헌터는 자신이 맞이할 미래는 짐작도 못한 채 신나게 외치고 있었다.
“내가 1등이야! 오늘 저녁은 고기야! 고기! 카캬캌-.”
* * *
“고기! 고기! 오늘 저녁은 맛있는 고기!”
특급 헌터가 고기 노래를 부르는 옥탑방에 들어가자마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진교은]
최후식 이사님의 임시 연락책!
“나야.”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던 이야기가 나왔다.
-마력 오염으로 광화문 인근 지역 봉쇄된 상황입니다. 재금 빌딩은 제독이 끝났는데 아직 국가 헌병대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사님은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위치 확인했습니다. 남중국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입니다.
푸저우 창러 국제공항!
검색하자 바로 튀어나오는 지도.
복주장락국제기장(福州長樂國際機場).
대만 바로 앞 푸젠성에 있는 공항이다!
이곳이 사고를 치고 남중국으로 튄 한경석이 도착한 공항이다!
-경비와 장비는 준비가 끝났고 비행기표 예약하고 있습니다. 언제로 예약할까요?
지금 시간은 오후 5시.
뒤를 쫓을 김태희 대령은 재금 연구소 방역망에 발이 묶인 상태다.
오늘 안에만 출발하면 따라잡힐 우려는 없다.
식사 후 짐을 챙기고 준비하는데 3시간, 이곳에서 인천 공항까지 다시 2시간을 잡으면…….
천문석은 계산을 끝내고 바로 대답했다.
“오늘 밤 10시 30분 이후로 예약해 줘. 공항에는 10시까지 도착할게.”
-네 바로 예약하고 장비, 경비 챙겨서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10시까지 인천 공항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알았어. 출발할 때 다시 연락할게.”
천문석은 전화를 끊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야, 얼른 밥 먹자. 짐 싸고 바로 나가봐야겠다.”
“공항? 비행기? 어디 가는 거야!?”
“알바! 비행기 타러 가는구나! 역시 알바는 다 계획이 있었어! 다람쥐옷! 하늘 안 날더니 비행기 타서 그런 거였구나! 난 찬성이야! 비행기 대찬성이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외치는 두 꼬맹이는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따라붙을 기색이다.
그러나 이번 목적지는 제주도 같은 휴양지가 아니다.
남중국 푸젠성.
얼마 전까지 내전이나 다름없는 전투가 일어났고, 연방 총선을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지역이다.
잽싸게 한경석만 찾아 빠져나와야 할 장소에 두 꼬맹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야, 이번엔 놀러 가는 거 아냐. 남중국 엄청 위험한 장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양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런 위험한데 왜 가는데!? 설마? 골드바 가짜라 그래? 초대박이 또또 꽝이라서!? 가지마! 내가 의뢰할게! 나 돈 엄청 많아! 내 의뢰를 받으라니까! 불확실한 도박하지 말고 당첨된 로또, 류세연 밑으로 들어와!”
멕이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의아한 외침을 지르는 류세연.
“특급 헌터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위험한 데면 당연히 도와주러 가야지! 친구들 얼른 일어나! 우리 남중국으로 출동이야!”
씩씩하게 외치며 당장이라도 뛰어가려는 특급 헌터.
너무나 당연하게 두 꼬맹이에게 위험하다는 외침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딱밤!”
으앗-!
깜짝 놀라 손으로 이마를 가리는 류세연!
천문석은 잽싸게 세연의 머리에 헤드락을 걸어 제압하고, 달려가는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앗! 알바! 왜!? 남중국 출동하려면 얼른 준비해야 한단 말야! 엄청 급해!”
“밥! 우선 밥 먹고 배낭 싼 다음에 이야기하자.”
“앗! 그렇지 밥 먹고 배낭부터 싸야지!”
특급 헌터는 꿈틀꿈틀 미꾸라지처럼 팔에서 빠져나와 거실 구석 자신의 인디언 천막으로 달려가 배낭을 꺼냈다.
“칼로리바! 퐁퐁검! 아수라 도장! 앗! 나뭇잎! 앙꼬 대장 나무에서 자란 나뭇잎이 필요해! 아앗! 피리! 사슴이 반짝이! 피리 만든 거 어디 있어!?”
특급 헌터는 커다란 헌터용 배낭을 질질 끌고 거실을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
천문석은 이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특급 헌터가 저 배낭을 메고 이 옥탑방에서 나설 일은 없었다.
옥탑방으로 올라올 때 느낀 시선.
장강 유통의 경호원이 주차장 구석에서 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이 난장판을 겪는 동안 특급 헌터의 헌터용 시계는 너무나 조용했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
감이 왔다.
이제 곧 장민 대표라는 이름의 태풍이 몰려 온다!
“힘을 내라 특급 헌터!”
애잔함을 담아 말하는 순간 옆구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헤드락 이제 풀어 주면 안 될까?”
천문석은 씩 웃으며 반문했다.
“그전에 정산 할 거 있지?”
“정산?”
천문석은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세다가 돌연 고개를 저었다.
“하도 은근슬쩍 개겨서 몇 번인지도 못 세겠다.”
“……!”
순간 팔에 전해지는 흠칫 놀라는 떨림.
“지금 무,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개겼다고 그래!? 증거 있어? 증인 있어!?”
“너라는 말은 안 했는데? 찔리냐?”
“……!”
순간 세연의 눈빛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정신없는 난장판에서 은근슬쩍 오빠라고 몇 번이나 불렀다.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알아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
가랑비에 옷 젖기 계략이 먹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완전히 낚였다!’
“그러지 말고 3대로 합의 보자 어때?”
천문석은 슬쩍 합의안을 던졌다.
“…….”
짧은 갈등 후 튀어나온 단호한 외침.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천문석은 손을 들고 정신없이 거실을 달리는 꼬맹이를 불렀다.
“특급 헌터!”
“왜? 나 엄청 바빠!”
“세연이가 오늘 ‘오빠’라고 몇 번 불렀냐?”
“뭐!? 잠깐! 특급 헌터! 안 돼! 멈춰!”
류세연이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999단을 순식간에 외운 놀라운 기억력.
특급 헌터는 이미 양손을 내밀며 외쳤으니까.
“10번?”
“어, 그래 10번으로 하자.”
“이런 게 어디 있어!”
“응, 여기 있어.”
딱, 딱, 따아악-
악, 악, 으아악-
통렬한 딱밤 소리와 비명이 울려 퍼지고.
카캬카카캌-
천문석이 얄밉게 웃으며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 저녁 준비를 시작할 때.
“복수 할 거야! 언젠간 꼭! 엉엉 울려 줄 거야!”
“알바! 알바 짐도 우리가 쌀게!”
이를 가는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천문석의 배낭과 잡낭을 싸기 시작했다.
“다 됐다! 밥 먹자!”
그리고 식사 준비가 끝나 두 사람을 불렀을 때.
거실에는 옷가지, 로프, 담요, 실과 바늘, 랜턴, 성냥, 구급약과 붕대, 지혈제…… 온갖 장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류세연은 체크 리스트를 확인하며 하나하나 짐을 싸고 있었고.
특급 헌터는 현관 옆에 쪼그려 앉아 무성하게 자란 화분의 나뭇잎을 따서 달려와 외쳤다.
“세연! 이 나뭇잎도 넣어야 해! 이거 엄청 좋은 나뭇잎이야!”
“그 나뭇잎 효능이 뭔데?”
“먹으면 엄청엄청 써서 눈이 번쩍 떠져! 니케! 저기 쿨쿨 자는 니케도 이 나뭇잎 먹고 번쩍 눈을 떴어!”
“오! 대단한 효능인데! 좋아 합격! 저기 랩으로 단단히 포장해서 넣자!”
이야얍, 얍얍얍-
빙글빙글 랩으로 둘러싸여 잡낭 안으로 들어가는 나뭇잎.
“…….”
천문석은 이 철저한 듯 허술한 짐 싸기를 보며 좋게 생각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내일, 늦어도 모레면 한경석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배낭과 잡낭은 가져간 그대로 돌아오게 된다.
괜히 여기서 끼어들었다간 오늘 출발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천문석은 외쳤다.
“야! 밥부터 먹고 짐 싸!”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다시 짐을 쌀 때 천문석은 고심했다.
강화 전투복과 방검 방탄복, 헌터용 안전 군화 같은 방어구는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기는 방어구와 달랐다.
손에 익은 무기와 생경한 무기의 차이는 크다.
게다가 지금 자신 앞에 있는 무기는 그냥 무기도 아닌 명품 중의 명품!
-장총신 리볼버.
1000만달러 가치를 지닌 검은 폭풍의 리볼버.
-헬스장 강철봉.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 레이가 만든 무게가 변하는 롱소드.
장총신 리볼버는 전자 봉인이 붙은 무장 상자에 들어 있는 상황!
이 상태 그대로 공항을 통과해 남중국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문제는 헬스장 강철봉이다.
천문석은 손을 뻗어 강철봉을 쥐었다.
동네 헬스장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철봉 같은 모습.
길이, 무게 모두 어중간하고 특별한 마력 회로가 새겨져 있지도 않았다.
이 강철봉의 기능은 단 하나!
그립과 내력의 움직임에 따라 봉 안에 담긴 모래가 흐르고 무게가 변한다는 것이다!
파스스스-
모래가 흘러내리는 찰나의 순간 미묘하게 무게와 중심이 변화했다.
속도와 무게는 병기의 파괴력 그 자체다!
이 강철봉이 제대로 사용할 기술이 있는 무공 각성몽을 꾼 무공 각성자, 무기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오러 각성자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파괴력을 낸다.
만약 오늘 광화문의 난장판에서 천문석이 이 강철봉을 들고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꼬일 일도 없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적, 김태희 대령조차 100초면 제압할 수 있었다!
이 강철봉은 자신에게는 최고의 무기였다!
게다가 헬스장 강철봉같이 생긴 외형 덕분에 누구도 경계하지 않았다!
‘가져간다!’
마음의 결정은 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강철봉을 넣어 갈 무장 상자가 없다는 것!
“으으으- 무장 상자를 사 오는 건데!”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롱소드!
개미굴 광산에서 발견한 천검의 검혼!
그 검혼이 담긴 롱소드를 경석이가 만들어 줬다!
검혼 롱소드는 무림 던전의 이세기에게 줬지만, 그 롱소드를 담았던 무장 상자는 자신에게 있다!
‘어디에 놨더라?’
생각과 동시에 기억이 떠올랐다!
‘침대 아래!’
천문석은 한달음에 침실로 달려가 손을 뻗었다.
스르륵-
기억 그대로 손에 잡혀 끌려 나온 길쭉한 무장 상자!
“좀 작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무장 상자를 여는 순간 그 안에 담긴 도토리가 모습을 드러났다.
“웬 도토리가 여기에 있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오리온 길드의 개미굴 광산에서 주워 완충재로 넣어 둔 도토리다!’